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중국을 찾아서 1 이산의 책 6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김희교 옮김 / 이산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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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의 건국에서부터 89년 천안문 사태까지 중국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무엇이 중국의 현대('근대'라는 말과 구분 없이 쓰겠습니다^^)를 만들었는지, 중국의 지도자들은 현대가 던져준 문제들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늙은 용처럼 무기력해 보였던 이 거대한 나라는 끊임없이 도전과 응전을 계속하면서 싸워나갔다는 겁니다. (물론 저자가 이런 구도로 서술을 하는 것은 아니고, 제가 읽으면서 받은 느낌이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그 싸움의 대상은 민족문제(명말 청초)에서부터 외세, 현대화의 난제들, 공산당 내부의 사상문제까지 다양합니다. 싸움의 형식 또한 대장정에서 사상운동까지, 여러가지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싸움의 지도자들은 때로는 권력에 눈 멀어 조국과 민족보다 정쟁에 몰두하는 일도 있긴 했지만, '스스로의 손으로 역사를 만들어간' 거인들이었습니다.

1권은 명 말기와 청초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외세와의 투쟁'을 주로 다룹니다. 2권에서는 국공 대립과 공산정권 수립 이후의 과정을 설명합니다. 본격적인 중국 역사서를 읽은 것은 처음인데, 이 정도로 잘 쓰여진 역사책을 찾아보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자료와 예시가 정말 충실하고, 저자의 평가와 감상이 인상적으로 결합돼 있습니다. 아주 재미있습니다. 이렇게 방대한 자료를 꿰어서 진주같은 저서를 만들어낸 저자의 능력, 학자적 식견, 깊이와 열정 모두 존경스럽습니다. 번역도 훌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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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아, 그 역사와 문화 역사 명저 시리즈 2
스탠리 월퍼트 지음, 이창식 신현승 옮김 / 가람기획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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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2학년 때, 인도미술사를 한 학기 배웠었다. 그 강의 중에 데이비드 린 감독의 '인도로 가는 길'이라는 영화를 봤다. 인도에 대해서도, 미술에 대해서도, 영화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별로 없었던 나는 거의...이해를 할 수 없었다.

마침 그 때 기숙사에서 나와 함께 지내던 룸메이트 선배가 인도종교-즉, 요가를 전공한 종교학과 대학원생이었는데 인도인 혼혈이라 해도 될 정도로 외관상 인도인과 비슷하고 인도에 푹 빠져있던 사람이었다. 이 선배는 방안에서도 인도 향을 피우고, 인도 그림(천에 그린 총천연색의 세밀화)과 인도 사진을 붙여두고, 거꾸로 서서 요가 수행을 하는 분이었는데 과연 그 학기의 나의 생활은 '인도의 香과 함께'라고 해도 될 만했다.

가끔 학교에 인도 전통의상을 입고 갈 만큼 인도인이나 진배없는-틀림없이 전생에 인도인이었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그 선배가 영화 '인도로 가는 길'에 대한 해석을 해주었는데, 풀이가 그럴듯했다. 영국 장교의 약혼자인 여주인공이 식민지 인도에 와서 인도의 미술(성애를 묘사한 카주라호의 사원조각 등)을 보고 자기 내면의 성적인 욕구를 느끼는 장면이 나오는데, 서양인들에게는 당시 인도의 저런 미술품을 통해서 性과 욕망의 분출을 느끼는 것이 곧 '인도를 발견하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강석경을 비롯해서 인도에 대한 책이 여럿 나오고 인도 바람이 불고 또 주변에 인도에 다녀온 사람들이 제법 있지만, 나는 인도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이나 궁금증을 가져본 적은 사실 없다.

'인도학'에 있어서는 석학 대접을 받는다는 미국 학자 스탠리 월퍼트가 낸 '인디아, 그 역사와 문화'라는 책을 읽었다. 마지막 장을 덮은 뒤 며칠이 지났는데 서평을 올리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막상 그러지를 못했다. 아주 맘에 드는 책이었는데, 이 책이 준 단상들이 여러가지여서 그랬는지, 생각이 정리가 안 됐다고나 할까.


