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인표라는 탤런트, 참 존경스럽다. 이모저모 다 존경스럽지만, 글도 참 잘 쓴다.
오늘자 문화일보 오피니언면에 실린 차인표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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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유산.

 

차인표(탤런트)


얼마전 예은이의 백일 사진을 찍었다. 예은이는 지난해 12월, 대한사회복지회로부터 우리 가정이 입양한 딸이다. 갓 찍은 예은이의 백일 사진과 8년 전에 찍은 아들 정민이의 백일 사진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보니, 둘이 참 많이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도톰한 볼살이랑, 납작한 코랑, 커다란 귀까지 참 많이 닮았다. 남매니까 닮았겠지. 한 가족이니까. 이젠 한 가족이 되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한국 사람들은 서로서로 많이 닮았다. 누구나 한번쯤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도쿄(東京)의 지하철에서도, 상하이(上海)의 백화점에서도, 태국의 공항에서도 한국 사람을 구분해 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외모가 닮고, 느낌이 닮았기 때문이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오랜 세월 동안 서로 몸을 부비며 살다보니, 어느새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닮게 된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하나의 큰 가족이니까 닮았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정민아, 넌 북한 사람들 만나면 어떨 것 같아?"

"떨릴 것 같아."

"왜?"

"무시무시하잖아. 날 죽이면 어떡해?"

"누가 그래? 북한 사람들이 너 죽인다고? 학교에서 그랬어?"

"아니. 그냥 알아. 옛날에도 전쟁 나서 사람들 많이 죽었잖아."

"그건, 아주 오래 된 옛날 일이잖아."

"하지만, 아직도 화해 안했잖아."

이 이야기는 며칠 전, 여덟 살 난 아들 정민이와 나눈 대화다. 더 이상 대화가 진행 되지는 않았다. 아빠로서 대답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민이를 태권도 도장에 보내고 되짚어 보니, 지금 정민이는 내가 아홉 살 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1년 전에 북한을 바라보면서 느꼈던 막연한 공포를 그대로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질병이나 가난에 대한 공포가 아니었다. 그것은 전쟁의 공포, 즉 사느냐 죽느냐 하는 죽음의 공포였다. 가슴에 답답함이 몰려 왔다. 그리고 지난 3월에 다녀온, 하얀 눈이 면도크림처럼 덮여 있는 백두산이 그리워졌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닮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애국가'를 부를 때면 어김없이 등장했던 백두산을 지난 3월에 다녀왔다. 중국 옌지(延吉)를 통해서 다녀왔다. `화려한 휴가'라는 광주사태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촬영중인 김지훈 감독과 나의 매니저 성 실장, 그리고 나, 이렇게 우리 일행 셋을 백두산에서 사냥꾼으로 살다가 지금은 가이드를 하는 `백두산 고무장화'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조선족과 다른 가이드 한 분이 안내해주었다.

대부분의 산은 오를 테면 올라봐라 하는 양, 가파른 경사로 하늘로 치솟아 있지만, 백두산은 나를 굽어보고 있었다. 오르기 어려운 곳은 반드시 눈의 색깔로, 돌의 크기로 이곳으로 오르지 말라 얘기를 하고 있었다. 산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길이 보였다. 우리 일행은 꽁꽁 얼어 있는 천지를 가로질러, 해발 2525m 관면봉 정상까지 올라갔다. 어떨 때는 기어서 가고, 어떨 때는 밧줄을 붙잡고 올라갔다. 봉우리 위에서 백두산 천지를 내려다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산은 정확했다.

한 발짝 움직일 때마다, 정확히 한 발짝씩 가까워졌다. 바람이 심해지면 구름이 몰려왔고, 구름이 온 후 어두워졌다. 내 평생 처음 가본 백두산. 그동안 내 인생에는 백두산이 없었지만, 백두산에는 줄곧 내가 있었다. 5000년 동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눈발을 휘날리며, 나뭇가지를 떨며, 돌멩이를 굴리며 나를 반겼다. 어서 오라고, 기다렸노라고. 왜 이제야 왔느냐며 질책하지 않았다. 외로웠다고 탓을 하지도 않았다. 그냥 거기서 묵묵히 나를, 우리를, 우리 민족을 굽어 살피고 있었다.

다시 백두산으로 갈 것이다. 그러나, 이젠 남의 나라 땅을 밟아서 가고 싶지는 않다. 당당히 우리나라, 우리 민족이 살고 있는 우리 땅을 밟아서 가고 싶다. 집사람과 정민이의 손을 잡고, 예은이를 등에 업고 친구들과, 부모님과 웃으며 가고 싶다.

북한에 내 동생이 있다면, 내 아내가 있다면, 내 자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들이 헐벗고 굶주린다면…. 내가 지금, 오늘 밤 발 뻗고 잠을 잘 수 있을까?

백두산이 가르쳐주었다. `통일이여 어서 오라'라는 노래 가사는 너무나도 틀린 가사라고. 통일은 그냥 오는 게 아니라고. 다른 나라가 선물로 줄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정치인들 한테만 맡겨 놓을 일은 더더욱 아니라고. 통일은 우리 하나하나가 손으로 직접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라고. 그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그 어떤 아픔이 있더라도, 반드시 이뤄내야 할 우리의 숙제라고.

통일은 우리 시대에, 우리가 이뤄야 한다. 왜냐하면, 내 할아버지 아버지가 물려주신 통일의 빚을, 분단의 비극을, 전쟁의 공포를 내 자식들에게까지 대물림시켜선 안되기 때문이다. 통일을 않은 채로 이 나라를 우리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건, 부도가 나 빚만 잔뜩 진 회사를 물려주는 것이며, 자식 더러 마당이 지뢰로 덮인 집에 살라는 말과 똑같기 때문이다.

내 나이 올해 마흔. 시간이 잘도 간다. 마음이 급해진다. 적당히 연기나 하면서, 가끔 기부금이나 내면서, 호주로 태국으로 좋은 곳이나 찾아다니면서 나이 들어 가기엔 하지 않고 미뤄 놓았던 숙제가 너무나 많다.

관면봉 정상에 서서 천지를 내려다보았다. 바람이 아주 차가웠다. 백두산에 유명한 칼바람이었다. 내가 생을 마감하는 날, 내 자식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은, 비싼 집이나 멋진 차가 아니라 통일된 조국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는 한반도라는 것을 바람이 말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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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6-05-13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도 잘 쓰고 생각도 올바르고 거기다 잘 생기기까지......^^

딸기 2006-05-13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이지요. ^^

마늘빵 2006-05-13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머 빠지는게 없군요. 불공평해.

paviana 2006-05-13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제 생각에 연기는 아직 좀 빠지지 않나 싶어요. ㅎㅎ

2006-05-13 2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딸기 2006-05-13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인표는 연기보다는 그 '페이소스 넘치는 눈빛'으로 먹고들어가지 않나 싶어요
**님, 그런 단체(?)는 통 모르겠는걸요?

2006-05-15 1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