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카, 루즈 1 - J Novel
김주영 지음, 문성호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이카, 루즈


  ― 현실 속 동화의 재미


  갓 태어난 우렁이 각시들이 논바닥에서 처음 배우는 말은, ‘당신과 함께 살 수 있게 절 데려가 주세요.’이다. 처음부터 그들은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몹시 외로운 존재로 태어나는 것이다.

  ‘당신과 함께 살 수 있게 절 데려가 주세요.’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한 나는 갑자기 바람 속에서 그런 말을 들은 기분이 들었다.

  ― 『이카, 루즈』, 서울문화사, 제이노블, 김주영, 136~137쪽


  서울문화사의 라이트노벨 브랜드 제이노블에서 나온 『이카, 루즈』는 김주영 작가의 작품입니다. 제2회 황금드래곤 문학상에서 『열 번째 세계』(황금가지)이야기로 가작을 수상했고 시공사에서 『그의 이름은 나호라 한다』를 출판했으며 환상문학웹진 거울 필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환상문학웹진 거울 장편란에 연재되었던 이 소설의 원래 제목은 『어떤 개인 날』이었으나 출간하면서 『이카, 루즈』로 나왔습니다.

  일단, 처음에는 제목도 끌리지 않았고, 일러스트는 더욱 작품을 끌리게 하는 소설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읽고 나니 충분히 괜찮고 자연스럽게 리뷰를 쓰게 만드는 재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 주요 인물은 주인공인 이카를 비롯해서 규와 사스케나, 바신 등이 있습니다. 한국적인 배경에 약간은 이국적인 ‘사스케나’ 같은 이름은 좀 어색한 느낌이 들지만 읽다보면 금세 익숙해집니다.

  이 소설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1권에는 다섯 개의 에피소드가 들어있습니다. 첫 에피소드는 주인공이 평범한 인생을 살다가 남자친구에게 차이고 회사도 그만둔 상태에서 봉인된 기억을 해제하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그렇기 때문에 조금 뻔한 시작으로 하지만, 에피소드가 거듭될수록 캐릭터의 매력은 더해지고 이야기는 재미있어 집니다.

  이 소설은 자세한 세계관이나 배경 묘사에 치중하지 않습니다. 그냥 바로바로 사건을 제시하고 독자와 주인공 모두 혼란스러운 가운데 일을 처리해나가게 됩니다. 이 점이 처음에는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꽤나 글에 호기심을 부여해주고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또한 주인공의 기억은 완전히 풀어진 게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나올 다양한 이야기들이 기대가 됩니다.


  플라톤주의자들은 말한다.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이유는 중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다른 이들은 말한다. 우리는 단지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광경을 보고 사과를 땅으로 당기는 힘에 '중력'이라는 이름을 붙일 뿐이라고. 중력이 원래부터 존재했는지, 아니면 이름을 붙였기 때문에 존재하게 된 것인지는 누구도 딱 잘라 말할 수 없다.

  ‘오늘은 개인 날이군.’

  거북이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거북이가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기 때문에 거북이는 말을 할 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거북이는 말을 한다.

  ― 『이카, 루즈』, 서울문화사, 제이노블, 김주영, 69쪽


  이 소설의 매력은 동화와 결합된 숨어있는 세계에 대한 매력과 캐릭터들의 매력입니다. 일단 세계관은 우리가 사는 현대이면서도 환상적인 존재들이 같이 살고 있다는 설정으로 짜여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우리가 사는 세계 이면에는 비일상의 세계가 있을지 모른다는 설정을 좋아하는 편이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또한, 이것이 다른 능력자 배틀물이 주로 등장하는 라이트노벨과는 달리 다양한 동화적인 환상의 문제라는 것이 신선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즉, 주인공은 이런 다른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인데, 용궁에서 의뢰가 오거나 우렁이 각시 협회에서 의뢰가 오거나, 백빙 족의 문제가 오거나, 피터팬이 사는 네버랜드에서 의뢰가 오거나 하는 것이죠. 다 어렸을 때 읽었던 우리나라 전래동화나 외국의 동화들인지라 친근하고 여기서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세계들의 모습도 재미있었습니다. 이런 요소들이 이 소설을 빛내주고 있으며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일이 들어왔어.”

  “응?”

  “남해 용왕이 소개를 한 모양인데, 우렁이 각시 연합에서 인신매매에 대한, 음, 아니군. 우렁이 매매라고 해야 하나? 내 참, 이렇게 말하니 뭔가 범죄의 느낌이 영 안 나서 말이야.”

