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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3월 3주

    

   3월 18일에 개봉하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신작 <셔터 아일랜드(Shutter Island)>는 잘 알려져있다시피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 『살인자들의 섬(Shutter Island)』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제임스 얼로이의 '소설 영화화'는 성공과 실패의 부침을 반복하는 반면, 데니스 루헤인의 경우는 '3연속 홈런'을 기록하고 있다. 제임스 얼로이의 소설은 수많은 인간관계를 통해(그의 별명이 범죄소설계의 헤밍웨이로 불리우니 알만 하잖은가) 사건의 핵심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영화화가 쉽지 않은 반면, 데니스 루헤인은 사건이 벌어진 시대의 분위기를 담는다. 바로 그런 점이 영화 감독들의 구미를 당기지 않았을까?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아 그저 기대할 뿐이지만, 영화 역시 소설의 기본 설정을 그대로 따라간 것 같다. 대신 마틴 스콜세지라면 소설의 줄거리를 따라가기 보다는 아마도 주인공 테디 보안관의 심리 상태와 1950년대의 미국을 감싸고 있던 '서로 의심하는' 매카시즘의 공포를 적절히 배합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스토리는 오래전에 합격점을 받아놨으니 스콜세지 감독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데리고 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놓았는지 지켜볼 일만 남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미스틱 리버(Mystic River)>를 칸 영화제에서 발표했을 때, 한 기자가 그의 전작인 <블러드 워크(Blood Work)>(이 작품은 『시인』으로 유명한 마이클 코넬리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와 <미스틱 리버>간에 영화적 완성도의 간극에 대해 묻자 이스트우드 옹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소설에 있는 대로 찍었을 뿐입니다." 이스트우드 감독은 고정된 팀으로 영화를 찍어왔는데, <블러드 워크>와 <미스틱 리버> 모두 브라이언 헬겔랜드가 시나리오를 작업했다. <블러드 워크>가 매끈한 스릴러였다면, <미스틱 리버>는 매끈한 스릴러에 셰익스피어적 비극이 깃들여 있다. 친구들간의 우정,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 봉합되지 못한 편견이 한데 어울려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직조해나가기 시작한다. '매끈한 스릴러 상업영화'임에는 분명하지만, 이 영화에는 인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커다란 "울림"이 깃들여 있다.  

   숀 펜, 팀 로빈스, 케빈 베이컨, 로렌스 피시번 등 '연기 좀 하는' 배우들이 한데 모여 다그치고 울부짖고 서로 의심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모골을 송연하게 만든다. 이 영화로 숀 펜과 팀 로빈스가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과 조연상을 수상했는데, 상이 더 있었다면, 아마도 나머지 배우들도 수상했을 것이다.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적 점핑은 데니스 루헤인의 『미스틱 리버』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그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 <아버지의 깃발>,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등으로 계속 점핑을 해갔다.

 

         

   그런면에서 벤 에플렉의 감독 데뷔작 <곤 베이비 곤(Gone Baby Gone)>은 평가를 조금 유보할 필요가 있다. 이 영화 물론 굉장하다. 벤 에플렉은 비록 배우로서 많이 소비되었지만, <굿 윌 헌팅>의 시나리오를 생각해보면, 작가/감독의 능력 또한 기대할만 하다. 하지만, 그는 너무 안전한 선택을 했다.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은 '헐리우드'라는 시스템에서 영화를 찍는 그 누구라도 '그럴듯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소재다. 거장들이 변주를 하거나 삶의 통찰을 끌어낼 수도 있는 영화를 그는 매끈한 영화로 만들었다. 걸작이라 하기에는 데니스 루헤인의 이름이 너무도 거대하게 자리잡고 있다. 아마도 벤 에플렉의 감독으로서의 평가는 올해 공개될 <The Town>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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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화진문화원이 목요 강좌를 개설했다고 합니다. 저번주 3월 10일에 이어령 선생님의 강좌가 시작됐고, 매주 목요일 저녁 8시에 흥미로운 주제와 흥미로운 강사님들의 강의가 진행됩니다. 

