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10 #시라는별 35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 
- 허수경 

나는 내 섬에서 아주 오래 살았다. 
그대들은 이제 그대들의 섬으로 들어간다

나의 고독이란 그대들이 없어서 생긴 것은 아니다 
나만 나여서 나의 고독이다
그대들의 고독 역시 그러하다 

고독은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지만 
기필코 우리를 죽이는 살인자인 것은 사실이다 

그 섬으로 들어갈 때 그대들이 챙긴 물건은 
그 섬으로 들어갈 때 내가 챙긴 물건과 비슷하겠지만 
단 하나 다른 것쯤은 있을 것이다 

내가 챙긴 사랑의 편지지가 
그대들이 챙긴 사랑의 편지지와 빛이 다른 것 

그 차이가 누구는 빛의 차이라고 하겠지만 
사실은 세기의 차이다 
태양과 그림자의 차이다 
이것이 고독이다 

섬에서 그대들은 나에게 아무 기별도 넣지 않을 것이며 
섬에서 나도 역시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 속에는 눈물이 없다 
다만 짤막한 안부 인사만, 이렇게 

잘 지내시길, 
이 세계의 모든 섬에서 
고독에게 악수를 청한 잊혀갈 손이여
별의 창백한 빛이여 


허수경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를 절반 가량 읽었다. 대체적으로 슬프다. 시인이 죽기 2년 전에 출간된 시집이라는 걸 알고 읽어서인지 허 시인이 독자들에게 보내는 작별 인사 같다는 느낌이 든다.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 가 특히 더 그랬다.

이 시는 지난 번 소개한 <엄마의 나의 간격>처럼 존재의 원초적 고독을 노래한다. 우리 모두는 별개로 존재하는 섬이다. 허수경 시인이 ‘섬이 보내는 편지‘라 하지 않고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라고 쓴 까닭은 무엇일까. 이어지는 연에서 나는 그 까닭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의 고독이란 그대들이 없어서 생긴 것이 아니다 
다만 나여서 나의 고독이다 
그대들의 고독 역시 그러하다 

일찍이 정현종 시인은 <섬>이라는 짧은 시에서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 그 섬에 가고 싶다˝ 라고 말했다. 정 시인이 사람 간의 소통 열망을 노래했다면, 허 시인은 사람 간의 소통 불가를 꼬집는다. 서늘한 통찰이다. 서늘한데 또 뭉클한 것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당신들
역시 그러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소통을 염원한다. 그러나 아무리 전하려 해도, 전하고 싶어도 전할 수가 없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섬과 섬 사이의 간격처럼 절대 메워지지 않는다. 메울 수 없기에 그 간격을 허수경 시인은 ˝세기의 차이˝이자 ˝태양과 그림자의 차이˝라고 말하고, 그것을 ˝고독˝이라 부른다. 원초적 고독이다.

이 시를 읽으면서 떠오른 책이 있다. 일본 사회학자 기시 마사히코는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에서 고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고독하다. 뇌 속에서는, 우리는 특히 고독하다. 아무리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라도,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뇌 속에까지 놀러와 주지는 않는다.˝(132)
˝격렬한 아픔을 견디고 있을 때, 가장 또렷하게 자기 자신이 다름 아닌 나 자신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수도꼭지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방울을 하나하나 전부 눈으로 쫓아가듯, 자신의 아픔을 ‘아파하는‘ 것이 가능하다. / 고통을 느끼고 있을 때, 난 진정으로 나 자신이 되는 일이 가능하다. 그리고 1초1초마다 내가 나 자신이라는 것을 저주하게 된다. / 그러나 고통뿐 아니라 애초에 신체적 감각을 느끼는 일 자체가 내가 나한테 얽매여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134)

고독은 허수경 시인의 말처럼 ˝기필코 우리를 죽이는 살인자˝이기도 하나, 기시 마사히코의 지적처럼 내가 나임을 오롯이 실감하게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 누구도 나의 고독을 모른다. 나의 고통을 모른다. 나의 아픔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너나 나나 그리 쓸쓸하게, 그리 처절하게, 그리 헛헛하게 살아간다는 것을 서로가 알아봐 줄 수 있다. 비록 창백하게 빛나는 별이고 잊혀질 손이고 사라질 섬이지만,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래, 시인의 말따나 짤막한 안부 인사 뿐일지도. 고독이 고독에게 악수를 청할 때, 그 손은 꼬옥 잡아주자. 비록 실오라기 같은 공감밖에 나눌 수 없다 해도, 악수를 하는 그 순간만큼 뜨거워질 수 있을 테니까. 따뜻함이 피처럼 온몸으로 퍼질 수 있을 테니까. 우리는 누구나 그런 순간의 힘으로 영원을 사는 존재들이니까.

