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미래 - 오늘의 민주주의 무엇이 문제인가?
파리드 자카리아 지음, 나상원 이규정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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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동안 읽은 책들 중에서, 다시 생각해봐도 아마도 이 책이 가장 수작이 아니었나 싶다. 파리드 자카리아는 포린어페어스 편집장을 거쳐 뉴스위크 편집장을 하고 있는, 인도 무슬림 이민자 가정 출신의 학자 겸 저널리스트다.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 미국 최초의 ‘무슬림 국무장관’이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미국에선 알아주는 똑똑한 사람인데 이상하게 국내에선 ‘벌써 다 유명해진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더더욱 유명해지지 못하고 있는 느낌.

자카리아의 이 책이 한번 나왔다가 절판이 되는 바람에 어쩔수 없이 영어본으로 읽었는데, 문장과 내용이 모두 명쾌해서 정말 재미있었다. 중후하고 명민하되 문법은 어렵지 않아 생각보단 쉽게 읽혔다. 인도네시아에 출장 가서 아침저녁 바깥 출입을 못해 빈둥거리는 시간들이 있었는데 그때 생각 이상의 오락거리가 돼준 것이 이 책이었다.

미국과 같은 나라에선 민주주의가 모자란 것이 아니라 너무 넘쳐나서 문제라는 것, 반대로 제3세계의 경우 ‘경제 수준에 맞지 않는 민주주의’가 문제라는 것, 민주주의와 GDP의 관계 등등, 제3세계 가난한 나라들을 방문할 때마다 머리 속을 맴돌았던 물음표들이 느낌표로 바뀌는 것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요는, ‘넘쳐나는 민주주의’ ‘과도한 민주주의’의 모순이 왜 생겨나느냐 하면,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이해가 종종 잘못돼 있기 때문이다. 문맹들 잔뜩 모아 투표소에 집어만 넣으면 민주주의가 완성되느냐, 무조건 공개행정 다수결만 하면 유권자들에게 진실로 이익이 되는 행정이 이뤄지느냐 하는 얘기. 읽은지 오래돼서 머리 속에 정리가 잘 안 되는데,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을 듯. 한글판으로 다시 나와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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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8-01-04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기억엔 러시아어로도 번역돼 있습니다.^^

딸기 2008-01-05 00:00   좋아요 0 | URL
절 놀리시는거죠! ㅋㅋ

로쟈 2008-01-05 09:37   좋아요 0 | URL
제 말씀은 지명도 있는 책이라는.^^;

딸기 2008-01-05 10:28   좋아요 0 | URL
푸하하 그런 뜻이었군요 ^^

2008-01-08 0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딸기 2008-01-08 07:22   좋아요 0 | URL
오옷 땡큐땡큐... 당장 저기로 가봐야겠네요.

jsa7723 2013-02-17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구할 곳 없을까요
 
[블루레이] 빅 피쉬
팀 버튼 감독, 이완 맥그리거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매사 유행에 뒤떨어지다 보니... 난 이런 영화가 있다는 걸 어제 처음 알았다. ^^;;

알고 보니 꽤 알려진 영화인 듯. 팀 버튼, 이완 맥그리거, 제시카 랭... 내가 알고 있는 이름만 해도 이렇게 셋 씩이나 등장하는 걸 보면 '네임 밸류' 면에선 그런대로 괜찮은 영화인가보다. 암튼 나는 어제, 2007년12월25일, 크리스마스를 집에서 빈둥거리며 이 영화를 처음 접했다. 내게는 신작이고, 새로운 발견이고, <놀랍도록 흥미진진하며 모험 가득한 팬터지>였다.




물고기 한마리 등장하지 않는, 이 영화에 참 잘 어울리는 포스터

 

팀 버튼의 영화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데도 이상하게 '결과적으로' 팀 버튼의 영화를 자꾸만 보게 된다. 이 영화 <빅 피쉬>는 팀 버튼의 작품인 줄 아예 모르고서 우연히 보게된 것이니 딱 그 케이스에 해당된다.
영화 보고 몇년 지나서야 그게 팀 버튼의 작품인 줄 알게 됐던 것들도 있다. 예를 들면 <비틀 주스>와 <가위손>, <배트맨> 같은 것들이 그랬다. 그 중 <배트맨>은 너무 재미있고 으스스하게 보아서 그 충격이 오래오래 갔었다. <비틀주스>와 <가위손>은 '정말 희한한 영화네...' 하면서 봤는데 지나고 나서 두고두고 곱씹어보니 어쩐지 내 취향인 것 같다, 하는 그런 영화들이었다.
팀 버튼의 영화인줄 알고서 일부러 '골라 보고' '깔깔 웃으며 보았던' 유일한 작품은 <슬리피 할로우>였다. 그 시절에 왜 굳이 분위기 쭈글쭈글한 신촌의 비디오방에서 그 영화를 봤는지는 지금도 스스로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영화를 보고 나서 처음으로 내가 팀 버튼의 영화를 은근히 좋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릴적 <킹콩> 이래 처음 다시 보는 듯한 제시카 랭(왼쪽 두번째),
<브래스트 오프> 이래로 역시나 처음 보는, 못알아볼 정도로 변한 이완 맥그리거(오른쪽 두번째)
왜 이 사진에서 남자주인공 옆에 있는지 알수 없는 미묘한 여성 배역(맨 오른쪽)...


