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에서 내 목적지는 아랄해였다. 타슈켄트에서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려 아랄해에 면한 작은 도시 무이낙을 가는 것이 내 <여행>의 목적이었다. 나는 예정했던대로 타슈켄트에서 오래된 도시 사마르칸드로, 오아시스가 낳은 고도 부하라로 옮겨다녔다. 부하라에서 무이낙으로 가는 길에는 우루겐치라는 거점 도시를 지나야 하는데, 우루겐치에서 조금 비껴난 곳에 히바(KHIVA)가 있다.

우즈베크에 오기 전 준비작업으로 경로를 탐색하면서 우루겐치와 히바의 이름을 들었지만 나는 이 곳이 어떤 곳인줄 몰랐다. 얼마 안되는 우즈베크 관광자료를 통해 이곳에 오래된 성이 있고 그 안에 숙박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만 확인했었다. 부하라에서 나는 환상적인 경험을 했다고 생각했고, 미나레트(탑) 꼭대기에서 바라본 세상, 내가 그곳에서 하늘밑을 내려다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황홀해서 꼭 홀려있는 듯한 상태가 돼있었다.
그리고 히바에 도착한 순간,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말로 설명하기 힘든 이 도시 아닌 도시, 너무나 몽환적이어서 도저히 현실이라고는 볼 수 없는 도시를 발견하고 그대로 발걸음을 멈추고 싶은 환상에 빠져버렸다. 나는 이 여행의 짐꾸러미에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넣어갔다. 어쩌면 예감이었나? 히바는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한 장면을 따다놓은 듯한, 그런 곳이었다.

"기억 속의 이미지들은 한번 말로 고정되고 나면 지워지고 맙니다. 저는 어쩌면, 베네치아에 대해 말을 함으로써 영원히 그 도시를 잃어버릴까봐 두려웠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다른 도시들을 말하면서 이미 조금씩 잃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칼비노의 소설에서 내게 깊이 각인돼버린 저 대화, 너무나 좋아하는 쿠빌라이칸과 마르코폴로의 대화. 마르코는 칸에게 저렇게 말한다. 말을 함으로써 자기 마음 속의 도시를 잃어버리는지도 모른다고. 내게 히바는 정반대의 곳이다. 나는 히바라는 곳에서 단 하루를 머물렀다. 그 곳의 이미지를 내 눈동자 속에 완전히 새기고 싶었지만 그곳에서의 시간은 너무 짧았다(사실 그 작은 성 안에서의 하루는 짧았다고만은 볼 수 없지만, 그리고 멈춰버린 듯한 그 시간 속에서의 하루는 나에겐 꽤나 길었지만). 나는 그 도시를 <말>로 고정시켜서라도 흩어져가는 이미지를 붙잡고 싶은데, 그 곳을 고정시킬 말이 대체 뭐가 있을지를 모르겠다.

히바를 보시려면---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07-10-01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오옷 성벽이 어떻게 저런 아름다운 양감을 가질 수 있죠?? ㅠㅠ 제가 언젠가우즈벡에 가게 된다면 다 딸기님 덕분일겁니다..가고싶다~

딸기 2007-10-01 20:33   좋아요 0 | URL
아름답죠? 아름답고 신비스럽답니다. ^^

마노아 2007-10-01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짓말처럼 새파란 하늘이에요. 대한민국의 가을하늘이 최고인 줄 알고 살았는데, 못지 않은, 그 이상의 하늘도 많더군요^^;;;

딸기 2007-10-01 21:35   좋아요 0 | URL
대한민국의 가을하늘이 최고인줄알고... ^^
건조한 곳의 파란 하늘은 정말 눈부셔.
 
진보와 야만 - 20세기의 역사
클라이브 폰팅 지음, 김현구 옮김 / 돌베개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벌써 한 10년은 된 것 같은데, 클라이브 폰팅의 ‘녹색세계사’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COLLAPSE)’ 같은 책들보다 훨씬 선구자적으로 역사를 환경적 관점에서 설명한 저술로 기억하고 있다. 폰팅의 새 책이 나왔다고 해서, 그것도 무려 ‘진보와 야만- 20세기의 역사’라는 거창한 제목의 책이라고 해서 잔뜩 기대를 했다.

