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환상문학 단편선 Miracle 2
김재한 외 지음, 김봉석 해설 / 시작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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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환상문학 단편선(시작)

  현재 국내 단행본 매출 시장 1, 2위를 다투는 웅진씽크빅과 민음사의 자회사에서 각각 같은 제목의 국내 작가의 환상 문학 단편선을 내놓았다. 웅진씽크빅의 장르문학 임프린트인 ‘시작’과 민음사의 자회사인 ‘황금가지’에서 나온 이 두 책은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출간되었다. 두 단편집 모두 같은 제목으로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이 제목 보다 더 주목을 끌고 판매량을 높일 만한 제목은 없었다는 뜻일 것이다. 한국 작가가 쓴 환상 문학 단편선이라는 의미를 단번에 전달하기 위해서는 이 제목보다 좋은 제목은 찾기 힘들다. 만약, 한 작품 제목을 표제작으로 정했다면 그다지 언론의 주목을 끌지 못했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독자들에게도 눈에 띄지 않고 지나갔을 지도 모른다.
  황금가지에서 나온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과 시작에서 나온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둘의 표기 상 차이점은 전자는 ‘환상 문학’에 띄어쓰기가 되어 있고 후자는 붙어 있다.)은 작가진이 다른 만큼 전혀 다른 색을 보여주고 있어서 흥미롭다. 황금가지의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이 현대를 배경으로 한 환상이 많고, 장르 판타지적 세계관의 단편이 없는 것에 반해 시작의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은 장르 판타지적 세계관의 단편도 보이고, 좀 더 전형적인 판타지 단편들로 채워져 있다. 이는 국내 환상 문학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두 개의 책이 나옴으로써 언론의 주목을 끌게 된 것도 좋은 점으로 작용했다.
  시작의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은 황금가지의 단편선보다 작품 수가 하나 적음에도 불구하고 훨씬 더 두꺼운데 이는 분량이 많은 단편들이 실려 있기 때문이었다. 가장 많은 분량을 자랑하는 것은 「과거로부터의 편지」(이상민),  「카나리아」 (정지원) 등으로 54페이지였다.
  처음 책을 봤을 때 빳빳한 느낌이 드는 광택 코팅지의 표지나 편집 상태 등이 마음에 들었고 두께도 두툼하여 전체적으로 책 외형에서 깔끔하고 좋은 인상을 받았다.

  그럼 이제 아홉 편의 단편들에 대한 짧은 단평으로 들어가겠다.


  상아처녀 / 김철곤


  수 년간 국내외 만화 스토리 작업과 PC 게임의 기획,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다. 현재는 게임회사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일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Swallow Knights Tales』, 『드래곤 레이디』, 『백랑전설』 등이 있으며, 『Swallow Knights Tales 외전』을 집필 중이다.


  이 작품은 기존에 장편 소설에 실렸던 단편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처음 보았고 무난하게 읽었다. 이 단편은 피그말리온 신화를 모티브로 썼다. 피그말리온 신화는 피그말리온이라는 청년이 상아로 여인을 조각하여 사람처럼 보살피다가 아프로디테 신에게 한 기도가 이루어져 조각이 사람이 되었고 둘은 결혼했다는 이야기다. 이 단편은 이 신화를 SF적으로 바꾸어서 원작과는 다른 결말로 적었다. 잘 읽었지만 지나치게 평이하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는 단편이었다.


  카나리아 / 정지원


  로맨스와 판타지를 넘나드는 글쓰기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현재 환상문학웹진 거울의 작가로 활동 중이며, 작품으로는 『여름의 끝』, 『깊은 밤을 날아서』, 『푸른 바다의 노래』, 『봄바람』, 『인연』 등이 있다.


  예전에 환상문학웹진 ≪거울≫의 소재별 앤솔러지 중 흡혈귀를 소재로 한 단편들은 모은 『혈중환상농도13%』에서 처음 읽은 단편이다. 처음 읽었을 때는, 비상식적인 인물들이 보이는 강렬한 광기가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이 단편집에 수록되어 두 번째 읽었을 때는 역시 그 처절하고 한없이 우울하고 날카로운 광기가 섬뜩하게 다가오면서도 이것이 흡혈귀라는 소재보다는 세 사람의 시점으로 그려진 감정의 대립과 혼란이 새롭게 읽혔다. 사실 흡혈귀라는 설정은 소재로 다뤄진 감이 있고 그보다는 정체성을 찾고 자신을 인정하고 떠나간 사람과 남겨진 사람의 감정이 잘 교차된 글이라고 할까. 이해받을 수 없는, 자신도 인정하기 싫은 광기, 소통하고 이어진다는 것과 단절되고 끊어진다는 것. 감정을 공유하고 이해하고 이해 받는다는 것. 그런 느낌들이 음울하게 직조된 글이었다.


  용의 비늘 / 최지혜


  만화가를 꿈꾸며 서양사와 영문학을 전공하던 중 종교학, 신화학, 인류학에 심취하게 되었다. 유니텔 판타지 동회에서 습작을 시작했고 하이텔 판타지 동호회와 웹진 워터가이드, 이매진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환상문학웹진 거울 중단편선』을 통해 「누메논」, 「적백화면」, 「붉은 심판」 등을 발표하였다.