<빅 피쉬>는 내가 보았던 팀 버튼의 영화들 중엔 가장 쉽고 재미있고 따뜻하다!
좀 보태어 말하자면, 영화를 즐기지 않는 내겐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갈 '내 취향 판타지'로 기록될 것 같다. 뻥쟁이 아버지의 되도 않는 모험담을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듣고 자란 한 아들, 그것도 직업이 UPI통신 기자(매우 도식적입니다그려)인 아들. 평생 허풍떨다 지쳐 몸져누운 아버지. 영화는 아버지의 회상, 아버지의 상상, 아버지가 아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아버지가 자신을 따르는 착한 며느리에게 전해주는 이야기 등등으로 직조돼 있다.
멍텅구리 샌님 아들녀석이 건져올린 아버지의 인생, 그리고 영화의 테마는 결론만 놓고 보면 단순하다. 커다란 물고기를 잡는 것으로 시작해 평생 모험의 바다를 헤치며 다니다가 결국 고향의 강물로 돌아가는 아버지의 인생, 그가 살아온 시대 자체가 결국은 거대한 판타지였단 말이다, 이 녀석아...


저렇게 큰 사람이 정말 있었다는게 놀랍다!!!







사랑을 발견하면 시간이 갑자기 멈추고, 사랑을 잡으려하면 갑자기 시간은 빨리 지나가버린다









집채보다 큰 괴물과 눈에 유리알을 낀 마녀, 유령 마을과 샴 쌍둥이 미녀, 서커스, 로맨스, 전쟁과 시인과 은행강도.
참 잘 짜맞춰진 스토리와 영상들, 폴 오스터의 소설들보다도 더 환상적인 '미국판 마술적 사실주의'. 그러면서도 현실을 살짝 비웃어주는 듯한 팀 버튼의 묘한 센스. 아, 진짜 환상적인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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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없는 의사회 - 인도주의의 꽃
엘리어트 레이턴 지음, 박은영 옮김, 그렉 로크 사진 / 우물이있는집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국경없는 의사회(MSF)에 대한 책을 읽은 김에 한권 더 펼쳤는데, 중간중간 유럽식 통찰력(사실 이 책의 두 저자는 <지구의 절망을 치료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캐나다 출신들이다)을 보여주는 인상 깊은 구절들이 있긴 하지만 재미는 떨어졌다.

르완다 인종학살이 일어나고 1년 반 정도 지난 1996년에 아프리카를 찾아가 MSF의 활동을 직접 보고 쓴 책이라는데 내용은 거의 르완다에 국한돼 있다. 르완다의 당시 상황을 열심히 전달하려 한 것은 좋았고, 감동적인 혹은 눈시울 시큰하게 만드는 부분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MSF의 안팎을 생생히 들여다보고 썼다 하기에는 너무 피상적이다. MSF의 누구누구는 이러저러하게 말했다, 이러저러하게 행동했다는 이야기를 반복해 밀도가 너무 떨어진다. 후반부에서 MSF의 고민을 많이 조명하려 애쓰긴 했지만 지지부진하다.

어설픈 르포 기자들 기사 쓰듯, ‘자기 얘기’가 얼토당토않게 들어가 있어 황당하기까지 하다. 르완다의 어느 마을에서 만난 MSF 의사가 불친절했다, MSF의 어떤 사람은 회의를 하면서 시끄럽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뭐 그런 것들. 특히나 맨 마지막 부분. 저자가 집으로 돌아와 ‘마음의 상처’를 상담하려고 캐나다 MSF 상담의사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퉁명스럽게 끊어버려 고립감을 다시 한번 느꼈다며 책을 맺는데, 좀 어이가 없었다.

번역도 그렇다. 다른 건 말고, 존 버거를 존 베르거라고 썼다든가 미군이 2차 대전 뒤 깃발 꽂았던 일본 이오지마를 ‘이워 지마’라 해놓고 버젓이 괄호 열고 나이지리아 지명이라고 해설해놓은 것은 어이가 없다. 책 편집도 마찬가지. 책은 분명 캐나다의 글쟁이와 사진쟁이가 짝을 이뤄 만든 것인데 하얀 모조지 같은 지면에 흐릿한 흑백사진들로 구색 갖추려는 흔적만 냈다. 그래도 이런 책은 많이 나올수록 좋으니 참아주자.

   

전쟁은 원시사회의 발명품이 아니며, 대량학살이 아프리카 탈선의 산물은 더더욱 아니다. 대량학살은 유사 이래 늘 있어왔지만, 현대에 국한한다면 대량학살은 정치적인 동기로 유발되며, 특정 종족을 몰살시키는 형태는 다분히 유럽이 만들어낸 발명품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이 발명은 현대성의 핵심이다. 정치적인 전략으로서의 대량학살은 집단의 복종을 공고히 하고 지배계급 엘리트들의 편협한 야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대중을 흥분시켜 관심을 지배층의 결함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돌리고, 희생자의 부와 지위를 훔치며, 살아남은 이들을 억압하여 복종하게 만드는데 무방비의 소수를 상대로 한 대량 약탈과 학살보다 더 쉬운 방법이 현대 국가에게 있을까?

