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당신은 믿을 수 없겠지만
마르크 레비 지음, 김운비 옮김 / 북하우스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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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노아님을 만나 선물 받고, 지하철 5호선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몇페이지 읽고, 너무 재밌어서 오랜만에 자기 전에 책 펴들고 누웠다. 보통 딸에게 책을 읽어주다가 잠들기 때문에 잠자리에서 내 책 펼치는 것은 불가능한데, 마침 금요일이었던지라 운이 좋았다. 4분의1쯤 남겨놓고 잠들어서는 토요일 아침 눈뜨자마자 다시 펼쳐들고 끝장을 봤다.

 

남자는 어느날 뚱딴지처럼 자기 집에 나타난 여자, 지금은 코마 상태가 되어 시체처럼 병원요양실에 누워있는 한 여자를 만난다. 말하자면 여자는 유체이탈한 영혼 같은 것이고, 남자의 눈에만 보인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당신은 믿을 수 없겠지만,” 이라고 시작되는 여자의 설명은 당연히 남자에겐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리로 들리겠지. 그런데도 또한 당연히!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영락없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 같은 책. 템포가 굉장히 빠르다. ‘영화로도 만들어질 것’이라고 설명에 씌여 있었는데 정말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다. 전형적인 ‘기네스 펠트로 주연’ 로맨틱 코미디 같은 느낌이 났는데, 역자 설명에도 ‘영화에는 기네스 팰트로가 나온다고 한다’는 말이 있다. 어찌 보면 그만큼 전형적이다(영화맹인 내가 곧바로 배우 감을 떠올렸을 정도이니).

그런데 나는 책 뒷이야기가 더 궁금하다. 남자는 여자의 영혼을 몸으로 되돌려보내고, 여자를 깨우는데 성공한다. 의식을 되찾아가는 여자는 남자에게 누구냐고 묻는다. 이제부터는 남자가 설명할 차례.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당신은 믿을 수 없겠지만,” 그런데 내가 이 여자라면, 과연 이 남자의 귀신 씨나락 까먹는 얘기를 믿을까, 안 믿을까? 아무래도 믿을 것 같다. 세상은 로맨틱하고, 때로는 코믹하다. 솔직히 나는 영화를 봐도 로맨킥 코미디만 골라 보는 스타일인지라...

 

선물받은 책은 표지에 알퐁소 뮈샤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한때 내 홈페이지 프런트를 장식했을만큼 마음에 들어했던 그림. 이 책 선물받기 전날 친구(뮈샤 덕에 알게 된 친구;;)와 뮈샤 이야기를 했었는데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마 이 책이 제목이 바뀌어, 더 비싼 버전으로 나온 모양인데 난 절판된 이 버전의 제목이 훨씬 좋다. '천국 같은'은 또 뭐며, 그 만화스러운 표지는 머란 말이냐. 뮈샤 그림 불법으로 땡겨 썼다가 저작권 문제 땜에 표지 바꾼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만화스러운 걸 지향한다면-- 순정만화 표지그림들의 원조야말로 바로 뮈샤라는 사실을 좀 알아주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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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5-21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처음 표지랑 제목이 더 맘에 들어요. 영화는 만들어졌는데 주연이 리즈 위더스푼인가 그랬어요. 전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잠깐만 보았거든요^^

다락방 2007-05-21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표지로 읽었어요. 제목도 근사하잖아요? 그런데 리즈위더스푼의 영화는 또 뭐며(이상하게 보기 싫더라구요) [천국같은]은 또 뭐예요. 저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에필로그에선 먹먹해지기도 했죠.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당신은 믿을 수 없겠지만.

딸기 2007-05-22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리즈위더스푼, 나 걔 좋아하는데 +.+
다락방님, 위더스푼 귀엽지 않나요? 똘똘하게 보이고...
암튼 저 책 나중에 나온 제목과 표지는 꽝이예요.

다락방 2007-05-22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므낫. 전 위더스푼 보다는 안젤리나 졸리를 좋아해서요. 훗. :)

딸기 2007-05-22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젤리나 졸리는 정말 훌륭한 사람 같아요. 참 그렇게 하기 힘들텐데...
 