각설하고, 기대에 부응해주는 책이었다.

나는 책을 읽을 때 밑줄을 쳐가며 읽고, 기억에 남는 구절이나 기록해둬야겠다 싶은 부분이 있으면 책장 귀퉁이를 접어 표시를 해놨다가 뒤에 독서카드를 정리하면서 옮겨 적고 인터넷 홈페이지나 알라딘 서재에도 타이프해 놓는다. 670쪽에 이르는 이 책에는 그런데 책장 귀퉁이가 접혀진 곳이 하나도 없다. 인상 깊은 구절이 하나도 없어서가 아니라, 책의 내용과 분위기,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 전반을 기억에 새길 일이지 어느 한 구절을 딱히 꼽아낼 만한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세계체제론에 근거해 세계를 ▲중심부 국가들과 ▲주변부 국가들 ▲그리고 그 사이 반(半) 주변부 국가들(20세기 상당기간 반주변부에 해당되는 것은 라틴아메리카와 남유럽, 동유럽 국가들이었다)로 나누어 설명한다. 이유는 분명하다. 20세기라는 기간의 세계를 설명하는데에 유효한 틀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중심부와 반주변부, 주변부 국가들은 서로 다른, 그러나 서로 연결돼있는 시간의 흐름을 겪어왔다.

저자가 세계를 설명하기 위한 기술적인 틀이 중심부-반주변부-주변부라는 시스템이라면, 20세기라는 시대를 설명하는 키워드는 ‘진보와 야만 사이의 투쟁’이다.
20세기는 분명 진보의 시대였고, 특히 중심부 국가들에겐 설명이 필요 없는 역사적 발전의 시대였다. 동시에 20세기는 공산주의(스탈린 체제)나 나치즘, 식민주의 같은 야만을 창조해냈다. 중심부의 진보와 주변부의 야만, 중심부의 진보와 중심부의 야만, 주변부의 진보와 주변부의 야만. 진보와 야만은 20세기 내내 DNA 나선기둥의 두 축처럼 엮여 있었다. 진보와 야만 그리고 그 둘 사이의 투쟁은 20세기 세계 체제의 본질이자 동력이자 결과였던 셈이다.

저자는 중심부 뿐 아니라 주변부와 반주변부의 역사도 소홀히 다루지 않으려 애쓰고, 진보의 낙관론과 야만의 비관론을 어느 한쪽 배제하지 않고 동시에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사료의 한계와 ‘정치적 중요성’이라는 간과할 수 없는 요인 때문에 중심부에 더 많은 분량이 할애된 것은 사실이지만, 저자의 노력은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서론을 제외하면, 전체를 경제사와 사회사/국제사/국내사로 나눈 뒤 다시 환경, 지구화, 제국, 탈식민지, 민족, 전쟁, 파시즘, 독재, 혁명, 억압, 차별, 제노사이드 같은 식으로 테마를 잡아서 설명하는데 짜임새도 있고 재미도 있었다.

세계체제론의 틀에 충실하다보니 테마에 따라 중심부-반주변부-주변부의 스토리가 반복되는 듯한 느낌이 강하고, 2차 사료들 중심이다 보니 여기저기 역사책들에서 주워들은 내용이 겹쳐진다는 단점도 없진 않았다.
시기적으로 지난 100년 안팎을 다루고 있지만 워낙 광범위한 세계(전세계!)를 다루는지라 항목에 따라서는 주마간산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20세기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는 느낌이 들어 뿌듯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즈베키스탄 여행기...라기보다는 아마도 '사진 설명'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여우언니가 말씀하셨던 미르아랍 마드라사(이슬람학교)가 바로 이곳입니다.

사마르칸드의 마드라사들은 지금은 관광지가 돼있습니다만, 거기서 차를 타고 두어시간 달려 도착한 부하라만 해도 옛스런 모습이 참 많이 남아있는 곳이라서 마드라사가 그 용도 그대로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고 해요.

함께 갔던 제 가이드 벡조드의 집이 부하라여서, 부하라 너무 좋다고, 사마르칸드 구경 오전중에 땡치고 부하라로 가자고 해서 열심히 택시 잡아 타고(둘이 합해 2만5000원 정도 나왔어요. 여럿이 함께 가는 택시랍니다) 부하라로 옮겨갔습니다.