 

... 지그문트 바우먼은 대량학살이 전형적인 현대적 형태의 ‘사회공학’임을 갈파했다. 즉 ‘이성적으로, 행정적으로 조직된 권력’이 개입한 ‘계획’이라는 것이다. 바우먼에 따르면 현대의 대량학살은 특정 목적을 지닌 집단살상이다. “상대를 제거하는 것은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고” 단지 “더 나은,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를 향한 큰 비전”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이 큰 비전 속에서 ‘완전한 사회’가 가능하며, 이는 투치족이나 집시, 자본주의자, 공산주의자, 동성애자, 유대인 등 치유 불가능한 방해 요소들을 제거하는 일이 전제되어야 한다. (29~30쪽)

 

왜 르완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에메랄드그린의 색조로 감싼, 끝없이 늘어선 원뿔형의 구릉과 고요하고 푸른 호수들이 기막히게 아름다운 곳에서! 르완다는 ‘원래’ 가난한 곳도 아니었다. 세계에서 가장 면적이 작고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지만 비옥한 토양과 풍부한 강수량 덕분에 인재(人災)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기근을 걱정할 일은 없는 곳이다. (36쪽)

 

르완다 사람인 관리인이 방명록을 적어달라고 했다. 망연자실해 있던 나는 “첫째가 응분의 조치, 그 다음이 화해”라는 말만을 떠올릴 뿐이었다. 나중에 차안에서 운전기사인 하산에게 내가 물었다.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투치족 사람들이 그렇듯이 사려 깊은 하산은 한참 생각한 후에 입을 열었다. “힘들겠지요. 그러나 화해할 수 있습니다. 복수를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짐승이 아니고 사람이니까요.” 나는 그의 관대한 영혼 앞에서 비틀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그 근처에서 있었던 학살에서 형제 둘을 잃은 사람이었다. (59쪽)

 

아마도 MSF 내에서 성인(聖人)의 후보자를 찾는다면 다른 곳과 하등 다를 바 없이 수도 적고, 거리가 먼 이야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그들이 MSF에 동참하게 된 동기를 들어보면 천차만별일 뿐 아니라 지극히 세속적이기까지 하다. 취직이 안 돼서, 혹은 취업 대기중이었거나, 틀에 박힌 생활에 대한 저항으로, 모험과 좀더 의미 있는 일에 대한 갈망으로 뛰어든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몇몇은, 산업화되고 안보가 철저한 나라에서 권태로움을 느낀 부유한 사람들이, 자신들이 입힌 새디즘적인 상처에 환자용 변기와 붕대를 제공하고 약을 조제하고 처방하는 삶을 그리워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고단한 임무를 수행하면서 느끼는, 개인적이고 내밀한, 드물게는 매우 명료한 만족감이 이들을 이 일에 묶어두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70쪽)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꼬마들이 계속 내 주위를 뱅뱅 돌며 틈만 나면 내 손을 잡는 겁니다. 의지할 사람이 필요한 거죠. 아마 그게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79쪽)

 

현대사회의 불신은 너무 뿌리 깊어서, 알베르트 슈바이처가 다시 살아나 자신의 대의를 아프리카의 오지 병원으로 확산시키거나 테레사 수녀가 생애를 바쳐 캘커타의 빈민들에게 봉사한다 할지라도 그들의 명성에 해를 입힐 산업이 일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들은 곧장 문화 아이콘이 될 것이며, 동시에 이들에 대한 역습도 준비될 것이다. 그들의 수과 목적이 권위주의적이며 심지어 민족중심주의적이며 괴벽스럽다는, 그래서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말이 어디선가 나올 것이다. 누군가 자신의 삶을 가난한 아이들을 돌보는데 바친다면, 아니 그럴 기미만 비쳐도 그는 아이들을 학대하는 소아 성애자가 되어버릴 것이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정신이다. 노출되는 순간 변질되고 무력화된다. (231쪽)

 

MSF인이 된다는 것은 비인간화의 반대편으로 걸어가는 반(反) 소외의 경험이다. 멤버십은 그들을 자유롭게 하고, 행동할 기회를 잡았을 때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해방감은 자신들이 하는 일의 순수성에 대한 강한 확신, 이 단체와 그들 자신의 도덕적 우월감과 더불어 나온다. 굳건한 신념과 강한 만족감이야말로 그들의 임무를 완수할 수 있게 지탱해주는 원천이다. 잔혹과 공포를 목격하는 것, 지독한 질병을 다루는 일, 심한 상처를 치료하는 일, 간이화장실을 설치하고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일은 모두가 그들이 진실과 직면하고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목적성과 도덕적 순결성을 가지고 행동하다보면 다른 딜레마들은 모두 자연스럽게 풀린다. (101쪽)

 