아직 한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나는 '인도'라는 말을 들으면 사진에서 본 갠지스강물에 몸을 담근 사람들이나 타지마할의 하얀 대리석이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 라마야나를 소재로 한 총천연색의 그림이나 크리슈나를 그린 라지스탄의 그림들이 생각난다. 미술사 시간에 슬라이드로 본 그림이 머리 속에 너무 강하게 틀어박혀서 그런 걸까. 그 때 라마야나 요약본을 찾아읽었는데, 줄거리는 잘 생각 안 나지만 아주 재미있었다는 것은 기억한다. 까무잡잡한 남자와 여자, 나무 그늘, 원숭이, '브라흐마 다다 왕이 비나레스를 다스릴 적에'로 시작하는 인도의 민담들.

월퍼트가 들려주는 인도이야기는 그런 단편적인 이미지들을 쭉 꿰는 실과 같다. 인도의 자연과 신화, 종교, 사회상, 현대까지의 역사를 줄줄이 읊는데 쉬우면서도 재미있어서 노학자로부터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특히 이 사람은 인디라 간디, 네루, 진나 같은 인도의 대표 인물들을 직접 만났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 인물평을 듣는 것도 재미있다. '네루의 얌전한 딸'에서 유능한 정치가로, 독재자로, 다시 '인도의 어머니'가 된 인디라 간디 이야기라든가 신념을 가진 지도자 네루 이야기 따위는 다른 역사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증언이나 마찬가지여서 아주 인상적이었다.

또 인도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의 분쟁을 다루면서도 몇년에 몇 명이 죽었네 하는 사실들만 나열해놓은 것이 아니라 배경을 저절로 이해할 수 있게끔 설명해놨다. 다만 90년 정도까지의 상황만이 담겨져 있어 그 이후 10년간의 역사는 업데이트 되지 않은 것이 아쉽긴 하다.

어느 한 나라, 그것도 인도처럼 거대하고 깊은 나라에 대해 저자가 보여주는 통찰력도 놀랍다. 통찰력은 기본적으로 식견에 비례하겠지만 월퍼트의 경우에는 인도에 대한 깊은 애정이 또 하나의 바탕이 되는 것 같다. 애정과 거리두기를 동시에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은 저자의 뛰어난 문장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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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 유전자
매트 리들리 지음, 신좌섭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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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놈>의 작가 매트 리들리의 최신 저서입니다. 원제는 'The Origins of Virtue'. 우리 말로 한다면 '미덕의 근원'이고, 좀더 정확하게 뜻을 살펴본다면 제 생각에는 아마도 '선행의 근원', '인간은 왜 착한 일을 할까'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전작인 <게놈>(제 짧은 소견으로는, 과학서적 중 최고봉이 아닌가 싶습니다)에 비해 독자의 층을 확 넓혔습니다. <게놈>이 전문서적의 냄새를 풍긴다면, 이 책은 '유전자의 문제'를 사회 전반의 문제로 확장시키고 있거든요.

사이언스북스에서 붙인 '이타적 유전자'라는 제목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대비되는 것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죠. 아주 잘 붙인 제목입니다. 사실 리들리는 논쟁의 선(line) 위에서 놓고 보자면,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론'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정반대의 '이타적 유전자'라는 제목이 어울리느냐. 유전자의 '이기적 속성'(자신을 끝없이 복제해서 대를 잇고자 하는)이 반드시 우리가 생각하는 '이기적(나쁜놈의 의미)'인 것과 같지는 않다는 거죠. 리들리 식으로 말하자면 '칭찬을 받기 위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었다 하더라도,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한 것은 어쨌든 좋은 행동이다'라는 겁니다.

인간의 유전자가 '이기적'이냐 '이타적'이냐를 따지는 것도 재미는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들에게 유사 이래 전해내려오는 협동심과 착한 마음 같은 미덕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그것들이 인간의 '번성'에 도움이 됐다는 겁니다. 어찌 보면 인간 유전자의 이기적 속성(살아남기 위해서는 가끔은 서로 도와야 할 때도 있다, 그러니까 돕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인류사회의 발전을 위해 더 중요하다는 얘기. 성선설과 성악설의 문제를 유전자(본능)의 차원에서 쉽고 재미있게 다뤘기 때문에,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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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 21세기를 지배하는 네트워크 과학
알버트 라즐로 바라바시 지음, 강병남 외 옮김 / 동아시아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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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다가 재미없다가 또 재미있다가 다시 재미없어졌다가 했는데, 과학저술로서 아주 탁월한 것은 아니지만 결론적으로는 <재미있었다>.