  「용의 비늘」은 환상문학웹진 거울에서 웹상에 올라온 글로 읽은 글이었다. 처음에 우투족의 왕녀 레첸으로 시작하는 부분들이 분위기가 좋고 마음에 들었다. 우투 족의 문헌에 남은 부분을 서술한 부분인데 오래된 문헌 분위기가 살아있어서 고풍스럽고 전설적인 느낌이 났다고 할까. 그 이후 부분은 웹상과 책에 실린 단편의 내용이 달라졌다. 웹에 실린 글에서는 시공간이 멈추는 씬이 있어서 재미있게 읽고 인상적이었는데, 글에서 전체적으로 튀어서 그랬는지, 내용 전개상 무리가 있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아무래도 웹상의 글은 뒷부분의 반전이 너무 쉽게 예상가는 면이 있는지라)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평범하게 처리된 첫 만남보다 시공간이 멈춘 상태에서 만나는 장면이 인상적이어서 더 좋았다. 전체적으로 깔끔하게 다듬어진 글로 바뀐 것 같았다. 처음 읽었을 때도 예상이 가는 전개와 결말임에도 불구하고 꽤 근사하게 읽었던 글이었다. 이 글은 애초부터 의도나 구성이 이러한 전개와 결말로 정해진 글이었고, 그만큼 안정적인 패턴인 면도 있는 터라 즐겁게 읽었다.

 
  윈드 드리머 / 방지나

 
  대학 재학 중 쓴 첫 작품 『마왕의 육아일기』로 한국 판타지계에 돌풍을 일으키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온라인 게임 ‘바스티안’의 원작 소설 『그림자의 왕』을 동생 방지연 작가와 공동 집필하였으며, 자신의 작품을 직접 삽화로 그릴 정도로 그림 솜씨가 뛰어나다. 그 밖의 작품으로 『파라다이스 로스트』, 『밀레니엄 제로』, 『천사는 죽었다』 등이 있다.


  「윈드 드리머」는 과거 명상에서 『윈드 드리머』 단편집에 수록되었던 단편을 재수록한 것이다. 당시에 표제작으로 선정될 정도로 안정적인 글이었지만, 조금 심심하기도 했던 단편이라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번에 다시 읽으니 장르 판타지 세계 안에서 ‘비행석’이 있어야만 날 수 있는 ‘비공정’이 존재하는 세계를 그린 단편이었다. 무난하고 평이한 글이라 재미가 덜한 글이었다. 이번에 초청 단편으로 실었다고 하는데 이왕이면 신작이 실렸다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육 / 홍정훈


  판타지 소설 창작 작가 집단 CUG에서 왕성한 활동을 해왔으며 현재 출판사 넥스비전 미디어웍스의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다. 영화 『괴물』의 시나리오를 소설화하였으며 대표작으로는 『월야환담』 시리즈, 『비상하는 매』, 『더 로그』, 『13번째 현자』, 『창세종결자 발틴사가』 등이 있다.


  흡혈귀 사냥꾼에게 쫓기는 흡혈귀를 다룬 단편이다. 흡혈귀를 약자로 그려낸 발상의 전환이 재미있고 인상적인 단편이나, 문제는 처음 읽는 독자라면 모르겠으나 『월야환담』을 이미 접한 독자들에게는 새로울 게 하나도 없는 단편이었다. 『월야환담』의 외전이라고 들었으나, 그냥 『월야환담』 안에서 다루어진 이야기를 짧은 분량으로 쓴 것에 불과하달까. 그런 점 등에서 아쉬움이 남는 글이었다.


 
목소리 / 류형석


  하이텔 판타지 동호회와 판타지 웹진 워터가이드를 거쳐 현재는 환상문학웹진 거울의 작가로 활동 중이다. 게임 개발자로 일하는 동안 틈틈이 쓴 단편 「글잔디」, 「어느 미운 오리새끼의 죽음」, 「유전자가 이상하다」를 『환상문학웹진 거울 중단편선』을 통해 발표하였다.


  이 단편집에서 단연 돋보이는 글이었다. 해설에도 나와 있듯이 『요새지이』 등 동양의 옛 이야기, 설화, 전설 등의 분위기가 나는 소설로 고전적인 느낌이 잘 살아있는 문체와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기이한 이야기에 빨려들게 만드는 스토리가 인상적인 글이다. 이 단편집에서 가장 잘 몰입해서 읽은 글로 잘 쓰였고 재미있었다. 


  내가 바란 단 하나의 행복 / 이성현


  인간 내면의 어두운 심리를 그려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현재 창작 작가 집단 CUG에서 활동 중이며, 대표작으로는 『뉴트럴 블레이드』, 『빛의 검』, 『약탈자의 밤』 등이 있다.


  이 단편 역시 장르 판타지 세계관이 등장한다. 마법사가 이 소설의 중요한 갈등을 제시하는 것이다. 행운과 불운이 두 친구에게 나뉘어 가는 저주를 받는다. 사랑하는 여자 또한 친구에게 가고 남자는 불운만이 남게 되었다고 절망한다. 판타지 세계관에 로맨스를 결합한 소설로 반전이 인상적이지는 않으나 무난하게 읽을 수 있는 단편이었다.


