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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7
조지 오웰 지음, 김병익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언어 통제를 통해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
박지원 <연암집>에서 “저 까마귀처럼 깃털이 검은 것이 없다. 그러나 홀연 유금빛으로 아롱지고, 다시 석록빛으로 반짝인다. 햇살이 비치면 자줏빛이 되었다가, 어느새 비취빛이 된다. 그렇다면 내가 푸른 까마귀라고 말해도 괜찮고 붉은 까마귀라고 말해도 괜찮을 것이다. 까마귀는 본디 정해진 색깔이 없는데 내가 눈으로 먼저 정해버린다. 까마귀는 과연 검기는 검다. 그러나 누가 다시 이른바 푸르고 붉은 것이 그 색깔 가운데 깃든 빛깔인 줄 알겠는가? 검은 것을 일러 어둡다고 하는 자는 단지 까마귀를 알지 못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검은 것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라고 묻고 있다. 박지원은 있는 그대로의 까마귀를 보지 않고 언어에 의해서 굴절된 까마귀를 보고 있는 사람들을 질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언어를 통해서 사물을 본다. 햇볕이 쨍쨍한 대낮에 하늘의 태양을 보라. 태양의 색은 분명 붉은색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태양은 붉은 색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사실 ‘해’의 어원은 ‘희다’라는 뜻을 가진 고어(古語), ‘?다’의 어간 ‘?’다. 어원만 보더라도 해는 붉은 색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붉은 해’라는 언어적 표현에 익숙한 나머지 해를 ‘붉다’라고 인식하기 일쑤다.
독일 출신의 미국인 언어학자 에드워드 사피어와 그의 제자 벤저민 리 워프는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무지개의 띠가 몇 개냐고 물었다. 대답은 제각기 달랐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사피어와 워프는 사람들은 자신의 언어에 얽매인 채 세계를 경험한다고 판단했다. 에드워드 사피어는 『언어 Language』라는 책을 통해 "언어가 단지 의사소통하고 사고하는 것과 같은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부수적 수단이라고만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사실상 현실 세계란, 상당 부분이 집단의 언어 습관 위에 무의식적으로 쌓아 올려지는 것이다. 어떤 두 언어도 동일한 사회적 현실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을 만큼 비슷하지 않다. 서로 다른 사회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다른 세상들이다. 같은 세상에 이름만 다르게 붙인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언어가 의식을, 사고와 세계관을 결정한다는 이 견해는 ‘사피어-워프 가설’ 또는 ‘언어결정론’이라 불리며 그 뒤 언어학과 인지과학의 논란거리가 돼 왔다.
대부분의 심리학자, 언어학자, 철학자들은 언어가 사고, 지각, 기억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정하고는 있지만, 언어가 사고양식을 결정한다는 가설에 대해서는 모두 회의적이다. 워프는 시제라는 문법범주가 없는 언어를 사용하는 호피 인디언이 시제가 있는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시간 개념을 가지고 행동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가령, 전혀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지는 국민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구조가 매우 비슷하기도 하고, 같은 문화적 배경을 가지면서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또 기독교 문화권에 속하는 나라가 모두 유사한 언어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또한 많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이 사용하는 언어에는 수 개념이 부족한데, 이들이 영어를 배울 때에 수 개념의 습득능력이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조사되었다. 국어의 경우에도 남녀 성의 문법 범주가 없지만, 한국인이 성에 대해 둔감하지는 않다.
조지 오웰의 <1984년>에서 가상의 제국 오세아니아 국가군은 사상통제와 과거통제를 철저하게 시행한다. 과거통제를 위해 모든 기록을 말소하고, 사상통제를 위해 신어(Newspeak)가 동원된다. 신어란 평화·자유 등 전체주의에 반하는 말은 완전히 없애버린 새 언어다. 이러한 언어정책은 언어가 인간의 의식을 구성하고 새로운 사회를 창조할 만큼의 에너지를 가졌다는 ‘언어결정론’적 사고에서 나온 것이다.
신어는 평화나 자유, 사랑과 같은 단어는 불온한 것으로 간주한다. 불온한 단어가 불온한 사상을 싹이 되므로, 제국의 지도자들은 이런 단어들을 제국의 언어에서 강제로 삭제한다. 자유와 평등 등에 속하는 모든 어휘를 ‘죄사상(crimethink)’이라는 단어에 통합함으로써 자유와 평등에 대한 개념 자체를 없애버리려고 한다. 단어가 사라지면 그 단어에 어울리는 사상마저도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믿는 권력자들은 텔레스크린이라는 장치를 각 가정, 사무소의 방마다 설치하여 개인의 행동을 일일이 감시한다. 심지어는 ‘표정죄(facecrime)’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대중들의 감정마저도 통제한다.