   3월 18일에는 박완서 선생님의 <나는 왜 소설가일 수 밖에 없나?> 강연이 준비되어 있고, 그 다음주에는 김훈 선생님의 <자전거 타기의 즐거움> 강연이 있습니다. 관심있는 강의를 골라 들으셔도 될 듯 합니다. (전 이번주 다음주는 필히 참석할 듯 ^.^;)

   자세한 사항은 양화진 문화원(www.yanghwajin.re.kr)에 들어가시면 알 수 있습니다. 

 

 

   
 

               2010 양화진 목요강좌

               시간: 매주 목요일 오후 8시
               장소: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선교기념관
               진행: 김종찬 (전 KBS 집중토론 사회자)
               문의: 02-332-0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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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0-03-17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그 마지막이 ㅎㅎ 무료!!!!
박완서 작가님은 내일이네요?! 아, 가고싶다...

Tomek 2010-03-18 09:23   좋아요 0 | URL
오늘 가서 듣고 싶은데... 그제부터 슬슬 아프더니 몸 상태가 말이 아니네요. 어제 영화도 못보고... ㅠㅠ
항상 건강 주의하시길!!

고맙습니다. ^.^;

yamoo 2010-03-31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주 목요일날 하나요?? 여기 참석하려면 신청만 하면 되는 건지요??

Tomek 2010-03-31 11:58   좋아요 0 | URL
그냥 시간맞춰 가시면 되요. 무료입니다~ ^.^;
 

 

                
               <TWIN PEAKS>
               시즌  1    
               에피소드  3 (4)
               타이틀  Rest in Pain
               각본  Harley Peyton
               감독  Tina Rathborne 
               방영일  1990년 4월 26일
 

 

   
                 <지난 회 보기>
               0. Prologue - Chaos
               1. Pilot (aka Northwest Passage)
               2. Traces to Nowhere  
              
3. Zen, or the Skill to Catch a Killer
 
   

 

 

1. 이야기 

   데일은 지난밤에 꾼 꿈을 해리 보안관과 루시에게 이야기한다. 그는 꿈에서 로라를 죽인 범인을 알아냈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꾼 꿈이 복잡한 암호로 이루어졌다고 이야기하고, 이 암호를 깨야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검시소에서는 윌과 알버트가 로라의 시신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윌은 오늘이 장례식이니 시신을 내주라고 요구하지만, 알버트는 땅에 묻기 전에 해부를 해야겠다고 한다. 데일이 로라의 시신을 인계해 줌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한다. 이와 동시에 로라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사촌 매디 퍼거슨(Sheryl Lee)이 트윈 픽스에 온다. 

   알버트가 데일과 해리에게 검시 결과를 보고한다. 그녀의 일기장에 마약성분이 검출되었고, 그녀는 죽었을 당시 약에 취해있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죽기 전에 두 번 팔이 묶여 있었고, 그녀의 어깨에는 무언가가 문 자국이 있었다. 그녀의 위에서 작은 조각이 발견되었는데, 그 조각에는 'J'라고 쓰여있었다. 

   로라의 장례식에서 바비는 소란을 피우고, 로라의 아버지 리랜드는 로라의 관 위에 뛰어들어 장례식은 난장판이 된다. 

   데일은 해리에게서 트윈 픽스의 숲에는 '악'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서 마을은 오래전부터 '북하우스 보이(Bookhouse Boys)란 자경단을 만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보안관 해리와 보안관보 호크, 주유소를 운영하는 에드와 그의 조카 제임스가 자경단원들이다. 이들은 마약밀매 혐의가 있는 자끄 르노의 동생 베르나르 르노를 심문하고 있다. 자끄 르노는 위험 신호를 받고 리오에게 전화한다. 리오가 떠나자 셜리는 총을 집에 숨긴다. 