  세계는 도둑맞았다 / 김재한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에 재학 중이며 창작 작가 집단 CUG에서 활동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소드 시커』, 『섀도우 비스트』가 있으며, 현재 『마법사들의 사회』를 집필 중이다.

  우리가 사는 현대에 갑자기 엄청나게 진보한 기술들이 공개된다. 곧 그 기술들의 정체는 마학이 결합된 마법사들이 퍼트린 것으로 밝혀지고, 마법사들은 앞으로 나타날 적들을 위해 인류와 힘을 모아 싸우려 한다. 소재도 신선했거니와, 평행 우주, 시간 이동, 마법, 외계인, 악마 등등이 결합된 세계관은 매력적이었다. 온갖 강렬한 소재들을 결합했음에도 불구하고 잘 섞여있어서 독자가 위화감을 느끼지 않고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할까? 이 소설은 어떻게 보면 라이트노벨 형식에 딱 맞는 글이라고 할 수 있는데,(현대를 배경으로 한 새로운 세계관, 특정 먹을 것을 밝히는 강력한 미소녀와 특이한 능력이 있으나 강력하지는 않은 소년의 만남 등등은 라이트노벨의 전형적인 공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스승과 제자라는 설정이나 기타 변주 등은 개성을 살리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단편으로 끝나기 보다는 장편으로 펼쳐질 이야기가 기대되기도 하였다. 프롤로그 성격으로 볼 수 있었다고 할까. 현대에 마법 소녀가 결합된 형식은 모 라이트노벨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작품의 재미와 수준은 분량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이쪽이 훨씬 소재와 캐릭터를 잘 살렸고 매력적이었다. 단편집에서 눈에 띄는 글 중에 하나였으며(단편의 구조미를 생각할 때 단편에 걸 맞는 세계관과 내용은 아니겠으나) 취향에 맞아 재미있게 읽기도 하였고 이후에 이 세계관을 바탕으로 나올 장편 소설도 기대가 되었다.


  과거로부터의 편지 / 이상민


  만화스토리 작가, 카피라이터 등을 거쳐 전업 작가 및 출판 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제1회 싸이더스 HQ 공모전에서 최우수상, 2006년 알바트로스 환상문학상에서 동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엔터테인먼트 창작그룹 익스트림 클럽을 결성하여 활동하고 있으며, 주요 작품으로는 『령』, 『소울가디언』 등이 있다.


  이우혁 작가의 『퇴마록』 같은 퇴마물인데 진부한 내용 전개와 큰 반전이 없고 캐릭터도 매력이 못 살아나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글이었다. 전체적으로 인터넷 상에서의 평도 많이 안 좋은 듯하다. 작품 내에서도 『퇴마록』이 몇 번이고 언급되고 ‘현암’까지 언급이 되는데 이건 플러스보다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마이너스로 작용한 듯싶었다. 아무리 비슷한 류의 소설이라고 해도 작중에서 캐릭터가 ‘이게 무슨 영화 뭐도 아니고, 책 뭐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건 세련되지 못하고 촌스러운 느낌이며 흐름을 깨트린다고 할까.(가령, 비슷한 소설인 『신비소설 무』에서 ‘이게 무슨 『퇴마록』이냐?’ 하는 식의 대사가 나왔다면 얼마나 깼을지 생각해봐라.) 허구의 이야기에 독자가 몰입하려고 하고 있는데, 오히려 ‘이건 가짜야’라고 작가가 외치는 듯한 기분이라서 읽다가 글에서 튕기는 기분이 들었다. 이야기나 결말도 안이하고 특히 퇴마물에서는 퇴마사의 개성이나 특징이 살아나야 하는데 캐릭터성도 못 살리고 특징도 전무했다. 퇴마 형식이라도 특이했으면 좋았을 것을. 이야기도 단순했는데, 대부분 필요 없는 부분은 삭제하고 간단한 서술로 넘어가고 결말 부분을 중심으로 해서 ‘과거로부터의 편지’가 온 이후의 시점으로 몇몇 캐릭터와 새로운 사건이 곁들여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면 훨씬 더 좋은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독자도 상상할 수 있는 뻔한 이야기를 앞에서 길게 서술해봤자 재미가 없으며 그나마 끝에서 새로움을 주고 있는데, 오히려 그것이 전개가 되었으면 더 나은 글이 되었을 것 같았다.