MSF인들은 일단 행동하고 나중에 질문하기 때문에 국제원조운동의 무모한 카우보이처럼 비쳐질 대가 있다. 그들이 보여주는 지나친 격렬함과 독신자나 가질 법한 외골수적인 태도는 많은 적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들의 행동이 부적절했다거나 잘못된 길을 들어섰다고 판단하면 순식간에 결정을 바꾼다. 그건 유엔을 그처럼 총체적 경멸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관료들의 무감각증에 사로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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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절망을 치료하는 사람들 - 국경없는 의사회 이야기
댄 보르토로티 지음, 고은영 그림 / 한스컨텐츠(Hantz)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국경 없는 의사회(MSF)에 대한 보고서. 저자는 캐나다의 저널리스트 겸 논픽션 작가이고, 번역자는 MSF에 소속돼 니제르에서 일을 했었던 소아과 전문의라고 한다. MSF라는 존재가 워낙 명성과 논란거리를 동시에 안고 있는 단체인 탓에 책이 이 단체 혹은 이 ‘운동’ 그리고 ‘윤리’를 어떻게 다룰지 자못 궁금했다.
책은 아주 좋았다. 탄생에서부터 최근(2005년)까지 MSF의 안팎을 충실히, 격렬하고 논쟁적으로 다룬다. 비아프라에서 시작된 MSF의 역사와 르완다, 보스니아를 거치면서 쌓아올린 MSF의 활동과 핫이슈들이 망라돼 있다. 앙골라, 비아프라, 아프가니스탄, 체첸 등으로 이어지는 MSF의 ‘전선’들이 지구촌 곳곳을 가로지른다. 철망처럼 들쭉날쭉한 분쟁과 인도적 위기의 최전선에서 뛰어다니는 MSF 사람들의 숨 가쁜 호흡과 그 뒤의 고민들이 느껴지는 것 같다. 피 튀기는 분쟁의 현장에서 일했던 MSF 사람들이 겪게 되는 고통과 후유증까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요는, 방랑자처럼 떠돌아다니며 열정적으로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려 뛰는 MSF를 논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이 사람들의 ‘좋은 일’을 말하는 데에도 시간이 벅찰 텐데 왜 그들의 활동에 대해 논란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가, 어째서 MSF를 본격 소개한 이 책은 눈물 뚝 콧물 뚝뚝 떨어지는 ‘미담’이 아닌 글로벌 사회의 윤리 논쟁 백화점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는가.
비아프라 기아가 자연재해가 아닌 대량학살임을 고발(그들의 용어로는 ‘증언’)하면서 탄생한 MSF는 출발부터 논쟁을 안고 있었다. 아마도 이들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인도주의적 개입의 문제가 될 것이다.
국제뉴스를 읽으면서 사실 가장 어렵다 싶은 것이 바로 이 문제다. 개입은 옳은가. 무기 팔아 돈 챙긴 서방 선진국들이 제3세계의 고난에 인도적으로 개입한다며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옳은가. 보스니아 무슬림들을 살리기 위해 사라예보를 폭격하는 것은 옳은가, 아니면 세르비아계가 무슬림들 다 잡아죽여 갈아먹도록 놓아두는 편이 옳은가. 수단 다르푸르에 아프리카연합과 유엔이 군대를 들여보내는 것은 옳은가. 미국이 쿠르드족을 구하기 위해(지랄염병;;) 이라크를 공격한 것은 옳은가.
개입의 문제가 첨예한 논란을 불러오는 것은, 이것이 근대 이후 세계의 버팀목인 ‘주권국가’의 국경과 정면충돌하기 때문이다. 글로벌리즘과 내셔널리즘이 부딪치는 선상에서 인도주의를 위한/내세운 개입이 이뤄진다. 그리하여 인도주의는 글로벌 시대 지구촌 주민들의 사명과 책무이면서 동시에 부시 같은 놈들이 이용해대는 허울 좋은 간판이 되는 것이고, 아프리카 어린이 돕기에 단돈 만원 안 보태는 사람들까지 “구호활동 문제 많아”라는 발뺌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할일은 많은데 세계는 복잡하다.

MSF 사람들의 스토리가 전해주는 감동은 역설적이지만 바로 그 첨예한 논란의 현장에서 나온다. 일각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은 긴급구호의 와중에 ‘증언’을 하고 나설 수밖에 없는가, 어째서 그들은 ‘말 없는 자원봉사자들’이 되기를 거부하고 세상을 향해 “대량학살을 중단하라”고 외칠 수밖에 없는 것인가.
번역자는 본문 못잖게 재미있는 옮긴이 서문에서 인도주의의 정의와 한계 그리고 MSF의 존재 의미와 역동성을 정리해 놓았다. MSF는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아니라 당장 굶어 죽어가는 환자의 입에 물고기를 넣어주는 사람들이다. MSF는 에이즈를 예방하거나 전쟁을 막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누가 됐건 다치고 아픈 사람에게 약을 주고 상처를 꿰매 주는(실제로 MSF의 업무 중 상당수는 지뢰나 총격 따위로 너덜너덜해진 팔다리를 절단하는 일인 듯 보이지만) 것이 MSF의 사명이다. 그래서 그들의 일은 험하고 역동적이다. 더불어 낭만적이고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관료주의를 뒤로한 채 기민하게 빨리 움직일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번 ‘그렇기 때문에’ 긴급구호를 넘어선 개입을 요구하는 그들의 목소리는 마음을 흔들고, 더불어 격한 반응을 불러오는 것 아닐까.

