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된 수사와 기소가 가능한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하라

세월호 참사 120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곡기를 끊은 지 꼭 31일이 되었습니다. 국민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큰 절을 올리는 우리 가족들입니다.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대한민국의 참담한 현실, 국민의 힘으로 바꿔냅시다.

8월 15일 광화문광장,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범국민대회에 함께 해주십시오

청와대를 향한 10만의 함성 (8월 15일 오후 3시)
특별법 제정 촉구 촛불문화제 (8월 15일 오후 7시)
416인 광화문 국민농성 ( 8월 12일부터 16일까지 광화문 416광장)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는 세월호 참사의 모든 아픔을 끝까지 함께 나누고, 성역 없는 진상 조사와 철저한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도록 힘을 모으며, 모든 사람이 존엄하고 안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전국의 80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구성한 세월호 참사 대응 범시민사회단체 연대기구입니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의 활동소식은 아래의 곳들에서 꾸준히 보실 수 있습니다.

• 웹사이트 sewolho416.org
• facebook /sewolho416
• twitter @sewolho416
• 메일링리스트 가입 http://eepurl.com/WRFCT (매주 발행되는 뉴스레터를 보내드립니다)
• 후원계좌: 국민 479001-01-248152 정현곤(세월호대책회의)


http://sewolho416.org/2175


제대로 된 특별법 제정,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합니다

죽어 돌아온 아이의 얼굴은 보랏빛이었습니다. 가족이 힘들어할 테니 보여주지 말자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쁘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깨달았습니다. 어떤 모습이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었습니다. 미운 짓 한다고 서운하던 때조차도 사랑하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그래서 못다 전한 사랑한다는 말이 한가득 쌓였는데 전할 방법을 알 수 없는 우리는, 무엇이든 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왜 그렇게 죽어가야 했는지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서는 사랑한다는 말을 전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보랏빛 얼굴조차 아직 만나지 못한 열 명의 실종자에 대한 죄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참사가 반복되어왔지만 너무 쉽게 잊어왔던 우리를 용서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외쳤습니다.

대통령도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했습니다. 대통령의 말이 약속이 아니라 책임 회피라는 것은 뒤늦게서야 알았습니다. 5월 대국민담화의 약속은 국회로 책임을 떠넘기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가만히 앉아있는 국회를 기다릴 수만은 없었습니다. 가족이 원하는 특별법안을 만들고 국민의 힘을 등에 업어 국회로 달려갔습니다. 그랬더니 대통령은 여야 원내대표를 불러들여 7월 본회의에서 제정하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행동은 달랐습니다. 청와대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자료를 제출하라는 국회의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스스로 밝혀야 할 진실인 ‘사라진 7시간’에 대해서는 입을 닫은 채 더욱 숨어들어갔습니다. 국회 본청 앞에서 잠을 청한 지 한 달이 가까워질 때 우리에게 온 것은 특별법이 아니라 여야의 밀실 합의 소식이었습니다. 진실을 밝히는 법이 아니라 진실을 숨기는 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내용이었습니다. 분노한 우리는 여야 양당에 재협상을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묵묵부답입니다. 다시 협상을 약속한 여야 원내대표는 무엇을 골몰하고 있습니까.

새정치민주연합은 적당히 무마하려고 골몰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철저한 진상 규명 권한을 걸고 싸우지 않은 채 슬금슬금 눈치만 보고 있습니까? 새누리당은 우리를 완전히 포기시키려고 골몰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문명사회 운운하며 피해자에게 수사권 주지 말라고 엄포를 놓습니까? 그러면 가해자가 칼자루를 쥐는 것은 문명사회입니까? 피해자가 진실을 밝혀달라며 한 달 넘게 단식을 하고,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것은 문명사회입니까? 우리의 마음에 포기라는 단어는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만약 지금 이 순간 포기라는 단어를 가져가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박근혜 대통령입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든 노력을 포기하십시오. 진실을 감추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든 시도를 포기하십시오. 어떻게든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든 눈속임을 포기하십시오. 그리고 책임지십시오. 그 말을 전하기 위해 우리는 청와대로 가려고 했습니다.

