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환대라는 세계시민적 규범에 부응하는 정책이나 법을, 법제도와 담론적인 의지 및 여론 형성을 통해 만들어내야 하는 것은 각 나라 국민들 자신이다. 민주주의 국민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것은 입헌적 자기창조의 진행형적 과정이다. 비록 우리가, 배제되는 자가 배제와 포함의 규칙을 정하는 데 참여하지 못한다는 역설을 결코 없앨 수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지속적이며 다중적인 민주적 반추 과정을 통해 이런 차이를 유연하고 협상 가능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우리 가운데 있는 이방인과 외국인, 타자를 어떻게 대우하느냐가 도덕적 양심뿐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의 정치적 반성 역량을 테스트하는 시금석이 된다. 주권국가의 정체성을 정의내리는 것 자체가 유동적이고 개방적인 과정이며 공공적 토론을 통한 논란 끝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와 당신, 우리와 그들을 구별하는 경계는, 종종 검증되지 않는 편견의 결과이든지, 고대에 벌어졌던 전쟁, 역사적 부정의, 그리고 단순히 행정 명령에서 비롯한 경우가 많다. 그 모든 근대 민족국가의 시작은 어떤 폭력과 부정의의 씨앗을 안고 있으며, 이 점에서는 칼 슈미트가 옳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 자유민주주의는, 국민을 주권자로 만듦과 동시에 이런 국민주권의 정당성을 기본적 인권 원칙의 고수에서 찾는 면에서 스스로를 한계 짓는 집합체이다. ‘우리, 국민’이라는 말은 바로 그 말 자체 속에 보편적 인권에 대한 존중과 국가적으로 경계 지어진 주권적 요청이라는 입헌적 모순을 담고 있는 내재적으로 위험한 문구다. 그것이 난민인지 아니면 이주 노동자인지, 망명객인지, 탐험가인지를 불문 / 하고 외국인과 이방인의 권리는, 반대로 ‘우리, 국민’의 정체성을 정의하고 타협시키며, 묶고 풀며, 또한 윤곽 짓고 유연하게 하는 바로 그런 문지방과 경계를 규정한다. 우리는 시민권에 대한 단일한 모델 즉, 한 영토에서의 거주와 국민 전체가 다소간 밀착된 하나이기에 단일한 행정이 집행되는 것이 옳다고 보는 그런 단일한 시민권 모델이 종언을 고하는 정치적 진화의 순간에 서 있다. 이런 모델이 종언을 고한다는 것이 그렇다고 지금 우리의 제도를 이끄는 정치적 생각이나 규범적 힘이 낡아버렸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이것은 우리가 이제 새로운 유형의 정치적 시민권에 걸맞는 정치적 행위와 주체의 형식을 구상해야 함을 뜻한다. 나는 이런 새로운 정치적 추세를 ‘민주적 반추’라는 개념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민주적 반추(democratic iteration) 개념을 통해 나는 보편주의적 권리 요구와 원칙들이 법적, 정치적 제도에서 뿐 아니라 시민사회적 친교에서 경합되고, 맥락화되며, 행사되거나 취소되고, 가정되거나 정립되는 그런 공공적인 복합적 토론 과정, 숙고, 의견 교환 과정을 총칭한다. 이런 민주적 반추는 공공적인 법제기구나 사법기구, 집행기구 차원에서 ‘강하게’ 이루어질 수도 있고, 비형식적으로 시민사회적 친교와 언론 등의 ‘약한’ 공공성 속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다." (208~209) 

 

"되풀이의 구조는 ... 동일성과 차이를 동시에 함축한다. 가장 '순수한' 되풀이 - 하지만 이는 결코 순수하지 않다 - 는 그 자체 안에 자신을 되풀이로 구성하는 어떤 차이의 간극을 포함한다. 어떤 요소의 되풀이 (불)가능성은 자기 자신의 동일성을 선험적으로 분할한다. 심지어 이 동일성이 다른 요소들에 대한 차이화의 관계를 통해서만 자기 자신을 규정하거나 한정할 수 있다는 점, 따라서 이는 이러한 차이의 표시를 지니고 있다는 점은 고려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렇다"
Derrida, Limited Inc, Galilee, 1990, 105쪽. <법의 힘>의 용어해설(186~7)에서 재인용.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11-02 1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3 0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