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은 죽지 않는다 - The Gifted Nobless Club 19
이슬기 지음 / 로크미디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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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블레스클럽의 열 아홉 번째 책 『탐정은 죽지 않는다』는 제목부터 흥미로운 책입니다. 원래 노블레스클럽 라인업에는 ‘기프트’로 소개되고 있던 이 소설은 막상 책으로 출간되었을 때 이렇게 제목이 바뀌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바뀐 제목이 훨씬 낫다고 느껴집니다. 일단 바로 제목만으로도 이 책이 탐정이 나오는 책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또 문장형 제목이 이 책에 흥미를 더욱 불러일으킵니다. 
  이 책은 탐정물이면서 또한 가상의 세계를 바탕으로 한 판타지입니다. 그건 바로 페이지를 넘기면 나오는 ‘사흘전’ 파트에서 알 수 있습니다. 주인공이 상처를 입지만 금세 자신의 상처를 능력으로 치료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로 인해 탐정인 주인공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는 ‘자가치유’ 능력자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또한 제목의 이유도 밝혀지게 됩니다. 주인공이 웬만한 상처로는 쉽게 죽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제목이 나온 것이죠. 이때부터 소설은 일찍 흡인력을 발휘하면서 독자가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만듭니다. 독자는 이 능력이 어떤 식으로 소설에서 영향을 발휘할지, 또 탐정인 주인공에게 어떤 의뢰인이 나타나고, 사건은 어떤 식으로 풀릴지 궁금하게 됩니다. 정갈한 문장으로 이어진 빠른 사건 전개는 독자에게 쉴 틈을 주지 않고 한 번에 읽어내려가게 만듭니다. 재미있는 오락소설을 찾는다면 이 책은 괜찮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한 탐정 소설. 하드보일드 판타지. 마법과 능력자가 나오는 이야기. 섞이지 않을 것 같은 소재들이 상당히 잘 배치되어 있어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입니다. 문장이나 플롯이 상당히 안정적입니다. 그래서인지 최근에 읽은 노블레스클럽 책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입니다. 사건을 추리해나가는 추리소설의 재미도 가지고 있고, 능력을 사용하는 능력자물의 재미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캐릭터들도 개성있게 잘 그려진 편입니다. 주인공이 지나치게 결점이 없고 곧은 것처럼 보이는게 아쉽기는 하지만, 적당한 유머 감각을 가지고 있어서 캐릭터에게 애정을 가지게 됩니다. 주인공에게 사건을 의뢰하는 당차고 또 사랑스럽기도 한 소녀, 에이레네 키르헨펠도 이 소설에 재미를 주는 요소입니다.
  캐릭터들과 함께 숨가쁘게 사건을 해결하고 나자, 문득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인공이 탐정인만큼 앞으로 다른 사건들도 주인공을 찾아올테니 새롭게 펼쳐질 이들의 이야기를 더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아쉬움은 배경 묘사입니다. 세계관이 독특한 편이나 도시의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이야기 전개에 집중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도시의 외관이나 어떤 건물들이 있고, 어떤 사람들이 살아가는지 전체적인 도시의 형상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두 배가 되는 분량이 필요하겠지요. 따라서 이 세계관과 인물들을 바탕으로 한 다음 소설이 나와서 좀 더 이 도시와 이 도시에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몇 번이나 하는 말이지만, 이런 퀄리티 높고 색다른 장르소설이 정식으로 출간되어 읽힐 수 있는 것은 노블레스클럽이라는 브랜드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단권 분량에다가 판타지 추리 소설이라는 지금까지 보기 힘든 퓨젼 장르의 소설이 기존 대여점을 목표로 하는 브랜드에서는 출간될 수 없었죠. 덕분에 독자들은 이렇게 신선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노블레스클럽 브랜드가 아직 많은 인지도를 쌓은 것이 아니고, 이 책의 저자 역시 신인이기 때문에 작품이 가지는 재미에 비해 많이 읽히지 않을 것 같아서 아쉬운 감이 있습니다. 새로운 장르 소설의 재미를 느끼고 싶은 독자라면, 또 재능있는 신인 작가의 보석 같은 작품을 찾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을 추천합니다. 한국 장르 소설에 기대할 만한 작가의 등장으로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그럼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며 이만 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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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 네임 가시
황기록 지음 / 로크미디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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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네임 가시




