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클럽 1
매튜 펄 지음, 이미정.장은수 옮김 / 펄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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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튜 펄이 쓴 [단테 클럽]은 흔히 [다빈치 코드]로 대표되는 팩션 장르입니다. 팩션은 국어사전에 정의된 대로 “사실와 픽션이 합해진 말로,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 인물의 일대기에 상상력을 덧붙여 새로운 이야기를 꾸며낸 것”을 말합니다. 즉, [단테 클럽]의 주요 인물들은 실제 역사적 인물입니다. 실제 이 지구상에 살아갔던 유명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소설가의 상상력을 더한 글이죠. [다빈치 코드] 열풍으로 이러한 소설들은 상당히 많이 출간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는 철저히 역사적 고증에 치중한 작품도 있었고, 상상력을 더 극대화한 작품도 있었습니다. [단테 클럽]은 그 비중을 적당히 균형 있게 맞춘 작품으로 보입니다. 작가는 직접 소설의 배경이 되는 장소를 가보았고, 수집할 수 있는 모든 문서들을 기반으로 소설을 썼습니다. 그야말로 당시 시대를 그대로 묘사해내고, 역사적 인물들이 그때 했던 대사들을 하며 움직입니다. 이는 사실감을 높였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인물들이 너무 고증을 살리느라 틀에 맞춰진대로 움직인다는 느낌을 줍니다.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인물들이 각각 개성이 부여되어 있지만 그 변별점이 크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작가가 편지, 에세이, 회고록 등 모든 문서를 조사해서 대사까지 신경 썼기 때문에 인물의 역사적 사실성은 살았을지 모르나, 소설적인 인물의 개성은 오히려 죽어버린 감이 있었습니다. 읽는 내내 너무 고리타분한 인물들이 주인공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게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일 수도 있겠지요.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1865년 미국 보스턴이 배경입니다. 판사 힐리가 수천마리 구더기와 파리 때에 뒤덮여서 죽은 채로 발견됩니다. 그것도 벌거벗은 채로 말입니다. 괴이한 살인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그러나 시작에 불과하고 그 다음에는 목사가 살해당합니다. 역시 발가벗은 채 이번에는 거꾸로 땅에 묻힌 채 발만 타서 말이지요. 여기서 끔찍한 사실은 두 시체 다 죽기 직전까지 의식이 있었으며 모든 고통을 느끼면서 서서히 죽어갔다는 것입니다.
 초반은 상당히 지루한 편입니다. 왜냐하면 역사적 인물들을 한 명씩 소개해주면서, 그들이 ‘단테 클럽’을 결성하고 단테의 [신곡]을 미국에 처음 번역하려고 하는 것을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번역을 반대하는 보수주의자들도 있습니다. 이런 배경 설명과 아직 실체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살인사건의 소개 때문에 초반 전개는 매우 더디며 지루함을 유발합니다. 게다가 번역도 예전 판본에 비해 펄프 브랜드로 새롭게 나오면서 많이 손봤다고 하나 그리 매끄럽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가독성이 높은 소설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 2권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책에서 1권의 가독성은 특히 더 낮은 편입니다.
 그렇다면 이야기에 본격적으로 몰입되는 소위 ‘끊는 점’은 어디인가. 아무래도 이 연쇄살인 사건이 바로 단테 클럽이 번역하고 있다는 단테의 [신곡] 지옥편의 형벌과 닮아 있음을 단테 클럽 일원이 깨달으면서입니다. 1권의 절반을 넘어가는 224쪽에서 단테클럽이 살인사건과 자신들이 번역하고 있는 신곡의 지옥편 형벌과 유사함을 깨닫는 부분부터 슬슬 이야기는 흥미로워집니다. 일종의 시동을 건다고도 할 수 있는데, 다만 여기서부터 급전개가 되는 것은 아니고 처음에 이들은 경찰에게 은폐를 하고 자체 수사를 합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한계가 있고 이야기의 전개 속도는 여전히 느립니다. 이후 2권에서 경찰과 함께 사건을 풀어나가면서 속도감이 붙습니다. 여전히 잘 읽히는 문장들은 아니고, 시간대나 배경이 금세 파악되지 않아 가독성이 안 좋지만 1권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2권을 읽어나갈 수 있습니다. 