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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인표라는 탤런트, 참 존경스럽다. 이모저모 다 존경스럽지만, 글도 참 잘 쓴다.
오늘자 문화일보 오피니언면에 실린 차인표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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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유산.

 

차인표(탤런트)


얼마전 예은이의 백일 사진을 찍었다. 예은이는 지난해 12월, 대한사회복지회로부터 우리 가정이 입양한 딸이다. 갓 찍은 예은이의 백일 사진과 8년 전에 찍은 아들 정민이의 백일 사진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보니, 둘이 참 많이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도톰한 볼살이랑, 납작한 코랑, 커다란 귀까지 참 많이 닮았다. 남매니까 닮았겠지. 한 가족이니까. 이젠 한 가족이 되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한국 사람들은 서로서로 많이 닮았다. 누구나 한번쯤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도쿄(東京)의 지하철에서도, 상하이(上海)의 백화점에서도, 태국의 공항에서도 한국 사람을 구분해 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외모가 닮고, 느낌이 닮았기 때문이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오랜 세월 동안 서로 몸을 부비며 살다보니, 어느새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닮게 된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하나의 큰 가족이니까 닮았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정민아, 넌 북한 사람들 만나면 어떨 것 같아?"

"떨릴 것 같아."

"왜?"

"무시무시하잖아. 날 죽이면 어떡해?"

"누가 그래? 북한 사람들이 너 죽인다고? 학교에서 그랬어?"

"아니. 그냥 알아. 옛날에도 전쟁 나서 사람들 많이 죽었잖아."

"그건, 아주 오래 된 옛날 일이잖아."

"하지만, 아직도 화해 안했잖아."

이 이야기는 며칠 전, 여덟 살 난 아들 정민이와 나눈 대화다. 더 이상 대화가 진행 되지는 않았다. 아빠로서 대답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민이를 태권도 도장에 보내고 되짚어 보니, 지금 정민이는 내가 아홉 살 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1년 전에 북한을 바라보면서 느꼈던 막연한 공포를 그대로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질병이나 가난에 대한 공포가 아니었다. 그것은 전쟁의 공포, 즉 사느냐 죽느냐 하는 죽음의 공포였다. 가슴에 답답함이 몰려 왔다. 그리고 지난 3월에 다녀온, 하얀 눈이 면도크림처럼 덮여 있는 백두산이 그리워졌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닮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애국가'를 부를 때면 어김없이 등장했던 백두산을 지난 3월에 다녀왔다. 중국 옌지(延吉)를 통해서 다녀왔다. `화려한 휴가'라는 광주사태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촬영중인 김지훈 감독과 나의 매니저 성 실장, 그리고 나, 이렇게 우리 일행 셋을 백두산에서 사냥꾼으로 살다가 지금은 가이드를 하는 `백두산 고무장화'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조선족과 다른 가이드 한 분이 안내해주었다.

대부분의 산은 오를 테면 올라봐라 하는 양, 가파른 경사로 하늘로 치솟아 있지만, 백두산은 나를 굽어보고 있었다. 오르기 어려운 곳은 반드시 눈의 색깔로, 돌의 크기로 이곳으로 오르지 말라 얘기를 하고 있었다. 산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길이 보였다. 우리 일행은 꽁꽁 얼어 있는 천지를 가로질러, 해발 2525m 관면봉 정상까지 올라갔다. 어떨 때는 기어서 가고, 어떨 때는 밧줄을 붙잡고 올라갔다. 봉우리 위에서 백두산 천지를 내려다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산은 정확했다.

한 발짝 움직일 때마다, 정확히 한 발짝씩 가까워졌다. 바람이 심해지면 구름이 몰려왔고, 구름이 온 후 어두워졌다. 내 평생 처음 가본 백두산. 그동안 내 인생에는 백두산이 없었지만, 백두산에는 줄곧 내가 있었다. 5000년 동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눈발을 휘날리며, 나뭇가지를 떨며, 돌멩이를 굴리며 나를 반겼다. 어서 오라고, 기다렸노라고. 왜 이제야 왔느냐며 질책하지 않았다. 외로웠다고 탓을 하지도 않았다. 그냥 거기서 묵묵히 나를, 우리를, 우리 민족을 굽어 살피고 있었다.

다시 백두산으로 갈 것이다. 그러나, 이젠 남의 나라 땅을 밟아서 가고 싶지는 않다. 당당히 우리나라, 우리 민족이 살고 있는 우리 땅을 밟아서 가고 싶다. 집사람과 정민이의 손을 잡고, 예은이를 등에 업고 친구들과, 부모님과 웃으며 가고 싶다.