이상한 화요일 비룡소의 그림동화 84
데이비드 위스너 글.그림 / 비룡소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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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살 우리 꼼꼼이가 읽는 책들, 정리해두어야지 생각은 하면서 늘 지키지를 못한다. 아이가 읽는 책들이래야 모두 그림책이니, 맘만 먹으면 하루에 열댓권이라도 아이 스스로, 혹은 엄마랑 같이 읽을 수는 있다. 대개 하루에 서너권은 읽는데, 겹치는 것들 뺀다 해도, 다만 몇줄 씩이라도 그걸 다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저래 넘어간지 벌써 몇달이 되었는데 이 책은 너무 마음에 들고, 우리 애가 특히 좋아하는 것이라서 적어둔다.
나는 데이비드 위스너의 책을 처음 접했고 뒤늦게 이 책도 유명하다는 칼데콧상 수상작이라는 걸 알았다(오늘 알았다;;). 책 너무 좋다. 글은 없고 그림만 있는데, 몇 페이지 넘겨보면 바로 알겠지만 초현실주의적인 그림들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다. 살바도르 달리와 르네 마그리트를 섞고 크빈트 부흐홀츠 풍으로 조금 가볍게 띄웠다, 고 하면 말장난처럼 들리겠지만 진짜다! 작가가 실제 르네 마그리트 팬이라 한다. 그림은 멋지면서도 코믹하다. 줄거리? 화요일 밤이 되니 개구리가 날아올랐다! 참 이상한 화요일. 그것이 전부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 아닌 반전, 다음주 화요일의 또다른 이벤트를 예고하는 꼬부라진 꼬리들.
참 재밌다. 아이 책이 집에 너무 많아서 이젠 이런 종류 창작그림책은 끝이야, 하고 있었는데 결심 무너뜨리고 위스너의 다른 책들(그것도 다섯 권이나)을 보관함에 집어넣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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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5-21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사랑하는 비룡소 책이군요. 글 없이 그림만 있는 그림책, 무척 궁금해요. 저도 일단 보관함으로 직행^^

미설 2007-05-22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도는 구름공항을 젤 좋아해요^^

딸기 2007-05-22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 이 책 괜찮아, 정말.
미설님, 구름공항도 재밌나보군요. 사야겠어요. 감사~
 
윤리학과 경제학
아마티아 센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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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불평등의 재검토’를 가지고 머리 속에 버터를 한겹 발라 놓으니깐 센의 책을 읽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추천사 빼고 목차 빼고 참고문헌 빼고 나면 111쪽, 글씨도 큼직큼직한데 이런 편집 이런 분량 이런 표지에 책 값이 1만원이라면 꽤 비싸다. 한울아카데미답다. 좀 신경쓰면 좋으련만 참 보기 싫게 만든 책... 하지만 아무튼 내용은 좋았으니 1만원 이상의 값어치는 하는 책이다.

센이 1986년 UC버클리에서 했던 강연을 손보아 묶은 것이라고 하니깐 21년 전 얘기인 셈이다. 요지는 제목에 다 나와 있다. 윤리학과 경제학. 경제학은 윤리를 알아야 하고, 윤리를 도와야 하며, 윤리와 결합돼 발전해야 한다는 것.

저자의 말을 내 식으로 풀어보면 경제학엔 두 가지 뿌리가 있다.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다같이 잘살자 경제학’이고, 하나는 애덤 스미스의 추종자들이 금과옥조처럼 읊어대는 ‘돈계산 잘하자 경제학’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면 앞의 것은 윤리학적 전통에, 뒤의 것은 공학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다같이 잘살자 경제학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는 윤리적인 면에 관심을 갖고 목표치를 두는 반면에 돈계산 잘하자 경제학은 목표 얘기 생략하고 돈 버는 방법을 ‘공학적으로’ 설명하는 데에 중점을 둔다.

둘 다 중요한데, 현대에 들어서는 돈계산 잘하자 쪽이 압도적으로 우세해졌다. 돈계산 하는 목적, 인간들 어떻게 잘 먹고 잘 살 것이며 무엇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시장에 맡겨봐” 한마디로 정리해버리고 ‘공학적 계산’에 치중하는 것이 경제학의 대세가 됐다. 그래서 확실히 경제학이 정밀해지는 효과는 있었다.

그런데 윤리가 빠지니까 세상이 어긋나는 것은 물론이고, 시장의 합리성에 대한 신앙과 경제학의 성공에 대해서조차 반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시장은 합리적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를 합리성의 길로 이끌어준다?