몇 걸음 떼기도 전에 경찰들이 달려와 길을 막았습니다. 길을 열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며 앉은 우리를 경찰은 사지를 잡아끌며 길옆으로 내동댕이쳤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가족이 실신해 병원으로 실려 가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경찰을 강력히 규탄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규탄은 경찰이 지키려고 했던 청와대를 향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양당 원내대표도, 국회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우리를 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이제 분명히 알았습니다. 당신들이 지켜주고 있는 것이 결국 청와대일 뿐임을 깨닫기 바랍니다. 그리고 선택하십시오. 많은 국민들이 가족을 지켜주기 위해 자신을 버리기도 하셨습니다. 가족의 감사를 전합니다. 여전히 청와대를 지키려는 자들이 국민 여러분들로부터 배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명확합니다. 대통령이 책임져야 할 방법을 정히 모르겠다면 우리가 알려드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포기시키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많은 국민들과 함께 다시 이 자리로 오려고 합니다. 해산되어서는 안 될 진실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해산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 되어 다시 오겠습니다. 대통령에게 묻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살려낼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나 특별법은 제정할 수 있지 않습니까. 대통령이 결단할 수 있는 일이며,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대통령의 빠른 결단을 촉구합니다.

2014. 8.14.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김진숙 지도위원은 <소금꽃나무>의 저자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난 아직도 세상을 바꾸고 싶다.
인간이 돈에 왕따당하는 이 지리멸렬의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 이 땅 이 강산 공장마다, 사무실마다 울울창창 흐드러지게 소금꽃을 피우며 서 있는 나무들. 그 나무들이 500년 전 남해 바다를 주름잡던 거북선을 만들었다. 배를 만들고, 차를 만들고, 길을 만들고, 집을 만들고, 기름을 만들고 ... 그야말로 세상을 만들어 온 것도 그들이고,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것도 그들이고, 온갖 재화를 생산하는 것도 그들이고, 그 재화를 지켜주는 것 또한 그들이다. 바다 위를 달리고, 길 위를 달리고, 하늘을 가르는 것도 그들이다. 아픈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도 그들이고,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 주는 것도 그들이다."  

김진숙 위원을 생각하면 참 속이 끓는다. 조남호나 경찰들을 보며 분노를 느끼다가도, 또 슬픔과 부끄러움 때문에 스스로가 밥버러지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김진숙 위원의 저 강인한 모습을 보면서는 얼마나 인간의 영혼이 크고 숭고해질 수 있는가를 생각하기도 한다. 김진숙 지도위원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안티고네, 비극적 영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숭고나 영웅이라는 말로 나 스스로는 저 싸움을 그저 사물화시키고 마는 것은 아닌가. 그녀는 영웅이 싫다고, 가장 경계하는 것이 영웅 놀이라고, 오직 대중과 역사만을 믿는다고 말한다. 또 한번 부끄러울 따름이다. 또 희망버스라는 기획은 또 얼마나 새로운, 엄청난 기획인지. 여태 희망버스도 타지 못했고, 두렵고 소심한 마음에 키보드나 두드리고 있지만 부디 건강하시고 크레인에서 몸소 내려오실 날이 왔으면 좋겠다. 어제로서 고공농성 200일 째라고 한다....   

한진중공업 파업 아카이브에 가면 관련된 여러 글들을 볼 수 있다. 

http://www.jinsuk85.org/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1-11-15 16: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김진숙,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노무현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10330104351&section=0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그는 지난 3월 <프레시안>에 "지금 당장 '삼성 불매 운동'을 제안합니다!"라는 글을 기고한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다. 김 교수가 주변 지식인과 활동가, 정치인들을 상대로 삼성과의 싸움에 나서도록 호소했을 때, 그를 아끼는 독자들이 맹렬한 호기심을 느꼈던 것은 그래서였다. '삼성 불매 운동이 어떤 철학적 배경에서 나온 걸까', '철학자가 이해한 삼성 문제란 어떤 것일까' 등의 의문이다.

