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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신사냥꾼 - 상 - Arche-type(절판 예정)
윤현승 지음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뫼신 사냥꾼 - 한국적인 환상의 매력
국내 판타지 소설의 저력 『뫼신 사냥꾼』
일본의 라이트노벨만 번역해 소개하던 대원씨아이에서 국내 소설의 출간을 시작했다. 그 시작은 ‘아키타입’과 ‘일리아드’라는 두 개의 브랜드를 통해서였다. 소문으로는 대원씨아이에서 나오기 때문에 라이트 노벨 장르로 나오지 않나 싶었지만, 그 결과물은 그렇지 않았다. 판타지와 무협 등 이미 기존에 존재한 시장의 작품들을 낸 것이다. 그러나 표지와 일러스트에 신경을 쓰고 특히 라이트노벨처럼 삽화가 많이 사용된 점은 차별화된 점이었다. 작품의 수준도 안정적이었기 때문에 이 두 브랜드 런칭은 꽤 성공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작품 중에 하나는 『뫼신 사냥꾼』이었다.
판타지 작가 윤현승은 누구?
판타지 소설 『다크문』으로 데뷔한 작가 윤현승은 당시 꽤 많은 판매량을 보이며 선전했고 권수도 상당히 많았다. 재미있다는 평은 많았고 대여점 인기 순위에서도 1위를 하기도 했으나, 작품의 퀄리티는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내용 전개는 지나치게 빠르고 여러 캐릭터가 나오지만 캐릭터성이 크게 살아나지 못했고, 작품의 깊이도 떨어졌다. 애니메이션이 연상되는 강렬한 전투씬들은 인상적이었지만, 작품이 전체적으로 구성이 허술하고 겉만 훑는 느낌이었다. 이후, 윤현승 작가는 『헬파이어』, 『흑호』 등의 작품을 내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한다. 그러다 중간에 온라인상에 공개된 중편 「깊은 숲」은 윤현승이라는 작가의 평을 바꾸게 만든다. 「깊은 숲」은 깔끔한 문장들, 높은 몰입도 등 완성도 있는 중편이었던 것이다. 작가는 이때 잡담 글에서 『다크문』을 쓸 때는 판타지의 바이블이라는 『반지의 제왕』조차 읽지 않았지만, 「깊은 숲」은 『반지의 제왕』을 읽고 나서 쓰인 작품이라고 말한다. 그가 점점 자신의 문제점들을 확인하고 고쳐나가면서 발전하는 작가라는 느낌이 들었다.(이번 『뫼신 사냥꾼』 책 날개에는 소설가로서 『얼음과 불의 노래』를 읽기 전에 자신과 읽은 후의 자신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후 이 작품에 더 많은 감상을 받은 느낌이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하얀 늑대들』이라는 걸출한 장편 판타지 소설을 출간한다. 『하얀 늑대들』은 연재 때부터 호평을 받으며 출간 이후 상당한 인기 몰이를 한다. 각종 판타지 사이트에서 그해 가장 많이 추천된 신간 중 하나였다. 윤현승은 더 이상 『다크문』의 윤현승이 아니라 『하얀 늑대들』의 윤현승이 된 것이다.
『하얀 늑대들』은 상당히 좋은 평을 받았지만 상대적으로 그 다음 작품인 『더스크 워치』는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작가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다. 『하얀 늑대들』을 통해 오랜만에 판타지 소설의 재미를 체험했기 때문이었다. 오래전 『드래곤 라자』나 『세월의 돌』, 『용의 신전』, 『탐그루』, 『하얀 로냐프 강』 등 1세대 판타지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판타지 소설의 매력을 다시 재현한 작가에게 기대를 가졌다. 그리고 이제 윤현승은 『뫼신 사냥꾼』을 내놓았다. 과거 출간해서 좋은 평을 받기도 했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흑호』의 리메이크판. 작가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다크문을 쓸 때는 내가 글솜씨에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하얀늑대들을 쓰면서 난 내가 뭘 잘 쓰는지 알았다고 생각했다. 더스크워치를 쓰면서 난 내가 뭘 못 쓰는지 찾아냈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이렇게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발전을 꾀하는 작가의 신작. 그것도 새로운 작품이 아니라 『하얀 늑대들』 이전에 조용히 호평이 올라오던 작품의 리메이크. 『하얀 늑대들』로 인해 팬이 된 독자들도 『뫼신 사냥꾼』의 등장을 기다려왔다.