   그레이트 노던 호텔에서 딸을 잃은 슬픔에 어쩔줄 몰라하는 리랜드를 데일과 호크가 집에 데려다준다. 

 

 

 

2. 데일의 꿈 

   데일은 해리와 루시에게 자신이 어제 꾼 꿈이야기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원래 데이빗의 영화에는 친절한 설명이 없다. 그의 영화는 관객들이 그가 설명없이 던져주는 이미지와 캐릭터와 상황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재구성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그의 영화에 대한 해석은 정답은 없지만, 오답 또한 없다.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는 영화가 된다. 

   그러나 <트윈 픽스>는 공중파에서 방영하는 드라마다. 제한된 관객을 대상으로 한 영화가 아닌, 불특정 다수를 위한 드라마다. 때문에 데이빗의 영화와는 달리 어느 정도는 '친절한 설명'이 필요하다. 데이빗과 마크가 판을 벌린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이제 다른 작가들의 손에 넘어가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세번째 에피소드를 쓴 각본가 할리 피튼은 이야기를 조금씩 확장해나가면서도, 지난 회에서 보여줬던 데일이 꿨던 난해한 꿈이야기를 친절하게 설명한다. 전 에피소드에서 데이빗이 보여준 데일의 꿈 이미지는 파일럿 또다른 결말부에 비하면 조금 더 제한적이었던 반면, 이번회에서 설명은 또다른 결말부의 내용을 그대로 가져왔다. 데일의 말을 그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꿈에서 로라의 어머니가 딸을 죽인 범인의 모습을 봤다고 했어요 (이 부분은 꿈에서 벌어진 게 아니라, 에피소드 1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보안관보 호크가 몽타주를 그려왔죠. 난  마이크라 불리우는 외팔이 사내의 전화를 받았는데(여기까지는 지난회 꿈에서 보여준 사실이 아니다), 그가 살인자의 이름은 밥이라고 했어요. 그들은 편의점 위에서 사는데(이 대사는 아무래도 각본가의 오독이거나, 극 중 데일이 잘못 이해한 것으로도 보인다. 마이크와 밥은 마치 편의점에 들리는 것처럼, 육체를 선택할 수 있는 영혼들이라 했다), 둘 다 왼팔에 "불이여, 나와 함께 걷자"라는 문신을 새겼다고 했어요. 하지만 마이크는 더 이상 사람을 죽이는 것을 견디지 못해 문신이 새겨진 팔을 잘라냈다고 했어요. 하지만 밥은 또다시 살인을 하겠다고 맹세를 했고, 그래서 마이크는 밥을 쐈어요(이 부분 역시 꿈에서 설명되지 않았다).  

혹시 꿈을 어떻게 꾸는지 아나요? 아세틸콜린 뉴런이 전뇌로 고전압의 자극을 발화시키면, 이 자극이 영상이 되고, 이 영상들이 꿈이 되는 거예요. 하지만 왜 우리가 이런 특별한 영상들을 선택하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갑자기 25년이 흘렀고(이 부분 역시 꿈에서 설명되지 않았다), 난 늙어있었어요. 빨간방에 앉아 있었죠. 그곳에는 빨간 정장을 입은 난쟁이와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어요. 난쟁이가 내게 말하길, 내가 가장 좋아하는 껌이 다시 유행을 탈 거라 하며, 자신의 사촌이 로라 파머와  똑같이 생기지 않았냐고 묻더군요. 하지만 그녀는 진짜 로라였어요. 그녀는 비밀로 가득 차 있었죠. 가끔씩 그녀의 팔은 뒤로 묶여있다고 했어요. 그녀가 온 곳에서는 새들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항상 음악이 흘러나온다고 했어요. 난쟁이가 춤을 추었고, 로라는 내게 키스하고, 내 귀에 자신을 죽인 범인의 이름을 속삭였어요(이 부분 역시 꿈에서 설명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요.  

해리, 우리가 할 일은 간단합니다. 내가 꾼 꿈은 암호로 가득찼어요. 이 암호를 풀면, 범인은 잡힙니다.

