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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연어를 키우고 연어는 숲을 만든다
탁광일 지음 / 넥서스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연어가 육지의 나무에게 전해주는 바다의 보물
캐나다의 서쪽 끝 밴쿠버 섬(Vancouver Ismand)에 위치한 뱀필드(Bamfield)는 인구 300 명가량의 오지 마을이다. 태평양을 마주하고 있는 뱀필드는 밴쿠버 섬 서해안의 바클리 만(灣) 남쪽에 위치한다. 밴쿠버 섬 서해안의 많은 마을들이 그렇듯, 뱀필드는 무성한 원시림으로 덮여 있다. 뱀필드에는 일 년 동안 약 3,500㎜의 비가 내린다. 우리나라 강우량의 세 배에 가까운 양의 비 덕분에 이곳에는 세계에서 키가 가장 큰 나무, 직경이 가장 굵은 나무, 수령이 가장 오래된 나무들이 우거져 있다.
이곳 뱀필드에는 숲과 더불어 살아가는 한국인이 있다. 탁광일씨가 바로 그다. 32세의 늦은 나이에 유학길에 올라 밴쿠버의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UBC)에서 임학을 공부하고 있던 그는 1990년 여름 뱀필드에 도착하게 된다. 탁광일씨는 벤쿠버 섬의 거대한 숲에 반해, 이 지역 생태계 보호를 목적으로 설립된, 미국 SFS(School For Field Studies·생태현장실습학교)의 캐나다 뱀필드 센터의 교수로 1999년부터 4년 간 지내게 된다. 그는 학교가 문을 닫은 뒤에도 이 섬의 작은 도시에서 집필 활동을 계속해오고 있다.
SFS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그는 『숲은 연어를 키우고, 연어는 숲을 만든다』라는 책을 엮은 바 있다. 그는 책에서 숲, 개울, 연어, 바다는 서로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커다란 생명의 고리로 연결돼 있음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2001년 미국의 <생태학지>에는 연어와 강가의 나무가 서로 이익을 주고받으며 산다는, 동화 같은 기사가 실렸다. 미국 워싱턴대의 로버트 나이만 교수팀은 알래스카에 있는 여러 강가의 나무를 조사한 결과 연어가 올라오는 강가의 나무는 그렇지 않은 나무보다 무려 3배나 빨리 자랐음을 관찰했다. 연어가 많이 올라오는 강가에서 자란 86년 수령의 가문비나무의 굵기가 50㎝를 넘었다. 보통은 30㎝ 굵기였지만 이곳의 나무들은 태평양을 거슬러 올라온 연어의 시체에 있는 질소와 인을 풍부하기 섭취하기 때문에 성장이 빠른 것이다. 연어가 바다에서 강으로 영양물질을 옮기는 컨베이어 벨트 노릇을 한 셈이다. 연구팀은 나무의 나이테를 조사하면 과거에 연어가 얼마나 많이 올라왔는지도 알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태평양 연어의 행동을 연구한 퀸(Thomas P. Quinn)은 태평양에 있는 질소와 인을 연어들이 강을 통해 육지로 운반해올 때 곰이 큰 몫을 담당한다고 한다. 곰들은 습성상 연어를 잡으면 다른 곰들로부터의 간섭을 따돌리기 위해 연어를 먹기 전에 냇가의 뚝으로 가지고 가든지 냇가의 숲으로 가지고 간다. 그리고 연어의 영양소가 풍부한 부분만 먹는다. 20,000 마리이상의 연어사체를 분석해본결과 곰은 연어 한 마리의 약 25 퍼센트 정도만 먹는다는 것을 알려졌다. 특히 곰은 지방성분이 많은 연어의 알 같은 부분을 선호했다. 곰들은 이렇게 좋아하는 부분만 먹은 뒤 다시연어를 잡으려고 냇가로 돌아온다. 이렇게 곰들은 자기가 먹는 것보다 훨씬 많은 연어를 잡는다.