모습을 드러낸 『뫼신 사냥꾼』
작가가 출판사와 계약할 때 요구조건은 오로지 예쁜 책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과연 책을 받고 보니 기존의 판타지 소설들과는 차별화된 책의 모습에 눈길이 갔다. 니시오 이신의 『잘린 머리 사이클』이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붉은 손가락』 같은 양장본이면서 조금 작은 판형으로 나왔는데, 잡기 좋고 보기에도 예쁜 판형이었다. 표지 재질도 매끈한 코팅지가 아니라 약간은 올록볼록한 느낌이 나서 좋았고 ‘뫼신 사냥꾼’이라는 표지 글씨체나 일러스트 역시 잘 어울렸다. 게다가 겉표지를 벗기면 나타나는 외형도 멋있었다. 검은색에 깔끔하게 황금색으로 글씨나 문양 등이 적혀 있는 전체적으로 고급스런 느낌이 났다.
책을 펼치면 바로 작품에 나오는 동양적 세계관이 그려진 지도가 있었다. 그리고 작가의 말이 있었고 ‘흑호’가 화려하게 그려진 펼쳐지는 컬러 브로마이드가 있었다. 페이지 수는 400페이지가 넘었다. 일반 판타지 소설보다 비싸다고 해도 이 정도로 정성들인 책을 막상 보게 되면 그 값이 하나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정성스럽게 만든 책이었다.
이 책의 띠지에는 <이번에는 헤비(Heavy Novel)이다!>라고 적혀 있다. 보통 읽기 편한 가벼운 소설들을 다룬 라이트 노벨 장르를 겨냥한 말이다. 그만큼 이 작품의 분량이나 내용이 묵직하다는 소리일 것이다.
실제 작품은 보기보다 무겁고 진지했다. 일단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동양 판타지라는 점이다. 대개의 판타지 소설들이 중세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라이트 노벨은 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동양적 배경을 추구한 판타지 소설은 그 수가 극히 적었다. 독자에게 친숙하지도 않고 많은 자료 조사가 따라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낯선 세계관을 기존 판타지 독자들에게 자연스럽게 납득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뫼신 사냥꾼』은 그 점에서 성공했다. 일단, 동양 판타지라고 해도 배경을 굳이 과거 한반도로 정한 것이 아니라 다른 세계를 창조했다. 이는 이우혁의 『치우천왕기』가 택한 방식이 아니라 이영도의 『눈물을 마시는 새』와 같은 방식으로 볼 수 있다. 그럼으로 인해 역사성이나 기타 자잘한 세부 설정에 얽매일 필요 없이 더욱 동양풍이면서 환상적인 세계관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다.
이야기의 도입부는 신선하고 흡인력이 있었다. 인상적이기도 해서 소설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 중에 하나로 남아있다. 프롤로그격인 「시작하는 이야기 - 흑호」편이 아니라 「첫 번째 이야기 - 식사중입니다」에피소드를 말하는 것인데 귀신들이 자신들이 알고 있는 가장 슬픈 이야기를 하나씩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작가의 말에서 ‘그냥 모닥불에서 밤 까먹고 듣는 옛날 얘기처럼 편하게 읽어요.’라고 말한 부분이 생각나는 대목이었다. 여기서 숨 막히게 몰입되는 부분 중 하나는 그 귀신들에게 연약한 여자가 한 명 잡혀 있다는 점이다. 역시 슬픈 사연을 갖고 있는 여자는 시녀들이나 수행원 전부 귀신들에게 잡아먹힌 다음에 홀로 남은 상태였다. 귀신들끼리 말싸움을 벌이는 순간을 틈타 도망에 성공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잡히게 된다. 그러나 그 때 이 소설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것이다. 뫼신 사냥꾼. 뫼신이란 산의 신령을 말한다. 도력을 쌓고 오래된 동물들이 산의 수호령으로 존재하곤 하는데 주인공은 이러한 뫼신들을 사냥하는 사냥꾼인 것이다. 그는 수많은 무사들이 모두 무참히 살해한 악귀들을 손쉽게 잡아 여자를 구한다. 이로 인해 독자들은 이 세계에 악귀나 뫼신 같은 존재들이 많이 있으며 주인공은 그들을 제압할 수 있는 강력한 존재라는 점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이 주인공이 가진 검이나 그가 뫼신을 사냥하게 된 이유 등에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세계관을 설명하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등 모든 면에서 훌륭한 첫 번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의 주인공인 세희는 아직 정체가 풀리지 않은 캐릭터이다. 강하지만 때론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죽음에 처하는 위기도 자주 겪으며 많이 다치기도 한다. 속을 알기 힘든 캐릭터지이만 감정이입은 잘 되는 편이라 아직 많은 것이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세희를 응원하며 그의 이야기를 뒤따라가게 된다. 버들이라는 캐릭터는 이야기의 중요한 위치에 있을 거라 짐작되면서도 나온 분량이 극히 미비해 이후 이야기를 읽어봐야 캐릭터에 대해 더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잠깐 나온 장면에서도 독특한 성격을 드러내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서리라는 매력적인 소녀 캐릭터도 중반부 내내 이 책을 읽게 만드는 힘이었다. 그녀의 어린애 같은 천진한 매력은 괴상망측한 또 신선한 욕들로 인해 캐릭터의 개성이 확 살아났다. 또 후반부에 나온 솔이라는 여자 역시 시원하고 매력 많은 여성 캐릭터임에 틀림없다. 캐릭터 소설이라 불리는 라이트 노벨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판타지 소설 혹은 대중문학은 캐릭터의 생동감이 가장 중요하다. 캐릭터의 개성과 매력이 없다면 소설은 독자에게 전혀 매력을 선보일 수 없다. 『뫼신 사냥꾼』은 그런 점에서 합격점을 받을 수 있는 캐릭터들을 선보이고 있다. 시종일관 진지하고 심각한 주인공이기에 조연들까지 따분했다면 이야기는 지루함만을 유발했을 것이다.