  노블레스클럽 18번째 책인 황기록 작가의 『코드네임 가시』는 첩보물입니다. 황기록 작가는 원래 무협 소설을 쓰는 작가입니다. 지금까지 <수라도>, <귀역>, <외인계>, <비조리>, <편월> 등을 출간했습니다. 따라서 책 날개에도 지금껏 써 왔던 무협과는 판이하게 다른 현대 첩보물이라 산고가 따랐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 작품에서는 무협 소설 느낌이 나는 곳이 꽤 있습니다. 몇몇 용어나, 대결 장면 등이 그렇습니다. 이런 부분들이 어색한 느낌을 줍니다. 그렇다고 글 자체가 아주 형편없지는 않습니다. 속도감 있는 전개와 시원스러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런 장르의 글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기 때문에 흥미진진하게 읽히지는 않았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단기주’입니다, 경북의 소도시 중 하나인 K시에서 검도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연히 두 남자에게 쫓기는 여자를 발견하고 여자가 도망갈 수 있게 두 남자를 막게 됩니다. 이 일이 단기주가 사건에 끼어들게 되는 계기입니다. 처음에는 흥미로웠지만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사건의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후 단기주는 국가와 해외 조직이 연계된 사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데 여기에 대한 설명이 부족합니다. 소설은 주인공에 대한 감정이입이 중요한데, 단기주라는 인물은 인간미가 없습니다. 마치 인형처럼 사건을 맞닥뜨리면 척척 해결만 하고 무슨 일이 주어지든 거침없이 앞으로 나갑니다. 심리 묘사가 부족한 편입니다. 괴로워하거나 고민하는 모습이 없고, 단기주 개인사가 완전히 배제되어 입체적으로 캐릭터가 형상화 되지 못했습니다. 몇 가지 배경 설명만 간단히 언급될 뿐, 구체적인 사건으로 캐릭터를 그리지 않았습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난 영화는 바로 테이큰입니다. 테이큰 역시 주인공이 먼치킨에 가까울 정도로 극강이며 사건을 척척 해결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코드네임 가시』를 재미있게 읽을 분들은 바로 이런 시원한 전개를 좋아하는 분들일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테이큰의 주인공은 납치된 딸을 구하려는 아버지라는 설정이 영화 전체를 꿰뚫는 정서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오직 행동으로 이어지는 스토리일지라도 인간미가 느껴지고 영화에 몰입하게 됩니다. 즉, 공감을 할 수 있습니다. 글로 이루어진 소설과는 달리 또한 배우의 어투, 표정 등에서 미묘한 감정까지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할 여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목표도 부성이라는 확실한 근거가 있기 때문에 명확하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코드네임 가시』의 주인공은 그런 점들이 빠져 있습니다. 왜 그가 그렇게 이 모든 사건에 목숨을 걸며 뛰어드는지에 대한 설명이 지나치게 부족합니다. 살아있는 인간 같지가 않고 작가의 명령을 받아 움직이는 최강의 로봇처럼 느껴집니다. 이상주의자라는 신념은 부성과는 달리 보편적이지 않은 정서이기 때문에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고 따라서 독자들이 이 캐릭터를 더 이해하게 하려면 많은 보완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단권이기 때문에 적절하게 모든 캐릭터들을 형상화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많은 캐릭터들이 단순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개성 있는 캐릭터가 적고, 애정이 갈만한 캐릭터가 보이지 않습니다. 다들 개연성들이 떨어집니다. 실제 현실이라면 그런 행동을 보이지 않을 인물들이 소설 속에서는 이야기 전개를 위해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느낌이 강합니다. 그만큼 핍진성이 떨어지는 글이었습니다. 단기주의 친구이며 역시 먼치킨처럼 엄청난 해킹 능력을 가진 권용조라는 캐릭터 역시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가 그토록 단기주를 돕는 이유도 알 수 없고, 감정의 변화도 적은 편입니다. 국정사를 해킹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바로 국정사 외근 요원이 된다는 설정은 현실감을 떨어트리는 요인입니다. 이처럼 몇몇 전개는 다들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또한 이야기 전개가 편한 쪽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글 전체가 인공적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이런 점들이 아쉽게 느껴졌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 담백한 구성의 글입니다. 복잡하게 꼬거나 다른 이야기로 빠지는 구석이 없습니다. 무난한 문장과 빠른 이야기 전개로 글 전체가 흡인력이 있습니다. 복잡한 플롯이나 많은 묘사의 글보다 단순하고 무난한 글을 읽고 싶다면 괜찮게 읽을 수 있는 책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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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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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로저 젤라즈니 지음, 김상훈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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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막심 고리키 지음, 최윤락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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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위의 딸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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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자들 - 상
어윈 쇼 지음, 정영문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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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듯 시크하게 Nobless Club 17
한상운 지음 / 로크미디어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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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듯 시크하게