북한에 내 동생이 있다면, 내 아내가 있다면, 내 자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들이 헐벗고 굶주린다면…. 내가 지금, 오늘 밤 발 뻗고 잠을 잘 수 있을까?

백두산이 가르쳐주었다. `통일이여 어서 오라'라는 노래 가사는 너무나도 틀린 가사라고. 통일은 그냥 오는 게 아니라고. 다른 나라가 선물로 줄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정치인들 한테만 맡겨 놓을 일은 더더욱 아니라고. 통일은 우리 하나하나가 손으로 직접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라고. 그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그 어떤 아픔이 있더라도, 반드시 이뤄내야 할 우리의 숙제라고.

통일은 우리 시대에, 우리가 이뤄야 한다. 왜냐하면, 내 할아버지 아버지가 물려주신 통일의 빚을, 분단의 비극을, 전쟁의 공포를 내 자식들에게까지 대물림시켜선 안되기 때문이다. 통일을 않은 채로 이 나라를 우리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건, 부도가 나 빚만 잔뜩 진 회사를 물려주는 것이며, 자식 더러 마당이 지뢰로 덮인 집에 살라는 말과 똑같기 때문이다.

내 나이 올해 마흔. 시간이 잘도 간다. 마음이 급해진다. 적당히 연기나 하면서, 가끔 기부금이나 내면서, 호주로 태국으로 좋은 곳이나 찾아다니면서 나이 들어 가기엔 하지 않고 미뤄 놓았던 숙제가 너무나 많다.

관면봉 정상에 서서 천지를 내려다보았다. 바람이 아주 차가웠다. 백두산에 유명한 칼바람이었다. 내가 생을 마감하는 날, 내 자식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은, 비싼 집이나 멋진 차가 아니라 통일된 조국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는 한반도라는 것을 바람이 말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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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6-05-13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도 잘 쓰고 생각도 올바르고 거기다 잘 생기기까지......^^

딸기 2006-05-13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이지요. ^^

마늘빵 2006-05-13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머 빠지는게 없군요. 불공평해.

paviana 2006-05-13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제 생각에 연기는 아직 좀 빠지지 않나 싶어요. ㅎㅎ

2006-05-13 2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딸기 2006-05-13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인표는 연기보다는 그 '페이소스 넘치는 눈빛'으로 먹고들어가지 않나 싶어요
**님, 그런 단체(?)는 통 모르겠는걸요?

2006-05-15 1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 동생은 훌륭한 대통령이 될 것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동생 젭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를 한껏 띄웠다. 부시대통령은 10일 플로리다 지역 언론과 회견을 가지면서 내년 초 임기가 끝나는 젭 부시 주지사가 훌륭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언론들은 부시 대통령의 이 발언을 일제히 보도, `3부자 대통령' 탄생 가능성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


▶ 너네 둘이 대통령 하면 가문에는 영광이겠지만
    60억명이 싫어하겠다


부시대통령은 이날 플로리다주 피터스버그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동생이 정치를 계속해 나중에 대선에 출마하길 바란다"면서 "당선되면 훌륭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동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른다"고 덧붙이면서 "아마 동생 자신도 아직은 (자신이 출마할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대통령은 전날 전용기 에어포스원으로 플로리다를 찾았다. 부시 형제는 플로리다에서 `대통령과 주지사'로 만나 악수를 하고 환담을 나누기도 했다.

지난해 5월에는 아버지인 조지 H 부시 전대통령이 CNN방송 인터뷰 프로그램인 래리킹쇼에 출연해 "젭이 언젠가는 대선에 도전하길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아버지에 이어 현직대통령인 형까지 나섰지만, 정작 젭 부시 주지사는 대선에 나가지 않겠다는 입장. 그는 "임기 뒤에 내가 무슨 일을 하게 될지는 아직 잘 모른다"면서도 대권 도전 의사가 없다고 거듭 밝혔었다.

 

미국의 대선은 2008년. 젭 부시 주지사의 생각이 바뀌어 대선에 도전하게 된다면, 이번 대선은 미국인들에게 가장 흥미진진한 기록 대결이 될 가능성이 높다. 힐러리 클린턴 뉴욕주 상원의원이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사상 첫 `부부대통령'으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공화당의 대항마로 거론돼온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출마해 당선될 경우 역시 첫 여성대통령에 첫 흑인대통령이라는 명예를 얻게 된다.