사건의 해결편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띠지에는 ‘[다빈치 코드]와 함께 역사 추리 붐을 일으킨 세계적 베스트셀러’라고 하나 국내에서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기는 힘든 면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미국 문학 황금기를 배경으로 하였으나, 영미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고는 미국 문학 황금기에 대해서, 또 이 소설의 주인공인 당대의 문학가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그저 딱딱하고 이상한 인물들이 주인공을 맞고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단테 클럽]이라는 제목에 맞게 단테의 [신곡]을 읽지 않고는 이 소설이 줄기차게 강조하는 단테의 매력이나 [신곡]의 번역을 둘러싼 갈등을 체감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들은 이 소설이 더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는데 어려움을 주는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당대의 미국 문학가들에 대해 알고 단테의 [신곡]을 읽은 독자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독자와는 독서 체험이 전혀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상당히 잘 짜여진 구조로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는 보장하고 있습니다. 즉, 인물들에 대해 세세한 역사적 지식이 없고, 단테의 [신곡]을 읽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당대의 유명한 시인이라는 것과 단테의 [신곡]이 대략 어떤 내용인지 소설 속에서 설명하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데 큰 무리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괴이한 연쇄살인범을 쫓는 지적 추리 소설로도 충분히 완성도 높은 소설입니다. 암시와 복선 등이 잘 깔려 있기 때문에 추리를 따라가는 데 큰 무리가 없고 퍼즐이 풀리는 재미도 느낄 수 있습니다.
 원래는 황금가지에서 양장본으로 출간되었던 책이 이번에는 역시 같은 회사인 민음사의 새로운 브랜드 펄프에서 페이퍼백으로 출간되었습니다. 하나의 작품이 전혀 다른 판본으로 출판된 것도 흥미롭고, 워낙 오타와 오역에 대한 말이 많았던 이전작에 비해 편집자이자 평론가이기도 한 번역가 한 명이 더 추가되어 개정되었다는 점도 특이합니다. 이 책이 단테의 신곡을 번역하는 단테 클럽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오역 때문에 번역가가 추가되어 다시 번역의 손을 봤다는 점은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네요. 오역이나 오타는 보이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번역이라고 하는 작업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는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단테를 미국에 번역해서 소개하려는 이 소설 속 문학가들은 숭고한 의미를 갖고 임합니다. 그건 사실 자기 자신의 상처와도 결부되어 있습니다. 번역이 내부와 외부의 상처를 건드리면서 실제 그 당시의 사회 문제까지 닿아 살인사건과 연결되는 구성은 절묘합니다. 단테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의미나 상징과 이 소설 속 살인 사건이 결합되면서 소설의 내적 의미는 더욱 풍성해집니다. 인물들이 역사적 사실에 갇혀 자유의지를 마음껏 선보일 수 없었던 점은 아쉽습니다. 좀더 내면의 고민이나 다양한 사고나 행동이 가능했다면 이야기는 훨씬 매력적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당대 미국 문학가들에 대한 약간의 정보와 단테의 신곡에 대한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단테의 신곡 번역을 둘러싼 이 기묘한 살인사건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 속 인물이 살아 움직여 살인사건을 푸는 것은 그 장르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재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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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랑가시아 송
김효현 지음, 김보현 그림 / 기적의책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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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에서 사서 현재 읽는 중인데, 깔끔하고 마음에 듭니다. 기대되는 작품이네요. 많은 독자가 접했으면 좋겠습니다. 나오기 힘든 단권 동양풍 판타지 소설이니까요. 기대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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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으로 가는 길, 좀비를 만나다 - 제2회 ZA 문학 공모전 수상 작품집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1
황태환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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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으로 가는 길, 좀비를 만나다
제2회 ZA 문학 공모전 수상 작품집
황태환 외, 황금가지, 2012년 8월


