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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전쟁 - 미래 전쟁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존 에드워즈 지음, 류동완 옮김, 김민석 감수 / 플래닛미디어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첨단무기에 싸움의 정의는 없다.
날카로운 발톱이 있나, 송곳니가 있나. 독수리와 사자와 같은 공격무기라도 없다면 거북과 같은 천연의 방어무기가가 있나, 스컹크와 같은 하늘이 내려준 화학무기가 있나, 인간은 허술하기 짝이 없는 존재다. 그나마 인간이 자연계의 강자들과 한판 붙어볼 수 있는 것은 도구 덕택이었다. 도구가 없다면 인간은 그야말로 형편없는 존재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것도 돌멩이라는 든든한 우군의 지원이 있어서 가능했다. 원시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돌멩이와 몽둥이의 지원 없이는 맹수들에게 가까이 갈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도구는 인간에게 자연을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러일으킨다. 미래의 상황을 내 의지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었다면 과거의 사냥꾼들은 섣불리 사냥에 나설 수 없었을 것이다. 병법서인 <손자>에서도 상대가 너무 강해서 맞서 싸우기가 어려울 때는 달아나는 것이 가장 나은 계책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승산이 없는 게임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사냥꾼들이 맹수와 한판 붙을 수 있었던 것은 승산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들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바로 그 믿는 구석이 무기임을 눈치 채셨을 것이다.
돌멩이를 가짐으로써 인간은 비교적 먼 거리에서 맹수들에게 전략적 우위를 가졌을 것이고, 가까운 거리에서는 몽둥이를 통해서 전략적 우위를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돌멩이와 몽둥이만으로는 부족했다. 뗀석기에서 간석기로, 간석기에서 다시 청동기와 철제로 도구가 발달하면서 인간은 보다 든든한 우군의 지원에 힘입어 맹수들과 당당하게 한판 붙어볼 수 있었다.
동물의 입장에서도 역시 인간과의 싸움은 해볼 만한 싸움이었다. 해 볼만하다는 것은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다는 ‘결과의 불확정성’을 의미한다. 인간이 이길 수도 있고, 맹수가 이길 수도 있는 결과의 불확정성 때문에 사냥은 흥미로운 게임이 된다. 맹수가 항상 이기는 싸움이나 인간이 항상 이기는 싸움은 맥이 빠진다. 누가 이길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 게임에 흥미를 불어넣는다.
과거의 사냥꾼들은 자신이 동물에게 희생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사냥에 나가기에 앞서 자신들의 수호신에게 자신의 안전을 기원했다. 맹수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자기 쪽으로 확실히 가져올 수 있도록 그들은 화살촉을 정교하게 다듬고 칼날을 예리하게 갈았다. 그리고 끊임없이 과녁에 화살을 쏘아 날리며 자신의 사냥 능력을 연마했다. 연마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킴으로써 사냥꾼들은 자신의 운명을 조절할 수 있는 권능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인간의 사냥 능력이 향상됨으로써 인간과 맹수와의 싸움은 흥미진진한 것이 되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인간과 맹수와의 싸움이 흥미를 잃게 되었다. 문제는 월등한 무기의 출현이었다. 고성능무기로 무장한 인간은 엄청난 힘을 보유하게 된다. 조자룡이 아무리 창을 질 쓰더라도, 아킬레스가 아무리 뛰어난 무공을 가졌다 해도, 김두한이 아무리 센 주먹을 가졌다 해도, 성능 좋은 자동소통 한 정이면 게임은 간단하게 끝난다. 이런 무기 앞에서는 용맹과 지혜도 통하지 않는다. 다윗의 돌멩이는 이런 무기 앞에서는 새 발의 피다. 있으나마나한 무기라는 것이다.
‘JDAM’이라고 하는 폭탄은 일반 폭탄에 인공위성을 이용하여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시스템인 위성항법장치 (GPS: Global Positioning System])의 유도를 받게 만들어졌다. 이 폭탄은 정확도가 엄청나서 오차가 3 미터밖에 안 된다고 한다. 이런 무기 앞에 제갈량의 지혜도 장비의 용맹도 조자룡의 날렵함도 통할 리가 없다.
현재 개발 중인 ‘e-폭탄’이라고 하는 무기는 극초단파를 쏴서 모든 전자제품을 파괴하는 무기라고 한다. 번개의 수백 배에 달하는 강력한 초단파를 방출함으로서 적의 모든 전자기기를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린다고 하니 현대전이 전자전이라고 해도 이 무기만 잘만 사용하면 적의 전략시스템을 단박에 무력화시킬 수 있다.
미국은 2003년 이라크전 개전 당시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은신할 것으로 예상되는 6m 깊이의 지하벙커를 타격하여 폭파할 수 있는 ‘벙커버스터(GBU-37) 폭탄’과 ‘모든 폭탄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모아브(MOAB: Mother Of All Bomb의 이니셜)’ 라는 신형 살상무기를 도입하려다가 인권단체와 국제사회의 반대로 포기한 바 있다. 대체 왜 인권단체는 이 무기의 도입을 반대했을까. 대체 얼마나 비인도적 무기이길래.
MOAB는 위성을 통한 유도시스템과 목표물 13m내로 떨어지게 만드는 꼬리 부분을 가지고 있다. 이 폭탄은 무게가 9천 513㎏에 달해, 수송기나 대형 폭격기에서 공중투하되면 지상 3m위에서 공기와 결합하면서 폭발하여 직경 500m 이내의 지역을 순식간에 무산소 상태로 만드는 가공할 위력을 지니고 있다. 이 폭탄을 맞으면 불에 데 죽든지 산소부족으로 죽든지 둘 중의 하나다. 현재 핵폭탄이 아닌 비핵무기로서는 이 폭탄이 가장 강력하다고 한다. MOAB의 폭발시 충격은 얼마나 엄청난지 상대에게 엄청난 심리적 공포를 안겨준다고 한다. 이런 무기로 무장한다면 백만대군의 적도 두려울 게 없다.