젭 부시 주지사가 대통령이 된다면 부시 가문은 사상 첫 형제대통령과  3부자 대통령 배출의 영광을 안는다. 공화당 유력 인사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후보로 나와 대통령이 된다면 최고령(당선되면 72세) 대통령으로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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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6-05-11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부시 제국...

paviana 2006-05-11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벌써 말만 들어도 속이 울렁거려요.

딸기 2006-05-11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앨런 2006-05-13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지구를 위해 제발 삼가해주면 좋겠어요. 어지러워.
 

미국이 태국 등 빈국들에 ‘기업 특허권 보호’를 위해 값싼 에이즈 치료제 유통을 막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명분은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자유 무역과 기업 보호를 우선적으로 내세운 미국의 요구 때문에 에이즈 대재앙까지 우려되고 있다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이 19일 아시아판 톱기사로 보도했다.


돈 없으면 죽어라

 

비싼 에이즈 치료제 대신 값싼 제네릭 약품(카피약)으로 에이즈 환자를 치료해온 태국은 미국과의 FTA 협상 때문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 1월 미국은 태국에  FTA 서명을 앞두고 제네릭 약품을 금지시킨다는 조항에 합의할 것을 요구했다고 IHT는 전했다. 미국은 제네릭 약품을 규제하고 기업 특허를 보호해줄 경우 기업들의 기술혁신을 촉진할 것이며,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약 판매가 늘어 에이즈 치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완전 미친소리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의약품 특허를 20년간 보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01년 카타르 도하에 모인 141개국은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등의 요구로 빈국에서 에이즈 치료제 특허권 보호를 유예하는 조치에 합의했다. 당시 빈국들은 에이즈 치료제를 거액에 파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에 거세게 항의하면서 제네릭 약품 생산을 선언했으며 글락소 스미스 클라인,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큅 등 거대기업들도 빈국들의 항의에 손을 들었다. 미국도 도하 선언에 동참, 에이즈 치료제 특허권 유보 조항에 서명했었다.

FTA를 빌미로 기업들에 특허권을 되돌려주려 하는 미국의 움직임에 태국 보건관리 수윗 위불폴-프라세르트는 “약을 살 돈이 없는 사람은 죽어야 한다는 논리”라며 거세게 비판했다. 태국의 에이즈 환자는 57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죽음의 거래

 

도하 선언 덕에 인도산 에이즈 치료제를 값싸게 보급해왔던 태국 측은 미국의 요구에 대해 ‘죽음의 거래’를 강요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태국은 이달 초 탁신 전총리가 물러난 뒤 미국과의 협상을 미뤄놓은 상태다.

태국 뿐 아니라 미국과 FTA를 체결하고자 하는 나라들은 모두 비슷한 문제를 겪게 될 전망이다. 미국의 조지 W 행정부는 다자간 협상이 벽에 부딪치자 각국을 상대로 쌍무협상이나 지역별 협상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언론이 자유무역의 장밋빛 신화를 유포하는 사이에 부시행정부는 독자적인 ‘특허보호 시스템’을 착착 추진해왔다. IHT는 특히 이런 협상들이 대부분 언론의 시선을 피해 비밀리에 이뤄져왔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아프리카 중부 6개국과 이미 제네릭 약품을 통제하기 위한 협정을 체결했으며 남아공과 보츠와나, 태국 등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에이즈 대재앙 우려

 

보건기구들과 각국 보건당국은 미국의 조치가 ‘에이즈 파국’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에이즈는 ‘천형(天刑)’으로 치부됐지만 치료제가 발달하면서 지금은 만성질환 정도로 치명성이 줄어들었다. 문제는 약값이다.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희생자 대부분은 비싼 약을 감당 못해 숨진다.

선진국에서 연간 1만 달러(약 945만원) 정도 들어가던 에이즈 약값은 도하선언 덕분에 빈국에서는 140달러(약 13만원) 정도로 떨어졌다. 브라질 에이즈예방프로그램의 페드로 체케르 박사는 “제네릭 약품을 못 쓰게 하는 것은 제노사이드(대량학살)을 부르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엔에이즈(UNAIDS)에 따르면 전 세계 에이즈 환자의 60%인 2580만명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살고 있고,1040만 명 이상이  아시아와 중남미 저개발국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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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4-19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는 짓들이 원래 그런 인간들이죠 ㅠ.ㅠ

paviana 2006-04-19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네들이 원래 그렇죠....

2006-04-19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6-04-19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미국답다" <- 이거 국어사전에 추가해야돼요. 미국답다.

딸기 2006-04-20 0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없는세상에서 살고 싶은데, 저놈들이 명왕성까지 탐사선을 보내놓고 있으니
다른 은하계로 이주를 하든가 해야겠어요.