  노블레스클럽 열일곱번 째 소설은 한상운 작가의 『무심한 듯 시크하게』라는 소설입니다. 한상운 작가의 프로필을 살펴보면 77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양대 전기전자공학부를 졸업하고 『무림사계』를 비롯한 일곱 종의 무협 소설을 썼습니다. 또한, 손혜진․고수 주연의 영화 『백야행』을 각색했다고 합니다. 저는 읽지는 않았지만 한상운 작가를 『무림사계』의 작가로 알고 있었습니다. 즉, 무협소설을 잘 쓰는 작가라고 들었던 거죠. 그리고 처음으로 한상운 작가의 글을 읽은 것은 노블레스클럽 2009 경계문학 베스트 컬렉션, 『꿈을 걷다』에 수록된 무협 단편 「거름 구덩이」가 처음이었습니다. 잘 읽히는 글이었고, 괴기스런 분위기가 인상적인 단편이었습니다. 몰입도가 높았죠.

  『무심한 듯 시크하게』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겠지만 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로 판타지나 무협 소설이 아니라 형사물입니다. 노블레스클럽은 지금까지 판타지 소설 뿐만 아니라 『데스노블』 같은 공포소설, 『로스트 콘택트』 같은 밀리터리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출간했고, 이번에도 새로운 장르의 소설을 출간한 셈입니다. 앞의 두 소설이 그리 퀄리티가 높지 않고 재미를 주지 못했기 때문에 우려가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페이지를 넘기면서 읽어본 이 소설은 예상외로 재미있었습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중심이 되는 두 형사는 정태석과 유병철입니다. 이 중에서 젊고 싸움도 잘하며 잘생긴 정태석이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병철은 정태석과 팀을 이루지만 조금 비중이 낮습니다. 여기에 두 형사가 처음 마약 사건을 통해 맞닥뜨리게 되는 적은 변성수입니다. 외과의사에 잘 생기고 정태석보다 훨씬 싸움도 잘하는 엄친아 같은 사람이죠.