부하라 넘넘 좋았습니다...

사막길 달려 나타난 부하라 칸(군주)의 여름궁전, 오래된 성, 그리고 저 마드라사.

아시나요. 사막의 건축물들은 유난히 빛깔이 아름답다는 걸.

저 아름다운 모자이크는, 황갈색 모래빛에 지친 눈을 즐겁게 만들기 위한 사막 사람들의 선물이랍니다.
천혜의 아름다운 하늘빛과 바닷빛을 가진 이스탄불의 모스크들은 저렇게 아름답지 않아요.

노을 빛에 물든 미나레트(탑)와 황홀하게 빛나는 돔, 고즈넉한 마드라사의 회랑,
그 분위기, 그 느낌을 무슨 말로 설명할 수 있을지...

어머, 요런 기능이 있었네... 더 읽어보시려면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로쟈 2007-09-29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즈벡'하면 '오지'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데, 나름 아름다운 도시들이 많네요...

딸기 2007-09-29 01:36   좋아요 0 | URL
실은 도시라고 하기엔 넘 작은 곳이예요. 하지만 역사가 2000년이 넘는, 전통의 오아시스랍니다.
그리고 우즈벡은... '오지'가 되기엔 넘 넓고 평평해요.. 사막이어서. ^^

로렌초의시종 2007-09-29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징기스칸의 몽고 기병에게 정복당할 무렵에는 무척 번성한 곳이었다는 예전에 소설에서 읽은 기억이 나네요. 그렇지만 역시 그 때 그 도시가 아직까지도 이렇게 고즈넉하게 살아남아있다니 감탄스럽군요. 아마 이스탄불같은 번듯한 도시였다면 별 감흥이 없었을 텐데요. 흐흐. 이 심술맞은 감각이란~

딸기 2007-09-29 14:07   좋아요 0 | URL
이스탄불도 매우 감흥있는 도시이긴 합니다만,
부하라가 고즈넉하게 살아남아있는 도시였기에 더욱 감동적인 것은 맞아요.
로렌초의시종님 심술맞은 감각에 찬성 100표. ^^

파비아나 2007-09-29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진으로만 봐도 아름답네요.실제로 보면 얼마나 멋질까요..
며칠전부터 케이블에서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처녀들이 한국남자와 결혼해서 서울로 들어오는 다큐를 봤어요.
그 먼곳에서 이곳으로 시집을 오다니...근데 그처녀들의 부모님이나 할머니들은 고향나라로 니가 돌아가서 좋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분들은 여기를 고향나라라고 생각하지만, 여기 사람들은? 핏줄이라는게 그렇게 무서운건지 순박한건지 잘 판단이 서지 않았어요.

딸기 2007-09-29 14:08   좋아요 0 | URL
저도 우즈벡에 가서 고려인 마을 가봤고 한국으로 시집온 여성도 만나봤어요.
그곳 분들이 한국 이야기하면 좀 낯설기도 하고, 마음이 시큰하기도 하고...
어느 순간엔 눈물이 핑 돌았답니다. 민족이란게 먼지..

프레이야 2007-09-29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의 결혼원정기,라는 영화에 우즈벡이 나오더군요.
와~ 부러워요. 저런 곳도 다녀오시구요^^ 맨 마지막, 회랑 사진이 특히 좋아요.

딸기 2007-09-29 21:13   좋아요 0 | URL
우즈벡 가니깐 [나의결혼원정기] 찍은장소가 어디어디다, 얘기들 많이 하더라고요
저는 그 영화 안 보았는데... 우즈벡 멋지게 나오나요?

미치기 일보직전인 파란여우 2007-09-29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으, 미치겠다. 미치겠어,...아주 제대로 염장 잘 해주셨구랴...
이거 내 별장으로 모셔가고 싶은데 허락해 주겠소?
버마 10문답건과 함께.