 

   데일이 꾼 꿈 중, 난쟁이가 말한 "자네가 가장 좋아하는 껌이 다시 유행을 탈거야"라는 말과 로라가 얘기한 "가끔 내 팔은 뒤로 묶여 있어요"라는 말은 로라의 사건을 해결하는 열쇠가 된다. 데일은 이런 종류의 꿈을 두 번 더 꾸고, 그 꿈들 역시 이해못할 암호로 가득 차있다. 

 

"해리, 우리가 할 일은 간단해요. 암호를 깨면, 사건은 해결됩니다."

 

 

3. 매디 (Madeleine Ferguson) 

   로라의 사촌 매들린 퍼거슨이 로라의 장례식에 참석할 겸, 충격에 빠진 삼촌을 위로해주기 위해 찾아온다. 그녀의 모습과 목소리가 왠지 모르게 로라 파머와 비슷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로라의 사촌 매디의 역을 로라 파머 역을 맡았던 셰릴 리가 맡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삼촌 리랜드가 극 중 극 <사랑의로의 초대(Invitation to Love)>를 볼 때 등장하는데, TV화면에서 보여지는 크레딧을 자세히 보면, 한 배우가 두 역할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에머랄드, 제이드 역에 셀리나 스위프트"

 

   매들린 퍼거슨의 이름과 외모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Vertigo)>를 떠올리게 한다. <현기증>에서 킴 노박(Kim Novak)은 두 명의 여인을 연기했다. 매들린(Madeleine Elster)과 주디(Judy Barton)였는데, 메들린은 금발의 모습으로, 주디는 갈색 머리의 모습으로 나온다. 로라 파머 역시 금발이고, 매디 또한 갈색 머리다. 

   매들린 퍼거슨의 이름은 <현기증>의 인물들에서 따왔다. 매들린은 킴 노박이 연기한 매들린 엘스터에서 따왔고, 퍼거슨은 제임스 스튜어트(James Stewart)가 연기한 존 스카티 퍼거슨(John "Scottie" Ferguson)에서 따왔다. 그녀의 고향은 몬태나주 미줄라(Missoula, Montana)인데, 그곳은 데이빗의 고향이기도 하다. 

 

왼쪽부터 매들린(킴 노박), 존 스카티 퍼거슨(제임스 스튜어트), 주디(킴 노박)

 

   한 영화에서 한 배우가 두 사람을 연기하는 것은 데이빗 린치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로스트 하이웨이>의 패트리샤 아퀘트(Patricia T. Arquette),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나오미 왓츠(Naomi Ellen Watts)와 로라 해링(Laura Elena Harring), <인랜드 엠파이어>의 로라 던(Laura Elizabeth Dern)은 각기 한 영화에서 두 명 혹은 그 이상의 인물을 연기했다. 

 

<로스트 하이웨이> 르네, 앨리스 (페트리샤 아퀘트) 

 

<멀홀랜드 드라이브> 베티, 다이앤 (나오미 왓츠) 

 

<멀홀랜드 드라이브> 카밀라 로즈(로라 해링), 카밀라 로즈(멜리사 조지) 

 

<인랜드 엠파이어> 니키(로라 던), 데븐(저스틴 테록스) 

 

<인랜드 엠파이어> 수잔(로라 던), 빌리(저스틴 테록스)

 

 

4. 검시 결과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밝혀졌던 검시결과 보다 조금 더 자세한 결과가 나왔다. 알버트의 말에 따르면, 로라는 살해 당하기 전에 각기 다른 장소에서 팔이 뒤로 올려진 채 두 번 묶였다. 그리고 살인범은 로라를 죽인 후 강물에 손을 씻고 그녀에게 키스를 했다. 로라의 목과 어깨에 있는 자국은 무언가가 물거나 쪼은 것 같다. 그리고 그녀의 위 속에서 소화되지 않은 플라스틱 조각을 발견했는데, J라는 글자가 써 있다. 

