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듯 시크하게 Nobless Club 17
한상운 지음 / 로크미디어 / 2009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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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듯 시크하게




  노블레스클럽 열일곱번 째 소설은 한상운 작가의 『무심한 듯 시크하게』라는 소설입니다. 한상운 작가의 프로필을 살펴보면 77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양대 전기전자공학부를 졸업하고 『무림사계』를 비롯한 일곱 종의 무협 소설을 썼습니다. 또한, 손혜진․고수 주연의 영화 『백야행』을 각색했다고 합니다. 저는 읽지는 않았지만 한상운 작가를 『무림사계』의 작가로 알고 있었습니다. 즉, 무협소설을 잘 쓰는 작가라고 들었던 거죠. 그리고 처음으로 한상운 작가의 글을 읽은 것은 노블레스클럽 2009 경계문학 베스트 컬렉션, 『꿈을 걷다』에 수록된 무협 단편 「거름 구덩이」가 처음이었습니다. 잘 읽히는 글이었고, 괴기스런 분위기가 인상적인 단편이었습니다. 몰입도가 높았죠.

  『무심한 듯 시크하게』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겠지만 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로 판타지나 무협 소설이 아니라 형사물입니다. 노블레스클럽은 지금까지 판타지 소설 뿐만 아니라 『데스노블』 같은 공포소설, 『로스트 콘택트』 같은 밀리터리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출간했고, 이번에도 새로운 장르의 소설을 출간한 셈입니다. 앞의 두 소설이 그리 퀄리티가 높지 않고 재미를 주지 못했기 때문에 우려가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페이지를 넘기면서 읽어본 이 소설은 예상외로 재미있었습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중심이 되는 두 형사는 정태석과 유병철입니다. 이 중에서 젊고 싸움도 잘하며 잘생긴 정태석이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병철은 정태석과 팀을 이루지만 조금 비중이 낮습니다. 여기에 두 형사가 처음 마약 사건을 통해 맞닥뜨리게 되는 적은 변성수입니다. 외과의사에 잘 생기고 정태석보다 훨씬 싸움도 잘하는 엄친아 같은 사람이죠.

  소설은 정태석과 유병철이 마약 사건을 수사하면서 전개됩니다. 읽을 때는 문체가 가볍고 가독성이 좋아서 순식간에 읽히지만 다 읽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소재는 특별할 게 없습니다. 이미 많은 소설과 영화에서 ‘마약’을 다루어왔으니까요. 사건 전개나 구성도 독특한 구석은 없습니다. 독자의 뒤통수를 치는 방향으로 가지도 않고 촘촘히 암시와 복선이 깔려 있지도 않습니다. 눈에 띄는 반전이나 충격적인 결말이 기다리고 있지도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평범한 소재를 가지고 능숙하게 요리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재미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사건 전개가 단순하고 뻔하지만 그만큼 힘있게 다른 길로 빠지지 않고 직진한다는 것입니다. 잡다한 내용이 나오지 않고 사건 전개 속도가 빠릅니다. 사건이 미궁에 빠지는 구석 없이 바로바로 단서와 범인들이 등장하면서 독자를 계속 몰입하게 만듭니다. 이런 속도감 있는 전개는 영상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딱 맞는 속도이며, 또한 책을 읽으면서 계속 영상을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 소설의 평 중에서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는 감상이 많은데, 그만큼 전체적으로 영화의 씬처럼 장면들이 분활되어 있고 군더더기 없이 빨리 지나가고 사건, 상황, 대화만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빠르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이렇듯 한 마디로 답답하지 않고 시원한 작품이기 때문에 몰입에서 오는 재미가 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캐릭터들이 매력적입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마약’ 소재나 전체적인 주제 등이 가볍고 단순한 만큼 캐릭터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아주 복잡한 사고를 하거나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소설 속 캐릭터들의 지능은 전부 같은 느낌입니다. 그래서 캐릭터들의 행동이나 생각이 쉽게 이해가 가고 또 어리숙한 캐릭터들의 생각이나 행동 들에서 귀엽거나 사랑스러운 감정도 들기까지 합니다. 일종의 코미디 장르에서 캐릭터들이 조금 단순한 면이 있기 때문에 매력이 높아지는 것과 흡사합니다. 이 소설에서는 범인을 잡는 것만큼 중요한 중심 주제로 ‘사랑’을 다루고 있는데, 여자와 자는 것만 알 뿐, 진정한 사랑을 알지 못하는 정태석이 점점 변하는 과정을 재미있게 그리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는 마치 러브코미디물 같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사랑과 관련되어서 약간 어수룩한 면을 갖고 있는 캐릭터들을 보면 사랑스럽지요. 여기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대부분 사랑을 하고 이점 때문에 무척 사랑스러운 느낌을 줍니다. 심지어 많이 등장하지도 않고 대사도 적이며 범인인 변성수까지도 그렇게 나쁜 녀석은 아니라고, 오히려 괜찮은 놈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런 캐릭터들의 매력이 이 소설을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요소였습니다.

  단숨에 읽었고 잘 쓴 소설이었습니다. 작가가 주로 쓰던 무협이 아닌 형사물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조사와 연구를 통해 쓴 느낌이 들었고, 그만큼 거부감없이 읽어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정이 가는 캐릭터들과 시원한 전개, 부담없는 이야기 등으로 마지막까지 흡족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사건이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아주 무거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도 않고, 캐릭터들이 어려운 문제로 고뇌에 차 있지도 않습니다. 사건과 캐릭터들이 모두 가볍고 어둡지 않아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제목과 잘 어울리는 책 내용이었습니다. 제목 그대로 무심한 듯 시크한 내용이 잘 맞아떨어지는 소설이었습니다.) 다만, 이런 가벼움이 오히려 영화로 만들면 잘 살지 않아서 평범하고 지루한 작품으로 전락할 위험성도 있다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노블레스클럽에서 지금까지 나온 소설들을 전부 떠올려봐도 손에 꼽을 만한 흡인력과 재미를 가진 수작이었습니다.(어떤 한 측면만 따지자면 가장 나은 점도 보이는 소설이고요.) 감동이나 여운은 적고 메시지는 단순하고 독자의 예상을 벗어나는 큰 장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반대로 큰 흠도 없고 잘 읽히고 충분히 즐거운 독서를 즐길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가독성이 높고, 캐릭터들이 매력적이고 시원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편이라 더욱 만족스럽게 읽었습니다. 형사물에 특별한 거부감이 없다면 한 번쯤 읽어봐도 좋을 소설입니다. 확실히 머릿속에서 계속 영상으로 떠오른 만큼, 이게 진짜로 계약을 맺고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노블레스클럽은 『무심한 듯 시크하게』로 인해 더욱 특정 장르가 아닌 종합 장르 브랜드로 정체성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게 독자에게 혼란을 주고, 몇몇 작품들의 낮은 퀄리티 때문에 아쉬움을 주기도 하지만, 그런 것을 생각지 않았을 때 노블레스클럽에 이런 작품이 나온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요근래 나온 노블레스클럽 소설들은 전부 퀄리티가 일정하고 재미가 있었습니다. 『시간은 피다』, 『모래선혈』, 『먼 곳의 바다』 등등. 그래서 앞으로 나올 노블레스클럽 다음 책들이 또 기대가 됩니다. 점점 더 기대를 뛰어넘는 소설이 나오리란 예감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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