그래서 센은 의문을 제기한다. “무엇이 합리적인가요?” 사람들은 ‘일관성’과 합리성을 혼동하거나,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곧 합리적인 것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일관성을 합리성으로 보든, 이익 추구를 합리성으로 보든 간에 양쪽 다 문제가 있다. 일관되게 안 좋은 선택만 하는(사업에 계속 실패하는 사람 같은) 경우도 있고, 이익 추구보다는 불우이웃 돕기에 신경 쓰는 사람들도 있다. 비합리적으로 조직에 충성을 바친 일본 기업의 근로자들은 큰 파이를 얻어낸 반면 합리적으로 개인 이익을 주장한 미국 경제는 한때 바닥을 기었다. 돈계산 잘하자 경제학은 ‘합리성’을 내세우지만 이런저런 현상들을 별로 설명해주지 못한다.

다시 말해, 경제 돌아가는 것으로는 ‘시장’과 ‘합리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사람의 경제활동에는 여러 가지 다른 요인들이 영향을 미친다. 다양한 요인들을 더 많이 반영해서 경제학을 더 과학적으로 만들고 돈계산 정말 잘하게 만들려면 ‘잘먹고 잘살자’ 개념이 들어가 줘야 한다. 윤리학과 경제학이 다시 만나야 사람들 사는 게 실제로 좀 더 나아지고(잘먹고 잘 사는데 더 도움이 되고) 경제학 자체도 더 발전해서, 돈계산도 제대로 잘하게 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더불어, 경제학의 계산법들이 사람들 복지를 좋게 하는 정책들 만드는 데에도 도움이 되니까 후생경제학 도움 받으면 윤리학도 더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돈계산주의자들이 교조로 모시는 애덤 스미스도 사실은 다같이 잘사는 법을 찾는 것에 우선 순위를 두었는데, 후대의 신도들이 왜곡을 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내용은 어렵지 않고 어찌 보면 단순한데 개념을 정리하고 정리하고 정리하는 과정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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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5-01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센. 어디서 들어봤는데 아마도 복거일의 책에서 본거 같습니다. 음. 이 책도 일단 넣어둡니다.
 
불평등의 재검토
아마티아 센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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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 저 책 읽다 보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티아 센에 대한 얘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센이라는 돌부리에 걸려넘어지길 몇 차례, 결국 촌스런 편집에 목에 걸리는 번역의 책 두 권을 사버렸다. 하나는 제일 유명하다는 이 책 ‘불평등의 재검토’이고, 또다른 하나는 ‘윤리학과 경제학’이다.

불평등의 재검토- 제목에서부터 뭔가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을 것 같은 분위기가 팍팍 난다. 예상대로 어려웠다. 개념이 특별히 난해해서가 아니라 잘 모르는 존 롤즈의 정의론 얘기를 계속 풀어내고 있어 어려웠다.
그리고 예상대로 중요한 내용이었다. 평등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어떤 평등인지가 중요하다, 돈을 똑같이 가졌으면 평등이냐, 기회를 똑같이 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럼 기회만 같으면 평등이냐? 세상에 유리 천장이 얼마나 많은데.. 그럼 출세하고 배부르고 등 따시면 그걸로 평등 끝인가. 아니다, 사상의 자유를 비롯하여 내 것 내던지고 자유와 정의를 위해 핍박받으며 싸울 자유도 있어야 한다.

저자는 이렇게 평등과 복지의 내용을 조목조목 따지고 들어간다. 평등/불평등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모든 사회제도와 국가정책의 빼놓을 수 없는 항목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자들은 ‘기회 균등이 곧 평등이다’ 라면서 자기네들이 평등사회에 산다고 주장하는데 정작 그 사회의 뒷골목엔 마약중독자 거지가 넘쳐난다. 어떤 자들은 남녀평등이 지나쳐 남자들이 기를 못편다고 주장하는데 그 나라에서 남녀가 받는 월급 격차는 직장에 오래 다닐수록 커진다. 저자는 평등 문제에 아주 실질적, 실체적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센에 따르면 “평등주의의 핵심 쟁점 중 몇 가지는 정확히 공간에 따라 평등이 달라진다는 점 때문에 나타난다. 평등의 윤리학은 공간들 사이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우리의 폭넓은 다양성에 대해 적절하게 주목해야 한다. 중심변수의 다원성은 정확히 인간의 다양성 때문에 크게 달라질 수 있다.”(61쪽)