 

"로라는 살해 당하기 전에 각기 다른 장소에서 팔이 뒤로 올려진 채 두 번 묶였어. 이렇게." 

 

"살인범은 로라를 죽인 후 강물에 손을 씻고 그녀에게 키스를 했어. 이렇게" 

 

"가끔 내 팔은 뒤로 묶여있다..."

 

 

5. decency, honor and dignity (품위, 명예, 존엄성)

   검시소에서 소란을 피워 해리에게 주먹다짐을 당한 알버트가 데일에게 보고서를 올려달라고 하자 데일은 반대한다. 이 마을에 도착한지 고작 4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는 당시 미국 대도시에서 사라진 미국적인 가치- 품위, 명예, 존엄성 -를 이곳 트윈 픽스에서 봤다고 한다. 

 

알버트, 내 말을 잘 듣길 바라. 난 비록 트윈 픽스에 짧은 시간 머물렀지만, 그 시간 동안, 품위, 명예, 존엄성을 봤어. (살인은 이곳에서 흔치 않은 사건이야. 하루가 끝날 때 통계치로 환산되는 그런게 아니라고. 로라 파머의 죽음은 제각기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어. 왜냐하면 이곳에서는 삶이 의미를 지니고 있으니까. 모든 삶이.) 그것들은 우리에게선 이미 사라져버린, 삶의 한 방식이야. 하지만 그렇지 않아, 알버트. 여기 트윈 픽스엔 그게 있다고.

 

"마치 이 지역 버섯을 간식으로 따먹은 것 같이 들리는군."

 

   실제로 이곳엔 대도시와 다른 삶이 펼쳐져 있다. 하지만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트윈 픽스가 자랑하는 미국적인 가치는 마을 사람들의 위선으로 감추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마을의 외부사람인 데일과 장 르노(후에 등장)에 의해 밝혀진다는 사실은 흥미를 일으킨다. 그런점에서 로라의 장례식에서 소란을 피우는 바비의 일갈은 귀담아 들어볼만 하다.   

 

아멘! 도대체 뭘 보고 있는거예요? 여러분들은 날 토하게 만드는군요. 당신들의 그 빌어먹을 위선이 날 역겹게 만든다고! 모두들 로라가 위험에 빠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하지만 우린 아무일도 하지 않았지. 당신들 모든 선(善)한 사람들, 누가 로라를 죽였는지 알고 싶어? 당신들이 죽였어! 우리 모두가 죽였다고. 이런 아름다운 말 따위로 그녀를 살릴 수 있을 것 같아? 웃기지마, 그러니까 기도 좀 작작해. 로라는 이런 꼴을 보고 어딘가에서 깔깔거리며 웃고 있을테니까.

 

"우리 모두가 죽였어."

 

 

6. 네이딘, 빅 에드, 노마 

   드라마에서 가장 이상한 커플은 빅 에드와 네이딘일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빅 에드와 노마는 서로 오랫동안 사랑하는 사이인 것 같고, 모습 또한 준수해 보인다. 그에 반해 네이딘은 괴팍한 성격에 기이한 외모를 지녔다. 에드가 네이딘을 바라보는 모습은 사랑하는 모습이라기 보다는 무언가 안쓰럽다는 느낌의 표정을 지닌다. 이 장면에서 네이딘의 과거 회상 대화가 잠깐 나오는데, 그 내용이 꽤 안쓰럽다. 이들의 과거- 왜 에드가 노마와 헤어지고 네이딘과 결혼했는지 -는 시즌 2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밝혀진다.  

 

에드, 고등학교 때, 난 풋볼 게임에서 노마와 당신을 보곤 했어요. 그녀는 정말 아름다웠죠. 그리고 당신과 노마는 정말 근사한 커플이었어요. 하지만, 난 알고 있었어요. 비록 내가 존재감 없는, 단지 작은 갈색 쥐같이 보이더라도, 당신이 나를 알기만 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함께 하리라는 것을 난 항상 알고 있었어요. 