곰의 이러한 먹는 습성은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연어는 산란 후에 죽을 운명이다. 그들의 사체는 새나 냇물 속의 물고기들이나 곤충들에 의하여 소비되고 미생물들에 의해 분해되어 다시 바다로 되돌아간다. 바다로 되돌아가면 연어들의 사체에서 얻을 수 있는 영양분을 육지동물들은 이용할 수가 없다. 바로 이런 문제를 곰들이 해결해주는 것이다. 곰들은 냇가 주변으로 바다의 영양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새들과 포유류들이 곰이 먹다 남긴 연어의 사체를 먹어치운 쓰레기들이 부패할 때 남기는 질소와 인을 섭취하고 나무들은 무럭무럭 성장한다. 나무는 연어에게 고맙다는 듯이 보답을 한다. 나무는 강을 깨끗하게 하고 강가에 그늘을 만들어 연어에게 알 낳는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 나무는 어린 연어들에게 피신처를 제공한다. 어린 연어들은 강에 떨어진 큰 나무 조각 밑에 몸을 숨겨 적을 피한다. 연어는 나무에게 바다의 보물인 질소와 인을 전해주고, 나무는 연어에게 보금자리와 은신처를 제공한다. 이렇게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물고기와 나무는 공생을 실천한다.
공생의 세계는 거대한 그물망에 비유할 수 있다. 그물코 하나하나는 결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의 그물코는 다른 그물코에 의존해 있다. 만약 하나의 그물코가 풀리면 다른 그물코도 온전할 수 없다. 강으로 회귀하는 연어의 숫자가 줄면 나무들뿐만 아니라 육지의 동물들도 영향을 받는다. 생명의 그물망은 하나하나의 그물코가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거대한 체계다.
불교가 말하는 연기론(緣起論)의 핵심은 '상의상관(相依相關)'이다. 상의상관은 일체의 존재가 '서로 의지하고, 서로 관련을 맺고 있음’을 뜻한다. '너'가 없이는 '내'가 없고, '내'가 없이는 '너'가 없다는 말이다. 뭇 생명체들이 서로 의지하고 서로 기대고 있다는 것이다.
사물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다 실증적으로 말한 이는 『침묵의 봄』의 저자, 레이첼 카슨이다. 1907년 미국에서 태어나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동물학을 전공한 카슨은 수산국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작가로 나선다. 그는 1957년 친구로부터 정부의 ‘모기 박멸 프로그램' 때문에 새와 곤충이 DDT에 죽어간다는 편지를 받자, 만사를 제쳐놓고 『침묵의 봄』을 쓰는 데 매달린다.
느릅나무를 죽이는 곤충을 박멸할 목적으로 뿌려진 DDT는 그 곤충을 잡아먹는 종달새와 참새와 제비들을 거의 전멸시켰다. 그러나 느릅나무 해충은 오히려 DDT에 대한 강력한 적응력을 지닌 종으로서 다시 나타난다. 더 강력해진 해충을 박멸하기 위해 더 많은 살충제가 뿌려진다. 소나무 벌레를 없애기 위해 미라미치강가에 뿌려진 약제는 플랑크톤과 수중곤충을 박멸시키고 이들을 먹고사는 송어와 연어를 또한 멸종시켰다. 곤충의 죽음은 곤충을 먹이로 하는 새들의 죽음을 야기하고, 송어와 연어의 죽음은 그것을 먹고사는 야생동물의 죽음을 가져온다. 결국 미라미치강은 죽음의 강이 되었다. 생태계의 파괴는 곧 인간에게도 해를 끼칠 수밖에 없다. 인간이 곤충에게 겨눈 화살이 바로 인간 자신의 가슴을 향해 돌아 온 것이다.
레이첼 카슨은 농업용 화학약품이 토양과 지표수, 농작물에 스며들면 먹이사슬을 거쳐 새와 물고기를 멸종시키고, 사람을 암과 신경계 질환에 걸리게 하며, 해충의 천적까지 죽일 뿐만 아니라, 해충에게 살충제에 대한 내성을 길러준다고 논증했다. 인간 자신만을 위해 뿌려진 살충제가 봄이 와도 새 하나 울지 않는 '침묵하는 봄'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레이첼 카슨의 경고다.
카슨이 말한 대로 해충은 새와 연관되어 있고, 숲은 새와 연관이 되어 있으며, 물고기는 물과 연관되어 있으며, 그 물고기들은 물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야생동물들과 연관되어 있다. 생명들이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면 인간과 해충은 홀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생명의 세계는 거대한 고리로 묶여 있는 공생의 세계다. 인간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거대한 자연의 고리를 파괴하면서 탁광일씨가 뱀필드의 체험에서 깨달은 상의상관(相依相關)의 지혜, 곧 공생의 지혜를 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