  리뷰를 마치며


  단편선은 대부분 전부 다 마음에 들 수는 없다. 보통 한 두 개만 건져도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중요한 건 이런 단편선들이 꾸준히 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계속 좋은 작가와 좋은 작품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이 또한 한국 환상 문학 단편에 자원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그런 역사를 쌓아올릴 계기가 없었다. 짧지만 강렬한 판타지 단편들. 단편은 작가의 역량을 키우는 토대가 되고 이런 단편선은 한 권으로 독자들이 여러 작가들을 살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장르문학이 발전하려면 이런 단편선이 앞으로도 꾸준히 나와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럴수록 독자는 더 좋은 작가를 발견하게 되고 작가들 역시 장르 단편을 발표할 공간을 얻음으로써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고 작품 수준을 계속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신인들이 독자와 만나는 계기도 장편보다는 단편이 훨씬 쉽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이 두 출판사에서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것이 반갑다. 『윈드 드리머』 이후로 8년 만에 나온 것이다. 8년 동안 한국 환상 문학은 많이 발전했을까? 아니면, 제자리걸음일까? 적어도 단편 장르문학은 발전할 계기나 기회를 가질 수가 없었다. 장르 단편을 발표할 지면이 8년 동안 턱없이 부족했다. 이번에 두 출판사에서 나오는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을 계기로 한국 환상문학 단편이 더욱 발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두 출판사에서 모두 앞으로 꾸준히 단편선을 내겠다고 밝힌 만큼, 작가들 역시 이번 첫 시도보다 더 좋은 글을 써내고 독자들 역시 이런 토대로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지지해주고 책을 구입해서 읽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작가, 출판사, 독자가 모두 한 마음으로 노력해야지만, 한국 환상 문학 단편이 척박한 대지에 뿌리를 내릴 수 있지 않을까?

  저번에 읽은 황금가지의 단편선도 그렇기 이번 시작의 단편선도 물론 완벽한 단편선은 아니고 아쉬운 작품들도 상당히 많다. 그러나 이것이 첫걸음이기에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것은 당연하고, 이런 시도가 계단처럼 쌓이고 쌓여야 마침내 새로운 문까지 당도할 수 있을 것이다. 기대한 것만큼의 글을 써낸 작가도 있었고, 기대한 것보다 아쉬움이 컸던 작가도 있었다. 가진 것 이상의 글을 써낸 작가나, 가진 것을 조금도 보여주지 못한 작가도 있었지만, 다음 기회에는 또 어떤 작품들로 채워질지 기대되기도 한다. 이런 단편선이 앞으로도 쭉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분명 한 권, 한 권 나올 때마다 더욱 멋진 단편선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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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6 1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우스트 2008.봄 - vol.5
학산문화사 편집부 엮음 / 학산문화사(잡지)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파우스트 5호 리뷰


  제1특집 집중조명, 카도노 코헤이!


  첫 번째 실린 글은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로 유명한 카도노 코우헤이의 글이다. 총 두 편의 글이 실렸는데 「아웃랜도스의 사랑」, 「포르셰식 야크트티거」 등이다. 이 두 개의 글은 동전의 양면처럼 같은 사건을 가지고 각각 남자와 여자의 시각으로 쓰인 연작이다. 세계관은 역시 카도노 코우헤이 특유의 세계관으로 『부기팝』 시리즈를 읽은 독자라면 무척이나 반가워할 세계이다. 통화기구가 나오기 때문이다. 카도노 코우헤이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그 세계관에 기인한다. 그가 만들어낸 세계는 『부기팝』 시리즈뿐만 아니라 『나이트 워치』 시리즈나 『비트의 디시플린』 등 그의 다양한 작품들에 뻗쳐 있고 독자는 이 점에 큰 매력을 느낀다. 이 작품도 그 세계관이 소설의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카도노 코우헤이 세계관의 팬이라면 필시 놓치지 말고 읽어야 할 것이다.

  첫 번째 실린 「아웃랜도스의 사랑」은 코료 쿠니오라는 남자를 다루고 있는데, 그는 기존에 『부기팝』 시리즈에서도 이질적인 존재이다. 『부기팝』 시리즈가 능력 배틀물로 변해가는 시점에서 주로 특수한 능력에만 집중이 되었다면 코료 쿠니오는 다른 세계의 존재, 즉 이세계인으로 보이며 그가 가진 능력 또한 초능력으로 판단할 수 없는 ‘마법’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는 기존의 세계관보다 한 단계 확대되는 것으로 독자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세계관의 비밀이 드러나는 매력 말고도 이 소설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두 남녀의 사랑이다. 이 사랑의 모습은 기존에 카도노 코우헤이가 그리는 남녀의 사랑과 유사하다. 두 남녀는 지나치게 강력하며 또한 순수하고 순진하기 짝이 없다. 가느다란 줄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위태롭기 그지없는 상태에서도 그들은 순애보 같은 사랑을 한다. 똑같은 패턴이 쓰였지만 역시나 재미있는 점은 어쩔 수 없다. 이것이 카도노 코우헤이의 매력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실린 것은 ‘슈퍼 토크 섹션’이라는 기사로 『잘린머리 사이클』로 유명한 니시오 이신과 카도노 코우헤이의 대담이 적혀 있다. 카도노 코우헤이는 일본 라이트노벨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작가로 부기팝 시리즈로만 300만부 이상을 판 작가이다. 이 기사의 서문에는 이 ≪파우스트≫ 잡지의 원점 중 하나를 이루고 있는 카도노 코우헤이의 인물 특집을 다루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한다. ‘소설가 측면에서 본 카도노 코우헤이’라는 관점에서 니시오 이신이 호스트로 참여했다.

  소설가 니시오 이신에게는 다섯 명의 신이 있다고 한다. 바로 니시오 이신이 이 바닥에 들어온 계기가 된 소설가 다섯 분이 있는데 바로 ‘카사이 키요시, 쿄고쿠 나츠히코, 모리 히로시, 세이료인 류스이, 카도노 코우헤이’ 라고 한다.