 

"빅 에드, 노마와는 얼마나 사귄거죠?" 
 

 

7. 북하우스 보이(Bookhouse Boys) 

   빅 에드, 해리 보안관, 호크 보안관보가 외부인인 데일에게 자경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자경단이란 "지역 주민들이 도난이나 화재 따위의 재난에 대비하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하여 조직한 민간단체"를 뜻하는 말로 우리에게도 그렇게 낯선 단어는 아니다. 하지만, 해리가 데일에게 자경단을 설명하는 방식은 조금 독특하다. 그는 '범죄'라는 대신에 '악(惡, a sort of evil)'이라는 단어를 썼다. 해리가 언급한 '악'은 숲에서 벌어지는 지저분한 범죄를 지칭하지만, 앞에서 보여준 데일의 꿈 때문에 무언가 초자연적인 더 큰 실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원래의 설정이 어디까지였는지 모르겠으나, 이런 포괄적인 단어의 사용으로 드라마의 허용 범위가 더 늘어난 것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일인 것 같다. 

 

내가 하는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리더라도,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들어요. 트윈 픽스는 달라요. 당신도 알아챘겠지만, 이곳은 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죠. 물론 우린 그점을 좋아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다른 곳과 차이가 있어요. 어쩌면 그건 모든 선한 것들을 위해 우리가 지불해야하는 비용일지도 몰라요. ... 이곳에 악(惡)이 존재해요. 오래된 숲에 아주 이상한 무언가가. 어둠이라고 불러도 되고, 유령이라고 불러도 되요. 그것은 다양한 형태를 취하니까. 하지만 그것은 누구나 기억할 수 있을만큼 오랫동안 우리 주변에 있어왔어요. 그리고 우린 그것과 항상 싸워왔고요.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비밀 조직을 말하는 거군요." 

 

 

 

8. 기억할만한 지나침

   가석방 심사를 앞두고 있는 노마의 남편 행크 제닝스(Chris Mulkey)의 죄수번호는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에 나오는 장 발장(Jean Valjean)의 죄수번호와 같다. 좀 더 상상을 한다면, 그는 '원 아이 잭'으로 대표되는 캐나다쪽 범죄 조직(르노 삼형제)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로라의 장례식장에서 리랜드가 슬픔을 참지 못하고 딸의 관에 뛰어든 장면을 셜리가 손님들에게 재현하고 있다. 슬픔과 우스꽝스러움을 불러일으켜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만드는 기괴한 장면이다.  

 

   베르나르 르노(Clay Wilcox). 르노 3형제 중 막내로 마약 밀매를 맡았다. 이후로 나오는 장면은 없지만, 두 형 자끄 르노와 장 르노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베르나르는 다음 회에서 시체로 한 번 더 등장한다.
 

 

   데일이 호크에게 영혼을 믿느냐고 묻자, 호크가 영혼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라고 얘기한다. 데일이 묻자 호크는 "블랙풋 전설에 따르면"이라 얘기한다. 여기서 호크가 얘기하는 블랙풋이란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언을 얘기한다. '블랙풋 연합' 또는 'Niitsítapi'(원주민)는 앨버타에 거주하는 세개의 종족과 몬태나에 거주하는 한 개의 종족을 지칭하는 집단 명칭이다. 호크는 이 집단의 마지막 후손인 셈이다. 호크는 뒤에도 흥미로운 전설을 이야기하는데, 그 중 하나가 '하얀 오두막'에 관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시즌 2에 나온다. 