전체주의 권력의 유지를 위해 혁명이나 반항을 연상시킬 수 있는 모든 어휘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소설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에게 언어는, 사피어와 워프가 생각했듯, 사고와 행동을 주조하는 틀이었고, 자유로운 사고를 가두는 감옥이었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진리성의 기록국에서 일한다. 진리성의 건물엔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라는 슬로건이 붙어있다. 스미스는 과거의 신문을 다시 써서 역사를 조작하는 일을 한다. 역사는 대중들의 기억이다. 역사를 조작함으로써 대중들의 기억을 조작하려는 것이다. 이 나라에선 전쟁을 수행하는 곳이 평화성이고, 풍부성은 빈곤을 다스리는 곳이고, 애정성에서는 법과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고문과 반체제 인사 제거를 도맡는다. 개인의 연애도 이곳에서 통제된다. 주인공 윈스턴은 사랑 때문에 체포된다. 연애는 개인적인 것이고, 개인적인 것은 처벌받아야 한다는 것이 이 전체주의 사회의 법이다. 결혼은 단지 자식을 만드는 수단으로서만 인정된다. 연애는 범법이다. 이 사회에서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조차 범법으로 간주된다.
이 사회에서 정부는 인간의 사고를 단순화시키기 위해 ‘단어 줄이기’ 방법까지 사용한다. 영국사회주의(England Socialism)는 영사(INGSOC)로 줄여진다. 이런 식으로 언어는 점차 암호가 되고 기호가 된다. 말의 뿌리를 추적하는 과정에는 비판적 의식이 개입한다. 그런데 언어가 암호가 되어 언어의 뿌리를 추적할 수 없게 되면 사람들은 언어의 뿌리를 찾으려는 노력을 포기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름을 약어화하면 그 뜻이 한정되면서 교묘하게 변화하여 거기에 달라붙은 다른 연상작용을 제거시켜 버리기‘ 때문이라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가령, 진리성(Minister of Truth)을 진성(Miniture)라고 하면 연상작용이 훨씬 적으면서 의미가 더욱 뚜렷하게 될 것이라는 논리다. 언어에서 비판적 사고의 도구로 기능을 박탈하겠다는 의미다.
소설에는 신어 사전을 만드는 일을 하는, 두뇌가 명석한 당원, 사임이 등장한다. 그는 점심식사를 하며 윈스턴에게 이렇게 말한다. “2050년까지는, 아마 그전이 되겠지만, 구어(舊語)에 대한 지식은 모두 사라질 걸세. 모든 과거의 문학도 없어지고, 초서, 셰익스피어, 밀턴, 바이런, 이들은 다만 신어역(新語譯)으로만 남을 거네. 그것도 다른 말로 바뀐다는 정도를 지나, 원래의 의미와 반대되는 것으로 변할 거야. 당의 문학까지 변할 거야. 슬로건까지 변할 거야. 자유의 개념이 없어졌는데, ‘자유는 예속’이란 슬로건이 있을 수 있겠나? 모든 사상적 분위기도 변할 걸세. 실상,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란 없어져 버릴 걸세. 정통주의는 생각하는 것, 생각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야. 무의식 바로 그거야.”
사임의 말은 『국제어시대의 민족어』의 저자, 복거일의 발언을 연상시킨다. 복거일은 이 책에서 현재 날로 강화되는 국제어로서의 영어의 비중으로 볼 때 머잖아 각 민족마다 불가불 영어와 민족어를 함께 사용하게 될 것이며, 끝내는 민족어들이 쇠퇴하고 말 것이라는 단언한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상황을 수동적으로 맞이하기보다는 차라리 우리가 좀더 능동적인 자세로,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복거일은 말한다. 이른바 ‘영어공용화론’이 바로 그것이다.
<1984년>에서 주인공 윈스턴은 일기를 적는다. 일기는 자신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이다. 일기를 통해 자신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전체주의에 대항하는 그의 저항이다. 그의 저항은 곧 그의 자유를 말해준다. 정부가 일기 쓰기를 금하는 이유도 그 자유를 봉쇄하자는 데 있었다. 과연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기록한다면 우리는 어떤 언어를 선택해야 할까. 우리의 역사를, 우리의 언어로 기록하는 것은 자유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