++언니, 고마워요 ^^

사마천 2006-04-20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도 노무현 주관으로 FTA 준비하는데 아마 제약계 난리 날 걸요.
 

미국에서 때아닌 ‘별들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잘잘못을 놓고 전직 장성들이 사퇴론을 주장하고 나서자, 또다른 전직 장성들이 옹호론을 들고 나온 것. 쟁쟁한 전직 장성들이 경쟁하듯 방송에 출연해 장관의 거취에 대해 설전을 벌이는 상황이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백악관은 럼즈펠드 장관에 대한 신뢰에는 변함이 없다며 편들고 나섰지만 야당은 아예 이 문제로 정치공세를 벌일 태세라고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이 16일 보도했다.

 

별들의 전쟁

 

우습게도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것은, 럼즈펠드 장관과 함께 이라크 공격 여론을 주도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발언이었다. 라이스 장관은 지난달 말 이라크전쟁의 오류들을 인정하면서 “수천건의 실수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레고리 뉴볼드 전 합참 작전국장이 시사주간지 타임과 인터뷰하면서 “이라크 공격 전에 전쟁계획에 대해 여러번 문제를 제기했지만 럼즈펠드 장관은 듣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앤서니 지니 전 미 중부군 사령관을 포함해 예비역 장성 3명이 장관 비판에 동참하면서 사퇴를 촉구했다. 이들은 2003년3월 이라크공격 1달 전 "수십만 명의 미군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다가 럼즈펠드 장관에 밉보여 쫓겨나다시피 한 에릭 신세키 장군 사건을 일례로 들었다. 신세키 장군의 말은 후에 사실로 판명됐다.

럼즈펠드 장관은 지난 11일 국방부 브리핑에서 “뉴볼드는 한번도 내게 문제제기한 적이 없었다”고 맞받아쳤고, 조지 W 부시대통령도 럼즈펠드 장관에 대한 신뢰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옹호했다. 그러나 ‘장성들의 반란’은 그치지 않았다. 미 보병1사단장이었던 존 바트스트 장군, 82공수사단장이었던 찰스 스와낵 등 이라크주둔 미군을 이끌었던 예비역 장성들이 잇달아 장관의 독단과 독선을 비판했다. 이들은 “전직 장성들이 퇴역하자마자 이런 말들을 하는 것을 보면 국방부 지도부의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협박이 아닌 팀워크를 아는 장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라크전을 맡았었던 토미 프랭크스 전 중부군 사령관이 13일 방송에 출연해 럼즈펠드 장관을 지지한다고 밝혔지만 15일에는 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군 사령관을 지낸 명망 있는 예비역장성 웨슬리 클라크까지 나서서 장관 사퇴를 촉구했다. 이로써 모두 7명의 전직 장성이 국방부 장관의 사퇴를 요구한 셈이 됐다. 리처드 홀브룩 전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워싱턴포스트 칼럼에서 “해리 트루먼 전대통령과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한국전쟁 뒤 맞부딪쳤던 이래 가장 심각한 대결”이라고 썼다.

 

정치 이슈 될 조짐

 

급기야 16일에는 리처드 마이어스 전 합참의장이 ‘소방수’로 나서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는 ABC방송 대담에 출연해 “군 출신들이 ‘민간인 보스’를 비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우리(군인)는 장관에게 군사문제에 대해 최대한 조언을 했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전직 장성들의 비판에 맞서 이날 럼즈펠드 장관과 민간 군사전문가, 군 간의 협의 내용을 담은 비망록을 공개했다. 이 메모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장관이 합참과 회의를 한 것 만해도 139회에 이른다. 따라서 장관의 ‘독선과 독단’에 대한 비판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부시대통령 측은 연일 럼즈펠드 장관을 엄호하기 위한 성명을 내놓으며 편들기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장관의 거취 문제는 정치권의 논란으로 비화되기 시작했다. 민주당 대권후보로도 거론되는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주지사는 CBS방송에 나와 이라크에서 숨진 미군이 2300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들면서 “장관은 장군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미치 매커널 공화당 상원의원은 폭스뉴스에 출연해 “적어도 2001년 9·11 이후에 미국 본토 공격은 안 받았다”면서 럼즈펠드 장관을 지원했다.