  소설은 정태석과 유병철이 마약 사건을 수사하면서 전개됩니다. 읽을 때는 문체가 가볍고 가독성이 좋아서 순식간에 읽히지만 다 읽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소재는 특별할 게 없습니다. 이미 많은 소설과 영화에서 ‘마약’을 다루어왔으니까요. 사건 전개나 구성도 독특한 구석은 없습니다. 독자의 뒤통수를 치는 방향으로 가지도 않고 촘촘히 암시와 복선이 깔려 있지도 않습니다. 눈에 띄는 반전이나 충격적인 결말이 기다리고 있지도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평범한 소재를 가지고 능숙하게 요리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재미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사건 전개가 단순하고 뻔하지만 그만큼 힘있게 다른 길로 빠지지 않고 직진한다는 것입니다. 잡다한 내용이 나오지 않고 사건 전개 속도가 빠릅니다. 사건이 미궁에 빠지는 구석 없이 바로바로 단서와 범인들이 등장하면서 독자를 계속 몰입하게 만듭니다. 이런 속도감 있는 전개는 영상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딱 맞는 속도이며, 또한 책을 읽으면서 계속 영상을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 소설의 평 중에서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는 감상이 많은데, 그만큼 전체적으로 영화의 씬처럼 장면들이 분활되어 있고 군더더기 없이 빨리 지나가고 사건, 상황, 대화만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빠르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이렇듯 한 마디로 답답하지 않고 시원한 작품이기 때문에 몰입에서 오는 재미가 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캐릭터들이 매력적입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마약’ 소재나 전체적인 주제 등이 가볍고 단순한 만큼 캐릭터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아주 복잡한 사고를 하거나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소설 속 캐릭터들의 지능은 전부 같은 느낌입니다. 그래서 캐릭터들의 행동이나 생각이 쉽게 이해가 가고 또 어리숙한 캐릭터들의 생각이나 행동 들에서 귀엽거나 사랑스러운 감정도 들기까지 합니다. 일종의 코미디 장르에서 캐릭터들이 조금 단순한 면이 있기 때문에 매력이 높아지는 것과 흡사합니다. 이 소설에서는 범인을 잡는 것만큼 중요한 중심 주제로 ‘사랑’을 다루고 있는데, 여자와 자는 것만 알 뿐, 진정한 사랑을 알지 못하는 정태석이 점점 변하는 과정을 재미있게 그리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는 마치 러브코미디물 같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사랑과 관련되어서 약간 어수룩한 면을 갖고 있는 캐릭터들을 보면 사랑스럽지요. 여기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대부분 사랑을 하고 이점 때문에 무척 사랑스러운 느낌을 줍니다. 심지어 많이 등장하지도 않고 대사도 적이며 범인인 변성수까지도 그렇게 나쁜 녀석은 아니라고, 오히려 괜찮은 놈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런 캐릭터들의 매력이 이 소설을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요소였습니다.

  단숨에 읽었고 잘 쓴 소설이었습니다. 작가가 주로 쓰던 무협이 아닌 형사물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조사와 연구를 통해 쓴 느낌이 들었고, 그만큼 거부감없이 읽어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정이 가는 캐릭터들과 시원한 전개, 부담없는 이야기 등으로 마지막까지 흡족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사건이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아주 무거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도 않고, 캐릭터들이 어려운 문제로 고뇌에 차 있지도 않습니다. 사건과 캐릭터들이 모두 가볍고 어둡지 않아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제목과 잘 어울리는 책 내용이었습니다. 제목 그대로 무심한 듯 시크한 내용이 잘 맞아떨어지는 소설이었습니다.) 다만, 이런 가벼움이 오히려 영화로 만들면 잘 살지 않아서 평범하고 지루한 작품으로 전락할 위험성도 있다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노블레스클럽에서 지금까지 나온 소설들을 전부 떠올려봐도 손에 꼽을 만한 흡인력과 재미를 가진 수작이었습니다.(어떤 한 측면만 따지자면 가장 나은 점도 보이는 소설이고요.) 감동이나 여운은 적고 메시지는 단순하고 독자의 예상을 벗어나는 큰 장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반대로 큰 흠도 없고 잘 읽히고 충분히 즐거운 독서를 즐길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가독성이 높고, 캐릭터들이 매력적이고 시원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편이라 더욱 만족스럽게 읽었습니다. 형사물에 특별한 거부감이 없다면 한 번쯤 읽어봐도 좋을 소설입니다. 확실히 머릿속에서 계속 영상으로 떠오른 만큼, 이게 진짜로 계약을 맺고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노블레스클럽은 『무심한 듯 시크하게』로 인해 더욱 특정 장르가 아닌 종합 장르 브랜드로 정체성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게 독자에게 혼란을 주고, 몇몇 작품들의 낮은 퀄리티 때문에 아쉬움을 주기도 하지만, 그런 것을 생각지 않았을 때 노블레스클럽에 이런 작품이 나온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요근래 나온 노블레스클럽 소설들은 전부 퀄리티가 일정하고 재미가 있었습니다. 『시간은 피다』, 『모래선혈』, 『먼 곳의 바다』 등등. 그래서 앞으로 나올 노블레스클럽 다음 책들이 또 기대가 됩니다. 점점 더 기대를 뛰어넘는 소설이 나오리란 예감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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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4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4
이종호 외 지음 / 황금가지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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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4