딸기 2007-09-29 23:07   좋아요 0 | URL
ㅋㅋ 염장질한 보람이 있군요. 캬캬캬캬
별장으로... 얼마든지 가져가십시오 ^^

비로그인 2007-09-30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님~ 코르도바의 메즈키타도 꼭 가보셔요~^^

딸기 2007-10-01 07:08   좋아요 0 | URL
코르도바에 있다는 유명한 메스키타(모스크)를 말씀이시군요.
죽기 전엔 꼭 가봐야지요! 정말 세상은 넓고 볼 것은 많습니다.
그런데 테츠님은 코르도바 벌써 가보셨나바요. 좋으셨겠다...

마노아 2007-10-01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간접적으로나마 함께 볼 수 있어서 기뻐요. 정말 아름답군요. 직접 보면 숨을 멈추고 바라볼 것 같아요.

딸기 2007-10-01 15:56   좋아요 0 | URL
숨을 멈추지 않을 수 없지! ^^
 

미얀마에도 민주화의 봄은 올 것인가.
수십년의 군사독재정권에 시달려온 미얀마(버마) 국민들이 1988년에 이어 다시 민주화 항쟁을 시작했다. 아시아의 빈국 미얀마에서 벌어진 격렬한 시위와 유혈진압 사태에 세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미얀마의 실상과 이번 사태의 원인을 알아본다.

1.대대적인 민주화 시위를 촉발시킨 미얀마의 정치상황은

극도로 억압적인 군사독재정권이 수십년째 계속되고 있으며 북한과 유사한 주민 감시ㆍ억압체제가 형성돼 있다. 10집 중 1집은 이웃 동향을 군정에 보고해야하는 감시제도가 있고, 밤이든 새벽이든 보안대가 들이닥쳐 주민들을 수색한다. 거주이전은 물론 자국 내에서조차 여행의 자유가 없다. 민간 언론은 거의 봉쇄돼 방송과 통신을 정부가 모두 통제하고 있다. 이메일도 정부가 지정한 서버로만 주고받아야 할 정도다. 이번 시위 발생 뒤에는 이동전화 연결도 막혔고, 전화는 늘 도청된다고 현지 소식통들은 전하고 있다.


2.경제사정은 어떤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연간 170달러(구매력 기준 1800달러)로 아시아에서도 손꼽히는 빈국이다. 인구 4700만명 중 4분의1은 빈곤선 이하 생활을 하고 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천연자원을 바탕으로 한 성장 가능성이 있었으나 부패한 군정이 계속되면서 퇴보했다. 1980년대까지 `버마식 사회주의'를 추진한 것도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원인이 됐다. 1990년대 들어 미얀마로 국가 이름을 바꾼 뒤 군정이 일부 자유화 개혁조치를 취했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반(半) 사회주의식 폐쇄경제가 유지되고 있다. 2003년8월 미국이 아웅산 수치 여사 가택연금을 해제할 것을 촉구하며 경제제재 강도를 높이자 금융위기가 발생해 은행 20여곳이 도산했다. 그런데도 고위 관리들은 호화 사치 생활을 해 국민들 분노를 사고 있다.


3.이번 대규모 시위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은 석유값 파동이었다는데

지난 8월17일 시작된 이번 시위의 원인은 정부의 갑작스런 기름값 인상 조치였다. 예고도 없이 군정이 휘발유값 등을 5배나 올려버리면서 시위가 벌어졌다. 가뜩이나 생활수준 떨어진 상태여서 공무원이나 교사 급여가 30달러 안팎에 불과한데 유가 폭등이 겹치면서 `생계형 봉기'가 촉발된 것이다. 소득은 적은데 현지 공산품 가격은 한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알려졌다. 공식 환율은 달러당 6.5짝(미얀마 화폐단위)이지만 암시장에선 1달러가 1200짝에 팔린다. 시골의 불교 사원들에는 점심 때가 되면 끼니를 얻으러 오는 빈민들이 줄을 잇는다고 한다.