 

문제는 이라크

 

16일에도 이라크에서 미 해병대원 4명이 숨졌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미국은 지난해 12월 총선을 기점으로 이라크 새 국가 출범 을 마무리할 계획이었으나 선거 뒤 넉 달이 지나도록 바그다드에서는 정부구성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올 들어 이라크 곳곳에서 벌어진 미군의 초토화 작전으로 잠시 수그러드는 듯했던 저항세력 공격은 지난달 말부터 다시 늘고 있고, 이슬람 시아파와 수니파 간 내전 양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이라크 공격 전부터 군 지도부는 "군복입은 이들은 신중한데 민간인(부시대통령과 럼즈펠드 장관)들이 나서서 전쟁계획을 말한다"며 볼멘소리를 냈었다. 하지만 부시대통령은 럼즈펠드 장관에 대한 비판이 나올 때마다 그의 편을 들며 옹호했다. 이번에도 부시대통령이 럼즈펠드 장관을 퇴진시킬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러나 럼즈펠드 장관의 최대 ‘치적’이자 ‘과오’인 이라크전 전황은 계속해서 그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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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4-17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뭐합니까 ㅠ.ㅠ 죽은 자들 살아돌아오지 못하고 자기 잘못 반성할 줄도 모르는데요.

딸기 2006-04-17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예요 ㅠ.ㅠ
 

무려 81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다가 지난달 100살로 퇴직한 미국인 할아버지가 일을 그만둔 지 20일 만에 자택에서 사망했다. "죽기 전까지 일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는 결국 소원을 이뤘으며, 성실과 검약이라는 미덕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는 14일 `81년 직장생활'로 눈길을 끌었던 아더 윈스턴(사진)이 심혈관 이상으로 전날 로스앤젤레스 남쪽에 있는 자택에서 숨졌다고 보도했다. 윈스턴은 1925년 로스앤젤레스 철도회사에서 잡역부로 일을 시작했다. 9년 뒤 시 대중교통회사인 MTA에 취직해 버스와 기차 청소를 하게 된 이래 지난달 23일 100세 생일을 하루 앞두고 퇴직하기까지 그는 단 하루 외에는 한번도 결근이나 지각, 조퇴도 하지 않아 화제를 모았었다. 그가 결근한 단 하루는 19988년 아내가 숨진 날이었다. 증손녀 브랜디 라이트는 할아버지가 "100살 되어 죽기 전까지 일을 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했었다면서 "그분은 꿈을 이루신 셈"이라고 말했다.

윈스턴은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동료들에게 귀감이 됐었다. 동료들은 아침마다 잘 다린 셔츠 차림으로 출근하는 그를 `미스터 윈스턴'이라 높여 부르며 존경했었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흑인인 그의 사회생활은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다. 젊은 시절 그는 버스 운전사가 되고 싶어 했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좌절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인종차별에 꺾이지 않았으며, LAT는 윈스턴의 지나온 생을 `미국인의 이정표'라고 치하했다.




윈스턴은 숨지기 얼마 전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그저 일하는 사람일 뿐"이라며 겸손해했다. 그는 "더도 덜도 필요 없이 바른 길을 걸으라고 내 아버지는 가르치셨다"면서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라 인생을 살아왔다고 회고했었다. 오클라호마의 농가 소작인이었던 그의 아버지도 평생 일하다가 99세로 사망했다.

순리를 따르는 윈스턴의 삶은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줬고, 주변에는 항상 도움말을 얻으려는 이들이 모여들었다. 이미 60∼70대에 접어든 `젊은이들'이 그에게 찾아와 조언을 구하거나 지나온 이야기를 듣곤 했다. 사회생활에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윈스턴이 해준 조언은 "항상 움직여라"라는 것이었다. "한 자리에 오래 머무르면 얼어붙는다, 가능한 한 몸을 움직이며 일해라." 그는 "일하는 것이 오래 사는 길"이라 말하곤 했다. 더불어 불필요한 물건을 사지 말 것과 빚지지 말 것, 과음하지 말 것, 튀긴 음식을 많이 먹거나 약을 과용하지 말 것, 운동을 맹신하지 말 것 등을 생활수칙으로 삼았으며 실제로 그러한 인생을 살다 갔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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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을뭐라하지 2006-04-21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사 못보셨는지, 이 분 돌아가셨어요.
일 그만두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윗 기사 처음 보고 친구랑 이런 저런 얘기 많이 했는데,
돌아가셨다는 기사 보고 둘다 순간 어안이 벙벙했었죠-

뭐, 그랬어요.

닉네임을뭐라하지 2006-04-21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시간 되시면
서점 한번 놀러오셔요-

아주 아늑하이 좋답니다 ㅎ

딸기 2006-04-21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저 글이 이 분 돌아가셨다는 기사인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