결국 김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시 중구 태평로 한국언론회관(프레스센터) 근처에 있는 한 찻집에서 만난 김 교수는 예상대로였다. 그가 쏟아낸 말은, 미리 외워둔 수학 공식에 대입해서 얻은 결과물 같은 상투적인 논평과 달랐다. 말에 담긴 개념은 푹 익어있었고, 맥락에서 동떨어진 낱말은 찾기 힘들었다. 그가 제안한 삼성불매운동이 그저 즉흥적인 발상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대화였다.

이날 이야기를 마친 뒤, 그는 프레스센터 18층 서울외신기자클럽에서 김용철 변호사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외신기자들 앞에서 그는 삼성을 비판하는 칼럼이 <경향신문>에조차 실리지 못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대기업에 짓눌린 한국의 민주주의를 잘 보여준 사건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어 그는 외신 기자들 앞에서 "삼성 제품을 쓰지 않는 일, 삼성 주식에 투자 하지 않는 일에 전 세계 소비자·투자자가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호소에 앞서 김 교수와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다.

학벌과 재벌, '차별과 불평등'의 다른 표현들

프레시안 : '학벌 없는 사회' 활동을 오래 했다. 이른바 'SKY' 대학(서울대·연세대·고려대)이 배타적인 기득권을 누리는 학벌 구조를 깨는 일을 해 왔던 철학자가 갑자기 삼성 문제에 뛰어든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다.

김상봉 : 그동안 해 왔던 '학벌 없는 사회' 활동이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고 본다. 과거에는 학벌 문제가 교육 내부의 문제로만 여겨졌다. 일종의 문화 현상으로 봤던 게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이들이 사회의 권력 구조와 학벌이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점을 안다. 또 스스로 학벌 권력을 포기하는 이들도 나오고 있다. 'SKY' 대학 진학을 거부하는 이들이다. '자발적 낙오자 되기', '내부로부터의 망명'을 감행한 경우인데, 이런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학벌 없는 사회' 활동이 성과가 있었다고 보는 이유다.

그런데 '학벌 없는 사회' 활동을 하면서 가끔 답답할 때가 있었다. 학벌 권력은 일종의 '기생권력'이다. 미국, 군부, 재벌 등 주류 권력에 기생(寄生)하는 권력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학벌 권력을 해체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학벌 기득권층이 기생하는 숙주에 다가가야 한다. 그렇다면, 교육에 뿌리를 둔 학벌 문제와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에 바탕을 둔 주류 권력의 문제를 어떻게 연결 지어야 할까. 이게 학벌 폐지 운동을 하는 이들의 오랜 고민거리였다. 학벌 폐지 운동이 결국 근본적인 사회 변화로 이어지려면, 이런 고민을 푸는 게 필수적이다.

삼성 문제에 뛰어든 것은 이런 고민의 결과였다. 학벌 문제의 근본에 도사리고 있는 게 '차별과 불평등'인데, 이것을 재생산하는 구조가 지금의 신자유주의적 사회경제체제다. 그리고 이런 구조의 정점에 있는 게 삼성 재벌과 이건희 회장 일가다. 이들이 누리는 특권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차별과 불평등'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학벌에 따른 '차별과 불평등'에 분노했던 이라면, 삼성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고 본다.

"학벌 구조 정점에 선 서울대, 재벌 체제 정점에 선 삼성"

프레시안 : 삼성불매운동을 <프레시안>을 통해 호소한 지 두 달이 넘었다. 많은 이들이 호응했지만, 한편에서는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어떤 이들은 다른 재벌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데, 왜 굳이 삼성만 문제 삼느냐고 한다. 또 다른 이들은 삼성이라는 기업과 이건희 일가는 분리해야 하지 않느냐고 한다. 이건희 일가의 비리 때문에 삼성 직원들까지 모욕당할 이유는 없다는 게다. 불매운동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있다. 삼성 그룹 매출의 대부분이 해외에서 발생한다는 점, 대표적인 상품이 반도체라는 점 때문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삼성 반도체가 어디에 쓰이는지를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


▲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 ⓒ프레시안
김상봉 : 불매운동에 회의적인 이들에게 이렇게 되묻고 싶다. '그렇다면, 다른 대안이 있느냐'라고 말이다. 삼성 비리에 대해서는 사법부도, 언론도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이 경우,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하나는 노동조합이 나서서 회사의 비리를 공개하고 싸워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삼성에는 노조가 없다. 결국 나머지 하나인 소비자가 나서는 길 외에는 대안이 없다.

