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 (무선 제작) -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개정증보판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공포라는 무기를 버린 오스트레일리아 뉴기니의 대형 포유류의 비극




공포는 분명 부정적인 감정임에 틀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공포를 즐긴다. 놀이시설에서 롤러코스터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고, 호러무비를 즐기는 매니아들도 있다. 대체 무엇이 공포를 즐기게 하는 것일까.


공포감은 인간에게 충분히 쾌감 내지 이득을 가져다 줄 수 있다. 공포의 순간에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맞서 싸우느냐 아니면 달아나느냐’를 결정해야 한다. 이때 아드레날린의 분비로 심장 박동 수는 늘고 호흡을 빨라지면서 근육은 긴장한다. 그런데 실제 위험이 크지 않다는 사실을 뇌가 알고 있다면, 이런 아드레날린의 ‘분출’은 즐길 만한 것으로 해석된다. 공포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은 실제 위험은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공포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의 공포는 끔찍한 심리적 체험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끔찍한 경험을 환영할 리 없을 것이다.


가혹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은 인간에게 절망을 안겨다 준다. 파산자의 자살은 이를 말해준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인간은 존재의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희망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끔찍한 현재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사람들도 조만간 이 공포로부터 탈출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 이 탈출에 대한 기대가 공포를 즐기게 한다. 


원시 시대 독거미가 우글거리고 맹수들이 도사리고 있는 정글 지역은 분명 공포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새로운 먹거리들이 있는 매혹적인 공간이기도 하였다. 이 먹거리들을 즐기기 위해서는 공포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무릇 용감한 자가 미인을 얻는 법이라 했다. 먹이감도 마찬가지였다. 정글로 과감하게 뛰어들 수 있는 담력의 소유자만이 맛난 열매에 입맞춤할 수 있었다. 이렇게 공포를 지불하고 인류는 새로운 거처와 먹거리를 구할 수 있었다.


유럽이나 아시아에는 대형 포유류가 많은데 왜 오스트레일리아 뉴기니에는 대형 포유류가 없을까. 『총균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그 답을 공포심에서 찾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뉴기니는 육지에서 배를 타고 건너간 사람들이 살게 됨으로써 문명이 시작된 곳이다. 이곳에서 발견되는 화석들은 사람들이 문명을 시작하기 전에는 대형 포유류들이 살았었음을 말해준다. 오스트레일리아 뉴기니의 동물들은 인간사냥꾼이 없는 곳에서 수백만 년 동안이나 진화했다. 갈라파고스섬과 남극대륙의 조류와 포유류도 인간이 없는 곳에서 진화하여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을 보지 못하고 산다. 이렇게 인간을 보지 못하고 진화한 동물들의 특징은 인간에게 공포심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뜨거운 맛’을 보지 못했으니 인간이 얼마나 영리한 사냥꾼인지 모르는 것이다. 최근에 발견된 섬들 중에서도 신속한 보호대책이 마련되지 동물들이 전멸하는 사태를 빚었다는 것이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설명이다. 모리셔스섬의 도도새의 멸종도 인간의 무서움을 간파하지 못한 도도새들의 순진성에 있다고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설명한다.


오스트레일리아 뉴기니의 거대동물의 최후도 모리셔스섬의 도도새와 같았다. 거대동물들은 진화의 측면에서 아무런 준비도 갖추지 못한 채 갑자기 잘 발달된 사냥 기술을 지니고 쳐들어 온 현생 인류와 맞닥뜨리는 불운을 당했으며, 이 불운이 멸종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두려움을 몰랐던 순진함이 멸종을 불러온 셈이다.


그 경우와는 달리 아프리카와 유라시아의 대형 포유류는 수십만 또는 수백만 년 동안 인간들과 함께 진화되었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공포심을 진화시킬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그들은 인간이 얼마나 영리한 사냥꾼인가를 오랜 진화의 시간 동안에 간파했다. 인간을 보면 튀어라. 공포가 그들을 살린 셈이다.


공포심이라는 무기로 무장한 개체와 공포심이란 무기를 해제해버린 개체, 둘 중의 어느 개체가 진화에 유리했을까. 그 답을 오스트레일리아 뉴기니의 사라진 대형 포유류들이 말해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