그러니까, 인간들이 이렇게 제각각이니 거기서 평등을 논하려면 무엇에서의 평등인지, 그게 진짜 평등인지 짝퉁인지 요모조모 잘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통상 경제학자들과 정치가들이 하듯 소득불평등만 가지고 평등 문제를 다루면 안 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왜냐,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 소수민족 등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평등은 생사가 걸린 문제이고, 평등에도 너무나도 다양한 차원(저자의 표현으로는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래서 기초재와 자원을 마음대로 쓸수 있는지, 그걸 써서 얼마를 벌어들일 수 있는지, 자기가 할수 있는/하고 싶은 것들을 선택할 자유와 권리와 능력 같은 것들을 따져보면서 평등을 하나의 잣대로 전환해버리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왜 평등/불평등을 재검토하느냐?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서야 하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과정은 빈곤에 대한 것이다. 빈곤도 평등과 마찬가지로, 숫자놀음에 당하기 쉬운 항목 중 하나다. 대개는 파이가 커지면 파이 쪼가리도 커진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센의 고향인 인도(노벨경제학상 수상자를 내놓은 이 나라 경제는 승승장구한다는데 여전히 지참금 적다고 살해당하는 여성이 연간 수천 수만명이란다)가 대표적인 예다.

센은 빈곤의 실체를 따질 때에도 소득 하나만 놓고 말하지 말고 능력 실패/기능실패 같은 것들을 따져봐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여성들은 생물학적 사회적 요인, 특히 암묵적이든 명시적이든 끊임없이 재발하는 성차별 전통과 관련되는 경우 때문에 소득을 특정 기능으로 전환시키는데 불리함을 안을 수도 있다.... 우리가 단지 소득 크기에만 주목한다면 결핍 수준을 과소평가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에는 분명히 능력실패라는 기준을 도입하는 것이 절실하게 요구된다.”(202쪽)

여자들이 기업체에서 최고경영자가 못 된다, 이런 류의 유리천장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인도같은 나라에서는 여자들이 영양보충도 못한 채 물 긷다 쓰러져 죽고 딸아이들이 젖도 못 먹어 굶어죽는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소득크기에만 관심이 있다면, 부유한 사회에서 굶주림이 지속되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미국에서 굶주림은 수많은 파라미터와 연결되는데, 그 중에서 저소득은 단지 하나의 파라미터일 뿐이다. 건강은 사회환경, 의료혜택, 가족생활유형, 기타 수많은 요인들과 관련된다. 따라서 소득에 기반을 둔 빈곤분석은 중도에서 이야기를 그치는 셈이다.”(204쪽)

마찬가지로 계급을 중심으로 한 맑스 식의 분석만으로는 한 계급 내 여러 집단(예를 들면 여성들)의 현실이 더 열악해지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고, 해결책을 내놓지도 못한다. “상품과 소득에서 기능과 능력으로 관심 방향을 돌린다면 상대적인 특성이 근본적으로 변할 수 있다. 이 차이는 사회적 교육적 그리고 병리학적 조건의 차이와 상당부분 관련된 것처럼 보인다”(223쪽). 평등도 빈곤도 다양한 방향에서 들여다보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아니 이렇게 당연한 말을 하고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는 말인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른바 ‘주류 경제학’에서 센 같은 ‘후생경제학’은 상대적으로 밀리는 처지였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시장의 손에 무엇이든 맡기자는 사람들 사이에서 불평등과 빈곤이라는 것에 엄밀한 분석틀을 들이대고 경제학의 영역으로 집어넣어 고민하게 만들었던 것이 바로 센의 공로였다. 숫자 놀음으로 전락해버린 경제학이 인간의 아픔을 바라보게끔 하자는 것이 센의 주장이었다.
적어도 오늘날 글로벌 시대의 복지를 말하는 모든 이들은 센의 분석틀 없이는 이야기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그걸 보면 경제학이 주판알 놀이에 그치지 말고 인간 세상을 위한 도구가 되어주길 바라는 움직임이 역설적이지만 그만큼 많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몫을 찾아낸 사람이 센이라는 것, 그가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인도 출신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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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7-04-30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독해가 가능하셨더랍니까?
전 조금 읽다가 번역이 무언가 부자연스러워.... 난해한게야...... 하고
건방지게 원서를 사들었다가 음.... 원서도 난해하구만.... 다 못 보고 밀쳐 두었답니다. ^^a
근데, 다른 글들도 보니까 센은 원래 글을 그렇게 만연체로 쓰더라구요.