지금은 오월의 싱그러움에 기대 살겠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1-05-10 10: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고독과 섬은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우리 모두는 때론 고독하지만, 고독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어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너무 싱그러워요^^

행복한책읽기 2021-05-11 15:27   좋아요 3 | URL
그죠. 고독과 섬은 정말 환상의 콤비. <고독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 캬! 맞습니다. 맞아요. 그 시간들이 있어 마음의 평화도 찾았던 것 같아요.^^

scott 2021-05-10 16: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허수경 님의 유고집 같은 이 시집도 정말 좋지만
행복한 책읽기님의 시! 평이 떠 좋아요
한번에 묶어서 나만 읽고 싶어라~~
마지막 사진까지
이런 재능 ,아끼지 말귀 ( *ฅ́˘ฅ̀*)

행복한책읽기 2021-05-11 15:28   좋아요 3 | URL
아니 이런. AI scott님한테 칭찬 들은 겁니까. 저. 아이 좋아라. 아이 기뻐라. 햇빛 찰랑거리는 이 오후에 혼자 어깨 들썩들썩 춤을 춥니다요. 감솨감솨~~~~~^^

희선 2021-05-12 01: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시집이 나오고 다른 책도 나오기는 했는데 그것도 못 봤네요 거기엔 더 죽음을 말하는 글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금밖에 공감할 수 없는, 그렇겠지요 그것도 아주 짧은 순간일 뿐인 듯합니다 그래도 그런 때가 있다면 좀 낫지 않을까 싶어요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5-12 09:58   좋아요 1 | URL
맞아요. 아주 조금이고 아주 짧은 순간이어도, 그런 순간이 여러 겹이 되면 공감 또한 쌓이는 게 아니겠어요. 알라딘 서재도 공감의 공간인 것 같아요. 그죠.^^
 
살아 보니 그런 대로 괜찮다
김상순.홍정욱 지음, 이우만 그림 / 이후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말 강추다. 저자가 쓴 다른 책 제목처럼 꼭꼭 씹을수록 단맛이 쏙쏙 우러나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삶의 고단함과 신산함을 지혜 듬뿍 밴 유머로 버무려버리는 김상순의 능청스러움라니. 사는 게 무거운가. 어버이가 그리운가. 이 책을 읽으시라. 가벼워지고 촉촉해진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1-05-07 17: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게 그 시집~! 밑에는 필독, 이책은 강추면 이 시집을 읽어야 겠네요^^

행복한책읽기 2021-05-08 09:32   좋아요 1 | URL
필독은 강강추입니다. 새파랑님 얼얼하니 좋아하실 거예요. 두 책의 색깔이 전혀 다른데, 둘 다 저는 넘 좋아요^^

붕붕툐툐 2021-05-08 00: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강추는 담아갑니다아~ 가벼운거 너무 좋아욤^^

행복한책읽기 2021-05-08 09:34   좋아요 2 | URL
툐툐님께도 두 권 모두 추천.^^ 1945는 특히 국어샘 역사샘들에게 강추하고픈 필독서에요^^
 
1945
배삼식 지음 / 민음사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강추보다 필독! 해방 직후 해외 조선인들의 필사적인 귀환과 식민지 시대 예술혼을 불태운 두 예인의 명창이 실려 있다. 여기에 해방의 감격은 없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만 지속될 뿐. 어쩌면 더 처절하게. 아릿아릿 아프고 저릿저릿 찡하다. 배삼식을 더 읽고 싶어졌다. 훌륭한 스토리텔러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황금모자 2021-05-07 16:0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동감입니다~ 저도 더 읽고 싶어서 희곡집도 샀어요ㅋ

행복한책읽기 2021-05-07 16:14   좋아요 5 | URL
히히히. 감사해요. 황금모자님 덕에 알고 도서관서 대출해 읽다가, 넘 감동해 책을 사버렸어요. 희곡집도 구매할 거예요. 이런 귀한 책 자주 소개해주세요.^^

초딩 2021-05-07 17:0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 담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역사의 힘듦과 비극을 담는 작품이 현재에도 화자되고 꾸준히 읽히는 책이 없어 아쉽습니다. 안타깝고.
남미나 유럽의 그것에 비해서요.

