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클럽 1
매튜 펄 지음, 이미정.장은수 옮김 / 펄프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매튜 펄이 쓴 [단테 클럽]은 흔히 [다빈치 코드]로 대표되는 팩션 장르입니다. 팩션은 국어사전에 정의된 대로 “사실와 픽션이 합해진 말로,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 인물의 일대기에 상상력을 덧붙여 새로운 이야기를 꾸며낸 것”을 말합니다. 즉, [단테 클럽]의 주요 인물들은 실제 역사적 인물입니다. 실제 이 지구상에 살아갔던 유명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소설가의 상상력을 더한 글이죠. [다빈치 코드] 열풍으로 이러한 소설들은 상당히 많이 출간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는 철저히 역사적 고증에 치중한 작품도 있었고, 상상력을 더 극대화한 작품도 있었습니다. [단테 클럽]은 그 비중을 적당히 균형 있게 맞춘 작품으로 보입니다. 작가는 직접 소설의 배경이 되는 장소를 가보았고, 수집할 수 있는 모든 문서들을 기반으로 소설을 썼습니다. 그야말로 당시 시대를 그대로 묘사해내고, 역사적 인물들이 그때 했던 대사들을 하며 움직입니다. 이는 사실감을 높였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인물들이 너무 고증을 살리느라 틀에 맞춰진대로 움직인다는 느낌을 줍니다.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인물들이 각각 개성이 부여되어 있지만 그 변별점이 크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작가가 편지, 에세이, 회고록 등 모든 문서를 조사해서 대사까지 신경 썼기 때문에 인물의 역사적 사실성은 살았을지 모르나, 소설적인 인물의 개성은 오히려 죽어버린 감이 있었습니다. 읽는 내내 너무 고리타분한 인물들이 주인공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게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일 수도 있겠지요.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1865년 미국 보스턴이 배경입니다. 판사 힐리가 수천마리 구더기와 파리 때에 뒤덮여서 죽은 채로 발견됩니다. 그것도 벌거벗은 채로 말입니다. 괴이한 살인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그러나 시작에 불과하고 그 다음에는 목사가 살해당합니다. 역시 발가벗은 채 이번에는 거꾸로 땅에 묻힌 채 발만 타서 말이지요. 여기서 끔찍한 사실은 두 시체 다 죽기 직전까지 의식이 있었으며 모든 고통을 느끼면서 서서히 죽어갔다는 것입니다.
 초반은 상당히 지루한 편입니다. 왜냐하면 역사적 인물들을 한 명씩 소개해주면서, 그들이 ‘단테 클럽’을 결성하고 단테의 [신곡]을 미국에 처음 번역하려고 하는 것을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번역을 반대하는 보수주의자들도 있습니다. 이런 배경 설명과 아직 실체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살인사건의 소개 때문에 초반 전개는 매우 더디며 지루함을 유발합니다. 게다가 번역도 예전 판본에 비해 펄프 브랜드로 새롭게 나오면서 많이 손봤다고 하나 그리 매끄럽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가독성이 높은 소설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 2권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책에서 1권의 가독성은 특히 더 낮은 편입니다.
 그렇다면 이야기에 본격적으로 몰입되는 소위 ‘끊는 점’은 어디인가. 아무래도 이 연쇄살인 사건이 바로 단테 클럽이 번역하고 있다는 단테의 [신곡] 지옥편의 형벌과 닮아 있음을 단테 클럽 일원이 깨달으면서입니다. 1권의 절반을 넘어가는 224쪽에서 단테클럽이 살인사건과 자신들이 번역하고 있는 신곡의 지옥편 형벌과 유사함을 깨닫는 부분부터 슬슬 이야기는 흥미로워집니다. 일종의 시동을 건다고도 할 수 있는데, 다만 여기서부터 급전개가 되는 것은 아니고 처음에 이들은 경찰에게 은폐를 하고 자체 수사를 합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한계가 있고 이야기의 전개 속도는 여전히 느립니다. 이후 2권에서 경찰과 함께 사건을 풀어나가면서 속도감이 붙습니다. 여전히 잘 읽히는 문장들은 아니고, 시간대나 배경이 금세 파악되지 않아 가독성이 안 좋지만 1권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2권을 읽어나갈 수 있습니다. 사건의 해결편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띠지에는 ‘[다빈치 코드]와 함께 역사 추리 붐을 일으킨 세계적 베스트셀러’라고 하나 국내에서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기는 힘든 면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미국 문학 황금기를 배경으로 하였으나, 영미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고는 미국 문학 황금기에 대해서, 또 이 소설의 주인공인 당대의 문학가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그저 딱딱하고 이상한 인물들이 주인공을 맞고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단테 클럽]이라는 제목에 맞게 단테의 [신곡]을 읽지 않고는 이 소설이 줄기차게 강조하는 단테의 매력이나 [신곡]의 번역을 둘러싼 갈등을 체감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들은 이 소설이 더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는데 어려움을 주는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당대의 미국 문학가들에 대해 알고 단테의 [신곡]을 읽은 독자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독자와는 독서 체험이 전혀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상당히 잘 짜여진 구조로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는 보장하고 있습니다. 즉, 인물들에 대해 세세한 역사적 지식이 없고, 단테의 [신곡]을 읽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당대의 유명한 시인이라는 것과 단테의 [신곡]이 대략 어떤 내용인지 소설 속에서 설명하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데 큰 무리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괴이한 연쇄살인범을 쫓는 지적 추리 소설로도 충분히 완성도 높은 소설입니다. 암시와 복선 등이 잘 깔려 있기 때문에 추리를 따라가는 데 큰 무리가 없고 퍼즐이 풀리는 재미도 느낄 수 있습니다.
 원래는 황금가지에서 양장본으로 출간되었던 책이 이번에는 역시 같은 회사인 민음사의 새로운 브랜드 펄프에서 페이퍼백으로 출간되었습니다. 하나의 작품이 전혀 다른 판본으로 출판된 것도 흥미롭고, 워낙 오타와 오역에 대한 말이 많았던 이전작에 비해 편집자이자 평론가이기도 한 번역가 한 명이 더 추가되어 개정되었다는 점도 특이합니다. 이 책이 단테의 신곡을 번역하는 단테 클럽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오역 때문에 번역가가 추가되어 다시 번역의 손을 봤다는 점은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네요. 오역이나 오타는 보이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번역이라고 하는 작업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는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단테를 미국에 번역해서 소개하려는 이 소설 속 문학가들은 숭고한 의미를 갖고 임합니다. 그건 사실 자기 자신의 상처와도 결부되어 있습니다. 번역이 내부와 외부의 상처를 건드리면서 실제 그 당시의 사회 문제까지 닿아 살인사건과 연결되는 구성은 절묘합니다. 단테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의미나 상징과 이 소설 속 살인 사건이 결합되면서 소설의 내적 의미는 더욱 풍성해집니다. 인물들이 역사적 사실에 갇혀 자유의지를 마음껏 선보일 수 없었던 점은 아쉽습니다. 좀더 내면의 고민이나 다양한 사고나 행동이 가능했다면 이야기는 훨씬 매력적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당대 미국 문학가들에 대한 약간의 정보와 단테의 신곡에 대한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단테의 신곡 번역을 둘러싼 이 기묘한 살인사건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 속 인물이 살아 움직여 살인사건을 푸는 것은 그 장르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재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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