왜 삼성만 문제 삼느냐는 지적은 황당하다. 학벌 체제를 무너뜨리려면, 결국 서울대를 겨냥해야 한다. 서울대가 가장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서울대가 기득권의 정점에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혹은 SKY대학을 비켜가면서 학벌 체제를 무너뜨릴 방법은 없다. 재벌 체제, 기업독재 체제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구조를 바꿔내려면, 정점에 있는 삼성을 먼저 겨냥할 수밖에 없다. 이런 입장을 마치 다른 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논리로 왜곡한다면, 잘못이다.

삼성과 이건희를 분리하자는 말도 있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모르겠다. 삼성 노동자들이 이건희의 비리에 맞서 싸울 때만 가능한 논리라고 본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지 않는가.

"'우리 안의 이건희' 지우지 않으면, 삼성 불매도 소용없다"

삼성 그룹 매출의 대부분이 해외에서 발생한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삼성 불매운동을 부정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해외에서도 삼성 불매운동이 벌어져야 할 필요성을 보여주는 근거라고 보는 게 옳다.

이른바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에서라면, 노동조합을 금지하고 분식회계를 저지르는 기업에 대해 불매운동을 하는 게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개발도상국이라 불리는 나라 역시 불매운동이 필요하다. 삼성은 이런 나라에 공장을 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노동인권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현지 주민들이 계속 피해를 입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불매운동은 필수적이다.

삼성 그룹의 가장 큰 수입원이 반도체 판매인데, 이런 부품까지 불매운동을 해야 하느냐라고 한다면, '근본주의적 입장에 설 필요는 없다'는 대답을 들려주고 싶다. 삼성이 생산한 부품까지 쓰지 않으며 생활하기란 쉽지 않다. 불매운동의 초점은 삼성 브랜드가 찍힌 완제품 및 서비스 상품에 맞추는 게 현실적이라고 본다. 불매운동의 목적이 불매 행위 그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불매운동은 삼성 문제 해결을 위해 시민이 집단적으로 벌이는 실천이며, 동시에 우리 내면의 욕망을 성찰하는 작업이다. 삼성을 비난하는 많은 이들 역시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건희 회장을 닮고 싶어 한다. '우리 안의 이건희'를 지우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이건희가 나오는 것은 필연이다. 그렇다면, 설령 삼성과 이건희가 사라진다고 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 '우리 안의 이건희'를 정직하게 들여다 보는 작업이 바로 삼성 불매운동이다.

"기업은 현대인의 폴리스…기업 민주화 없이 주체적 삶 불가능"

프레시안 : 소비자가 삼성 불매운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정치권력, 사법부, 언론 등 공적 영역이 삼성 비리 앞에서 작동을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민주주의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게 된다. 민주주의는 1인 1표의 원리를 따른다. 초등학교도 못 나온 사람이나 박사 학위 소지자나 똑같은 자격으로 공동체의 문제에 참여한다. 반면, 자본주의는 1주 1표다. 지분을 많이 가진 한 명이 적게 가진 다수를 지배할 수 있는 구조다. 작동 원리가 전혀 다른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공존하려면, 법과 제도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소수에게 권력이 쏠리게끔 돼 있는 자본주의 원리가 민주주의의 기초까지 흔드는 일을 막으려면 적절한 규제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성 비리에 대한 정부와 법원의 태도를 보면, 자본주의와 공존하는 민주주의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정부와 법원이 자본주의 원리에라도 충실한가. 역시 아니다. '1주 1표' 원리대로라면, 이건희 회장은 삼성 그룹을 지금처럼 지배할 수 없다. 가진 지분이 워낙 적기 때문이다.

