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철학 수고>> 中 <헤겔의 변증법과 철학 일반에 대한 비판> 요약 (pp. 182~217)
마르크스는 헤겔 변증법에 대한 비판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당시 독일의 슈트라우스나 브루노 바우어 등은 헤겔의 논리학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다. 포이어바흐는 헤겔 변증법에 대해 최초로 “진지하고 비판적인 태도”를 지닌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의 업적은 1. 철학을 인간 본질 소외의 또 다른 형식이자 현존 방식으로 파악했다는 점 2.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이론의 근본 원리로 삼음으로써 진정한 유물론과 실재적 학문을 정초했다는 점 3. 부정의 부정에 대해 자기 자신에 근거하는 긍정적인 것을 대치시켰다는 점으로 요약된다.
포이어바흐의 설명에 따르면, 헤겔 변증법은 실체의 소외, 즉 절대적이고 고정된 추상, 통속적으로 표현하자면 종교와 신학에서 출발한다. 둘째로, 헤겔은 “무한자를 지양하고 현실적인 것, 감각적인 것, 실재적인 것, 유한한 것, 특수한 것을 정립”한다. 즉 철학은 종교와 신학의 지양이다. 셋째로, 헤겔은 긍정적인 것을 다시 지양해서 추상, 무한자를 회복하며, 이로써 종교와 신학을 회복한다.
마르크스는 헤겔이 부정의 부정을 파악함으로써, “역사의 운동에서 추상적이고 논리적이며 사변적인 표현을 찾아냈을 뿐이며, 따라서 이러한 역사는 아직, 하나의 전제된 주체로서 인간의 현실적 역사가 아니라 인간의 산출 행위, 인간의 발생사일 뿐”이라고 적는다. 마르크스는 무엇보다도 “헤겔 철학의 진정한 탄생지요 비밀”인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엔치클로페디> 전체 역시 철학적 정신의 확대된 본질, 자기 대상화에 불과하다. 논리학은 정신의 화폐이며, 헤겔의 사유는 외화된, 자연과 현실적 인간을 도외시한 추상적 사유이다.
헤겔의 이중의 오류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헤겔이 부, 국가권력 등을 인간적 본질에서 소외된 존재로 파악했을 때, 그것은 사상의 존재이다. 외화의 역사, 외화의 폐기 전체는 단지 추상적 사유, 논리적, 사변적 사유의 생산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낯선 대상들이 된 인간의 본질적 힘들을 획득하는 것은 의식 속에서, 순수 사유 속에서, 추상 속에서 일어나는 자기화일 따름이다. 헤겔에서 감각, 종교, 국가 권력 등은 정신적 존재로 나타나며, 정신만이 인간의 진정한 본질이고 정신의 진정한 형식은 논리적 사변적 정신이 된다. 따라서 “존재, 대상이 사상적 존재로서 대상이듯이, 주체는 항상 의식 또는 자기의식이며, 또는 오히려 대상은 추상적 의식과 다를 바 없는 것으로, 인간은 자기의식과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등장하는 소외의 다양한 형태들은 의식과 자기의식의 다양한 형태들일 뿐이다.”
물론 헤겔의 성취 역시 존재한다. 그의 <정신현상학>의 위대함은 인간의 자기산출을 하나의 과정으로 파악하고, 노동의 본질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에 있다. 헤겔은 근대 국민경제학자들의 입장에 서 있는데, 그는 노동을 인간의 본질, 자기를 확증하는 인간의 본질로 파악한다. 하지만 단지 노동의 긍정적인 측면만을 볼 뿐, 소외 등의 부정적인 측면을 보지는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노동은 인간의 외화 속에서 대자적으로 되는 것이지만, 헤겔이 인정하는 유일한 노동은 정신적, 추상적 노동이다.
하여튼 <정신현상학>의 마지막 장인 ‘절대지’의 핵심은 의식의 대상이 자기의식에 불과하다는 것, 또는 대상은 단지 대상화된 자기의식일 뿐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그저 비대상적인 유심론적 존재로 간주된다. 자기의식은 인간적 자연, 인간의 눈 등의 하나의 질이지 인간적 자연이 자기의식의 하나의 질은 아니다. 헤겔에서 인간 본질이나 인간은 자기의식으로 가눚되는 까닭에, 인간적 본질의 모든 소외는 그저 자기의식의 소외일 뿐이게 된다. 그리고 자기의 본질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인간은 대상적 본질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자기의식일 뿐이다. 의식이 대상을 극복하는 것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의식에 대해 대상 자체는 소멸되어 가는 것으로 드러나며(대상이 자기에게 귀환), 자기의식의 외화가 物性을 정립하며(물성은 외화된 자기의식과 같다. 자기의식은 오로지 추상적인 물만을 정립할 뿐 결코 현실적인 물을 정립할 수 없다), 이러한 외화는 부정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의미도 가지고, 즉자적으로뿐만 아니라 의식자체에 대해서도 긍정적 의미를 지닌다. 결국 의식은 외화와 대상성을 지양하고 자기에게 복귀한다는, 따라서 자신의 타자 존재 자체 안에서 자기 자신으로 머물러 있다는 계기도 있다.