  이번에 황금가지에서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4』가 출간되었습니다. 척박한 한국 공포 문학 장르에서 이렇게 단편집이 4권까지 나왔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습니다. 또한, 매 권마다 작품의 퀄리티가 발전되었다는 소리를 들은만큼 이번 4권이 아주 큰 기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럼 기대를 배신했는지, 뛰어넘었는지 이제 한 편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첫출근 | 장은호




  무크지 『파우스트』제5호, 2008년 봄호에 실렸던 단편입니다. 그때 읽고 『파우스트』 5호에 실린 한국 작가의 단편 중에서 가장 재미있다고 느낀 단편이었습니다. 한 남자가 회사에 첫 출근을 합니다. 배경은 근미래로 생각되는 한국입니다. 남자의 첫 출근은 기묘합니다. 넓은 사무실에 많은 사람들,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상상했으나, 두 평 남짓한 좁은 방에 철제 책상만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책상 위에는 전화기 하나, 메모지 하나, 볼펜 하나만 있습니다. 기묘한 이야기. 네, 이 단편은 마치 일본 영화인 기묘한 이야기를 연상시킵니다. 주인공은 전화를 받고 전화에 나오는 지령대로만 수행하면 되는 업무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전화 통화 내용이 이상합니다. 첫 통화만 봐도 그렇습니다.




  “K34234죠? 9시 5분에 89누르고 485에 3535 누르세요. 그리고 ‘당신의 아들은 종로역 4번 출구 앞 건물 안에 있다.’라고 말해주세요.”




  ―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황금가지, 14쪽




  지령을 수행할 수록 점점 이상한 내용들이 오갑니다. 전체적인 그림을 쉽게 그리기는 어렵지만, 독자들은 페이지를 넘길 수록 이 회사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주인공은 어떻게 처신할까요? 전화 지시만으로 인간의 모든 선택권을 앗아가버리는 이야기가 섬뜩함을 주기도 하고, 전화 지시의 내용을 유추하면서 벗어날 수 없는 절대적인 시스템에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이건 비단 소설뿐만이 아니라 우리 삶을 은유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들도 역시 보이지 않는 이런 시스템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거죠. 영화 『이글 아이』가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전화만으로 사람들을 통제하고 놀라운 일을 벌이는 것이 비슷하지요. 국내 개봉보다는 소설을 먼저 읽었습니다. 나중에 영화를 보고 비슷한 느낌을 받아서 신기했었습니다. 재미있는 소설이고 다 읽고 나서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단편이었습니다.




  ■ 도둑놈의갈고리 | 김종일




  제3회 황금드래곤문학상에서 『몸』으로 대상을 수상한 작가의 단편입니다. 이 단편은 포탈사이트 네이버 ‘오늘의 문학’에 공개되어 사흘간 150만 페이지뷰를 돌파하기도 했습니다. 이 문구가 책 띠지에 적혀 있죠.(그 전 기록은 이영도 작가의 판타지 단편 「에소릴의 드래곤」으로 130만 페이지뷰를 기록했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것은 소설 속의 주요 상징으로 나오는 ‘고디바’ 이미지에 힘입은 바가 크겠습니다만, 이 단편은 그런 조회수가 의아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흡인력을 보여주는 소설이었습니다. 1인칭 화자가 누군가에게 말하는 방식으로 쓰인 문체는 최근 한국 작가의 SF단편들에서 많이 쓰였는데, 이 단편에서도 그런 문체가 사용되었습니다. 이런 말하는 방식은 사실 쓰는 사람도 지루하거나 어색하지 않게 쓰기가 쉽지 않습니다. 독자도 낯선 방식이라 거부감을 느끼기 쉽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편은 그다지 어색하거나 지루한 부분 없이 능숙하게 독자를 끌고 갑니다. 이런 문체로 흡인력 있게 전개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정신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할 만큼 흡인력을 가진 단편이라 좋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고디바’와 ‘도둑놈의갈고리’ 그리고 그것을 인터넷 ‘마녀사냥’으로까지 결합시킨 작품의 구조가 인상적인 글이었습니다. 이런 점들이 탄탄한 글이라고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소재도 정말 좋았는데 요즘 인터넷이 발달된 세상에서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 중에 하나는 ‘마녀사냥’입니다. 경범죄나 혹은 죄없는 사람을 파멸로 몰고 가는 인터넷 마녀 사냥은 큰 문제점이고 당사자에게는 죽음보다 더 한 수치심을 안겨줄 수 있고, 실제로 많은 자살자를 만들어내기도 한 사회문제입니다. 이런 소재로 독자가 흥미를 느끼고 재미까지 느낄 수 있게 쓰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소설은 그점에 성공했고, 따라서 이런 마녀사냥에 대한 문제의식과 공포를 함께 느끼면서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며 읽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 플루토의 후예 | 이종호