  조금은 니시오 이신이 말이 많고 부산스러운 느낌이긴 했지만, 그래도 작품으로만 접할 수 있었던 카도노 코우헤이 가지고 있던 생각 등을 엿볼 수 있는 기회라 상당히 유익했다.


  신본격마법소녀 리스카 / 니시오 이신


  소설가 니시오 이신이 꾸준히 ≪파우스트≫에 연재하고 있는 소설. 재미있게 읽는 소설이지만 원패턴으로 변하면 어떻게 될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이번 편에서는 새로운 패턴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굉장히 몰입감 있게 읽었으며 즐거웠다. 그리고 중간에 끊는 솜씨도 절묘해서 다음 편이 무척 궁금해졌다. 기존에는 한 에피소드에서 이야기가 정리되었는데 이번에는 상, 하 편으로 나뉜 느낌이다. 다음 편이 기대된다. 다만 이제는 패턴 문제는 걱정이 사라졌는데 주인공의 비중은 상당히 높고 잘 되었지만, ‘리스카’라는 존재가 도구적으로만 존재하는 것 같아서 걱정스럽다. 여주인공이 도무지 속내가 보이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다니. 이건 앞으로 큰 문제가 아닐까. 뭐, 이 소설이나 니시오 이신의 소설들 전반적으로 인간미가 떨어지는 캐릭터들이 나오지만 말이다.


  경성탐정록 - 광화사 / 한동진, 한상진


  오랜만에 만나는 경성탐정록. 셜록 홈즈를 오마쥬한 이 소설은 시대 배경이나 캐릭터가 매력적인 소설이다. 그 대신 추리에서는 큰 매력을 얻기 힘들다는 단점도 존재하지만 아무튼 간에 재미있다. 단행본으로 나온다는 소리도 들었는데, 부디 멋지게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화염소녀 / 김미리


  역시 한국 작가의 작품이다. 판타지적인 설정과 반전이 들어간 공포 소설인데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다. 적당히 어둡고 읽을만 했던 소설이다.


  용기사 07 롱 인터뷰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져 유명한 『쓰르라미 울적에』 게임을 만든 용기사07의 인터뷰이다. 소설가는 아니나, 이 작가의 창작법이나 창작을 대하는 태도 등은 굉장히 유익한 정보가 많았다. 바로 이어서 나스 기노코와의 좌담도 실렸는데 이 역시 재미있는 읽을 거리가 많았다. 국내에도 정식으로 게임 등이 번역되어 나온다고 들었는데 꼭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토 유야 - 나인 스토리즈(3편 동시게재!)

 

  사토 유야의 소설 「나의 나약한 오빠」, 「대로봇 전쟁 전날 밤」, 「나오미에게 바친다 ― 사랑의 오욕 속에」 3편이 실렸는데 전반적으로 실망이었다. 분량도 각기 짧고 내용도 적었고 상황 파악도 힘들었다. 소품 같다는 느낌.


  우라가 카즈히로 미스터리 연작 2편


  「주머니에 너와 아메리카를 담고」, 「당신과 여기 있다는 것」. 이 두 편은 굉장히 인상적으로 읽었다. 미스터리 연작이라고 하지만, 배경이나 설정 등은 SF적으로 볼 수도 있는데 굉장히 신선하기도 했고 생각할 거리도 많았다. 두 소설 다 끈적끈적한 심리묘사가 뛰어났고, 이야기에 몰입감도 좋았다. 재미있게 읽었다.


  첫 출근 / 장은호


  이번에 실린 한국 작가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다. 많은 은유와 상징으로 읽힐 수 있는 멋진 발상과 이야기가 결합되었다고 할까. 근사하게 읽었다. 1980년생 공포 소설가라고 하는데, 마음에 드는 공포 소설이었다. 첫 출근은 어떤 남자가 알 수 없는 회사의 첫 출근을 하게 되는데 전화를 받고 지령을 전달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그 지령들은 하나 같이 이해할 수 없거나 섬뜩하기만 하고, 그 시스템을 벗어나려는 시도 역시 위험하기만 하다.


  파우스트 5호를 읽고 나서


  ≪파우스트≫의 매력은 일단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일본 라이트노벨 작가들의 좌담회나 인터뷰 등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도 이제는 ≪판타스틱≫ 같은 장르 월간지가 생겼지만 아직은 국내 장르 작가들의 좌담회조차 그리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한 장르를 정의 내리기 힘든 독특하고 묘한 소설들을 읽을 수 있으며, 국내 공포소설 작가들의 단편들을 읽을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하시이 치즈의 만화는 중간에 끊겨서 다음 편을 봐야 할 것 같고, 마이조 오타로의 만화는 그의 그림체와 작품 세계가 여실이 드러난다. 다만, 작품이 지나치게 적나라하게 하고 싶은 말을 보여주는 만화라 심심한 것이 흠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파우스트 소설상이 수상자를 못 냈다는 것은 또한 아쉬웠다. 다음 호에는 멋진 수상자가 등장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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딘 쿤츠의 낯선 눈동자 (상)
딘 R. 쿤츠 지음, 김정미 옮김 / 제우미디어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낯선 눈동자(Watchers) 