책은 복잡한 네트워크들이 어떤 구조를 갖는지, 취약점과 강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네트워크 연구가 왜 중요한지를 설명한다. 네트워크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개념들을 아주 쉽고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는데다, 실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웹과 같은 친밀한 네트워크와 종래의 각종 수학퍼즐들을 소재로 풀이하고 있어 사전 지식이 전혀 없이도 읽을 수 있다.

점(노드)들이 있고, 점들을 잇는 끈(링크)들이 있다. 점과 점들이 끈으로 연결돼 그물(네트워크)을 형성한다. 점들의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동시에 그물 자체도 커진다(성장).
점들 중에는 인기있는 것들(허브)이 있는가 하면, 별볼일 없는 점들도 있다. 대다수는 이런 별볼일 없는 점들이지만 몇개의 허브는 아주 많은 연결망을 갖고 있어서 네트워크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20:80).

재미난 것은, 저자가 네트워크 연구의 역사를 설명하고 풀이해주는 방식 자체가 위에서 단순화시킨 네트워크의 특징적 구조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우선 비슷비슷한 점들로 이뤄진 특색없는 그물(노드1-무작위적 네트워크)에 대해 알려준다. 노드1에 머무는 동안 독자들은 그물망을 구성하는 기본개념들과 함께, 네트워크에 주목하기까지 19세기말부터 과학자들이 어떤 노력들을 기울였는지를 맛있는 과자(에피소드들)를 먹으면서 배울 수 있다.

노드2. 네트워크의 점들은 아무렇게나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기준에 따라 연결된다. 왜? 점들이 몽땅 똑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인터넷의 바다를 매일매일 항해하지만 아무 곳이나 내 홈에 링크시키지는 않는다. 나의 취향에 따라, 내가 필요로 하는 정보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즐겨찾기를 만든다. 그런데 새로 홈페이지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으니 전체 인터넷이 성장하는 것은 물론, 나의 즐겨찾기 자체도 갈수록 늘어난다.

몇개, 사실은 상당히 여러개의 허브를 가진 이 그물망이 <척도 없는 네트워크>다. scale-free를 혹자들은 <축척이 없는>이라 번역하던데 이 책에서는 <척도 없는>이라는 말을 썼다. 직역한 말 말고, 더 적당한 우리식 용어가 나왔으면 좋았을텐데. 노드2에서, 독자는 네트워크에 대한 개념이 한층 진화하고 있음을 느낀다.

이어 저자는 네트워크 상의 불균형(부익부 빈익빈) 문제(노드3), 네트워크 이론과 양자역학의 만남(노드4), 네트워크의 생존력과 취약점(노드5) 들을 차례로 풀어나간다. 네트워크라는 신기한 동물을 보자기로 가려놓은 뒤 살짝 밑단을 올려 먼저 다리를 보여주고, 그 다음 엉덩이까지 보여주고, 관객들이 '우와~'하며 감탄할라 치면 배랑 가슴을 보여주면서 '지금껏 본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며 머리까지 보여주는 식의 서술방식. 읽는 재미가 있는 것은 이런 이야기구조 때문인 것 같다. 여러개의 노드들을 거친 독자들은 머리 속에 링크로 연결된, <네트워크의 구조>에 대한 그물같은 지식을 얻게 되는 것이다.

아쉬운 것은 책 뒤쪽 절반에서는 긴장감이 확 떨어지는 점. 네트워크 이론은 전염병에도, 인터넷에도, 경제에도, 생태계에도 모두 적용된다는 것을 동어반복식으로 써놓고 있어 지겨운 감마저 들었다. 더우기 아직 네트워크 연구는 초기단계 아닌가.

챕터의 첫머리를 종종 '전직 항공기 승무원 개탄 듀가스는 어쩌구 저쩌구'하는 식으로 시작하는 <저널리스틱한 글쓰기>도 그다지 맘에 들지는 않는다. 이런 식의 글쓰기는 프리드먼이나 <보보스>류, 그리고 그것들을 흉내낸 최근 한국의 몇몇 사람들 글에서 많이 봤다. 작은 것에서 큰 이야기를 뽑아내는 것은 때로는 능력이지만, 이걸 논리구조가 아닌 문장 스타일에서 자꾸 사용하면 침소봉대에 입맛 물리게 만드는 부작용을 낸다. 이런 몇가지 티들만 아니라면 <링크>는 아주 훌륭한 책이 될 수 있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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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바: 리처드 파인만의 마지막 여행
랄프 레이튼 지음, 안동완 옮김 / 해나무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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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내게서 떠나가지 않는다. 오래동안 생각해오던 자금성에도 가고 싶고, 마음 깊숙한 곳에 들어있는 이집트, 이란, 이라크, 터키에도 가보고 싶고, 시원한 밤바람 맞으러 홍콩에도 가보고 싶고, 축구 보러 스페인에도 가고 싶고. 현실에서 떠나고 싶은 생각과는 좀 다르지만 어디에든 가고 싶다.