 제2회 ZA 공모전 수상 작품집입니다. 황금가지의 밀리언셀러 클럽 한국편 21번 째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일단, ZA 공모전이 무엇인지 모르는 분들이 대다수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독특한 소재 공모전이지만 횟수가 오래된 것도 아니고, 홍보가 많이 된 것도 아니니까요. ZA란 'Zombie Apocalypse'의 약어입니다. 즉, 좀비로 인해 종말을 맞은 세계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을 가리킵니다. 좀비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영화에서는 상당히 다양한 방식으로 많이 다뤄진 좀비지만, 한국에서 생산되는 영화나 소설은 매우 적은 편입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좀비 장르는 꽤 마니아를 갖고 있기에 황금가지에서는 이렇게 좀비 아포칼립스 문학 공모전을 열 정도인 거지요. '좀비' 소재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공모전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장르 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렇게 특정 소재의 소설만 받는 공모전이 열리고 수상집이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즐겁습니다.

 사실 처음 열린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과연 응모자가 있을까, 있다 해도 읽을 만한 소설들이 있을까 의심스러웠지만, 1회 수상집이 출간되고 읽어본 바로는 꽤 괜찮게 읽었습니다. 설익은 면도 당연히 있었지만, 아주 나쁜 느낌은 아니었고, 시장에서도 3쇄를 찍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던 단편집이었습니다.(게다가 드라마의 완성도나 저작권 문제로 말은 많았지만 황희 작가의 [잿빛 도시를 걷다]가 2011년 12월 11일 MBC 특집 드라마 [나는 살아있다]로 최초의 한국식 좀비 드라마로 각색 방영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제2회 수상집이 출간되었습니다. 바로, [옥상으로 가는 길, 좀비를 만나다](황태환, 임이래, 최철진, 뒤팽, 황금가지, 2012년 8월)입니다. 1회 수상집인 [섬, 그리고 좀비]와 마찬가지로 대상 소설의 제목에다가 '좀비'를 달아서 독자들에게 좀비 단편집이라는 점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1회 수상집보다 나은 소설도 있었고, 1회 수상집에 실린 단편보다 아쉬운 면이 더 큰 단편도 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그래도 역시 한국 작가의 좀비 소설을 보기 힘든 상황 속에서 이 단편집은 그러한 욕구를 충족시켜준다는 점에서 또한 앞으로 재능 있는 장르 작가를 배출할 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그럼 단편집인 만큼, 한 편씩 짧게나마 감상을 밝혀보겠습니다.

 옥상으로 가는 길 / 황태환

 책으로 나오기 전에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문학 {행복한 시체들}로 읽었던 단편입니다.(공교롭게도 네이버 오늘의 문학의 마지막 실린 장르 단편이기도 합니다. 양질의 한국 장르 단편을 볼 수 있었던 창구 역할을 했는데, 끝을 맺어서 아쉽게 되었지요.) 근 100편의 응모작 중에서 당당히 수상을 한 이 작품은 본심에서 영화 [이웃집 좀비]의 오영두 감독과 환금가지 편집장이 함께 만장일치로 뽑은 작품입니다. 그만큼 구성이 완벽하고 흡인력이 있는 작품입니다. 네이버 오늘의 문학에는 {행복한 시체들}로 제목을 바꿔 수록 했지만, 책에서는 다시 원래 제목인 {옥상으로 가는 길}로 바뀌었습니다. {행복한 시체들}이 주는 은유의 효과가 있지만 아무래도 다 읽고 나면 {옥상으로 가는 길}이 더 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좀비 소설을 쓴다고 하면 여러 가지 시작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좀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시작되면 세상에 퍼지면서 끝을 맺을 것입니다. 한편, 좀비가 이미 퍼진 시점에서 시작을 하면 그로 인해 좀비를 죽이거나 자신이 죽거나 혹은 좀비가 되면서 끝을 맺을 것입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시작점이 있을 수 있고, 그에 따라 다양한 좀비 소설이 탄생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이 택한 것은 이미 세상에 좀비가 전염되어 멸망한 세계입니다. 한 건 물에 다섯 명이 살아남아 헬기의 보급을 통해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여기서 주인공은 선천적으로 왜소증 장애를 앓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좀비로 뒤덮이고 건물에 고립된 채로 보급품을 받게 되자, 주인공만이 쓰레기 배출구를 통해 옥상으로 갈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오로지 주인공을 통해서만 식량을 받을 수 있지요. 이런 흥미로운 상황을 설정해 놓고, 인간의 이기심, 욕망, 선의와 악의의 엇갈림을 선명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그야말로 탄탄한 구조 위에 인간의 탐욕와 실수를 매력적인 갈등 요소 안에 녹여놓았습니다. 좀비가 주가 된다기 보다는 그로 인해 인간의 황폐한 내면을 적절하게 묘사한 작품입니다. 그래서 읽고 나서도 씁쓸한 맛이 느껴지고, 인상에 강렬히 박힙니다. 어떤 소설들은 읽자마자 머릿속에서 지워지며 내용도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소설들은 몇 년이 지나도 그 강렬한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기도 합니다. {옥상으로 가는 길}은 후자였습니다. 그만큼 인간의 내면 심리를 치밀하게 묘사했습니다. 작은 의심이 암처럼 퍼지면서 파국으로 치닫는 글의 구성 또한 인상적입니다. 무엇보다도 인간에게 초점을 맞춰서 파고드는 점이 마음에 든 단편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작년 수상작보다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연구소B의 침묵 / 임이래