4.시위대의 궁극적인 요구는 군정 퇴진인가

당초 경제적 요구에서 시작됐던 시위는 정치적 자유를 요구하는 쪽으로 바뀌어 군정을 압박하고 있다. 미얀마는 1948년 독립했지만 해방 뒤 혼돈기를 거치고 1962년 느윈 군사정권이 들어서 1988년까지 장기간 독재를 했다. 1988.8.8 이른바 `88혁명'으로 잠시 민주화의 봄이 오는 듯했으나 두달 만에 서마웅이 이끄는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다. 1990년5월 역사적인 총선에서 수치 여사가 이끄는 야당 민족민주동맹(NLD)이 80%가 넘는 높은 지지율로 압승을 거뒀지만 서마웅은 정권을 넘겨주는 대신 탄압을 자행했다. 1992년에는 군정 내에서 재차 쿠데타가 일어나 서마웅 정권이 무너지고 현 군정지도자 탄슈웨가 정권을 장악, 15년째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 국민들 사이에는 군정이 물러나지 않으면 미얀마의 변화와 발전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5.불교의 영향력과 승려들의 위상은

영국 식민통치와 뒤이은 1930년대 인도의 점령통치 기간 불교 승려들이 해방투쟁에 적극 참여했고, 1980∼90년대 민주화운동에서도 주축 역할을 하는 등 불교와 저항운동의 관계는 뿌리가 깊다. 군정에 체포돼 있는 정치범들 중 일반인보다 승려가 더 많다고 할 정도다. 민족적으로 미얀마는 버마족(68%), 샨족(9%), 카렌족(7%), 락친족(4%) 등으로 나뉘어 있다. 하지만 90% 가까이가 불교신자여서 종교적으로는 동질감이 강한 편이다. 승려들은 `부처의 아들'이라 불리며, 특히 종단 대표 격인 `세이야 러지(큰스님)'들은 국민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그동안엔 군정도 승려들에 대해서는 무자비한 탄압을 자제해온 편이다. 그러나 최근 군정과 불교계 관계가 극도로 악화돼 군정이 절까지 수색하는 상황이 됐고, 시위에 나선 승려들을 폭행하는 일이 생기면서 불교계는 물론 국민들을 격분케 했다.


6.종교계 외에 반정부 민주화세력은 어떤 이들인가

수치 여사는 십수년째 가택연금돼 있지만 여전히 민주화의 상징이자 구심점이 되고 있다. 하지만 수치 역사가 이끌었던 NLD와 학생운동권 주요 인사들은 탄압을 피해 대부분 해외로 망명했고, 현재의 시위는 민중들의 자발적인 봉기 성격이 강하다. 해외 망명자들이 인접한 태국을 비롯해 일본, 미국, 노르웨이 등에서 네트워크를 만들어 미얀마 내 활동을 지원하고 있지만 저항 조직은 워낙 약화된 상태다. 양곤 등지의 NLD 사무실들도 대부분 폐쇄되고 지하로 숨어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승려들이 전면에 나선 것이기도 하다.


7.미얀마 사태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힘겨루기는 왜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입증된 매장량은 적지만 미얀마는 석유와 천연가스 보유하고 있고 해양 및 대륙과 연결돼 있다. 중국과 인도 사이의 전략적 완충지대이기도 하다. 현 탄슈웨 군정은 중국, 러시아와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수치 여사를 풀어줄 것을 요구하며 1997년부터 경제제재를 가해왔다. 유럽연합(EU)도 1996년부터 무기 금수조치 등 제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가 협력하지 않아 경제제재는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번 시위 유혈진압을 놓고서도 서방과 중국ㆍ러시아는 서로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8.중국과 미얀마의 관계는

미국과 한국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미얀마는 사회주의 성향의 독재정권 때부터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서방의 경제제재가 시작된 뒤로 군정은 거의 중국에 경제를 의존하고 있다. 버마는 곧 중국으로 넘어간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버마의 역사적, 문화적 중심지이자 제2의 도시인 만달레이는 화교들에 장악됐다. 중국은 안다만해(海)에 면한 미얀마 서부 해안에서부터 중국 내륙으로 이어지는 송유관을 만들려 하고 있으며, 국제사회의 비난 속에서도 미얀마 군정과의 관계를 버리지 않고 있다.


9.군정이 몰락할 가능성도 있나

미얀마 저항운동가들은 `미완의 88혁명'을 완수해 군정을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직은 전면적인 군정 퇴진요구보다는 민주화 조치들을 요구하는 수준이지만 유혈사태가 계속되면 상황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 알 수 없다. 군정의 버팀목인 중국조차 군부와 민주화진영 양쪽에 선을 대고 이중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실제 1990년5월 총선거에서 아웅산 수치 여사의 NLD가 승리하자 가장 먼저 축하인사를 보낸 것이 중국 대사관이었다. 국제사회의 압박 속에 군정이 위기에 몰리면 중국도 태도를 바꿀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군정이 형식적인 유화조치들로 위기를 모면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아직은 상황을 점치기 힘들다.