  중편 「므이」와 장편 『흉가』, 『분신사바』, 『이프』, 『귀신전』 등을 쓴 한국을 대표하는 공포 작가 중 한 명인 이종호 작가의 단편입니다. 플루토의 후예는 고전적인 소재를 다룬 공포소설입니다. 앞서 장은호의 「첫출근」이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디스토피아 소설이었고, 김종일의 「도둑놈의갈고리」가 현재를 배경으로 한 인터넷을 소재로 쓴 공포소설이었다면, 이 단편은 마치 과거에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은 고양이와 흉가 등을 소재로 쓴 단편입니다. 하지만 아주 낡은 느낌이라기보다는 매끄럽게 잘 쓰인 글이라 오히려 현대적 감각으로 또 능숙한 솜씨로 잘 옮긴 느낌이었습니다. 약간은 패턴화된 이야기를 적절히 변주했고 다 읽고 나서 생각해보면은 진부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 소재를 가지고 읽을 때는 마냥 소설 속 내용에 몰입해서 공포감을 느끼게 합니다. 마지막까지 서늘한 여운을 남기는 완성도 높은 단편이었습니다.




  ■ 폭주 | 황태환




  이 단편집에서 가장 젊은 작가의 단편입니다. 그만큼 소재나 내용 역시 젊고 패기에 찬 느낌입니다. 소재 자체가 예사롭지 않은데 바로 운석군이 지구에 떨어져서 곧 종말을 맞게 되는 순간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패닉에 빠지고 그 사이에 한 청소년 무리가 무차별 살인을 저지르게 됩니다. 세기말적인 공포랄까. 지구는 곧 멸망할 위기에 처해 있고 눈앞에는 실제로 피가 튀고 사람이 픽픽 죽어나가는 진퇴양난의 상황이 엄청난 흡인력을 주고 이야기에 빨려들게 만듭니다. 소재나 상황이 긴박하고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워낙 개성이 강한 소재라 이야기가 어디로 튈지 몰라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공포보다는 블랙 코미디를 읽는 느낌이 강하기도 합니다. 전체적으로 작품에서 박력이 느껴지고 몰입도가 역시 높습니다.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고 강렬한 살해 장면들이 많아서인지 유독 인상에 깊게 남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 불귀(不歸) | 우명희




  이 작품은 제목부터 유의해서 봐야 합니다. ‘불귀’라는 단어는 명사로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돌아오지 아니함. 또는 돌아가지 아니함.’이라는 뜻이고, 또 하나는 ‘죽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이 단편은 이 두 가지 의미가 같이 사용되는 단편입니다. 이 단편 역시 바로 앞에 황태환 작가의 재기넘치고 파격적인 「폭주」와는 달리 조금 전통적인 공포소설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일단 한적한 시골 마을이라는 배경과 귀신이 나온다는 점에서 공포소설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전형적인 단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야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단편은 이 단편집에서 가장 호흡이 느린 글이기도 한데, 소설 분위기와는 잘 맞아떨어집니다. 배경도 소재와 걸맞게 1989년도이지요. 자신을 끔찍이 반대했던 시어머니가 곧 돌아갈 예정. 며느리인 주인공은 딸 솔이를 데리고 시골로 가서 시어머니를 며칠 간병하게 됩니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여전히 역정이 심하고, 또 기력이 쇠한 것 같으면서도 죽지 않고 끊임없이 며느리를 괴롭힙니다. 그 과정이, 또한 과거가 교차되면서 지긋지긋한 감정이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솔이는 집에 또 다른 할머니가 있다고 말하면서 음산한 분위기 속에 답답하고 절망적인 공포가 드러납니다.