무당이나 박수라는 존재. 뫼신, 악귀, 잡귀, 구미호, 도깨비, 흑호. 그리고 다양한 순 우리말의 사용. 강낭콩 강, 동굴어미, 콩자루, 거스르미, 먹귀, 흰아미산 등 한글을 사용한 고유명사의 등장은 어색한 면도 있었지만 그보다 정감이 가고 소설 속 세계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였다. 이런 세계관 하나를 만드는데 작가가 많은 노력을 했음을 알 수 있었고 그 노력은 꽤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세계관에 있어서도 합격점 이상의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이다.
문장은 그동안 엄청난 권수의 소설을 써댄 작가이니 만큼 깔끔했다. 비문을 찾기 힘들었고 크게 걸리는 부분도 없었다. 『하얀 늑대들』에서 원숙하게 느껴진 친근한 문체는 여전했다.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확 끌어들이는 능숙한 이야기 솜씨가 엿보인다고 할까? 다양한 인물들의 대사처리도 자연스러운 편이었고 어색한 표현도 없었다.
이야기는 어떨까? 구성도 정갈했다. 독자들에게 아무런 사전 정보도 주지 않은 채, 주인공 곁을 지켜보면서 하나하나 의문을 갖고 해결해 나가는 구성은 호기심을 증폭시키고 이야기의 흡인력을 주었다. 이 주인공이 왜 이런 길을 선택한 것일까? 또 어떤 사연들이 있을까? 를 독자들이 계속 생각하면서 책을 읽게 만드는 것이다. 또 새롭게 나타나는 인물들마다 어떠한 존재들일지 궁금하게 만들고 이를 해결하는 방식도 좋았다. 많은 궁금점들을 남겨놓았기에 다음 권을 기대하는 마음도 컸다. 좀 더 세부적인 스토리에 대한 것들은 다음 권이 남았기에 다음 권 리뷰에서 다루어야 할 것이다.
중간 중간에 들어간 삽화도 적절하게 들어갔고 작품 분위기에 맞게 잘 그려져 있었다. 소장 가치가 있는 판타지 소설을 목표로 했다면 성공이지 않을까? 게다가 중간에 편지에 테두리를 한 것이나 검이 말하는 부분 등에서 글씨체를 변경한 편집들도 센스 있고 깔끔하게 잘 되어 있었다. 오자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만, 편집에 있어서 아쉬웠던 점은 가끔 상황이 바뀜에 따라 문단을 나누어주고 한 줄을 비워줘야 할 부분들이 붙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읽는 데 혼동을 느끼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93쪽 밑에서 다섯째 줄은 다른 시점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부분인 만큼 한 줄 비워주는 게 자연스러울 것이다. 324쪽과 325쪽은 비록 페이지가 따로 있긴 하지만 다른 책들의 편집이 그러한 것처럼 한 줄을 비워주어서 확실히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좋을 듯하다. 333쪽 위에서 세 번째 줄은 특히 다음 내용과 장면이 바뀌는 부분으로 한 줄을 비워줬어야 느낌도 더 살았을 부분이라서 아쉬웠다.