10.미얀마와 한국의 관계는

1970년대 중반까지 미얀마는 한국보다 북한과 더 가까웠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쪽으로 기울어졌고 1983년 아웅산 묘역 테러사건 이후에는 북한과 단교했다. 한국 역시 국제사회의 비판적인 시선 속에서도 미얀마 군정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지난해에는 대우인터내셔널이 미얀마 군정과 천연가스 개발계약을 맺으면서 무기 생산설비를 수출, 국제적인 이슈가 되기도 했다.
지난해 6월말 현재 한국 기업의 미얀마 투자액은 약 2억달러로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대우인터내셔널과 효성 등 50여개 기업들이 진출해있고 한국계 봉제공장 40여개가 운영되고 있다. 교민은 800여명인데 대부분 양곤에 거주하고 있다. 양국간 비자 관련 협장이 없어 미얀마 방문 시에는 반드시 사전에 비자를 얻어야 하며, 최장 1년까지 체류가 가능하다. 이번 시위사태 발생 뒤 정부는 미얀마의 여행경보단계를 `여행유의국가'에서 `여행자제국가'로 상향조정했다.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마태우스 2007-09-28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시니 머리에 쏙쏙들어와요!

딸기 2007-09-28 22:59   좋아요 0 | URL
마태우스님 반가워요 >.<

로쟈 2007-09-29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정신없으시겠습니다. 제 후배는 미얀마까지 갔더군요.^^;

딸기 2007-09-29 01:38   좋아요 0 | URL
원래 제가 가야하는 거였는데, 로쟈님 후배를 보내버렸습니다. 캬캬캬
안그래도 오늘 그 후배를 찾는 전화가 쇄도했어요.
어케 금새 들어갔냐구... 어제 쌩난리부르스를 추면서 부랴부랴 갔는데 ㅋㅋ

이렇게 웃고는 있지만, 그녀석 집에선 지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랍니다 ㅠ.ㅠ

바람돌이 2007-09-29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마민중들의 희생이 보답을 받을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연일 계속되는 탄압의 소식에 맘만 아프네요.

딸기 2007-09-29 01:39   좋아요 0 | URL
이젠 정말 군사정권 물러날 때가 됐는데...
지금 분위기를 보니깐 좀 폭풍전야 같아서, 한쪽에선 대규모 유혈사태가 일어날 것이다 하고
또 어떤 쪽에선, 군부 일각에서 국민들에 발포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있다고 해요.

비로그인 2007-09-29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들어 동남아쪽에 대한 무지를 절감하고 있어요.(앞으로 책좀봐야지;;) 덕분에 많이 알게 됐습니다. 딸기님 상큐~^^

딸기 2007-09-29 01:40   좋아요 0 | URL
동남아쪽에 대해서라면, 클라이브 크리스티 [20세기 동남아시아의 역사] 추천해요. :)



파비아나 2007-09-29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딸기님이 안 가신거는 다행이지만- 일본기자 사망이후 상황이 더욱 무서워진듯해요- 후배분도 조심하셔야 될텐데요.

딸기 2007-09-29 14:09   좋아요 0 | URL
일본기자가 의도적으로 사살된 것이었다 하니 참...
후배 걱정 때문에 우리부서 사람들 다들 지금 조마조마 하고 있어요.

프레이야 2007-09-29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기자가 의도적으로 사살된 거라구요? 그랬군요.
후배분 무사히, 사진 담아오시기를..
정리하신 글 잘 읽었습니다.


딸기 2007-09-29 23:06   좋아요 0 | URL
무법천지인 모양이예요. 글 잘 읽으셨다니, 보람이 있네요. :)

누에 2007-09-29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랑스 라디오와 티브이에서 왜 자꾸 중국 얘기를 하는지 좀 알겠네요.


