김상봉 선생님의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의 마지막 대목(382~4쪽)을 옮겨온다.   

 

 

 

 

 

 

 

"슬픔의 의미와 고통의 존재 이유를 묻는 것,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 그리고 가장 깊은 슬픔과 절망 속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것, 그것이 오랫동안 내가 생각한 철학의 길이었습니다. 그것은 플라톤이 걸었던 것과는 정반대의 길입니다. 그는 빛을 찾아 어둠의 동굴을 빠져나와 위로 올라가려 했지만, 나는 도리어 슬픔의 어둠 속으로 내려가는 것이야말로 우리 시대 철학이 걸어야 할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진리가 오직 슬픔 속에서만 계시된다고 내가 믿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빌라도처럼 묻고 싶으시겠지요. 진리란 무엇이냐고. 진리는 만남입니다. 만남이야말로 모든 일치, 즉 모든 진리의 원형인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 나는 너를 온전히 만날 수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오직 우리가 서로의 슬픔에 참여할 때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진리는 슬픔 속에서만 우리에게 도래합니다. 그리고 철학이 진리를 갈망한다면, 철학은 먼저 슬픔의 해석학이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 내가 그리스 비극을 이야기한 것은 그것을 사다리로 삼아 할 수 있는 한 깊은 슬픔의 심연 아래로 내려가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편지를 다 쓰고 난 지금 나는 내가 얼마나 깊은 슬픔의 어둠에까지 내려간 것인지, 내가 깊은 슬픔 속에 있는 사람들의 탄식을 올바로 들은 것인지 그리고 과연 내가 들었던 그 많은 말들을 온전히 표현한 것인지, 아무것도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없습니다. 슬픔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내 말은 아직 슬픔과 고통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경박한 정신의 한가한 유희처럼 보이지나 않을지 나는 적이 두렵고 부끄러운 마음뿐입니다. 끝없는 슬픔의 바다에서 얼마나 더 싶은 심연으로 낮아져야 나는 당신의 슬픔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지요? 바닥을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의 깊이 앞에서 나는 내 모든 말이 참된 슬픔을 알지 못하는 자의 치기가 아닐까 하여 깊이 저어하고 또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그 부끄러움 때문에 내가 걷는 길을 멈추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는 더 낮아지고 낮아져 당신이 있는 가장 깊은 슬픔의 심연까지 내려가겠습니다. 어떻게 가장 깊은 슬픔 속에 참된 기쁨이 깃들이고, 어떻게 가장 깊은 절망 속에서 희망의 무지개가 떠오르는지 그 신비를 깨달을 때까지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고 또 내려갈 것입니다.  

이제 정말 작별할 시간입니다. 긴 편지 끝가지 읽어주신 것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다시 소식드릴 때까지, 사랑하는 그대, 부디 평안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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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4 0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4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요먼 2011-11-10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슬픔의 의미와 고통의 존재 이유를 묻는 것,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 그리고 가장 깊은 슬픔과 절망 속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것, 그것이 오랫동안 내가 생각한 철학의 길이었습니다.
- 이 구절 참으로 좋습니다 ^^ 가슴이 짠 하네요, 나도 그런 철학의 길을 가고싶네요.

바라 2011-11-11 01:46   좋아요 0 | URL
요먼, 나중에 이 책 빌려드릴게요ㅎㅎ 꼭 읽어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