 뒤의 두 작품 보다는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아쉬운 면이 더 크게 다가왔던 글이었습니다. 대학 시절, 모짜르트를 만난 살리에르 같은 주인공이 천재 연구원을 시기하고 질투하면서 그의 어두운 면까지 엿보는 점은 긴장감을 주는 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병렬 구조 속에서 이야기가 장황해 보이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연구소를 가기까지 분량이 상당히 깁니다. 독자는 제목에서부터, 또 좀비 소설이라는 장르 안에서 이 소설의 본격적인 이야기 전개가 연구소에 진입해서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미적거리면서 너무 천천히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야기 구성상 앞에서 마음이 있는 여자 연구원에 대한 묘사와 과거 천재 연구원에 대한 설명이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자세하게 앞에서 푸는 것보다 약간은 현실 이야기 전개와 병행하면서 과거를 풀어갔어도 괜찮았을 듯싶습니다.

 여러모로 분량에서 아쉬움을 많이 느낀 단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연구소 안에 들어가면서는 가독성이 뛰어납니다. 두 남자의 긴장감을 주는 구성과 앞에서 정성껏 심어놓은 복선이 풀어지는 점은 퍼즐을 맞추듯 독자에게 재미를 주는 구조였습니다. 그러나 결말은 또한 쉽게 짐작이 가는 것이라서 아쉽기도 했습니다.

 나에게 묻지 마 / 최철진

 이 작품집에서 가장 긴 분량을 자랑하는 글입니다. 폐쇄된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 좀비 이야기는 참신하고 재미있는 요소입니다. 토속적인 면을 잘 살려서 중간중간 웃긴 구석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집에서 가장 실망한 글이기도 합니다. 한 마디로 정리 정돈이 안 되었다고 할까요? 이 분량을 반으로만 압축할 수 있었다면 정말 훌륭한 글이 나왔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뛰어난 장점이 많았는데, 그걸 너무 늘어지게 풀어놓았고 정신 산만하게 편집을 해 놓아서 독자가 어리둥절하게 만듭니다. 몇몇 전개는 뻔한데도 불구하고 너무 느리게 전개가 되다보니 지루함을 유발합니다. 전체적으로 좋은 소재와 인물을 가지고도 매력적인 블랙 코미디의 참신한 작품이 되지 못하고, 퇴고를 한 번도 하지 않은 채, 마구 늘려 쓴 느낌이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다루려고 하는 작가의 욕심이 지나쳐 보이는 글이라고 할까요. 글에서 디테일은 중요하지만, 이 소설은 이도저도 아닌 게 된 것 같습니다. 재미나 흡인력이나 현실감 아무 것도 잡지 못한 느낌이었습니다. 굉장히 매력적인 다이아몬드 원석인데 하나도 가공을 하지 않은 느낌의 글입니다. 이야기가 잡다하게 튀고 인물이 지나치게 많이 나오며, 매력적으로 그려지지도 않았습니다. 차라리 인물을 줄이고 개성을 더 부여했다면 글이 살았을 것 같습니다. 쓸데없는 에피소드는 바로 보여주지 않고 서술로 넘어가고 핵심만 묘사했다면 깔끔하고 근사한 글이 나왔을 거란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긴 분량만큼 페이지를 넘기는 게 재미있는 게 아니라 끝이 나오지 않아서 답답했던 글이었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 / 뒤팽