  “우렁이 각시 매매야 하루이틀 일도 아니잖아.”

  규, 찔리지도 않아? 하지만 규는 태연하기 짝이 없었다.

  ― 『이카, 루즈』, 서울문화사, 제이노블, 김주영, 77쪽


  또, 에피소드로 친절하게 나누어져 있지만 두 개의 사건들이 복잡하게 의뢰가 오고 얽히는 모습 등에서는 서즈데이 넥스트 시리즈인 『제인에어 납치사건』과 『카르데니오 납치사건』 등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역시 여자가 주인공이고 황당한 계기, 다양한 사건들이 겹치면서 또 척척 풀어지게 되는 모습 등은 상당히 유사했고 한국형 버전을 보는 것 같아서 즐거웠습니다. 이 소설은 배경이나 다른 것들을 설명하는 대신 사건이 나오고 굉장히 빠른 속도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야기가 달려가기 때문에 꽤 속도감 있고 지루할 틈 없이 읽어나가게 된다는 것이 큰 장점입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순진하고 귀여운 우렁이 각시들 뒤에서 불량한 기운이 느껴졌다. 고개를 드니 검은 원피스를 입은 사스케나가 배식판을 들고 있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집에 쌀이 넘쳐나는 판에. 쯧.”

  사스케나가 고개를 약간 옆으로 돌리고 말했다.

  “궁상맞아.”

  이렇게도 덧붙였다. 이 초불량한 우렁이 각시는 면전에 대고는 꼬박꼬박 존대를 하는 주제에 항상 이런 식으로 반말을 지껄인다.

  “초불량 우렁이 대령했습니다.”

  ― 『이카, 루즈』, 서울문화사, 제이노블, 김주영, 97쪽


  이 소설의 두 번째 매력은 캐릭터 성입니다. 주인공의 캐릭터성은 어찌 보면 굉장히 진부할 수 있습니다. 좀 까칠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따뜻하고 귀여운 구석도 있고, 하지만 그만큼 많은 독자들이 읽어온 캐릭터인 만큼 이야기를 술술 넘어가게 만듭니다. 괜찮다고 할까요. 거기에다가 빛이 나는 캐릭터는 ‘사스케나’입니다. 우렁이 각시인 사스케나는 주인공이 매일 초불량 우렁이 각시라고 불평을 터트리곤 합니다. 냉정하면서 돈 계산에 밝고 주인공과 티격태격하는 모습에서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별로 웃기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이 캐릭터와 주인공의 다툼은 웃음이 나고 즐겁다고 할까요? 로저 젤라즈니의 『저주 받은 자, 딜비쉬』에서도 주인공보다 주인공과 매일 티격태격하면서도 뭐든지 척척 돕고 다 아는 듯한 ‘블랙’이라는 말 캐릭터가 더 매력적이고 재미있었던 것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바신’이라는 ‘비냔’의 충성스러운 부하 캐릭터도 단순무식하고 순수한 캐릭터라 재미있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이렇게 주인공, 사스케나, 바신의 캐릭터가 잘 살아있고 이들의 대화가 즐겁습니다.

  처 음에 이 소설이 출판된다고 들었을 때 아직 연재물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라이트노벨에 맞는 성격의 글일까 의심스러운 적이 있었는데, 읽어보니 잘 어울리고 색다른 라이트노벨의 등장이라 할 만합니다. 캐릭터도 잘 살아있을뿐더러 이야기들도 신선하고 잘 어울려 있고 속도감도 있고 전체적인 분위기나 문체도 가볍고 읽기 좋습니다. 이야기도 흥미가 있고 뒷 권을 더 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소설입니다. 최근에 몇 개의 라이트노벨 중에서는 2권을 사고 싶지 않은 라이트노벨도 다섯 개 정도는 있었는데, 이 소설은 2권을 꼭 읽고 싶습니다. 다음에는 어떤 동화 이야기들이 맞물리고 주인공에 숨겨진 기억은 과연 어떤 복잡한 사연을 담고 있을지 꽤 궁금하기도 합니다.

  제이노블 브랜드에 아직 신뢰가 가지 않았다거나, 제목이나 일러스트가 끌리지 않아서 구입하지 않은 독자들 중 이 리뷰를 읽고 관심이 가는 분들은 한 번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마음은 어항이다. 세상은 어항이다. 그 안에 있던 무언가가 흔적이 없이 사라져 버려도 마음은, 세상은 여전히 꽉 찬 채로 살아간다.  ― 『이카, 루즈』, 서울문화사, 제이노블, 김주영, 1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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