행복한책읽기 2021-05-07 17:39   좋아요 5 | URL
동감이에요. 책 읽다 이면의 역사를 넘 모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배삼식을 다 읽으려구요. 귀한 작가에요.^^

scott 2021-05-10 16: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책에 언급된 이름들 전부 낯설어요
얼릉 작가들 드라마 영화로 만들롸!

행복한 책읽기님이 강추 하신것
장바구니로~
  Thanks to~
。:°ஐ*。:°ʚ♥ɞ*。:°ஐ*
  \( ºั∇ºั )/

행복한책읽기 2021-05-11 15:31   좋아요 1 | URL
아. scott님에겐 이 이름들이 낯설군요. 드라마나 영화. 아. 진짜 좋은 아이디에요. <적로>는 영화 서편제 마지막 장면을 보는 듯했어요. 글로 읽는데도 창 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저도 모르게 소리 내 읽고 있더라구요.^^
 

20210506 #시라는별 34 

엄마와 나의 간격 
- 허수경 

엄마의 자궁 안에서 
나는 엄마, 속의 
섬이었다

섬은 엄마에게서 
몸의 식량 공급을 받았다 
영혼도 넙죽 식량 공급을 받았겠지 

날을 채우고 
섬은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와 나의 간격이라는 
원초 비극을 바라보았다 

그때 
내 영혼의 모어가 생겼다 
엄마 말이 아닌 내 말로 

그 생각을 하니 웃기고도 서글프다 
겨울 숲에서 혼자 병들어 죽어 
풍장되는 늑대의 아가리처럼 


이 시는 허수경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에 실려 있다. 어버이날이 코앞이어서인지 62편의 시들 중 이 시가 콕 눈에 들어왔다.

자식은 ˝엄마, 속의 / 섬이었다˝가 엄마, 밖의 섬이 된다. 속에 있을 때나 밖에 있을 때나 ˝엄마의 나의 간격˝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간격은 자식이 나이가 들수록 점점 벌어진다. 어느 날 자식은 부모의 손을 놓고 부모의 말을 버리고 자신의 말과 길을 찾는다. 말이 좋아 ‘독립‘이다. 그것을 두고 시인은 ˝웃기고도 서글프다˝라고 말한다. 웃긴 것은 ˝내 영혼의 모어˝가 생겼기 때문이고, 서글픈 것은 그렇기에 ˝혼자 병들˝다 죽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1964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허수경 시인은 2018년 10월 3일 타계했다. 암 투병 끝에 자신이 쓴 시 제목 그대로 혼자 먼 길을 갔다. 그의 나이 겨우 54세였다.

엄마 속에서도 엄마 밖에서도 ‘섬‘일 수밖에 없었던 시인은, 혼자라는 고독의 무게를 지고 살 수밖에 없었던 시인은, 저세상에서는 간격 없이 엄마를 바라보고 있을까.


댓글(6)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1-05-06 10: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버이날에 딱 맞는 시네요 ㅜㅜ 부모님과의 간격을 줄이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는 않더라구요~

행복한책읽기 2021-05-06 13:06   좋아요 3 | URL
부모님도, 다른 사람도 어느 정도의 간격이 있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넘 가까워지려 해도 서로를 다치게 하더라구요. 그죠. 단 너무 멀리 가진 마세요. 새파랑님 ^^

scott 2021-05-06 15: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허수경님의 시
‘엄마와 나의 간격‘
시인이 반평생 살았던 낯선 이국땅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땅 만큼의 간격이네요

오월의 시!
행복한 책읽기님은 ‘
‘시‘
소물리에 이쉼 (ㅅ´ ˘ `)♡

행복한책읽기 2021-05-07 16:06   좋아요 0 | URL
그죠. 편한 길 마다하고 머나먼 타국에 가서 어려운 공부 다시 하고 남의 말로 글도 쓰시고. 허수경 시인은 얼굴이 참 선하고 어쩐지 슬퍼 보여요. 저를 ‘시‘ 소믈리에로 추천해 주셔 감솨!! scott님 응원 받아 더 분발해야쥐~~~~~ ^^

희선 2021-05-07 0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모하고는 아주 가까운 것보다 좀 먼 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저는 조금이 아니고 많이일지도 모르겠지만... 누구한테든 별로 살갑지 않은 사람이어서 그렇기는 하네요 그런 성격이 제 탓만일까 싶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은 안 하는 게 낫겠네요 그냥 제가 그렇게 된 거겠지요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5-07 16:09   좋아요 0 | URL
희선님 옆에 계시면 꼭 안아주고 싶곤 해요. 살갑지 않다고 하시지만 실은 속이 말랑말랑 뜨근뜨근할 것 같걸랑요. 글고 부모와 자식 간에는 당근 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넘 가까우면 진짜 피곤하답니다. ^^;;;
 
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20210504 

매일 인증 다섯 번째 책 <<사피엔스>> 완독. 2021년 4월 15일 시작 2021년 5월 4일 종료. 