 주인공인 강혁은 김아영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영은 좀비에게 긁혀서 조금씩 좀비가 진행되는 상황입니다. 문을 두고 먹을 것을 주면서 강혁은 희망없이 아영을 지킵니다. 콜렉터라는 도둑이 명화를 훔치고 난 뒤, 아직 희망은 있다고 적어놓아 많이 이야기됩니다. 철구 아저씨라는 사람이 강혁과 만납니다. 강혁은 나중에 철구 아저씨가 콜렉터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작품은 좀비로 뒤덮인 세상에서 좋아하는 여자를 지키는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거기에 콜렉터라는 도둑을 엮었는데, 이 결합이 매끄럽지는 않습니다. 이야기 자체가 소품에 그칠 수밖에 없는 구성입니다. 결국, 아영은 좀비가 될 것이고, 이야기는 다르게 뻗어나갈 구석이 없습니다. 깔끔한 문장으로 쓰인 작품이지만, 이야기 자체가 진부해서 아쉬운 글이었습니다.

 리뷰를 마치며

 1회 수상작에 비해 좀비라는 소재를 더 작가들이 잘 갖고 논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1회 수상작에 실린 작품들이 비슷한 색채의 글들이 실렸던 것에 반해 2회 수상집에는 소재들이 각기 다른 느낌이라 읽는 맛이 있었습니다. 좀비가 퍼진 세상에서 인간 심리에 주목한 수상작 [옥상으로 가는 길]도 단연 인상에 남는 작품이고 [연구소B의 침묵]도 아직 좀비가 세상에 퍼지기 전, 광기를 지닌 한 연구원이 개발한 좀비 바이러스와 거기에 얽혀드는 주인공의 이야기도 흥미로웠고, 배경을 도시에서 시골로 옮긴 [나에게 묻지 마]도 한국형 좀비 이야기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친숙함이 많이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소품이면서 깔끔하게 좀비 이야기를 풀어낸 [별이 빛나는 밤]도 있었고요.

 이렇게 각기 색깔이 달라서 그런지 전체적인 인상은 1회보다 더 기억에 남을 듯싶습니다. 물론 대상작인 [옥상으로 가는 길]을 제외하면 완성도 면에서는 다른 세 편이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발상이나 전개에서는 장점도 많은 글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제2회 좀비 아포칼립스 공모전 수상 작품집이 출간되어 읽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문학에 장르 단편 코너도 중단된 시점에서 황금가지가 계속 특이한 장르 공모전을 연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쉽게도 얼마 전 발표된 3회 심사평에는 당선작이 없다고 하지만, 이후로도 계속 장르 공모전을 지속적으로 진행해서 독자 입장에서 좋은 작품들을 꾸준히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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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상문학웹진 거울 ( http://mirror.pe.kr ) 에서 2012 거울 중단편선이 나오네요. 환상문학웹진 거울은 국내 유일의 환상문학 전문 웹진으로 2003년 6월 오픈하여 지금까지 한 번의 중단없이 이어져 오고 있는 웹진입니다. 중단편선 역시 마찬가지지요. 올해는 오랜만에 나온 '탄생'을 소재로 한 소재별 단편선 [세상의 재시작까지 11억년] 이후, 두 번째 책입니다.

  매년 출간되는 거울 중단편선은 그 해에 웹진 거울 "시간의 잔상" 게시판에 올라오는 다른 곳에서 보기 드문 환상 소설을 실제 종이 책으로 묶어내는 결과물입니다. 2012년 한 해를 점검해 볼 수 있는 기회이지요.

  제대로 된 지면을 찾기 힘든 한국 환상문학 단편 시장에서 꾸준히 환상문학 단편을 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물입니다. 환상문학 단편을 좋아하시는 분들, 환상문학웹진 거울의 독자분들은 이번에도 멋진 표지와 편집으로 출간된 2012 거울 중단편선 [죽음을 부탁하는 상냥한 방법]을 구입해 보세요. 다른 곳에서 하기 힘든 여러 편의 환상들을 한 자리에서 읽을 기회일 것입니다.

  현재 예약 기간이므로, 할인가 8,000원에 "고양이 트럼프 카드"를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11월 19일(월)까지 예약 기간이네요. 저도 조만간 기간 안에 구입해야겠습니다.(시간이 지나면 구매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희귀한 도서이기도 하니까요. 현재 2004, 2005, 2006, 2008 등의 중단편선은 매진되어 이제는 영영 구입이 불가능해졌죠.)