문제는 MSF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나쁜 것은 인도주의자들이 아니라, 인도주의를 내걸고 남의 나라 이권 뺏으려 전쟁 벌이고 악용하는 자들이다. 인도주의적 개입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악용해 다르푸르 사태를 가리려는 수단 정권, 감히 인도주의를 입에 올리며 이라크에 인도적 위기를 가져온 부시 같은 놈들이 나쁜 것이지 MSF가 나쁜 것은 아니다. 개입을 요구하는 인도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왜 나쁜가. 제 나라 사람들 다 죽이는, 그런 나라/정권의 주권 따위가 뭐가 중요한가.
또한 개입에는 분명한 선이 있다. 합리적이고 타당한 기준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지구적인 분쟁의 시기에 이런 기준을 만드는 것은 아마도 국제사회의 최우선 과제일 것이다. 유엔을 존중하고 유엔평화유지군을 통해 분쟁지역의 치안 활동을 벌이는 것도 가능한 해법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누가 뭐래도 인도주의는 60억명 이상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구의 지상과제다. MSF가 ‘지구의 절망을 치료할 수 있느냐’를 묻는 것은 우문이다. “국경없는 의사회가 세계를 구할 수는 없는 일이며 오래 전에 그럴 수 있는 척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이것은 대서양에 떨어지는 물 한 방울 이상의 것이다. 이것은 구조선이다. 배가 가라앉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생명을 구하며, 더 중요한 것은 희망을 약속하는 일인 것이다.” (293쪽)

 

인도주의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로니 브로만은 “인도주의 철학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인간은 고통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는 아니라고 대답한다’”고 얘기한다. 즉 인간의 고통을 어떤 역사적 혹은 정치적 잣대로 생각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인도주의는 어떤 정치적 야심과도 거리가 멀며 오히려 이들을 경계하고 구호 활동을 하는데 있어 정치적 중립성과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는 비편파성을 근본 원칙으로 삼고 있다. 또한 로니에 의하면 인도주의는 보편적 도덕이나 모든 인간들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과 같은 거창한 과제를 짊어지지 않으며 이것은 인도주의가 유토피아에 대한 꿈이 아니라 특수하고 일시적인 현실의 한계 상황에서 희생자들의 가장 절박한 요구를 채워주는 행위이기 대무닝라고 말한다. 인도주의는 이런 면에서 최소주의를 지향한다고 할 수 있다. (8쪽, 역자서문)

 

MSF는 인도주의 구호 단체로서 중립성과 비편파성을 현장에 명시하고 있으나 필요한 경우에는, 즉 구호활동의 이상이 현실에서의 결과와 심하게 어긋날 경우에는 과감하게 철수를 결정하고 불의를 국제사회에 고발하겠다는 증언의 정신 또한 명시하고 있다. (10쪽, 역자서문)

 

청은 시에라리온에서 몇 년간 일한 한 독일인 외과 의사를 만났는데, 거기서는 수천 명이 도기를 휘두르는 반군들에게 손을 잃었다. 이 의사는 제1차 세계대전 때 개발된 크루켄버그 Krukenburg 수술을 잘 알고 있었는데 이 수술은 척골과 요골을 분리해서 가재 모양의 손을 만드는 것이다. 이 수술은 보기가 흉하기 때문에 의수를 곧바로 달 수 있는 서구에서는 시술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에라리온에서 이 수술은 불구가 된 사람들이 생산적인 삶을 일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109쪽)

 

국경이라는 말은 다른 것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동부 콩고의 도시인 부냐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헤마 족과 렌두 족과 같이 일해왔지만 그들은 서로 다른 쪽하고는 일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부족 간의 국경이지요. 지금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은 기독교-이슬람 경계선을 가로지르는 것입니다.
... 자선과는 달리 인도주의는 진공상태가 아니라 더러운 현실에서 일하는 것이기에 원칙을 가지고 일할 수밖에 없죠. 이것은 단지 순수한 실행이 아닙니다. ‘국경 없는’이라는 의미는 하나의 정신이며 언제나 추한 현실에 참여해서 뭔가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국경 없는’은 단지 카우보이식의 정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반항아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인도주의의 본질적인 요소입니다. 고통을 돌보기 위해서는 국경을 넘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153쪽)

 

우리는 내년에도 치료가 가능하게끔 노력하겠지만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을 보장하는게 MSF의 일은 아닙니다. 이것은 그 나라의 몫이죠. 종종 우리는 과거 개발 현장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향후 10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10년이 흐르면 백신이 개발될지도 모르죠. 단지 올해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자는 겁니다. (190쪽)

 

극단적인 경우에는 공적으로 정부를 비난한 후 MSF는 그 나라에서 철수해야 한다. 1985년 에티오피아와 1998년 북한에서 그랬듯이 말이다. MSF가 불완전하게나마 돌봐왔던 사람들은 철수 이후에는 전혀 의료의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비난은 최후의 수단이며 모든 다른 방법들이 실패했음을 알리는 분노에 찬 시인이다. 세계가 인권침해에 주목하게 하는 것은 MSF의 영역이 아니다. 그렇지만 고통 받는 사람들이 의교 이상의 것이 필요한데 주변에 아무도 얘기할 사람이 없을 때 혹은 의료 구호가 이용당하고 있을 때, MSF는 영역을 확장할 것이다. (2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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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7-12-12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한 번 구해서 읽어봐야겠네요. 사실 인권의 정치의 첨예한 쟁점 중 하나는 인도주의적인 개입의 문제 또는 말씀하신 대로 인권을 구실로 한 제국주의적인 개입의 문제죠. 마침 좋은 기사에 덤으로 좋은 책까지 소개받네요.
암만 해도 딸기님이 저를 사랑하긴 사랑하시는 거 같어 ... 3=3=3=3=3

딸기 2007-12-12 11:15   좋아요 0 | URL
^^
인도주의와 개입의 문제에 대해서라면, 피터 싱어의 <세계화의 윤리>를 강력 추천합니다.
덤으로, 타리크 알리 등등의 '전쟁이 끝난후'도....
코소보/보스니아 사태에 나토군 폭격이 옳았나... 옳다, 그르다 말하기 참 어려운 문제이지요.