한편, 이런 모호한 상황은 삼성 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학자,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엿보인다. 똑같이 삼성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서 있는 이념적 기반은 다르다는 이야기다. 어떤 경우는 자본주의 자체에 부정적인 입장에서 삼성을 비판한다. 다른 어떤 경우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원리에 충실하다보니 삼성에 비판적인 입장이 됐다. 삼성 불매운동을 주장하는 김 교수가 서 있는 입장이 궁금하다.

김상봉 : 내가 삼성 불매운동을 제안한 것은 자본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과 맞닿아 있다. 기업의 작동원리가 민주주의와 양립하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진보 진영에서 오랫동안 통했던 해법은, 국가가 기업을 소유하거나 견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해법은 이제 효용을 잃어가고 있다. 기업은 국가 속에서 잉태되었지만, 지금은 국가를 넘어선 존재가 됐다. '세계화' 때문이다. 기업은 인건비와 세금이 싼 나라로 공장을 옮겨 다니며 몸집을 키운다. 국가는 오히려 기업의 눈치를 본다.

결국 해법은 기업 자체를 민주화하는 것이다. 현대의 기업은, 개인에게 있어서 고대 그리스폴리스(Polis)와 다름없다. 사회적 삶이 일어나는 지평이 기업이다. 따라서 기업을 민주화하지 않고서는 인간이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게 불가능하다.

기업을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게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소유권의 개념을 제대로 설정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경영권과 소유권을 분리하는 게 핵심이다. 주식을 가진 사람이 왜 노동자를 지배할 권리까지 가져야 하는가. 이런 질문이 출발점이다.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서 나오듯, 기업의 경영권은 노동자에게서 나오는 게 맞다. 그렇다면 누가 주식에 투자하느냐고? 그래도 투자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배당금을 받을 수 있지 않는가. 기업이 낸 이익 가운데서 어느 정도를 주주에게 배당할 것인지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 정하면 된다. 배당을 너무 적게 하면, 자본 투자가 줄어들 테고 너무 많이 하면 기업에 재투자할 몫이 줄어든다. 기업 구성원이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인 균형점을 찾으면 된다.

이런 구조가 만들어지면, 이건희 회장이 1퍼센트 수준의 지분만 갖고 삼성 그룹 안에서 황제처럼 지배하는 일은 생길 수 없다. 회사 돈을 비자금으로 빼돌리고,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손해를 회사에 뒤집어씌운 그에게 지분에 걸맞은 배당금을 주고 내쫓으면 그만이다.

"5·18 30주년, 이제 삼성독재와 싸울 때"

프레시안 : 기업 지배 구조를 민주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행정부, 사법부가 기업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바뀌려면 그것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운영방식을 닮는 게 선진화'라는 생각이 깊이 뿌리내렸다. 공무원들을 기업에서 연수받도록 한다거나, 정치인들이 'CEO'를 자처하는 것 등이 그 예다.

김상봉 : 한국에서 신자유주의가 득세한 뒤, 국가 위에 기업이 있는 구조가 짜여졌다. 옛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국가 위에 당이 있었는데, 그보다 더 답답한 구조다. 당은 그나마 통제 가능성이 있지만, 기업을 기업 바깥에서 통제하기란 불가능하다. 기업 내부는 일종의 독재 체제로 운영된다. 그런데 이런 방식이 선진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민주주의의 퇴행에 다름 아니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한마디로 '기업 독재' 체제다.

물론 이런 현상은 다른 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다. '공화국' 전통의 유무가 낳은 차이다. 이런 전통이 살아 있는 나라에서는 공동체를 중시하는 '공화국' 전통과 기업 독재 흐름이 서로 맞부딪히면서 균형을 이룬다. 반면 '공화국' 전통이 없는, 국가기구가 한 번도 온전히 공공적 기관이었던 적이 없으며, 국가기구가 소수의 권력집단이 사사로운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사적으로 점유한 수탈과 억압의 도구로만 쓰였던 한국에서는 기업 독재 흐름을 견제할 힘이 없다.