『진화하는 전쟁』의 저자, 존 에드워즈가 소개하는 첨단무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가 소개하는 하이테크 군인은 레이저 무기를 능가하는 강력한 자유전자레이저로 무장했다. 재래식 무기와 핵무기의 경계를 무너뜨린 고에너지 감마선을 이용한 폭탄, 탄환을 막는 세라믹 무기, 곤충의 눈을 모방해 만든 시각 시스템을 장착한 차세대 스마트 무기, 벌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미래 전투 로봇, 소형 정찰 로봇, 세계 최초의 전술용 자가 형성 다중입출력 이동 네트워크인 패킷 BLAST, 출혈과다를 막아주는 퀵클랏, 버클리 하체 능력 극대화 엑소스켈레톤, 생물학 작용제와 화학 작용제를 탐지하는 스마트 더스트, 정찰 및 무기 유도 시스템인 미니 SAR, 지뢰탐지 로봇 등 가히 ‘어지러운’ 이름을 가진 최첨단 전쟁 무기 정보가 이 책에 집대성되어 있다.
사냥꾼이 이런 초강력무기로 무장한다면 굳이 신에게 보호를 요청하지 않아도 된다. 악어건 득대건 두려울 게 없다. 싸움은 백전백승이 될 확률이 거의 100 프로다. 멀게는 원시시대 사냥꾼의 싸움이나 조자룡 시대의 싸움, 가깝게는 김두한 시대의 싸움은 누가 이길지,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이 게임의 흥미를 높여주었지만 첨단무기를 등에 업고 겨루는 싸움은 누가 이길지 결과가 뻔한 싸움이다. 월등한 도구를 손에 쥔 자, 기술이 월등한 자가 반드시 이기는 싸움이다.
심리학자와 낚시꾼으로 평생을 살아온 폴 퀸네트는 『다윈은 어떻게 프로이트에게 낚시를 가르쳤는가』라는 책에서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들이 던지면 되돌아오는 부메랑이라는 도구를 이용해서 물고기를 기절시켜 잡는 낚시법에 뒤이어 ‘듀퐁 스피너’라고 하는 작은 다이너마이트로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소개한다. 이 폭탄을 개울에 던지면 폭발의 충격으로 물고기들이 물 위로 떠오른다. 인간은 물고기들을 건져 올리기만 하면 된다. 아주 손쉬운 낚시법이다. 터키의 흑해의 낚시꾼들도 종이와 삼실을 가지고 만든 달걀 모양의 다이너마이트를 이용해서 물고기를 잡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정도는 약과다. 머리만 잘 쓰면 더 쉽게 물고기를 포획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독을 이용한 낚시다. 유럽에서 사용되는 ‘물고기의 알’이라고 불리는 코켈시드를 동그란 반죽형태로 만들어 연못에 뿌려놓으면, 그것을 먹고 사지가 마비된 물고기들을 떠오른다. 이것으로 낚시는 상황 끝이다. 수중음파탐지기와 같은 첨단기술의 도움을 받아 이보다 효과적인 낚시법을 개발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마음만 먹으면 물고기의 씨를 말려버릴 수도 있다.
<논어>에서 공자는 “낚시는 하되 그물을 던지지는 말고, 화살을 겨누되 잠자는 새를 쏘지는 말라."고 했다. 그물을 던져 씨알이 작은 새끼붕어들까지 싹쓸이를 하는 것은 옳지 못하고 잠자는 새를 잡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새에게도 도망갈 여지를 남겨주라는 것이 공자님이 우리에게 주는 충고다. 그러나 현대의 기술은 어떤가. MOAB 폭탄은 도망갈 여지를 남겨주지 않는다. 한방이면 말 그대로 끝장이다. 여기에 더 이상의 정의는 없다.
정의는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는 결과의 불확정성 속에 있다.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팔씨름을 할 때, 아버지가 아들의 팔목을 잡는 것도 그 결과의 불확정성을 높이기 위한 방편이고, 장기를 둘 때 아버지가 아들에게 차를 떼고 두는 것도 역시 결과의 불확정성을 높이기 위한 방편이다. 모든 게임의 기획자들은 결과의 불확정성을 높임으로써 관객들의 게임에 대한 기대를 이끌어낸다. 미국의 프로농구팀과 한국의 고등학교 농구팀과의 게임의 흥행결과는 보나마나다. 재미있는 게임, 정의로운 게임은 누가 이길지 모르는 손에 땀을 쥐는 경기다. 가진 사람, 힘 있는 자가 일방적으로 이기는 게임은 정의로운 게임이 아니다. 못 가진 자, 힘 없는 자도 한번쯤은 이겨볼 수 있는 싸움만이 정의로운 싸움이다.
첨단의 기술은 인간의 파워를 한껏 부풀려 놓았는지는 몰라도 인간의 자존심은 한없이 떨어뜨렸다. ”저런, 인간의 품위는 인간의 기술이 다 망치는구나.“ 청새치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죽음을 건 사투를 벌였던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 노인이 무덤 속에서 한탄할 노릇이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기는 싸움에 정의는 없다. 과학이 가는 길, 기술이 가는 길이 항상 정의의 길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