물만두 2007-12-24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딸기 2007-12-25 10:42   좋아요 0 | URL
어머낫, 이번에도 언니 덕에 알게되었어요. 울랄랄라~ 캄사~~~

마노아 2007-12-26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참 언니 축하해요~ 금년에 두 번 된 거죠? 크리스마스 선물 되었어요. 히힛^^

딸기 2007-12-26 17:04   좋아요 0 | URL
그러게. 고마워. ^^

서연사랑 2007-12-28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반가운 이름이 이주의 마이 리뷰에 떳네요^^
축하드려요~

딸기 2007-12-28 16:51   좋아요 0 | URL
서연사랑, 언제 봐도 오랜만이네... ^^
잘 지내지? 새해 복 많이 받아. :)
 
초파리의 기억 - 초파리 연구를 통해 추적한 행동유전학의 비밀
조너던 와이너 지음, 조경희 옮김, 최재천 감수 / 이끌리오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핀치의 부리>를 쓴 조너던 와이너의 책이라고 해서 무조건 샀다. 좀 허풍 섞어 말하자면 지금껏 태어나 읽은 책들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핀치>다. 그러니까 조너던 와이너의 이름은 나에겐 ‘교주’의 이름과 같은 것이니, 신도는 교주를 따를 수밖에.

이 책 역시 훌륭하다. 분량이나 밀도 면에서 <핀치>보다는 좀 모자란다 싶지만, 별 다섯 개 짜리인 것은 분명하다. 책장을 넘길수록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면서 묵직해지는 느낌. 조너던 와이너 특유의 글쓰기 비법은 대체 뭐길래, 과학책이 이렇게 문학적이고 철학적이고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일까. <초파리의 기억>이라는 한글판 타이틀은, <시간, 사랑, 기억>이라는 원제의 감수성을 영 못 쫓아간다.

 

책은 미국의 생물학자 시모어 벤저라는 사람과 그의 선학들, 후학들이 인간의 행동이라는 비밀의 문을 유전자라는 열쇠로 열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핀치>가 갈라파고스의 과학자 부부와 찰스 다윈, 그리고 핀치라는 새들을 3중의 주인공으로 내세워 진화생물학의 과거 현재 미래를 펼쳐보이고 있다면, 이 책 <초파리>는 벤저와 동료 과학자들, 그리고 초파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핀치>의 장구한 세월은 이 책에선 좀 짧은, 20세기로 줄어들었다. 갈라파고스라는 천혜의 배경은 칼텍과 MIT 등 미국 유수 대학들의 구석진 실험실로 바뀌었다. 전작의 주제는 진화의 유구한 역사와 ‘지금 이 시각에도 진행되는 진화’라는 두 가지 축이었다. <초파리>에서 주제는 좀더 세분화해 ‘행동과 유전자의 관계’로 좁아진다.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라는 것을 세상에 꺼내 보인 뒤 유전자는 ‘인간의 설계도’라는 것이 정설로 돼 있다. 하지만 사실 유전자의 이런 ‘결정력’이 인정받기까지는 마치 전쟁과도 같은, 과학자들 간의 치열한 공방이 있었다. 우생학과 나치즘 논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 논쟁은 아마도 ‘본성이냐 양육이냐’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유전자 안에 있다? 없다? 인간은 어디까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고 어디까지 자유의지에 의해 만들어지는가, 인간이란 존재의 ‘설계자’는 과연 누구인가.

벤저는 이 논쟁에서 ‘본성파(派)’의 손에 실탄을 안겨 준 공헌자다. 시간 감각 없이 게으른 초파리, 남들 다 빛을 따라 가는데 홀로 못 쫓아가는 굼뜬 초파리, 유독 머리가 좋아 학습을 잘 하는 초파리, 짝꿍을 만나도 구애를 할줄 모르는 멍청한 초파리... 이 작은 곤충의 돌연변이들을 연구하면서 벤저는 초파리의 행동을 유전자로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보였다. 행동은 유전된다! 행동은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

아빠 옆에 누워 똑같은 포즈로 다리 꼬고 누운 내 딸, 아버지와 똑 닮은 모습으로 걷는 우리 오빠. 행동의 어떤 패턴이 유전된다는 것을 사람들은 약간의 관찰로도 알 수 있지만 사실 “행동은 유전된다”고 말할 수 있기까지 서양 과학사에선 격렬한 논란이 있었다. 과학사에서 뿐이랴. 행동과 유전, 재능과 유전, 지능과 유전. 이렇게 확장해서 나가면 결국 우리는 ‘현대사의 원죄’ 격인 우생학과 홀로코스트, 인종차별과 성차별의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서양 사람들과 달리 우리는 그런 고통의 역사에서 좀 다른 길로 비껴왔기 때문에 실감이 잘 나진 않지만 지금까지도 유전자와 행동, 즉 ‘본성’의 문제는 서양 학계에서는 아주 민감한 사안이다.

Seymour Benzer in his Lab.
The test tubes most likely contain both fruit flies and food for them.