딸기 2007-09-30 12:07   좋아요 0 | URL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비난을 참 많이 받는데... 우리나라도 사실 챙피하지요.
그런데 누에님, 프랑스에 계신 거로군요. 서재 들러서 구경하고 왔어요. :)

마노아 2007-10-01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읽으니까 이해가 잘돼요. 후배분 걱정으로 다들 긴장상태이겠어요. 잘 마무리되어서 평화롭게 돌아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딸기 2007-10-01 15:56   좋아요 0 | URL
후배가 지난주 목욜날 저녁 황급히 집에 들러 어머니한테 "나 미얀마 가" 하고 뛰어나갔대.
다음날 어머님께 내가 전화를 드렸더니, 어머님이 어찌나 황당해하시는지...
"데모하는거 취재 가요" 그러길래 학생들 데모냐고 했더니 우리 후배가 엄마 걱정할까봐 자세한 설명 않고서 그냥 "네" 하고 가더라는거야. 그러고나서 다음날 인터넷 보니깐 일본 기자가 죽었다고...
그래도 막상 그런데 들어가 있으면 본인은 위험한 줄 모르거든 ㅎㅎ 잘 돌아오겠지.
 

미국과 유럽이 평화 시위를 유혈진압한 미얀마 군사정권을 상대로 고강도 압박을 시작했다. 국제사회의 발빠른 제재 움직임 속에 미얀마 정부도 한발 물러서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제재를 통해 독재국가의 민주화를 유도하는 이른바 `남아공 모델'이 효력을 발휘,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이끌어낼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군정 압박, 발빠른 움직임

미국은 27일 군정 지도자인 탄슈웨를 비롯한 미얀마 관리 14명의 자산을 동결했다. 미국 재무부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억압과 위협으로 자국민들을 침묵시키려 하는 정권 곁에는 서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며 "버마 고위 인사들에 대해 제재를 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현 미얀마 군정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공식적으로 버마라는 옛 국가명을 고수하고 있다. 데이너 페리노 백악관 대변인은 "전세계가 자유를 요구하며 거리로 뛰쳐나온 버마 국민들을 주시하고 있다"며 미국이 버마 국민들과 연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AP통신 등이 전했다.
부시대통령은 이날 양제츠(楊潔) 중국 외교부장을 백악관에서 접견하며 미얀마 사태에 재차 우려를 표명하고, 중국이 미얀마 민주화와 평화적인 권력교체를 도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도 미얀마 군정에 대한 경제 제재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합의했다. EU는 이미 지난 1996년부터 미얀마 군정 자산동결과 무기 금수, 군정 관리 비자발급 중지 등의 제재조치를 취해왔다.

제재 효과 있을까

미국과 유럽은 `불량국가' 혹은 독재국가로 지목된 나라의 정부를 상대로 경제 제재와 무력 공격 등을 펼쳐 정권을 바꾸거나 민주화를 유도하는 전략을 여러 차례 써왔다. 특히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군사공격으로 점령해 강제로 정권을 축출하는 이른바 `레짐 체인지(체제 교체)' 노선을 선호해왔다. 그러나 미얀마의 경우 무력을 통한 압박보다는 경제 제재를 통해 군정에 압력을 가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란, 시리아, 북한 등 미국에 밉보인 나라들에 대한 경제제재와도 비슷한 방식이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미얀마 군정에 대해 `북한과 비슷한 방식의 경제적 압력'을 가하려 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1980∼90년대 초반 인종차별로 지탄을 받던 남아프리카공화국 백인 정권에 강도 높은 경제 제재를 가해 흑백 분리조치 철폐를 이끌어낸 바 있다. 남아공 사례는 제재를 통해 민주화를 유도한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미얀마에 이같은 전략이 잘 통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미얀마 경제의 버팀목인 중국이 협조하지 않는다면 제재의 위력은 지금까지와 크게 달라지기 힘들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 때문에 국제사회가 유엔을 통해 일관되게 제재를 가하기도 힘든 형편이다. 미얀마 군정은 집권 이래 줄곧 폐쇄경제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제재의 영향력이 남아공만큼 크지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얀마 군정 유화조치 나올까