 

 

9. 덧붙임 

a. 대부분 사실에 기초하여 썼고, 개개의 세부사항은 사실에 부합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사실의 전후부분이 바뀐 경우도 있습니다.   

b. 컨텐츠 중 캡쳐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해당 저작권사에게 있습니다.   

c. Refenences    

- 『Lynch on Lynch, Revised Edition』크리스 로들리, Faber & Faber
- 『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데이빗 린치,  곽한주 옮김, 그책
- <
Twin Peaks: Definite Gold Box Edition> Lynch/Frost Productions, CBS DVD, Paramount Home Entertainment
- <
Twin Peaks: Fire walk with me> Lynch/Frost Productions, CIBY 2000, New Line Cinema
- <
David Lynch The Lime Green Set> Absurda
- <Lost Highway> Universal Studios
- <Mulholland Dr.> Universal
- <Inland Empire> Absurda/Rhino

-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
- IMDB http://www.imdb.com/   

d. 다음 글은 3월 24일 오전 9시에 올라갑니다. 

 

 

10. Bonus Screensh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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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10-03-17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길어서 그림만 흝어본 후 추천만 꾸욱 누르고 말았습니다. ㅋㅋ

Tomek 2010-03-17 14:46   좋아요 0 | URL
처음 달린 댓글이예요. 감동이 주르륵~ ㅠㅠ
워낙에 오래된 드라마고, 인기도 없던지라 별로 관심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름 많이들 읽어주시니 감동이예요.
고맙습니다. ^.^;

설진 2013-03-06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방연한지 이십년도 더 넘어서야 트윈픽스를 봤내요.
포스팅이 하나하나 대단 하신 것 같습니다. 덕분에 보고나서 정리가 잘 되내요.

Tomek 2013-03-06 18:0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전출처 : Tomek >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B-side Ourselves

   지난 금요일,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의 저자이신 강신주 선생님과의 만남을 위해 홍대 살롱 드 팩토리에 갔습니다. 직장 때문에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 자리는 이미 만원이고 선생님 말씀은 벌써 시작되었더군요.  

   동녘 출판사 관계자분께서 주신 핸드 아웃을 들고 자리를 앉았습니다. 보통 '저자와의 대화'는 의례적인 강연과 독자들의 질문으로 진행되는 것이 거의 관례처럼 굳어져 있는데, 선생님은 이런 '가벼운' 자리에서도 실제 강연을 하시는 것 같이 준비를 해오셨습니다.  

   자리를 채운 독자층은 굉장히 다양해 보였습니다. 20대의 학생부터 50대의 지긋하신 어르신들까지. '시'와 '철학'을 한데 버무려 맛깔스런 주제를 뽑아내신 선생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인지 다들 상기된 분위기였지요. 

 

   강연은 책에서 다루지 않았던 시인의 시와 철학자의 사상을 다루었습니다. 문정희 시인의 「유방」이라는 시와 여성 철학자 뤼스 이리가레이의 '차이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문정희 시인은 자신의 것이면서도 남편과 자식에게 예속되어 있는 신체기관인 유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게 내 것이로구나'라는 것을 느낀 것은 그녀가 유방암 검사를 받기 위해 차가운 엑스레이 기계앞에 상반신을 밀착하고 "찌그러진 유두"를 느끼는 순간입니다. 차가운 기계와의 관계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몸을 느낀 시인의 시는 그래서 굉장히 쓸쓸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경험은 여성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지만, 남성들 또한 그 느낌을 (여성들 만큼은 아니지만) 알 수 있습니다. 문정희 시인은 자신만의 언어로 여성은 물론 남성들 또한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감수성을 이야기 했습니다. 

 

         

 

   선생님은 문정희 시인의 이런 일련의 작업을 이리가레이의 사상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철학도들에게 '빨간책'으로 불리우는 『서양철학사』를 한 번 찾아보세요. 거기에 여성 철학자가 얼마나 등재되어 있나. 한 명도 없습니다. 철학자 뿐 아니라, 정치가, 사업가, 종교인 등 역사에 남아있는 여성의 이름이 얼마나 있을까요? 여성의 지위는 확실히 남성에 비해 불평등합니다. 이 지위를 평등하게 맞추는 것이 '페미니즘' 운동이지요. 