<투바-리처드 파인만의 마지막 여행>(랠프 레이튼. 해나무刊)이 가져다준 위안이 있다면, 굳이 <떠나지> 않아도 여행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지리교사인 랠프 레이튼과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 그리고 몇몇 친구들은 우연히 투바라는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냉전이 치열했던 시절, 소련의 한복판 오지(奧地)를 찾아가겠다는 발칙한 착상. 책에서는 누차 <수도 Kyzyl의 철자에 모음이 없다는 점> 때문에 투바에 흥미를 갖게 됐다고 강조하지만, 다른 저술들에서 나타난 파인만의 성향으로 봤을 때 아마도 그것은 핑계일 뿐일 것이다. 상당량의 지적 허영심과 금지된 것에 대한 도전 정신 따위가 노학자의 욕구에 불을 붙였을 것임이 틀림없다.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미국의 저명한 물리학자, 2차 대전 때 맨해튼 계획에 참여했고 80년대에는 챌린저호 폭발사건을 조사하는 정부 위원회의 자문 역을 맡았던(그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Mr. 파인만이 소련을 방문한다--그의 반국가주의, 반골 기질, 개구쟁이 정신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아이디어가 어디 있겠는가.

<투바 아니면 죽음을(Tuva or Bust!)>이라는 모토 아래 모인 일군의 사람들은 <투사모(Friends of Tuva)>(이건 번역자의 재치다)의 멤버가 되어 투바 여행을 준비한다. 사전 여러권을 징검다리 삼아 힘겹게 투바어로 편지를 쓰고, 투바와 관련된 것이라면 위성사진이든 책이든 그림이든 긁어모으고, 투바와 관계 있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고. 수년의 시간 동안 이렇게 쌓인 정보들로 이들은 투바에 다가간다.

책을 읽던 초반부에는 참 재미있어서 <아껴 가면서 읽어야지> 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중반에 접어들면서 조금 재미가 식었다. <우린 이토록 왕성한 지적 호기심으로, 이런 열정을 갖고, 이렇게 힘들여 정보를 모았다>라는 뉘앙스가 괜히 거슬렸던 까닭일까.

파인만의 풍모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것도 당초의 흥미를 반감케 했다. 책 제목에 파인만의 이름이 들어가 있고 실제 저자가 파인만에 바치는 헌사 식으로 글을 쓰기는 했지만, 80년대라면 파인만은 이미 늙어 수차례 암수술을 받았던 시기다. 때문에 이 책의 주요 줄거리를 움직이는 인물은 아니고, 배경의 큰 나무 정도로만 모습을 드러낸다.

책 읽는 과정을 나의 <재미>를 기준 삼아 그래프로 그린다면 아마도 상승-하강의 골짜기를 지나고 있었을 중반 이후의 부분(사실 별로 길지는 않은 책인데). 갑자기 다시 재미가 동했던 것은, 이 작자의 <잘난 척>이 흔한 과시욕이 아닌 장난기임을 알게되면서부터다. 투바 여행계획이 진전되는 단계들 속에 당시의 역사적 사건들을 슬쩍슬쩍 던져넣는 방식의 글쓰기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의 <여행>이 종반을 향해 달려갈 무렵, 우리의 스타 파인만은 암으로 인해 <빌려온 시간>(수술로 연장시킨 수명 만큼)을 다한채 세상을 떠난다. 담담함 속에 스며진 슬픔 같은 것을, 유머러스함 속에서 느낄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가장 큰 슬픔 아닌가. 재작년부터 계속된 파인만에 대한 내 관심도, 오늘 파인만의 죽음을 <접하면서> 슬픔과 섭섭함으로 끝을 맺었다고 하면 설명이 되려나.

정작 레이튼의 투바 구경은 책의 에필로그에만 간략히 언급됐는데,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무려 11년이나 걸렸던 이들의 모험은 충분히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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