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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G 1 - Seed Novel
이시백 지음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GGG
지구의 황제
『GGG』는 시드노벨에서 나온 라이트노벨로 학원물을 다룬 이야기다. 특이한 것은 다른 라이트노벨과는 달리 환상적인 요소가 적다고 할 수 있다. 특이한 여자아이와 평범한 남자아이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와 함께 언급되기도 했는데, 일단 앞에서 말한 환상적인 요소의 부재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게다가 주인공의 매력도 다른데 ‘하루히’라는 소녀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민폐녀라고 짜증을 느낀다면, 이 소설에서는 아무리 자신을 지구의 황제라고 부르고 남들에게 ‘하느니라’ 하는 어투를 사용한다고 해도 짜증보다는 연민과 귀여움을 느끼게 된다는 점이 다르다.
주인공인 소녀는 이름조차 매우 특이한데, 바로 ‘지지지’라는 이름이다. 이런 이름을 가지고 말장난이 나오는 부분도 유쾌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작가 후기에도 나온 듯이 19세기 미국의 황제 죠슈아 에이브러햄 노턴 1세의 일생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다.(MBC 서프라이즈에서도 방영된 바 있으며 검색엔진에서 검색해보면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다.) 무대를 21세기로 바꾸고 캐릭터를 작은 소녀로 바꾼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모티브를 얻은 실제 사건보다 더 캐릭터가 살아 움직였다. 소녀가 겪은 상처와 그것을 극복해내는 힘은 작품 내내 독자가 긴장감을 가지고 글을 읽게 만드는 힘이다. 작고 여린 소녀가 상처를 딛고 일어선다는 설정부터가 끝까지 책을 읽게 만드는 강력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여기서 독자가 공감을 하게 되면, 같이 가슴이 아프고, 또 응원하게 만들고, 이야기에 빨려드는 것이다. 현실에서 경험하기 힘든 낯설고도 즐거운 학교 생활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점이 이 라이트노벨의 장점일 것이다.
이 소설의 첫 번째 매력 중 하나는 비일상적인 요소가 거의 없이 이야기를 재미있게 진행한다는 점이다.(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지지지가 준호의 언어를 이해하는 부분에선.) 이건 학산문화사의 익스트림노벨로 나온 『토라도라!』와 같은 점인데 다른 라이트노벨에 비해 신선한 느낌을 준다. 현실에서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라는 것(그러나 사실 우리나라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이겠지만)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 소설의 두 번째 매력은 캐릭터들이다. 특히 가장 빛을 발하는 캐릭터는 주인공인 ‘지지지’이다. 이 소설을 읽을 때 현실에서 일어나기는 힘들긴 하나 학원 청춘물에 빠져들 수 있고 무엇보다도 주인공인 ‘지지지’에게 공감하고 지지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재미를 느낄 것이다. 그만큼 이 소설은 오로지 ‘지지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물론 초반 사건은 ‘지지지’의 등장과 거기서 벌어지는 강시내와의 갈등으로 이루어지고 후반부에는 준호의 이야기로 진행되지만, 모두 ‘지지지’가 없다면 이야기될 수조차 없는 것들이다.
전체적으로 네 명의 캐릭터 모두 확고히 생동감을 얻었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다만, 세 명의 시녀들의 몰개성은 조금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다. 좀 더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 여겼다. 너무 두루뭉실하게 넘어간다고 할까. 그리고 이런 면에서 보자면, 네 명의 주인공을 제외한 나머지 캐릭터들은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단순하다. 무조건 선한 교장 선생님이라는 캐릭터나 무조건 반대하는 교무주임이라는 캐릭터 역시. 다음 권에서는 이런 점들이 보완된다면 더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지지지’가 갖고 있는 상처나 ‘이준호’의 상처 역시 소설을 잘 이끌어나가는 축이었고 의외로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현실성을 배제하고서) 이번 권에서 가장 많이 드러난 캐릭터라면 이들이었을 것이다.
중간 중간에 개그도 있었고 재미있는 대화들도 많아서 두툼한 분량인데도 불구하고 꽤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각 장마다 마지막 문장으로 독자에게 강렬한 호기심을 주면서 끊는 솜씨도 훌륭했다. 강렬한 스토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현실을 배경으로 잔잔하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는 것은 꽤 힘든 일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학원물을 표방하고 이야기를 하면서도 현실성이 잘 느껴지지 않는 몇몇 부분들이 있었다.(애초에 개연성을 따지자면 소설 자체가 성립될 수 없음은 당연하겠지만.) 캐릭터들의 대사가 조금 부자연스러운 부분들이 많았다. 또한, 일본 소설에서는 거의 나오지도 않는 욕설이 이 소설은 한국의 실정을 잘 살리기라도 한 것처럼 자주 등장하는데 이게 묘한 거부감을 주기도 했다. 라이트노벨에서 잘 접하지 않는 욕설이 지나치게 자주 나오다보니 좀 안 맞는 느낌이라고 할까. 이런 부분들은 약간 절제를 했다면 더 괜찮지 않았을까 싶었다.
아무래도 한 소녀가 갑자기 지구의 황제로 선포하고 진행되는 이야기다 보니 독자가 왠지 남부끄럽게 느껴지는 장면들도 많았다. 물론 이런 장면들이 소설의 재미를 더해주는 부분이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전반적으로 조금 심심할 수도 있겠지만, 읽는 내내 책을 덮고 싶은 심정은 들지 않을 정도로 흡인력이 상당했고 이야기의 구성도 잘 짜인 편이었다. 그만큼 1권에서 이야기를 많이 풀어낸 것 같아서 2권이 과연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2권은 조금 불안한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들기도 했다. 1권이 잘 끝맺었기 때문에 2권이 별로 기대가 안 된다는 아이러니한 심정이 든다고 할까.
그렇지만 2권이 나온다면 몇몇 실망한 다른 소설들과는 다르게 바로 구입을 할 것 같다. 일단 ‘지지지’는 그만큼 귀여운 황제이고 이런 황제의 성장기를 앞으로도 지켜보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 하는데 작가는 성공했다. 약간 글이 걸리는 부분들이 많았다는 것, 전체적으로 대사들이 자연스럽게 읽히지 않는다는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몰입도를 가지고 있고 독자에게 충분히 읽는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또한 괜찮은 성장물로도 읽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 황제 지지지가 어떻게 지구를 통치할지, 다음 이야기를 보고 싶다. 분명 소녀는 아무도 죽이지 않고, 아무도 수탈하지 않으며, 그 어느 누구도 추방하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