    환상문학웹진 거울 2012 중단편선 [죽음을 부탁하는 상냥한 방법] 예약 바로 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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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이야기 샘터 외국소설선 8
존 스칼지 지음, 이원경 옮김 / 샘터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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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1월, 존 스칼지의 [노인의 전쟁]이 그 유명한 첫 문장과 함께 국내에 출간되었다. "75세 생일에 나는 두 가지 일을 했다. 아내의 무덤에 들렀고, 군대에 입대했다.(8쪽)" 75세 노인이 군대에 입대하다니. 흥미로운 도입부만큼이나 즐거운 오락소설이었고 SF로는 흔치않게 국내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 1쇄를 소화하기도 힘든 SF 소설이 증쇄를 거듭했다. 입소문을 타고 높은 판매량을 기록할 만큼 이 소설이 가진 재미는 대단했다. 새로운 우주와 모험을 경험하게 만들면서 잘 읽히는 소설이었다. 인기에 힘입어 별다른 사고없이 2부 [유령 여단]과 3부 [마지막 행성]까지 출간되었고 마찬가지로 독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3부작 전체로 보자면 2부 [유령 여단]은 다른 주인공을 내세워서 이질적이면서도 완성도나 재미는 가장 나은 느낌이었다. 주인공이 달라짐에 따라 분위기가 한층 무거웠고 진중했지만, 그만큼 새로운 관점에서 [노인의 전쟁] 시리즈의 우주를 바라보게 만들었다. 3부작 중 [마지막 행성]은 가장 아쉬웠다. 장대한 전쟁이 나오지 않고 한 행성으로 이야기를 제한한 것도 그랬지만, 토착 종족인 '늑대 인간'에 대한 이야기나, 마지막 결말이 너무 쉽고 빠르게 처리된 느낌 때문이었다. 아쉬웠지만, 어쩌겠는가. 이야기는 이미 3부작으로 끝나버렸는데.
 그런데 2012년 외전 [조이 이야기]가 출간되었다.
 물론, 외전인 조이의 시점으로 동시간대를 바라본 [조이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출판될 수 있을지는 미심쩍었고, 이 외전이 [마지막 행성]의 아쉬운 지점들을 채워주리란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조이 이야기]를 읽게 되자, 외전이 아니라 [마지막 행성]에 이어지는 4부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혹은 [마지막 행성], [조이 이야기]가 마치 상, 하권처럼 결코 뗄 수 없이 긴밀하게 이어진 느낌이었다. 그만큼 보너스 같은 외전격 이야기가 아니라 본편의 이야기와 중대하게 연결되어 있다. 아쉬운 부분들을 채워주면서 본편의 세계관을 확장시킨다. [노인의 전쟁] 시리즈의 세계관을 좀더 세밀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따라서 [마지막 행성]까지 존 스칼지의 입담에 반하며 이야기를 읽어온 독자라면 [조이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조이 이야기]와 [마지막 행성]은 동면의 양면 같은 관계다. 둘 중 하나만 읽어서는 전체 이야기를 파악할 수 없고, 진짜 끝이라는 느낌도 받을 수 없다. 독자는 두 권의 책을 통해 하나의 사건을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 지점에서 파생되는 재미가 있으며, 진정한 엔딩을 보는 느낌을 받게 된다.([마지막 행성]에서 빠졌던 부분들은 의아해서 읽고 나서도 내내 기억에 남았다. 작가 역시 완결하고 나서 독자들에게 무수한 메일을 받았다고 한다. 작가는 모든 것을 다 알지만 독자는 알 수 없기에 생긴 괴리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조이 이야기]를 읽게 되자, 빠져서는 안 되는 에피소드들이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작가가 [조이 이야기]를 집필하게 되어서 다행이다.)