  ■ 도축장에서 일하는 남자 | 유선형




  이번 단편집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정말 다양한 색깔을 지닌 작품들이 모여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전통적인 귀신이나 고양이가 나오는 공포 단편부터 SF적인 분위기를 띠는 공포소설까지 그 스펙트럼이 다양했습니다. 이 단편 역시 색다른 소재와 분위기를 가진 단편입니다. 한 남자가 술에 취한 상태로 집에 들어갑니다. 주인공은 집에서 아내에게 폭력을 사용하는 다혈질의 남자입니다. 그러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정신을 잃게 되고, 침대가 있는 한칸 짜리 옷장과 천장에 설치된 에어컨, 작은 욕실이 전부인 좁은 방에서 깨어납니다. 남자는 영문을 알 수 없습니다. 곧 남자는 밖으로 나가게 되고 흰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줄지어 가는 것을 보고 따라가게 됩니다. 남자가 있는 곳은 도축장입니다. 남자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도축장에서 일하게 됩니다. 주위 사람들 역시 남자와 마찬가지입니다. 과연 이 도축장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남자는 어떻게 된 것일까요?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낯선 세계를 독자는 주인공과 함께 신기한 눈초리로 살펴보게 됩니다.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이 기묘한 이야기처럼 펼쳐집니다.




  ■ 더블 | 최민호




  더블이란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이 소설은 흔히 장르소설을 읽다보면 쉽게 접하는  소재인 ‘도플갱어’와 유사한 설정을 다룬 단편입니다. 이 세상에 나와 똑같이 생긴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도플갱어’의 설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공포를 주기도 합니다. 지금껏 도플갱어는 수많은 소설에서 다루어졌기 때문에 소재 자체는 낡고 진부한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이 소설은 용어도 ‘더블’로 바꾼 만큼 조금 참신하게 소재를 다듬었고, 따라서 독자가 몰입하게 됩니다. 흔히 알고 있는 설정보다 더 세세한 묘사로 사실감을 띠면서 소설에 감정이입이 잘 되는 소설입니다. 주인공의 심정을 따라가며 같이 어떻게 될지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고, 더블에 대한 증으를 느끼기도 합니다. 적절한 구성이 돋보이고 무엇을 쓰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을 실천하듯 깔끔하게 잘 쓴 글이었습니다.




  ■ 배심원 | 김유라




  이 단편은 제3회 황금드래곤 문학상에서 「스너프 살인」으로 중편 부문을 수상하고, 판타지 소설 『다크스톤』, 『자하드』 등을 출간한 작가가 쓴 글입니다. 이 작품 역시 앞에 김종일의 「도둑놈의갈고리」처럼 인터넷을 주요 소재로 선택한 소설입니다. 차이점은 좀더 인터넷에 주안점을 두었고, 주인공이 성인 여성이 아니라 십대 소녀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인터넷이 가진 파급력 때문에 피해를 보고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다는 점은 같습니다. 역시 인터넷 ‘마녀사냥’의 문제점을 파헤친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인터넷을 많이 하고, 이런 문제점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문제를 다룬 소설들이 마음에 들고 그만큼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주인공 소녀가 처한 상황이 저 역시 답답하고 미칠 것 같아서 인상적으로 읽었습니다. 인간의 추악함.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내뱉는 말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괴롭게 했는지, 이 소설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평소에는 잘 생각해 보지 않았던 피해자들에 대해서 상상해보고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요. 이런 게 또 소설만이 갖고 있는 매력적인 기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행복한 우리 집에 어서 오세요 | 권정은