일단 고무적인 것은, 미얀마 군정이 미약하게나마 유화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미얀마 정부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임명한 이브라힘 감바리 특사가 입국할 수 있도록 비자를 발급해주기로 27일 합의했다. 반 총장은 미얀마 측의 협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며,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에 모인 아세안(ASEAN) 외무장관들도 유엔 본부에서 미얀마 정부가 특사의 입국을 받아들인 것을 환영했다.
앞서 미얀마 국영TV는 일본인 기자 1명을 포함해 9명이 시위 진압 과정에서 숨졌다고 보도했다. 군정에 의해 움직이는 국영 언론사가 시위대의 사망 사실을 보도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같은 제스처로 봤을 때, 군정이 감바리 특사와 아웅산 수치 여사 등 야당 지도자들의 면담을 허용하고 일부 형식적인 유화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카메라를 놓지 않았던 기자




미얀마 수도 양곤에서 민주화 시위 현장을 취재하다가 진압경찰의 총에 맞아 한 일본인 저널리스트가 숨졌다. 민간 뉴스통신사 APF의 계약직 기자로 일하고 있던 나가이 겐지(長井健司ㆍ50). 시위 현장에서 총에 맞아 숨지면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았던 그의 기자 정신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요미우리 신문 등 일본 언론들이 28일 보도했다.
나가이가 양곤에 들어간 것은 지난 25일. 태국 방콕에서 취재를 하고 있던 나가이는 미얀마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도쿄 미나토(港區)구의 회사로 연락해 양곤 취재를 자원했고, 곧바로 국경을 넘어 미얀마로 들어갔다.
APF는 일본 최초의 분쟁지역 전문 뉴스통신사로 1992년 설립됐다. 아이치(愛知)현 출신으로 독신인 나가이는 글도 쓰고 직접 촬영도 하는 1인 저널리스트로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을 수차례 다녀온 분쟁지역 취재 전문가다. 일본 미디어에서는 제법 알려진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APF와 계약해 일하고 있었다.
양곤 시내 곳곳을 다니며 시위 현장과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던 나가이는 26일 낮 도쿄 APF의 야마지 토오루(山路徹)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거리 취재를 계속할 것"이라고 연말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고, 연락은 끊겼다.
양곤 주재 일본대사관에는 27일 새벽 4시15분 미얀마 외무부로부터의 전화가 걸려왔다. 양곤 시내 중심가 술레 파고다(탑) 부근에서 유탄에 맞아 숨진 사람 중에 일본인 남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일본 대사관 직원이 병원에 안치된 시신에서 여권을 확인했고, 숨진 남성의 사진과 영상을 찍어 APF 본사에 전송해 나가이임을 재차 확인했다. 나가이는 총탄이 심장을 관통하는 바람에 시위 현장에서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야마지 사장은 "나가이는 입버릇처럼 `아무도 가지 않은 곳에는 누군가가 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을 했었다"고 말했다. 동료들은 "상냥한 성격이지만 분노를 안고 현장을 다녔던 기자"라며 비보에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아이치현에 살고 있는 나가이의 노모 미치코(道子ㆍ75)는 "외무성에서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 아들이 미얀마에 있다는 것도 몰랐다"면서 "3년전 마지막으로 집에 다녀갔을 때 위험한 곳에는 가지 말라고 말렸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마치무라 노부다카(町村信孝) 일본 신임 관방장관은 나가이의 사망을 확인하고 미얀마 정부에 공식 항의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마태우스 2007-09-28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제제재 효과없다고 생각해요 민중들만 죽어날 뿐.. 북한도 버티는데...근데 미얀마 지엔피가 170불이라니..ㅠㅠ

딸기 2007-09-28 23:03   좋아요 0 | URL
1인당 GDP가 170불인데요, 물가를 감안한 구매력 기준(ppp)으로 보면 1800달러 정도래요.
그래도 가난하긴 매한가지이지만요.

사마천 2007-09-29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스전 개발했던 대우인터내셔날 같은 경우 직격탄이 오겠죠. 제제는 알게 모르게 꽤 큰 영향을 줍니다.

딸기 2007-09-29 14:10   좋아요 0 | URL
대우는 가스전만 개발한 것이 아니라 그 댓가로 무기공장까지 수출했지요.
디제이가 계속 수치여사 석방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긴 했지만,
한국이란 나라는 국제사회에서 '옳은일'이라고 하는것은 도대체가 하는 일이 없네요, 증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