  - 딘 쿤츠의 매력
 

  딘 쿤츠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다. 판매량이 3억 2천만부에 달하고 스티븐 킹과 함께 스릴러 소설의 양대 산맥이라 불린다. 지금도 매년 1천 7백만부 이상의 소설이 판매되고 있다고 하고, “스티븐 킹이 롤링 스톤즈라면 딘 쿤츠는 비틀즈다(플레이보이誌)”라고 말할 정도로 인지도와 대중성에는 오히려 스티븐 킹을 앞선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나 국내에서 만큼은 스티븐 킹이 『쇼생크 탈출』 같은 명작 영화의 원작자로 널리 알려진 데 반해 딘 쿤츠는 그리 많이 알려진 작가가 아니다. 최근 들어 스티븐 킹의 소설들이 황금가지 출판사를 통해 전부 정식 번역되어 나오고 있고 이제는 별다른 마케팅을 안 해도 작가 이름만으로도 많이 팔려나가는 것에 반해 딘 쿤츠의 작품은 90년 대 몇 번 소개되기는 했으나 번역이나 편집도 좋지 않았고 큰 반향을 일으키지도 못했다.


  그러나 스티븐 킹의 인기와 국내에서도 스릴러 문학이 자리를 잡아가는 추세를 반영한 것인지 최근 들어 딘 쿤츠의 소설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살인예언자』(다산책방), 『살인의 기술』(세시) 등이다. 그리고 이번에 제우미디어에서 출간된 『낯선 눈동자』는 딘 쿤츠 본인이 가장 사랑한 소설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의 주요 인물은 크게 여섯 명이다.(동물을 포함해서) 이 소설은 스릴러 소설이라기보다는 드라마적 성격이 강하다고 느꼈다. 물론 빠르게 읽히고 흡인력이 무척 뛰어난 소설이나, 이야기보다는 인물들에게 느끼는 애정이 이 작품의 매력으로 더 다가온 탓이다. 일단, 이 소설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아인슈타인’이다. 그는 놀랍게도 인간이 아니라 동물이다. 하지만 인간만큼 똑똑한 지성을 가졌기 때문에 매우 큰 매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 소설의 실질적인 주인공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은 주요 인물인 노라와 트래비스 사이를 맺어주고 여러 갈등을 제시하거나 해결하는 주체가 되는데, 이는 독자와 소설 사이를 연결시켜주고 재미를 주는 역할을 맡고 있기도 하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개인 아인슈타인은 작가와 독자 사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개 중에 하나일 것이다.

  또 다른 캐릭터는 노라이다. 불우한 가정환경 탓에 집안에서만 주로 활동하고 자신감이 결여된 여자다. 그러나 마치 신데렐라처럼 아인슈타인과 트래비스 덕분에 자신을 발견하고 점점 새롭게 변화해 나간다. 이 소설에서 가장 많은 변화를 하는 캐릭터이며, 독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캐릭터이다. 노라가 새로운 것을 볼 때마다 대견스럽고 뿌듯한 감정은 트래비스 뿐만 아니라 독자도 느낀다. 마치 세상을 처음 본 아기를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다. 순수하고 예쁘고 착한 노라는 그야말로 매력 넘치는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이 소설에서는 각 캐릭터별로 심리 묘사가 잘 되어 있는데 특히 노라의 심리 묘사가 뛰어나다.

  그 외에도 조연이면서도 멋진 노라의 변호사라든지(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펼치는 활약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불행한 운명을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그야말로 독자에게까지 안심을 주는 든든한 캐릭터 트래비스라든지, 갈등을 갖고 수사를 하는 레뮤엘 등 여러 캐릭터들이 이 소설을 구축해나가고 있다. 이 소설은 이런 인물들이 잘 어울리며 소설을 재미있게 이끌어나가고 있다. 스티븐 킹의 『스탠드』를 읽으면서도 캐릭터의 매력에 감탄했던 적이 있는데, 이 작가 역시 캐릭터를 만드는 솜씨가 아주 뛰어나다.

  이야기도 물론 재미있었다. 사실 아쉬운 점은 스릴러라고 보기에는 긴장감이 많이 안 느껴진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그래도 무리 없게 진행되어가는 이야기는 다음 장이 궁금하게 만들었다. 인물들이 사랑스럽게 느껴진 만큼 그들의 뒷이야기가 궁금한 탓도 컸다. 설정 면에서는 SF적으로 느낀 부분도 있었는데 유전자 공학을 이용해서 인간만큼 뛰어난 ‘아인슈타인’이라는 개의 설정이 그렇다. 또한, 그 개가 “당신들에게 아직은 희망이 있어요.”라는 부분을 트래비스가 인류에게 하는 말처럼 느낀다는 부분에서는 SF적 경이감이 잠시 느껴지는 부분이었고 엔딩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작품이었다. 유전자 공학이라는 설정이나 그 동안 없었던 인간과 유사한 지성의 존재, 또한 최초의 SF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연상케 하는 아웃사이더의 존재까지. SF 소설 관점에서 봐도 흥미로운 부분들이 보여서 또한 재미있었다.