  「행복한 우리 집에 어서 오세요」는 공포소설에서 빠질 수 없는 장르인 좀비를 소재로 한 단편입니다. 사실 좀비라는 소재는 워낙 많은 소설과 영화에서 다루었기 때문에 색다르게 쓰기가 어려운 장르입니다. 대부분 그게 그거라는 느낌을 받기 쉽지요. 이 소설 역시 좀비라는 소재를 다룸으로써 소재의 진부함에서는 단점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흥미롭게 읽히는 이유는 먼저 한국 작가가 쓴 한국을 배경으로 한 좀비소설이라는 점입니다. 지금껏 외국 소설이나 영화와는 차별화된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점이 다른 느낌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장점은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과 ‘가족’이라는 주요 인물들이 잘 형상화되고 갈등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거대한 스케일이 아니라 매일 살던 ‘집’ 안에 갇히게 되고 또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오직 ‘가족’만이 존재하는 설정의 이야기는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주는 요소입니다. 좀비로 인한 절망적이고 처절한 상황을 잘 형상화 했고, 캐릭터들의 감정이 잘 그려지고 그 상황에 실제 빠진 것처럼 몰입되는 글이었습니다. 읽는 사람 역시 그 상황에 빠지면 어떻게 될까, 를 생각해 보게 만들고 소설 속 인물과 같은 절망을 체험하게 되는 소설입니다. 무리없이 제한된 소재 안에서 무난하게 쓰여진 단편이었습니다.




  ■ 배수관은 알고 있다 | 전건우




  어느 단편집이든 독자가 받을 감상을 잘 생각해서 배치를 하는 것도 상당히 중요합니다. 이 점은 편집자의 역량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런 면에서 「배수관은 알고 있다」는 충분히 맨 마지막을 장식할 만한 근사한 공포소설이었습니다. 진부하지도 그렇다고 아주 파격적이지도 않은 소재에 긴장감 있는 전개와 이야기가 마지막까지 독자를 몰입시키게 만드는 글이었습니다. 흡인력이 있을뿐더러 독자를 끌고 가는 솜씨도 좋았습니다. ‘기러기 아빠’라는 소재는 요근래 영화나 소설에서 곧잘 쓰이기 시작한 소재인데, 공포소설로써 ‘배수관’, ‘살인’, ‘이웃’ 등의 키워드와 잘 조화된 느낌이었습니다. 배수관을 타고 윗집의 소리가 들려온다는 것은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더욱 관심을 갖고 읽었으며, 배수관에 소리가 고인다는 설정은 무척이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소설의 핵심 요소로 잘 배치가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한 채, 정신없이 페이지를 넘겼고 음울한 이야기가 아쉬움이 느껴지지 않게 펼쳐졌습니다. 끈적끈적하고 불쾌한 느낌과 서늘한 공포가 잘 배합된 구성이 뛰어난 글이라 마지막 작품으로 만족스러웠습니다.




  한국 공포 문학의 미래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4』는 예전에 읽었던 1, 2편에 비해 확실히 발전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일단 퀄리티가 들쑥날쑥하지 않다는 점이 가장 컸습니다. 개인의 취향을 고려한다고 해도 예전 단편선은 비슷한 소재들이 지나치게 많이 중복되어 있었고, 때로는 지루하고 어떤 측면에서도 공포감을 느낄 수 없는 단편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몇몇 단편들 때문에 전체적인 단편선이 주는 느낌은 매우 아쉬움이 컸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소재가 다양화 되고 그로 인해 여러 측면의 공포를 다루면서 읽는 재미 역시 같이 전해주고 있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공포소설의 기존 이미지와는 다른 기발하고 파격적인 소재는 참신한 느낌을 주면서 특히 독서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야말로 뻔하고 평범한 이야기들이 아니라, 가끔씩 서늘한 공포감도 전해주면서, 사회문제를 다루거나, 기묘한 이야기, 절망스러운 이야기들이 섞이면서 기본 이상의 필력으로 재미를 주고 있습니다. 즉, 소재부터 구성이나 문체 등이 모두 퀄리티가 일정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독서가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런 단편집이 나온다면 앞으로 나올 다음 단편집들도 기대될 뿐만 아니라 이 작가들이 펼쳐보일 장편소설도 큰 기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아직 한국 공포 문학을 접하지 않은 분이라면, 이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4』로 시작하셔도 좋을 겁니다. 기대할 만한 멋진 작가들을 두루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앞 권들을 통해 약간의 실망을 했던 독자라도 이번 권으로 인해 재미있는 단편들을 더 많이 접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단편집의 특성상 모든 단편이 한 사람에게 다 재미있을 수 없을 테고 때로는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번 단편집은 개인적으로 주저없이 장르소설을 잘 안 읽는 일반 독자들에게 권해도 대부분 재미있게 읽으리라고 자신할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공포 문학의 미래는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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