<<호모데우스>>보다 재미있었고 <<호모데우스>>만큼 유익했다. <<호모데우스>>와 달리 아주 강렬하진 않아도 몇 번의 도끼질이 있었고 몇 번의 뭉클함이 있었다. 그래서 별 다섯 개를 주저없이 쏜다. 

두 권의 책을 읽고 든 생각은 하라리는 명료한 문장의 대가 같다는 것이다. 문장의 명료함은 생각의 명료함을 일컫는다. 닮고 싶은 지점이다. 하라리가 인류에 대해 알려준 것들 중 내 머리에 콕콕 박힌 것. 

1. 뒷담화는 필요악이다. 

2. 우리의 부엌은 고대 농부의 부엌과 크게 다르지 않다. 

3. 호모사피엔스는 산업혁명 이전부터 동식물을 멸종으로 몰아갔다. 

4. 식물이 인간을 길들여 인간은 등골이 휘게 되었다. 

5.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다. 

6. 사람은 저마다 다르게 진화했다. 평등한 창조는 없다.

7. 사피엔스는 '우리'와 '그들'로 나눠서 생각하도록 진화했다.

8. 지구촌 세상을 이끈 것은 상업, 제국, 보편 종교였다. ​

9. 프랑스 혁명의 실체는 왕실의 빚 때문이었다. 

10. 세금은 꺼리지만 투자는 기꺼이 한다.

11. 국가의 등장으로 폭력이 감소했다. 

​12. 오늘날의 평화는 평화의 배당이익 덕분이다. 

13. 가족간의 유대는 예나 지금이나 행복과 관련이 크다. 

14. 특정 감정을 추구하지 않으면 지금 이 순간을 누릴 수 있다. 

뒷담화는 악의적인 능력이지만, 많은 숫자가 모여 협동을 하려면 사실상 반드시 필요하다. 현대 사피엔스가 약 7만 년 전 획득한 능력은 이들로 하여금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수다를 떨 수 있게 해주었다. 누가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가 있으면 작은 무리는 더 큰 무리로 확대될 수 있다. 이는 사피엔스가 더욱 긴밀하고 복잡한 협력 관계를 발달시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 P47

인지혁명 이후, 사피엔스는 이중의 실재 속에서 살게 되었다. 한쪽에는 강, 나무, 사자라는 객관적 실재가 있다. 다른 한쪽에는 신, 국가, 법인이라는 가상의 실재가 존재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상의 실재는 점점 더 강력해졌고, 오늘날에는 강과 나무와 사자의 생존이 미국이나 구글 같은 가상의 실재들의 자비에 좌우될 지경이다. - P60

인지혁명이 일어날 즈음 지구에는 몸무게 45킬로그램이 넘는 대형동물 약 2백 속이 살고 있었다. 농업혁명이 일어난 즈음 이들 중 남은 것은 약 1백 속에 지나지 않았다. 호모 사피엔스는 바퀴, 문자, 금속도구를 발명하기 한참 전부터 지구 대형동물의 절반가량을 멸종으로 몰아갔다. - P115

이들 식물이 호모 사피엔스를 길들였지, 호모 사피엔스가 이들을 길들인 게 아니었다. - P124

역사의 몇 안 되는 철칙 가운데 하나는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사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다음에는 의존하기 시작한다. 마침내는 그것 없이 살 수 없는 지경이 된다. - P135

진화는 평등이 아니라 차이에 기반을 둔다. 모든 사람은 얼마간 차이 나는 유전부호를 가지고 있으며, 날 때부터 각기 다른 환경의 영향에 노출된다. 그래서 각기 다른 특질을 발달시키게 되며, 그에 따라 생존 가능성에 차이가 난다. 따라서 ‘평등한 창조‘란 말은 ‘각기 다르도록 진화했다‘는 표현으로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 P164