  이 소설은 전반적으로 잘 만들어진 소설이며 특히 출간된 시기를 감안하고 읽을 경우에(당시에는 참신한 설정이었어도 이제는 진부하게 변했고 몇 가지 기법들도 수차례 많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와 식상한 느낌을 벗을 수 없는 것은 역시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잘 쓰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도 하다.) 굉장히 흡족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딘 쿤츠가 가장 사랑한 소설이라는 말답게 작가가 즐겁게 썼다는 느낌이 잘 느껴지는 것이다.(작가는 『낯선 눈동자』를 쓸 때 난 기쁨만 느꼈다고 말한다.)

  이 책은 400페이지가 넘는 상, 하권으로 구성된 책이지만, 몰입감이 상당하여 금세 읽을 수 있고 읽는 동안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스릴러 소설이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즐겁게 읽은 독자라면, 딘 쿤츠를 처음 접하기에도 좋을 것이고, 또 기존에 다른 소설로 딘 쿤츠를 접했다면 이 소설 역시 놓치지 말 것을 추천한다.

  매력이 넘치는 살아있는 캐릭터들과 신비하면서도 경이로운 개 아인슈타인 그리고 쫓고 쫓기는 스릴러적 재미와 완성도 있는 플롯까지 독자를 만족시켜줄 모든 요소가 여기에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딘 쿤츠의 명성을 확인하고 싶다면, 여기 『낯선 눈동자』가 있다. 영화처럼 생생히 머릿속에 그려지는, 긴장과 재미가 결합된 이야기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딘 쿤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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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
김이환 외 지음 / 황금가지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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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를 가치는 충분하다! 이제 다음 단편집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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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 루즈 1 - J Novel
김주영 지음, 문성호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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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 루즈


  ― 현실 속 동화의 재미


  갓 태어난 우렁이 각시들이 논바닥에서 처음 배우는 말은, ‘당신과 함께 살 수 있게 절 데려가 주세요.’이다. 처음부터 그들은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몹시 외로운 존재로 태어나는 것이다.

  ‘당신과 함께 살 수 있게 절 데려가 주세요.’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한 나는 갑자기 바람 속에서 그런 말을 들은 기분이 들었다.

  ― 『이카, 루즈』, 서울문화사, 제이노블, 김주영, 136~137쪽


  서울문화사의 라이트노벨 브랜드 제이노블에서 나온 『이카, 루즈』는 김주영 작가의 작품입니다. 제2회 황금드래곤 문학상에서 『열 번째 세계』(황금가지)이야기로 가작을 수상했고 시공사에서 『그의 이름은 나호라 한다』를 출판했으며 환상문학웹진 거울 필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환상문학웹진 거울 장편란에 연재되었던 이 소설의 원래 제목은 『어떤 개인 날』이었으나 출간하면서 『이카, 루즈』로 나왔습니다.

  일단, 처음에는 제목도 끌리지 않았고, 일러스트는 더욱 작품을 끌리게 하는 소설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읽고 나니 충분히 괜찮고 자연스럽게 리뷰를 쓰게 만드는 재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 주요 인물은 주인공인 이카를 비롯해서 규와 사스케나, 바신 등이 있습니다. 한국적인 배경에 약간은 이국적인 ‘사스케나’ 같은 이름은 좀 어색한 느낌이 들지만 읽다보면 금세 익숙해집니다.

  이 소설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1권에는 다섯 개의 에피소드가 들어있습니다. 첫 에피소드는 주인공이 평범한 인생을 살다가 남자친구에게 차이고 회사도 그만둔 상태에서 봉인된 기억을 해제하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그렇기 때문에 조금 뻔한 시작으로 하지만, 에피소드가 거듭될수록 캐릭터의 매력은 더해지고 이야기는 재미있어 집니다.

  이 소설은 자세한 세계관이나 배경 묘사에 치중하지 않습니다. 그냥 바로바로 사건을 제시하고 독자와 주인공 모두 혼란스러운 가운데 일을 처리해나가게 됩니다. 이 점이 처음에는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꽤나 글에 호기심을 부여해주고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또한 주인공의 기억은 완전히 풀어진 게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나올 다양한 이야기들이 기대가 됩니다.


  플라톤주의자들은 말한다.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이유는 중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다른 이들은 말한다. 우리는 단지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광경을 보고 사과를 땅으로 당기는 힘에 '중력'이라는 이름을 붙일 뿐이라고. 중력이 원래부터 존재했는지, 아니면 이름을 붙였기 때문에 존재하게 된 것인지는 누구도 딱 잘라 말할 수 없다.

  ‘오늘은 개인 날이군.’

  거북이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거북이가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기 때문에 거북이는 말을 할 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거북이는 말을 한다.

  ― 『이카, 루즈』, 서울문화사, 제이노블, 김주영, 69쪽


  이 소설의 매력은 동화와 결합된 숨어있는 세계에 대한 매력과 캐릭터들의 매력입니다. 일단 세계관은 우리가 사는 현대이면서도 환상적인 존재들이 같이 살고 있다는 설정으로 짜여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우리가 사는 세계 이면에는 비일상의 세계가 있을지 모른다는 설정을 좋아하는 편이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또한, 이것이 다른 능력자 배틀물이 주로 등장하는 라이트노벨과는 달리 다양한 동화적인 환상의 문제라는 것이 신선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즉, 주인공은 이런 다른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인데, 용궁에서 의뢰가 오거나 우렁이 각시 협회에서 의뢰가 오거나, 백빙 족의 문제가 오거나, 피터팬이 사는 네버랜드에서 의뢰가 오거나 하는 것이죠. 다 어렸을 때 읽었던 우리나라 전래동화나 외국의 동화들인지라 친근하고 여기서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세계들의 모습도 재미있었습니다. 이런 요소들이 이 소설을 빛내주고 있으며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일이 들어왔어.”