그런데 의식이 존재하는 방식이 바로 知로서, 지는 의식의 유일한 대상적 행태이다. 헤겔은 의식이 대상을 의식 자체의 자기 외화라고 앎에 의해 정립한다고 본다. 의식은 외화와 대상성을 지양해서 자신에게 복귀하며, 그에 따라 자신의 타자 존재 자체 안에 자기 자신으로 머물러 있다는 계기가 들어있다. 이 같은 설명에 사변의 모든 환상이 집약되어 있다. 이것이 헤겔의 거짓 실증주의이며, 여기에 겉보기만의 비판주의의 뿌리가 있다. 사실 헤겔에서 부정과 보존, 긍정이 결합된 지양이 독특한 구실을 한다. 예컨대, 헤겔 법철학에서 지양된 사법은 도덕이고, 지양된 도덕은 가족이고, 지양된 가족은 시민사회이고, 지양된 시민사회는 국가이고, 지양된 국가는 세계사이다. 헤겔 논리학에서는 이것이 질, 양, 척도, 본질, 현상, 현실성, 개념, 객관성, 절대적 이념, 자연, 주관적 정신, 인륜적 객관정신, 예술, 종교, 절대지 등으로 전개된다. 결국 헤겔이 철학으로 지양시킨 것은 현실적 종교, 국가, 자연이 아니고 교의학, 법률학, 국가학, 자연과학에 불과하다.
헤겔의 변증법은 하나의 담당자, 하나의 주체를 가져야 하는데, 이 주체는 성과로서 비로소 생성된다. 자신을 절대적 자기의식으로 아는 주체는 신, 절대적 정신이다. 이런 까닭에 주어와 술어는 절대적으로 전도된 관계, 신비적인 주체-객체, 객체를 포괄하는 주체성, 하나의 과정으로서 절대적 주체가 된다. 변증법은 인간의 자기 산출 또는 자기 대상화 행위를 형식적이고 추상적으로 파악한다. 헤겔에서 소외된 대상, 인간의 소외된 본질적 현실은 의식일 뿐이고 소외의 사상일 뿐이며, 외화의 지양도 마찬가지로 내용없는 추상에 대한 추상적이고 내용 없는 지양, 부정의 부정일 뿐이다. 이때 내용으로 충만하고 살아있고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자기 대상화 활동은 단순한 추상, 절대적 부정성으로 전락한다. 그러므로 논리학 전체는 추상적 자유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절대적 이념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자연이야말로 어떤 것이라는 것에 대한 증명이다. 추상적으로 파악되고 인간에게 분리되어 자체로 고정된 자연은 인간에게 아무 것도 아니다. 헤겔에서 자연은 이념의 타자 존재의 형식일 따름인데, 이는 추상적 사유가 본질이므로 이 사유에 외적인 것은 본질 상 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이러한 외면성은 사유에 대한 자연의 대립, 자연의 결함으로 파악되며, 추상과 구별되는 자연은 결함있는 존재이다. 자연은 추상적 사유자를 위해 자신을 지양해야만 한다. 절대자는 정신이다.
그러나 물질론적 역사관을 가진 마르크스가 보기에 인간은 “견고하게 잘 다져진 대지에 서서 모든 자연적 힘들을 호흡하는, 현실적이고 육체적인 인간”이다. 자연주의만이 세계사의 행위를 개념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인간은 직접적으로 자연 존재이고, 자연적 힘, 생명력을 갖춘 활동적 자연 존재이다. 인간은 자연적, 육체적, 감각적, 대상적 존재로서 시달리고 제약되고 한계지어진 존재로서, 그의 충동의 대상들이 그의 밖에 독립된 대상으로 존재한다. 즉 “대상적, 자연적, 감각적이라는 것, 그리고 대상과 자연과 감각을 자기 바깥에 가진다는 것, 또한 자신이 제3자에 대해 대상과 자연과 감각이라는 것은 다 같은 것이다.” 자기 바깥에 자신의 자연을 가지고 있지 않은 존재는 결코 자연적 존재가 아니며, 가령 비대상적 존재는 비존재이다. 그런 존재는 유일한 존재, 그 바깥에 어떤 존재도 없는 고독한 존재이다. 내가 어떤 대상을 갖자마자 이 대상은 나를 대상으로 삼지만, 비대상적 존재는 비현실적, 비감각적, 추상의 존재이다. 이에 반해 대상적, 감각적 존재로서 인간은 시달리는 존재이며, 열정적 존재이다. 또한 인간은 한갓 자연 존재일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자연 존재이다. 즉 대자적으로 존재하는 존재, 유적 존재이다. 모든 자연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자신의 생성 행위, 역사를 갖지만, 인간에게 역사란 의식된 역사이며, 생서 행위로서 역사는 의식적으로 자신을 지양하는 생성 행위로서, 역사는 인간의 진정한 자연사이다. 신의 지양으로서 무신론은 이론적 인간주의의 생성이고, 사유재산의 지양으로서 공산주의는 실천적 인간주의이며, 양자 모두 종교와 사유재산의 지양을 통해 자기 자신과 매개된 인간주의가 된다. 무신론, 공산주의는 결코 도피나 추상이 아니며 현실적인 것으로서 인간 본질의 현실적 생성이자 현실적으로 인간에 대해서 생성된 실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