돈은 거의 모든 것을 다른 거의 모든 것으로 바꿀 수 있게 해주는 보편적인 교환수단이다. - P247

3세기에 걸친 모든 박해의 희생자를 다 합친다 해도, 다신교를 믿는 로마인들이 살해한 기독교인은 몇천 명을 넘지 않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후 1,500년간 기독교인은 사랑과 관용의 종교에 대한 조금 다른 해석을 지키기 위해 다른 기독교인 수백만 명을 학살했다. - P307

상업, 제국 그리고 보편 종교는 모든 대륙의 사실상 모든 사피엔스를 오늘날 우리가 사는 지구촌 세상으로 끌어들였다. - P336

과학연구는 모종의 종교나 이데올로기와 제휴했을 때만 번성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는 연구비를 정당화한다. 그 대신 이데올로기는 과학적 의제에 영향을 미치고, 과학의 발견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결정한다 - P389

지난 5백 년간 진보라는 아이디어는 사람들로 하여금 미래를 점점 더 신뢰하게 만들었다. 신뢰는 신용을 창조했고, 신용은 현실 경제를 성장시켰으며, 성장은 미래에 대한 신뢰를 강화하고 더 많은 신용을 향한 길을 열었다. - P439

자본주의 윤리와 소비지상주의 윤리는 동전의 양면이다. 이 동전에는 두 계율이 새겨져 있다. .부자의 지상 계율은 "투자하라!"이고, 나머지 사람들 모두의 계율은 "구매하라!"다. - P493

상상의 공동체가 부상한 사례 중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국민과 소비 공동체이다. 국민은 국가가 만든 상상의 공동체다. 소비 공동체는 시장이 만든 상상의 공동체다. - P512

현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대외 교역과 투자는 매우 중요해졌다. 그러므로 평화는 훌륭한 배당이익을 낳는다. 중국과 미국이 평화를 유지하는 한, 중국인들은 미국에 제품을 팔고 월스트리트에서 거래하며 미국이 투자를 받아서 번영할 수 있다. - P528

만일 행복이 기대에 의해 결정된다면, 우리 사회를 떠받치는 두 기둥ㅡ대중 매체와 광고 산업ㅡ은 지구의 만족 저장고를 생각지 않게 고갈시키는 중일 수도 있다. - P542

일단 당신이 특정한 감정에 대한 추구를 멈추면 어떤 감정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어쩌면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무언가를 공상하는 대신에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다. - P558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아 2021-05-04 12: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명료함이 인상적이었나봐요! 흡수력 장인답게 정리도 명료,강렬하게 남기셨어요~♡
몇번의 도끼질ㅋㅋ인정인정!👍

행복한책읽기 2021-05-06 13:08   좋아요 2 | URL
네. 하라리 명료한 문장들 외우고 싶어요. 몇 번의 도끼질, 미미님도 인정하시는군요. ㅋㅋ

새파랑 2021-05-04 13: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명확한 정리~!! 인류에 대해 알려준 것들하고 밑줄 좋네요^^

행복한책읽기 2021-05-06 13:09   좋아요 3 | URL
인류사 정리를 넘 잘해놓아서 중딩 딸한테, 이건 필독서다 같이 읽자 했더니, 손사레를 치며 달아나더군요.^^;;;

북다이제스터 2021-05-04 20: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하라리가 도서관 한 채를 통채로 읽었다고 하는데, 맞는 것 같습니다. ^^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

행복한책읽기 2021-05-06 13:12   좋아요 3 | URL
어머나. 도서관 한 채를 통째로 읽었다고요. 대 ~~~~~ 박. 어찌 이리도 박식하고 어찌 이리도 명료하고 어찌 이리도 정리를 잘하나 했더니, 그런 비결이. 아니아니, 비결 아니고 열정 플러스 노 ~~~~ 력 이라고 해야겠지요. 그런 열정과 노력도 누구에게나 오지는 않나 봐요. 저는 읽은 것만도 그저 뿌듯하답니다.^^

붕붕툐툐 2021-05-04 22: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별 다섯개 쏴주셨네요! 빵야빵야~🔫 저랑 읽은 순서 똑같. 저는 호모데우스가 더 재미났었어요!ㅎㅎㅎ 깔끔 정리 넘 멋지심다~👍👍

행복한책읽기 2021-05-06 13:14   좋아요 2 | URL
어머 툐툐님은 호모데우스가 더 재밌었군요. 역시 책은 저마다 다르게 읽히나 봐요. 정리는 더더더 잘하고 싶었는데, 시간도 딸리고 역량도 딸려 딱 저기까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