프레시안 : 공화국 전통이 없다는 지적을 하는 지식인이 많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절망하게 된다. 민주주의를 외부로부터 이식당한 한국 사회에서 강자의 탐욕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게 과연 가능할까라는 절망감이다.

김상봉 : 꼭 그렇게 절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는 다른 전통이 있다. 저항 공동체의 전통이다. 30년 전, 광주 시민들이 보여준 모습이 좋은 예다. 지난 18일, 진보신당 광주시당은 '삼성독재 해체 투쟁'을 선언했다. 1980년 5월 신군부에 온몸으로 맞섰던 바로 그 자리에서 나온 이런 선언은 의미가 깊다. 나는 지금 이 선언이 신자유주의 기업독재에 시달리는 세계인들에게 자유와 인권, 해방을 향한 메시지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런 메시지를 외신 기자들에게도 전달할 것이다.

총탄이 쏟아지는 1980년 5월 광주 금남로 거리에서 1987년 6월을 상상한 이가 있었겠는가. 아마 없었을 게다. 마찬가지다. 어떤 이들에게는 지금 광주에서 나온 선언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역사는 늘 꿈을 현실로 만들어 왔다.

지난 30년은 '부정과 문학의 시대'…앞으로 30년은 '형성과 철학의 시대'

프레시안 : 기업 독재를 막자는 목소리는 진보 진영 안에서도 미미한 편이다. 삼성 불매운동에 몸을 던지는 진보 정치인, 활동가가 많지 않다는 점에서도 드러나는 사실이다.

김상봉 : 나는 올해가 광주항쟁 30주년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지난 30년을 뒤로 하고,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출발점에 서 있다고 보는 것이다. 지난 30년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부정의 시대'였다. 이런 시대에는 '멀쩡해 보이는 현실 뒤에 있는 거짓'을 드러내는 게 중요했다. 광주에서 수많은 시민을 학살했던 장본인들이 고개 들고 다니는 현실, 이런 거대한 아이러니를 폭로하는 게 지식인의 역할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난 30년은 '문학의 시대'였다고 본다. '부정의 정신',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그려내는 이미지와 환상이야말로 문학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백낙청, 김지하, 황석영 등이 지난 30년을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꼽히는 게 당연하다고 본다.

그러나 기업독재의 시대는 새로운 정신을 요구한다. 바로 '형성의 정신'이다. 신자유주의 기업독재는 인간의 삶을 총체적으로 옥죈다. 그래서 여기에 맞서는 대안 역시 총체성에 바탕을 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확한 개념이 필요하다. 나는 그 작업이 철학자의 몫이라고 본다. '형성의 시대'가 될 앞으로 30년은 '철학의 시대'가 되리라고, 나는 감히 말한다.

"삼성 문제 외면하는 사회과학은 '불임의 학문'"

프레시안 : '철학자가 왜 삼성 문제에 나서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들린다. 상당수 사회과학자들이 삼성 문제에 침묵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김상봉 : 단언하건데, 삼성 문제에 침묵하는 사회과학은 '불임의 학문'이다. 사회과학자들은 왜 침묵하는가. 어떤 이들은 용기가 없어서이지만, 다른 어떤 이들은 제대로 해석할 능력이 없어서 침묵한다. 삼성 문제라는 구체적 현상을 총체성 속에서 보지 못하는 게다. 대신, 그들은 삼성이 저지른 일부 불법, 탈법 행위에만 주목한다. 교과서를 들이밀며, 거기서 벗어난 행위를 찾는데 그치는 게다. 그런데 나는 묻고 싶다. '그게 학문인가'라고?

모든 구체적 현상을 구체성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학문이 아니다. 학문은 개념을 다루는 것인데, 진짜 개념은 총체성 속에서만 나올 수 있다. 그리고 스피노자에 따르면, 진짜 개념은 '형성'하는 것이다. 예컨대 집 짓는 설계도 역할을 못하는 것은 설계도가 아니듯, 현실을 형성하지 못하는 개념은 가짜 개념이다. 삼성 문제라는 구체적 현실에 관한 진짜 개념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회과학을 '불임의 학문'이라고 규정한 이유다.