아키타입과 뫼신 사냥꾼 그리고 한국의 장르소설
판타지 소설은 몇몇 작가를 제외하곤 대여점 시장 위주로 판매되고 있다. 점점 시장의 악순환에 따라 작품의 퀄리티가 나빠지고 그나마 남아있던 독자들도 대여점 시장을 떠나갔다.
그 사이에 라이트 노벨 시장은 큰 성장을 이루었고 애니메이션의 인기를 등에 업은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는 전체 판매부수가 삼십 만부가 넘는 대박을 터트리기도 했다. 이에 국내 작가들의 라이트노벨 시장 개척을 목표로 시드노벨에서는 국내 작가의 라이트노벨 출간을 시작했다.
한국 작가의 라이트 노벨. 대여점 구매보다 라이트 노벨 판형에 맞춰 일러스트도 넣고 신선한 소재의 이야기들로 채워서 구매할 수 있는 책을 만들겠다는 것이 목표였다. 이에 반해 대원에서는 라이트 노벨을 수입하는 회사이면서도 오히려 라이트 노벨이 아닌 기존 판타지 작가들을 끌어들였다. 그리하여 일본 라이트 노벨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인정을 받았거나 혹은 가능성 있는 신인을 끌어들여 국내에 이미 정착된 한국 판타지 소설을 더욱 소장가치 있는 좋은 책을 만들어 독자들이 대여가 아닌 구입을 할 수 있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중 하나가 『뫼신 사냥꾼』인 것이다. 그럼 그 둘의 결과는 어떠할 것인가? 시드노벨의 『미얄의 추천』과 아키타입의 『뫼신 사냥꾼』을 전부 구입해본 나의 소감으로는 『뫼신 사냥꾼』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미얄의 추천』이 짧은 시간 안에 그럴듯한 한국 작가의 라이트 노벨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충분히 합격점을 줄만한 좋은 작품이지만, 『뫼신 사냥꾼』은 그 자체로서 작품의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즉, 시간이 촉박했고, 처음 써본 라이트 노벨이며, 신인이라는 변명을 해야 하는 오트슨의 『미얄의 추천』과 달리 어떠한 변명도 없이 작품 그 자체만으로도 수준이 일정 이상 올라가 있는 완성도 있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뫼신을 사냥하는 주인공과 그 주위에 있는 존재들. 익숙하면서도 낯선 한국적인 소재들 그것들이 멋지게 그려진 새로운 세계. 캐릭터도, 세계관도 전부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야기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이 가장 컸다. 작가의 의도대로 모닥불 앞에서 기이한 이야기들을 듣는 것처럼 멋진 이야기 한 편을 들은 기분이다. 아직 끝을 모르기에 더욱 궁금하여 마저 듣고 싶은 이야기 말이다. 한국 장르 소설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라이트 노벨의 소재를 가져오거나 그 외향을 가져온다. 그러나 역시 삽화든 표지든 현대물이든 소재든 또 한국적이든 일본적이든 그런 것은 중요한 게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독자의 혼을 빼놓을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영화나 게임에서 맛볼 수 없는 새로운 즐거움을 원하는 것이다. 무엇을 이야기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이야기 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뫼신 사냥꾼』은 침체에 빠져 있던 한국 판타지 소설계에 또 다른 재미를 불러일으켰다. 어서 이 이야기의 끝을 읽고 싶다.
“한 번 한 얘기를 또 하는 건 흥미와 집중도에 있어 위험한 도박이라 할 수 있지, 그런데도 막내는 현란한 말솜씨로 우릴 또 울렸다. 심지어 원래 이름이 덕희인 상인의 이름을 덕수로 바꿔가면서 얘기했는데도 감동적이었어. 하지만 막내야, 그 얘기의 핵심은 그런 슬픈 일을 당한 덕희가 너에게 잡아먹혔다는 점이란다. 그런 심한 고생을 하고 허무하게 귀신에게 죽은 부분이 가장 슬픈 거지. 그걸 빼놓은 건 실수다. 꽤 큰 감점 요인이지. 하지만 둘째와 내가 그걸 능가하는 얘기를 하지 못하면 오늘의 승자는 네가 될 수 있겠구나. 자, 둘째야. 너도 슬픈 얘기를 해보렴.”
― 『뫼신 사냥꾼 上』, 대원씨아이, 윤현승, 22쪽
P.S 작가는 한 번 한 이야기인 『흑호』를 멋지게 다시 한 번 해냈다. 도박에 성공한 것일까? 필자는 『흑호』를 읽지 않았기에 비교할 수 없지만 이 작품이 더욱 근사한 이야기가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두 작품 모두 읽어본 분들의 의견이 궁금하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