딸기 2007-04-30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스... 이 책의 원서;;는 죽어도 읽지 못할 것 같아요.
난해했죠... 한글로 읽어도 독해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중간 부분 넘어가면서부터 좀 괜찮아졌어요. 사실은 다 읽는데 3~4개월 걸렸습니다. ^^
 
세계화의 윤리 - 실천윤리학의 거장 피터 싱어의
피터 싱어 지음, 김희정 옮김 / 아카넷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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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뉴스를 보다 보면 생기는 의문들이 있다. 인권, 윤리와 관련해 가장 큰 난제는 ‘개입’에 관한 것. 개입은 언제, 얼마만큼 필요하며 그 필요성은 누가 판단하는가. 두 번째, 지구 반대편 가난한 아이보다는 내 이웃을 도와야한다는 주장에 대해 세계화의 윤리는 어떤 답변을 내줄 수 있는가. 보편적 인권이 존재한다는 전제 하에, 지구화된 시대에 ‘책임’은 어떻게 규정되고 지켜져야 하는가. 국제관계에서 윤리란 현실적, 실리적으로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오게 되며, 특히 세계화 시대의 국제관계에서는 그 모든 맥락이 과거와 비교해 어떻게 달라지는가.

 

저자는 호주 출신으로 미국 영국 호주 등 여러 곳에서 강단에 섰던 사람이다. 이 책은 세계화 시대의 윤리라는 것에 대해 몇가지 실마리를 제공하는데, 깊이가 있으면서도 핵심을 딱딱 짚어놨기 때문에 아주 유용하고 재미도 있었다. 이런 작업은 아직 초창기 단계인지라 좀더 정교해지고 또 현실적인 맥락에서 토론이 진행될 필요가 있지만 어쨌든 철학 사회학 윤리학 등등을 종합해 이론적인 작업의 기초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도 있고 이것저것 생각하는데 도움도 많이 됐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강대국들의 횡포를 비판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미국의 힘’을 과대평가한다거나 다국적 기업들 혹은 ‘자본의 힘’을 과대평가해서 패배적인(그래서 결과적으로는 기회주의적인) 결론을 내놓아서는 안된다는 걸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저러는데 힘없는 나라들이 무슨 방법이 있겠어? 내가 아무것도 안 하는건, 어차피 결과가 빤해서야, 개인의 힘으로 할 수 있는게 별로 없잖아, 그러면서 사실은 ‘강대국/대기업/미국인/무책임한 소비자/에너지 낭비꾼’의 대열에 편승하는 행위 말이다.

환경 문제만 해도, 미국이 버티고는 있지만, 유엔이 무력하다고 하지만, 분명 어떤 형태로든 ‘탄소 관리를 위한 글로벌 체제’가 만들어져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그 체제를 어떻게 해서 더 친환경적이고 더 근본적인 것으로 만드는가 하는 점이지, “미국이 반대하는데 교토의정서가 무슨 의미가 있어” 이런 차원은 아니라는 점.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이 패배주의를 이야기하는 경향이 분명히 있다. 저자는 국제기구/체제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변화의 조짐이나 윤리의 위력에 대해서도 평가를 놓치지 않는다.

 

번역이 꽝이긴 하지만, 참 ‘안 팔릴’ 책이긴 하지만 볼 사람 만이라도 좀 봤으면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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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나무 2007-04-30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놓고 아직 보지 않았는데, 상기시켜 주시는군요. 조만간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솨~~~

마노아 2007-04-30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대평가하지 말라는 것에 잠시 넋이 나갔어요. 중요한 지적이에요.

기인 2007-04-30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피터 싱어 쉽게 쓰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번역이 꽝이라는데서 걸리네요;; 정말 싱어같은 철학-윤리학자가 꼭 해야 하는 작업이네요. 이를 꼭 번역 잘 하는 사람이 번역했어야 했는데;; 어느정도 수준일지..

딸기 2007-05-01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못 읽겠는 수준은 아니니까, 걱정 마시고 읽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