사회과학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나는 철학에 책임이 있다고 본다. 철학이야말로 총체성을 다루는 학문이다. 그런데 철학이 그 역할을 하지 못했다. '부정의 시대'가 저물어 갈 때, 철학자들은 무엇을 했는가. 그때야말로, 이 땅의 구체적 현실을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작업이 절실한 때였다. 그러나 그 귀한 시간을 철학자들은 총체성에 대한 냉소로 메워버렸다. 거듭 말하지만, 철학은 구체적 현실을 총체성 속에서 주체적으로 해석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땅의 철학자들은 이런 작업을 포기하고, 대신 남의 개념을 수입해 폭력적으로 적용하는 일에만 골몰했다. 그건 철학이 아니다.

삼성 문제에 철학자가 나선 것은 필연이라고 본다. 기업 독재의 구체적 발현태인 삼성과 싸우는 과정에서 새로운 시대를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개념이 만들어질 게다.

"악과 싸우지 않는 진보, 결국 보수에 전용된다"

프레시안 : '총체성'을 강조하는 게 인상적이다.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한 뒤, 많은 지식인들이 작고 구체적인 문제에 매달렸다. 그 사이 삼성을 포함한 재벌은 통제받지 않는 권력을 갖게 됐다.

김상봉 : 많은 이들이 '생활 진보'를 강조한다. 좋은 말이지만, 이런 주장이 '총체성을 포기한 구체성'이라면 나는 동의할 수 없다. 현실 속의 구체적인 악(惡)과 맞설 수 없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악은 구체적으로 발현되지만, 뿌리는 총체적이다. 따라서 총체성을 포기해서는 이런 악과 맞설 수 없다. 그리고 악과 싸우지 않는 진보는 결국 보수에게 전용되기 마련이다. 물론, 총체성에 대한 집착이 구체적 현실을 외면하는 핑계가 돼서도 곤란하다.

이런 이야기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지금 이곳에서, 삼성과 싸우지 않는 생활 진보는 가짜다."

 



/성현석 기자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댓글(6) 먼댓글(1)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 신촌일대 헌책방 약도
    from 퀸의 정원 2010-06-21 10:39 
    머큐리님이 신촌의 숨어있는 책을 다녀오셨다는 글을 올리셨는데 바라님이 위치를 물으시길래 글로 알려드렸지만 그래도 약도가 편하실 것 같아 스페이스 오딧세이님의 사진과 약도를 올려드리니 혹 신촌에 들르셨다가 헌책방을 가실 분들은 참고 하시길 바랍니다. http://galaxian.egloos.com/4252845 ①숨어있는 책(숨책) : '신촌역' 8번출구로 나와 직진하다가 횡단보도를 지나서(건너면 안됨) 좌측의 내리막길 따라 세
 
 
바라 2010-06-08 0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상봉 선생님 같은 분의 존재는 정말 소중하지만.. 삼성과의 싸움, 자본주의와의 싸움을 주장하는 그의 대의에도 십분 공감하지만, 그런 싸움을 벌여내기에 그의 입장이 너무 '철학적'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본주의의 두 축이 노동과 소비이고 노동자 운동이 안 되니까 소비자 운동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은 너무 도식적이고 나이브하지 않은가? 삼성을 '민주화'할 수 있는 건 먼 발치에서 불매하는 소비자들이 아니라 삼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그 자신이 아닐까? 윤리적이고 인간주의적인 철학적 비판이 비판으로서 힘을 얼마나 갖는가? 총체성, 개념 등을 근거로 사회과학을 그렇게 쉽게 평가절하할 수 있을까?

