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06 #시라는별 34 

엄마와 나의 간격 
- 허수경 

엄마의 자궁 안에서 
나는 엄마, 속의 
섬이었다

섬은 엄마에게서 
몸의 식량 공급을 받았다 
영혼도 넙죽 식량 공급을 받았겠지 

날을 채우고 
섬은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와 나의 간격이라는 
원초 비극을 바라보았다 

그때 
내 영혼의 모어가 생겼다 
엄마 말이 아닌 내 말로 

그 생각을 하니 웃기고도 서글프다 
겨울 숲에서 혼자 병들어 죽어 
풍장되는 늑대의 아가리처럼 


이 시는 허수경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에 실려 있다. 어버이날이 코앞이어서인지 62편의 시들 중 이 시가 콕 눈에 들어왔다.

자식은 ˝엄마, 속의 / 섬이었다˝가 엄마, 밖의 섬이 된다. 속에 있을 때나 밖에 있을 때나 ˝엄마의 나의 간격˝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간격은 자식이 나이가 들수록 점점 벌어진다. 어느 날 자식은 부모의 손을 놓고 부모의 말을 버리고 자신의 말과 길을 찾는다. 말이 좋아 ‘독립‘이다. 그것을 두고 시인은 ˝웃기고도 서글프다˝라고 말한다. 웃긴 것은 ˝내 영혼의 모어˝가 생겼기 때문이고, 서글픈 것은 그렇기에 ˝혼자 병들˝다 죽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1964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허수경 시인은 2018년 10월 3일 타계했다. 암 투병 끝에 자신이 쓴 시 제목 그대로 혼자 먼 길을 갔다. 그의 나이 겨우 54세였다.

엄마 속에서도 엄마 밖에서도 ‘섬‘일 수밖에 없었던 시인은, 혼자라는 고독의 무게를 지고 살 수밖에 없었던 시인은, 저세상에서는 간격 없이 엄마를 바라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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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5-06 10: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버이날에 딱 맞는 시네요 ㅜㅜ 부모님과의 간격을 줄이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는 않더라구요~

행복한책읽기 2021-05-06 13:06   좋아요 3 | URL
부모님도, 다른 사람도 어느 정도의 간격이 있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넘 가까워지려 해도 서로를 다치게 하더라구요. 그죠. 단 너무 멀리 가진 마세요. 새파랑님 ^^

scott 2021-05-06 15: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허수경님의 시
‘엄마와 나의 간격‘
시인이 반평생 살았던 낯선 이국땅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땅 만큼의 간격이네요

오월의 시!
행복한 책읽기님은 ‘
‘시‘
소물리에 이쉼 (ㅅ´ ˘ `)♡

행복한책읽기 2021-05-07 16:06   좋아요 0 | URL
그죠. 편한 길 마다하고 머나먼 타국에 가서 어려운 공부 다시 하고 남의 말로 글도 쓰시고. 허수경 시인은 얼굴이 참 선하고 어쩐지 슬퍼 보여요. 저를 ‘시‘ 소믈리에로 추천해 주셔 감솨!! scott님 응원 받아 더 분발해야쥐~~~~~ ^^

희선 2021-05-07 0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모하고는 아주 가까운 것보다 좀 먼 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저는 조금이 아니고 많이일지도 모르겠지만... 누구한테든 별로 살갑지 않은 사람이어서 그렇기는 하네요 그런 성격이 제 탓만일까 싶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은 안 하는 게 낫겠네요 그냥 제가 그렇게 된 거겠지요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5-07 16:09   좋아요 0 | URL
희선님 옆에 계시면 꼭 안아주고 싶곤 해요. 살갑지 않다고 하시지만 실은 속이 말랑말랑 뜨근뜨근할 것 같걸랑요. 글고 부모와 자식 간에는 당근 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넘 가까우면 진짜 피곤하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