 2권부터 등장한 '조이'는 3권까지 많은 일을 겪은 소녀지만 2, 3부를 읽으면서 '조이'의 관점에서 깊게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에 사건을 진전시키는 도구적인 캐릭터로 읽혔던 것이다. 온 우주를 전쟁 속으로 이끌어 인류에게 복수하려고 한 부탱의 딸. 오빈 종족 전체에게 경배를 받는 여신 같은 존재. 인류와 오빈의 협정 조건. 그런데 [조이 이야기]에서 조이의 관점으로 보자, 조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새롭게 와닿게 되며, 작품 속 세계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비쳐진다. 이미 2부 [유령 여단]에서 다른 주인공을 내세우면서 같은 우주이면서도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데 성공했었다. 이번에는 열일곱 살 소녀의 시선으로 그렸는데, 어색하리란 예상과 달리 자연스러웠다. 조이는 정말 열일곱살 소녀처럼 재기발랄하게 생각하고 말했으며, 소설 속에서 살아 움직였다. 조이의 위트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존 페리보다 더 영악스런 소녀가 마음에 들었다. 얼마나 사랑스러운 소녀인지! 담대하며 매사에 위트가 있고 올바르고 똑똑하다. 그런 조이의 시선으로 인해 [마지막 행성]의 우주개척 연대기는 새롭게 다가왔다. 동시간대의 이야기를 읽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흥미진진했으며, 오히려 [마지막 행성]에서 빠졌던 큰 두 개의 에피소드를 상세하게 다룸으로써 긴박감까지 느껴졌다.
 작가는 후기에서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전개해나가는 것이 쉽지 않은 작업이라고 말하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충분히 잘 만들어진 이야기였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모험을 겪는 느낌이었으니까.(이런 작가의 솜씨에 감탄하며 읽는 재미도 있다.) 주인공인 조이 뿐만 아니라 세 명의 친구들도 각자 개성을 가져서 이야기를 풍성하게 했다. 스토리를 진전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고 주요한 갈등을 만들어냈다. 아이들 다운 대화와 행동을 하면서도 이야기와 동떨어지지 않고 잘 연계시켰다. 돌발 행동으로 늑대 인간에게 붙잡힌 두 남자아이. 조이는 그들을 구하기 위해 행성의 토착 종족인 늑대인간들과 마주하면서 겁먹지 않고 당당히 의사소통을 시도한다. 뿐만 아니라, 혼자(오빈 종족인 디코리와 히코리는 있지만) 행성을 지키기 위해서 떠났을 때는 오빈 종족에게 당당히 요구를 하고, 타셈가우 장군 암살 음모를 격파했을 뿐만 아니라 초과학을 지닌 콘수와 내기까지 하게 된다. 그야말로 존 페리 이상의 유머 감각과 전략가의 면모를 가진 소녀였다. 유전적으로 연관이 없더라도 그 아빠의 그 딸이라는 느낌. 한 가족이 정말 우주를 들었다 놓았다 한다. 육체적 능력이나, 초능력이 아니라 재치 넘치는 지략과 용기로 이뤄낸다.
 장대한 우주 전쟁이 펼쳐지거나 엄청난 액션이 가득찬 소설은 아니다. 또한, 우리는 이미 [마지막 행성]을 통해 이 이야기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고, 어떤 결말을 맞는지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 소설은 재미있다. 처음과 끝을 알고 있으면서도 재미있다는 사실은, 소설이 단지 요약된 줄거리로 즐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새삼 일깨워준다. 사람도 태어나서 살다 죽는다. 중요한 것은 현장감을 느끼며 이야기 속에 몰입되면서 체험하는 것들이다. 조이가 어떤 일을 겪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그 서사를 따라가면서 무슨 이야기인지가 아니라, 어떻게 했는지 행동을 지켜보고 재미를 느낀다.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듯이. 조이의 눈으로 바라본 로아노크 행성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존 페리와 조이는 다른 방식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다른 걸 보고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행동을 했다. 그러면서 오빈의 놀라운 변화를 지켜볼 수 있고, 그들의 신화를 들으며, 그 신화가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조이 이야기]는 곧 우주에서 쓰여지는 중인 신화이다.
 [노인의 전쟁]부터 시작해서 [조이 이야기]까지 이제야 하나의 즐거운 모험이 일단락 된 느낌이다. 다시 이 세계를 기웃거리지 않아도 될 만큼 만족스럽다. [노인의 전쟁]을 읽은 독자라면 당연히 [조이 이야기]까지 구입해서 읽을 것이다. 한편, 아직 [노인의 전쟁]을 읽지 않은 행운을 소유했다면 이제 [노인의 전쟁]부터 [유령 여단], [마지막 행성] 그리고 [조이 이야기]까지 장대하면서 유쾌하고 스릴 넘치는 우주 모험을 즐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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