[해이] 2010-06-08 14:11   좋아요 0 | URL
댓글 잘 읽었어요. 저도 공감하는 바. 요즘 사회과학에 대한 철학의 우위(?)라고 할만한 현상이 파다한듯. 사회과학 학생들은 통계나 돌리면서 기업이 원하는 연구성과들을 축적하고 있고, 인문학쪽에서는 사회과학 없는 정치철학이라고 할만한게 대세를 이루는 것 같아요. 조금 논의가 벗어난 말일 수도 있지만, 구체적인 경험적 현실에 대한 참조 없는 텍스트 연구는 결국 "똘똘이 스머프"들을 양산하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바라 2010-06-10 00:3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 개인적으로는 사회철학이라는 것과 사회학은 어떻게 구획될 수 있는지도 고민이 되고 하네요. 루만 같은 사람 이야기를 봐도 그렇고..

빵가게재습격 2010-06-18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에 추천 누르고 갑니다. 흰소리를 조금 하자면 무엇보다 <삼성을 생각한다> 부터 전국민 필독서로 만드는 것이 우선...도망갑니다.^^

바라 2010-06-19 00:37   좋아요 0 | URL
앗 왜 도망가시나요 ㅎㅎ 저도 동감입니다. 김상봉 선생님의 활동들이 많이 알려지고 <삼성을 생각한다>도 많이 팔렸으면 좋겠습니다. 발언의 중요성에 비해 아직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카스피 2010-06-21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촌 숨책 약도를 알고 싶다고 하셔서 먼 댓글로 알려드립니다^^
 

 

전쟁반대 평화실현 10만 네티즌 시국선언을 제안합니다

전쟁이라는 단어가 매일같이 신문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합조단 스스로도 밝혔고 국회진상조사특위에서도 확인되었듯 5.20발표는 정밀조사와 시뮬레이션을 완료하지 못한 중간결과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선거운동개시일에 맞춰 서둘러 ‘북의 소행’이라 발표했습니다.


이어지는 대통령 담화를 통해 ‘북의 군사도발’에 맞선 ‘자위권 발동’을 언급함으로써 남북관계는 일촉즉발의 전쟁국면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북한은 주적으로 규정되고 한미연합 대잠수함 훈련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남북교역은 전면 중단돼 남북교류협력법이 제정된 1989년 이전으로 회귀했습니다.


주식시장, 외환시장은 이미 살얼음판입니다. 나흘만에 달러가 100원이나 올랐습니다. 기업하는 분들은 말한 것도 없고 유학준비하고 여행 준비했던 분들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입니다.


여기에 더해 한반도 전쟁리스크를 이용해 한 몫 챙기려는 투기꾼들까지 가세해 우리나라 경제는 한치앞도 내다보지 못할 상황입니다.


우리가 왜 이런 두려움위에서 살아야하는지요.
한나라당 조해진 대변인은 필요한 비용을 치를 각오가 돼있다고 말했는데 도대체 그 비용은 무엇이고 누가 감당하라는 말입니까?


유시민 후보께서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6월 2일 받아든 투표용지는 종이로 된 총알 이라고, 우리에게 남은 권리 투표용지 한 장과 붓뚜껑 뿐 이지만 그것으로라도 전쟁을 막아야 합니다.


군대간 우리 친구들, 우리 동생들, 자식들을 위해 행동할 때입니다. 안보에서 실패했고 경제에서 또 실패하고 있고,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이땅에 전쟁의 미친바람을 끌어오려는 전쟁불사 정권에게 분명히 말해 줍시다. 절대 전쟁은 안된다고. 전쟁을 하려면 당신들이나 하라고 말입니다.


제 홈페이지에 간단한 서명 양식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5월29일 3시까지 딱 10만명만 모여 봅시다.


5월29일은 야5당을 포함하여 평화를 염원하는 각계각층 대표자들이 함께 준비한 광화문 촛불대회가 있는 날입니다. 하나가 열을, 열이 또 백을 만들어내면 10만인 선언 금방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그 10만명이 한 몸 한 뜻이 되면 100만의 감동을 만들어낼 수 있고 기적을 낳을 수 있습니다.


2010.5.27 이정희 드림


서명운동 : http://www.heenews.co.kr/sign.html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