시모어 벤저를 전면에 내세우고는 있지만 사실 이 책의 주인공은 벤저를 중심으로 그 앞뒤에 위치한 여러 학자들이다. 초파리의 아버지 허버트 모건과 사회주의 우생학에 경도됐던 허먼 멀러, 유전자 지도의 창시자 앨프레드 스터티번트, 대륙을 건너뛰며 원자물리학에서 생물학으로 전향한 막스 델브뤼크, ‘사회생물학’으로 ‘본성-양육 논쟁’의 포문을 열었던 이슈메이커 에드워드 윌슨, 그에 반대하며 ‘좌파적 진화론’을 펼친 리처드 르원틴, ‘이기적 유전자’의 리처드 도킨스, 머리는 좋았지만 성격이 지랄 같고 돈독 오른 제임스 왓슨 등등  현대 생물학의 쟁쟁한 거장들이 이 책에 모두 등장한다. 리처드 파인만, 폴 디랙 같은 유명한 물리학자들도 조연으로 간간이 얼굴을 내비친다. 업적을 줄줄이 나열하는 식의 소개가 아니라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된 생생한 일화들이다 보니 저 인물들의 에피소드를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다.

 

앞머리에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의 추천사가 들어있다. 이 책에 최교수의 추천사가 없으면 안 되지. 최교수는 <핀치>에도 추천사를 썼지만, 특히 이 책의 내용을 읽은 뒤엔 추천사를 안 쓰고는 못 배겼을 것이다. 도킨스와 굴드, 윌슨과 르원틴을 편갈라 놓고 보자면 이 책의 도킨스 편, 윌슨 편이다. 르원틴 식의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는 이론은 선험적 좌파론에 불과할 뿐, 과학적 진실과는 맞지 않는다. 본성은 있다! 유전자는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행동은 유전된다!
본성-양육 논쟁 외에 이 책의 또다른 숨겨진 주제 중 하나는 분자생물학과 동물행동학의 갈등이 될 것이다. 밖에 나가 주구장창 개미나 들여다보는 과학자들과, 실험실에서 DNA를 연구하는 ‘첨단’ 분자생물학자들. 윌슨은 전자이고 왓슨은 후자다. 오만방자한 왓슨이 하버드 교수 재임용 탈락한 뒤 노골적으로 윌슨을 거론하며 화풀이를 해댔단 얘기를 최교수에게서 들은 적 있다. 그리하여 개미들의 아버지인 윌슨은 본성-양육 논쟁에선 르원틴의 맞수였고 동물행동학과 분자생물학의 싸움 아닌 싸움에선 동물행동학의 대변자였다.
이 책의 주인공은 윌슨이 아닌 시모어 벤저이지만, 벤저는 ‘본성파’이고 또한 분자생물학에서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 동물행동학으로 향해간 사람이다. 그러니 윌슨의 제자인 최교수가 이 책에 써놓은 앞글은 학계 전문가의 의례적인 칭찬이 아닌 구구절절 마음이 담긴 추천사가 됐을 수밖에.

 

책이 주는 재미는 이렇게 여러 가지다. 유전자와 행동의 관계, 비밀의 문을 조금씩 열어가는 과학자들의 이야기가 첫 번째 재미. 두 번째는 스타 과학자들의 캐릭터가 그대로 드러나는 일화들을 읽는 재미. 세 번째는 최교수가 추천서에 쓴 대로 ‘공부하고 있는 줄 모르면서 배우는 재미’, 즉 진화학과 동물행동학, 분자생물학에 대해 나도 모르게 배우는 재미. 인류에게 화두를 던져놓고 초연히 자신의 길을 가는 노과학자 벤저의 모습은, 네 번째 재미이자 감동으로 남는다.

사족을 붙이자면, 마틴 브룩스의 <초파리>라는 책도 국내에 번역돼 있는데 유전학-진화생물학 책들을 통해 앞서 주워섬긴 과학자들 이름에 익숙해지지 않은 독자라면 그 책을 먼저 보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 와이너의 <초파리>보다 덜 문학적이지만 버금가게 재미있고, 더 박진감 넘친다는 장점이 있다.


   
  양자물리학자인 파인먼은 벤저의 실험실에 찾아가 자신의 아들에게 초파리의 뇌를 보여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벤저는 아이를 현미경 앞에 앉히고 “이 뇌 속에는 트랜지스터가 10만개나 숨어 있단다” 하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아이의 머리 위로 그 아버지에게 고갯짓으로 동의를 구했다. 물리학자 대 물리학자로서 말이다.
그러나 파인먼은 이렇게 말했다. “아니, 아니지. 똑바로 말해주게. 저건 트랜지스터가 아니라 신경세포야. 지나치게 단순화하지 말게.” 벤저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파인먼이 옳았다. 신경세포는 실제로 트랜지스터보다 훨씬 복잡한 것이고 유전자에서 신경세포로, 그리고 신경세포에서 행동으로 이어지는 길은 전자에서 라디오나 컴퓨터로 이어지는 길보다 길고 비밀스럽다.
 
