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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생명의 그물 - 생물 다양성은 어떻게 우리를 지탱하는가
이본 배스킨 지음, 이한음 옮김 / 돌베개 / 2003년 9월
평점 :
절판
홍연어들의 호소, 우리를 가만 “내버려 둬”
물건의 틈에 박아서 맞물리는 부분이 물러나지 못하게 하거나 물건들의 사이를 벌리는 데 쓰는 돌을 쐐깃돌이라 한다. 아치의 맨 위에 끼워지는 쐐깃돌은 전체구조를 안정시킨다. 만약 이 쐐깃돌을 빼내면 전체구조는 매우 불안정해지고 외부의 충격이 가해지면 급기야 전체의 구조는 붕괴되고 만다. 이본 배스킨의 저서, 『아름다운 생명의 그물』은 생태계에서 쐐깃돌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쐐깃돌 종들을 소개하고 있어 흥미를 끈다.
한 종이 공동체의 다양성과 안정성의 열쇠가 될 수도 있다는 ‘쐐깃돌’의 개념을 1996년에 처음으로 소개한 이는 워싱턴 대학의 생태학자 로버트 페인이다. 그는 워싱턴의 해안에서 바위들에 달라붙어 있는 종들을 관찰하면서 생물체들의 다양성을 설명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페인이 본 해변에는 조수가 닿는 위쪽 바위에는 홍합과 거위목따개비, 그 아래쪽에는 말미잘과 딱지조개, 삿갓조개, 해면, 갯민숭달팽이와 다양한 해조류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그중 가장 센 놈은 피사스테르 오크라케우스(Pisaster dchraceus)였다. 이 동물은 홍합에서부터 고둥, 따개비, 딱지조개, 삿갓조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무척추 동물을 먹어치웠다.
페인은 이 불가사리가 게걸스럽게 홍합을 먹어치움으로써 경쟁력이 뛰어난 홍합들이 바위를 독점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는 것을 알고, 해안선의 한곳을 골라 불가사리들을 모두 제거해보았다. 그 결과 다른 무척추동물들이 번성할 것이라는 그의 예측은 빗나갔다. 오히려 홍합들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면서 다른 생물들을 몰아내고 바위를 점령해 생물의 다양성이 급격하게 낮아졌다. 불가사리가 사라지자 이 해안의 생물의 종수는 15에서 8로 줄어들었다. 페인은 이 불가사리가 생태계를 다양하게 하고 안정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이 종을 ‘쐐깃돌’ 종이라 불렀다.
아프리카 남서부 해안을 따라 있는 나미브 사막의 헐벗은 모래 언덕에는 나라덩굴(nara vine)이라는 쐐깃돌 종이 있다. 나라덩굴 개체는 수명이 100년 이상이며, 비가 내릴 때 일시적으로 생기는 강 언저리에 붙어 있으면서 뿌리를 50미터나 뻗어 지하수를 빨아들인다. 잎 없이 가시만 달려 있는 이 식물은 곤충에서부터 타조와 인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동물들에게 먹이와 물을 제공한다. 이 덩굴의 열매는 ‘사막의 물통’이라 불리는데, 총 무게의 80퍼센트가 물이다. 이 열매들은 자칼이나 하이에나 같은 동물들이 즐겨 먹는다. 타조나 도마뱀은 줄기 끝을 씹어 먹는다. 덩굴 밑에는 황무지쥐가 둥지를 틀고 산다. 이렇게 나라덩굴은 수많은 종들에게 생태학적인 피난처를 제공한다. 이러한 쐐깃돌 종을 인위적으로 제거하면 생태계는 안정성을 잃는다. 쐐깃돌을 빼내면 전체의 구조가 흔들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동물계의 공학자라 비유할 수 있는, 댐을 쌓는 기술자, 비버도 쐐깃돌 종이라 할 수 있다. 비버가 만든 댐은 생들이 무너지면 하천의 흐름이 빨라져 수로가 좁게 파이고수위가 낮아져 둑을 따라 자라던 활엽수는 큰 타격을 입는다. 또 하천의 흐름이 빨라지면 물고기들이 낳은 알들이 떠내려가기 때문에 물고기들은 산란에 어려움을 겪는다. 비버는 연간 1톤의 나무를 잘라 댐으로 운반하기 때문에, 연못에서 100미터쯤 떨어진 곳의 숲을 빈약하게 만든다. 그러나 전체 생태계는 결코 비버 때문에 약해지지 않는다. 비버가 만든 댐으로 수면적이 늘어나면 원앙과 물오리 등이 먹이를 찾아 물 위로 내려오고, 사슴들도 물가에 자주 찾아온다. 하천을 따라 내려와 연못에 닿은 침전물들과 썩어가는 식물들은 풍부한 유기물질 창고가 되어준다. 그리고 비버가 잘라내 마든 통나무댐들은 물의 흐름을 늦추고, 갈라놓고, 물결과 소용돌이를 형성하여, 연어가 산란을 하고 송어들이 여름의 열기를 식히게 하는 그늘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이렇게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쐐깃돌 종을 노리는 자들은 바로 비버의 모피를 노리는 사냥꾼들이다. 그들은 생태계의 활력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그들의 주머니뿐이다.
미국과 캐나다 경계에 있는 글레이셔 국립공원 계곡에 가을이 오면 장관이 연출된다. 홍연어를 잡기 위해 수많은 새들과 동물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1989년부터 이 장관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독수리들도 곰들도 찾아오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로 이렇게 홍연어의 숫자가 줄어든 것일까? 이유는 주 어업당국이 외국에서 들여온 민물곤쟁이를 유역상류에 방류했기 때문이다. 주 어업당국은 홍연어의 숫자를 늘리기 위해 먹이로 곤쟁이들을 방류했다. 그러나 주 어업당국의 선행의 결과는 오히려 비극을 불러왔다.
홍연어는 낮 동안에 수면 가까이에서 동물성 플랑크톤을 먹는다. 하지만 곤쟁이는 낮에 홍연어가 거의 가지 않는 바닥쪽에서 지내다가 밤이 되면 수면 쪽으로 올라와 동물성 플랑크톤을 먹는다. 그런데 바로 그 동물성 플랑크톤이 문제였다. 그 동물성 플랑크톤이 바로 홍연어의 먹이였던 것이다. 인간들은 어리석게도 홍연어의 먹이를 풀어준 게 아니라 경쟁자를 풀어주었던 것이다. 먹이를 풀어줌으로써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던 인간의 의지는 오히려 반대의 비극을 불러온 것이다.
노자(老子)가 말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동양학자인 김용옥 교수는 영어로 비틀즈의 노래 제목이기도 한 'Let It Be"로 번역한 바 있다. “Let It Be"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내버려둬”쯤 된다. 자연은 인간의 도움이 없이 저절로 돌아가는 시스템인 만큼 인위적 손길을 가하지 말라는 것이 노자가 인간에게 주는 충고다. 그 충고를 무시하고 쐐깃돌 종들을 건드리면 자연은 활력을 잃고 만다. 자연에 친절을 베풀 것도 없고 무례를 베풀 것도 없다. 가만 두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자연에 손을 대야겠다면 자연의 질서를 세밀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생태학이 필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