  “응?”

  “남해 용왕이 소개를 한 모양인데, 우렁이 각시 연합에서 인신매매에 대한, 음, 아니군. 우렁이 매매라고 해야 하나? 내 참, 이렇게 말하니 뭔가 범죄의 느낌이 영 안 나서 말이야.”

  “우렁이 각시 매매야 하루이틀 일도 아니잖아.”

  규, 찔리지도 않아? 하지만 규는 태연하기 짝이 없었다.

  ― 『이카, 루즈』, 서울문화사, 제이노블, 김주영, 77쪽


  또, 에피소드로 친절하게 나누어져 있지만 두 개의 사건들이 복잡하게 의뢰가 오고 얽히는 모습 등에서는 서즈데이 넥스트 시리즈인 『제인에어 납치사건』과 『카르데니오 납치사건』 등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역시 여자가 주인공이고 황당한 계기, 다양한 사건들이 겹치면서 또 척척 풀어지게 되는 모습 등은 상당히 유사했고 한국형 버전을 보는 것 같아서 즐거웠습니다. 이 소설은 배경이나 다른 것들을 설명하는 대신 사건이 나오고 굉장히 빠른 속도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야기가 달려가기 때문에 꽤 속도감 있고 지루할 틈 없이 읽어나가게 된다는 것이 큰 장점입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순진하고 귀여운 우렁이 각시들 뒤에서 불량한 기운이 느껴졌다. 고개를 드니 검은 원피스를 입은 사스케나가 배식판을 들고 있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집에 쌀이 넘쳐나는 판에. 쯧.”

  사스케나가 고개를 약간 옆으로 돌리고 말했다.

  “궁상맞아.”

  이렇게도 덧붙였다. 이 초불량한 우렁이 각시는 면전에 대고는 꼬박꼬박 존대를 하는 주제에 항상 이런 식으로 반말을 지껄인다.

  “초불량 우렁이 대령했습니다.”

  ― 『이카, 루즈』, 서울문화사, 제이노블, 김주영, 97쪽


  이 소설의 두 번째 매력은 캐릭터 성입니다. 주인공의 캐릭터성은 어찌 보면 굉장히 진부할 수 있습니다. 좀 까칠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따뜻하고 귀여운 구석도 있고, 하지만 그만큼 많은 독자들이 읽어온 캐릭터인 만큼 이야기를 술술 넘어가게 만듭니다. 괜찮다고 할까요. 거기에다가 빛이 나는 캐릭터는 ‘사스케나’입니다. 우렁이 각시인 사스케나는 주인공이 매일 초불량 우렁이 각시라고 불평을 터트리곤 합니다. 냉정하면서 돈 계산에 밝고 주인공과 티격태격하는 모습에서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별로 웃기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이 캐릭터와 주인공의 다툼은 웃음이 나고 즐겁다고 할까요? 로저 젤라즈니의 『저주 받은 자, 딜비쉬』에서도 주인공보다 주인공과 매일 티격태격하면서도 뭐든지 척척 돕고 다 아는 듯한 ‘블랙’이라는 말 캐릭터가 더 매력적이고 재미있었던 것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바신’이라는 ‘비냔’의 충성스러운 부하 캐릭터도 단순무식하고 순수한 캐릭터라 재미있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이렇게 주인공, 사스케나, 바신의 캐릭터가 잘 살아있고 이들의 대화가 즐겁습니다.

  처 음에 이 소설이 출판된다고 들었을 때 아직 연재물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라이트노벨에 맞는 성격의 글일까 의심스러운 적이 있었는데, 읽어보니 잘 어울리고 색다른 라이트노벨의 등장이라 할 만합니다. 캐릭터도 잘 살아있을뿐더러 이야기들도 신선하고 잘 어울려 있고 속도감도 있고 전체적인 분위기나 문체도 가볍고 읽기 좋습니다. 이야기도 흥미가 있고 뒷 권을 더 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소설입니다. 최근에 몇 개의 라이트노벨 중에서는 2권을 사고 싶지 않은 라이트노벨도 다섯 개 정도는 있었는데, 이 소설은 2권을 꼭 읽고 싶습니다. 다음에는 어떤 동화 이야기들이 맞물리고 주인공에 숨겨진 기억은 과연 어떤 복잡한 사연을 담고 있을지 꽤 궁금하기도 합니다.

  제이노블 브랜드에 아직 신뢰가 가지 않았다거나, 제목이나 일러스트가 끌리지 않아서 구입하지 않은 독자들 중 이 리뷰를 읽고 관심이 가는 분들은 한 번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마음은 어항이다. 세상은 어항이다. 그 안에 있던 무언가가 흔적이 없이 사라져 버려도 마음은, 세상은 여전히 꽉 찬 채로 살아간다.  ― 『이카, 루즈』, 서울문화사, 제이노블, 김주영, 1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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