   

 

   
  슈뢰딩거는 ‘델브뤼크의 모형’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 주제로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썼다. 사실 델브뤼크의 연구는 그때까지 물리학과 생물학 사이에 존재하던 벽과 전쟁 때문에 몇 십 년 동안 빛을 보지 못한 상태였고, 슈뢰딩거 역시 델브뤼크의 파지 연구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그런데도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유전자 문제를 ‘풀 수 있는 문제’로 각인시킴으로써 당대의 젊은 과학자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전쟁 중에 광산으로 피신해 있었던 젊은 물리학자 프랜시스 크릭은 영국 해군 본부의 요새로 알려진 창문 없는 방에서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생물학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시카고대학교에 재학중이던 제임스 듀이 왓슨도 이 책을 집어들었다. 그는 조류학을 전공하고 있었는데,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읽는 순간부터 유전자의 비밀을 캐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훗날 이야기했다. ... 에드워드 윌슨은 앨라배마대학교에서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왓슨이나 크릭, 벤저와 똑같은 감동을 받았다. 윌슨과 왓슨 두 사람은 과학이 추구하는 목표가 행동원자의 탐구라는 믿음에 남은 생애를 바치게 된다.
 
   

 

   
  “1950년대와 60년대에 아직 어렸던 왓슨은 내가 그때까지 살면서 만나본 가장 재수 없는 인간이었다”고 윌슨은 회상한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유전자는 지구에 살고 있는 생물들의 조상이 갖고 있는 기억이다. 우리는 세 가지 정보 없이는 손가락 하나도 들어올릴 수 없다. 세 가지 정보란 현재 우리의 감각이 보내주는 정보, 과거에 우리의 감각이 보내주었던 정보, 그리고 지구에 생명이 시작된 이래로 우리의 조상들이 습득한 정보, 즉 유전자로 대표되는 정보를 말한다. 진화는 학습이다. 개체가 뇌에 학습을 저장하고 사회가 책에 학습을 저장하는 것처럼 종(種)은 염색체에 학습을 저장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학습하고 기억하는 능력이 곧 기억이다. 그것은 생명이 시작된 순간부터 대대로 전해 내려온, 시간 감각만큼이나 오래되고 번식 본능만큼이나 오래되었을 발견의 기억이다.

 

... 시간, 사랑, 기억은 경험의 세 가지 토대이며 행동의 금자탑을 지지하는 세 가지 초석이다. 벤저와 그의 연구원들은 초파리실에서 연구하던 초기에 벌써 이 세 가지를 모두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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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숙명의 숙명론: 최재천 교수에 대한 나의 애증의 궤적에 관하여
    from 급진적 생물학자 Radical Biologist 2008-09-16 18:14 
    진취적인 지식인이 숙명론에 빠져 있다면 자가당착일 것이다. 그것은 언제나 더 나은 세상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져야만 하는 진보의 믿음을 스스로 저버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보에겐 그가 처한 상황이 일종의 제약일 수는 있을 지언정 장벽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이 진화론자들 중 정치적으로 더욱 진보적이었던 굴드와 르원틴이 유전자 결정론을 비판하게 만든 원인이었을런지도 모른다. 대학시절 교회에 다닐 때 만났던 한 맑시스트는 그가 그럼에도 불..
 
 
로쟈 2007-11-19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도'의 충정이 묻어나는 리뷰군요.^^

딸기 2007-11-19 16:49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

이네파벨 2007-11-19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안읽어볼수 없겠네요!!! 딸기님 서평만으로 벌써 저도 전도될것 같습니다. 그 유명한 핀치도 아직 안읽어봤는데...그 책 절판은 안됐나 빨리 찾아보고 주문넣어야겠네욤~

딸기 2007-11-19 16:50   좋아요 0 | URL
아니 이네파벨님이 '핀치'를 안 읽어보셨다니, 그럴수가요! 빨랑 사서 읽어보세요 ^^

마노아 2007-11-20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읽던 '퀴즈쇼'에서 핀치의 부리가 나왔는데 찌찌뽕이에요. 저도 보관함에 담아가요^^

딸기 2007-11-20 17:29   좋아요 0 | URL
핀치의 부리, 정말 너무 좋지! 이 책은, 읽다 보면 저절로 조금씩~ 조금씩 감동이 오는 책. :)

icaru 2007-11-21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성과 양육...에 대한 딸기 님의 리뷰(만, 책이 아니어서 심히 저 자신에게 유감이죠...)를 오소독소하게 읽은 일이 어그제인데.. 이 책 그것과 같은 꽈로군요~ 쩝...

딸기 2007-11-21 07:09   좋아요 0 | URL
ㅋㅋ 사실 과학책이, '문턱' 넘기가 그리 쉽지는 않아요.
그냥 저런것도 있구나, 그러셔도 되죠 뭐. 저는 원래 일 때문에 읽기 시작한 거예요. :)

군자란 2008-01-04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가을부터 우연히 딸기님이 권해준 도킨스,굴드,매트 리들리, 조너선 와이드,스티븐 핑거책들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지금 읽고 읽는것은 로버트 라이시의 도덕적 동물이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제 성격상 한번 끌리면 끝을 보는 경향이 있는데 혹 데이비드 버스의 책들은 님의 목록에 없는데 혹 취향이 달라서 그런지...오늘 욕망의 진화를 구입할까 생각하다가 진화심리학관점에서 남녀간의 성, 지위, 행동들을 해석하는 것은 도덕적 동물 과 별차이는 없을 것 같은데 웬지 망설여 집니다. 같은 이야기를 또 듣고 싶지는 않는데.....

딸기 2008-01-04 14:10   좋아요 0 | URL
저는 이상하게도 도덕, 정신, 의식, 심리 같은 것들에 관심이 적은 편이예요.
데이비드 버스의 책들은 전혀 접해보지 않았는데, 한번 찾아볼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