   

         

 

   그런데 이리가레이는 이 페미니즘 운동을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보기에 '페미니즘'이란 여성을 남성의 위치로 끌어 올리는 것이거든요. 그녀가 보기에 '페미니즘'이란 여성을 '남성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다고 판단하는가 봅니다. 그녀가 생각하는 여권신장이란, 남성을 여성에 맞추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남성의 여성화를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리가레이가 생각하기에 여성은 자신의 몸 안에서 타자를 끌어안는 존재입니다. 여성들은 '임신'이라는 경험을 통해서 내 몸 안에 내가 아닌 다른 개체를 끌어 안는 경험을 합니다. 임신을 못하는 여성들이더라도 '생리'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몸 속에 존재하는 이물질과 같이 지내는 경험을 하지요. 다른 존재를 끌어안는 행위를 통해 여성들은 남성들의 폭력성과는 다른 모성성을 지니게 됩니다. 그런 박애주의적인 경험을 남성들도 배우게 된다면 이 세상은 더 평화롭고 아름답게 변할 것입니다.   

 

 

   차이를 이해하고 그 차이를 감싸안는 문정희 시인과 이리가레이의 사상은 지금 찢어지고 분열된 현대 사회에 가장 필요한 인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오독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강연은 이런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처음 책을 기획했을 때 이 내용을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에 포함시키려 했으나, 뺐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 내용은 선생님이 강연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셨지요. 선생님이 원고를 쓰는 방식은, 이번에 독자와의 만남에서처럼, 강연 내용을 작성해서 핸드 아웃을 돌리고, 강연을 하면서 피드백을 받고, 그 후에 다시 윤문을 해서 최종 원고를 탈고하는 방식이라는 군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이 책의 저자는 강신주 혼자가 아니라, 이 책에 등장한 시인들, 철학가들, 그리고 강연을 들은 많은 분들이 공저한 것이라 이야기했습니다. '저자 강신주'와 그의 저작들에 대한 신뢰도가 상승한 순간이었지요. 어쩌면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재판에서는 이 글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7시 30분에 시작한 강연은 10시 30분이 되어도 끝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여러 대화가 있었지만, 가장 관심을 끈 것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선생님은 사랑이란 애초에 '불륜(不倫)'이라고 정의하셨지요. 아마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지 못했던 순간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선생님의 철학은 해체론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모든 현상을 조각조각 해체하는 것 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정이나 현상을, 우리를 가리고 있는 '위선'이란 치양막을 확 들쳐냈기 때문에 그런 당혹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우리 인간은 모든 것을 미화하는 존재"니까요. 선생님의 그런 공격적인 말씀은 우리가 미화하고 있는 그 치양막이 갑자기 벗겨졌을 때, 그 진실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에 대한 대답같았습니다. 우리가 불편하지만 진실을 마주해야하는 이유는, 갑자기 마주칠 수 있는 그렇게 홀딱 벗겨질 수 있는 순간에 대처하기 위해서니까요. 하지만 그 한 순간을 위해 힘들게 진실을 견디어야 하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요? 그래서 불가에서는 인생을 '苦'라 칭했나 봅니다.  

   후기를 읽어보니 선생님과의 대화는 새벽 3시까지 진행됐다고 합니다. 저도 계속 있고 싶었지만, 배고픔의 고통 앞에선 견딜 수가 없더군요. 10시 30분에 아쉬운 마음을 간직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이날 강연에서 배운 것은, 시나 철학이 아닌, '진실'에 마주쳐야 할 '용기'인 것 같습니다. 귀한 자리를 마련해 주신 알라딘과 동녘 관계자 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물론 강신주 선생님께도요. ^.^; 

 

 

* 덧붙임: 

   강의 중에, "인간에게는 수 많은 자아가 있으며, 지금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나'는 그 수많은 자아 중 가장 강력한 자아가 내 안의 여러 자아를 누르고 있는 결과"라고 하신 말씀이 계속 생각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 분열증을 앓아야 문학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이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지요. 그런데 여러 예시를 보면 그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제2차세계대전만화』를 그리고 <시사IN>에 시사만화를 연재하는 굽시니스트가 '후기'에서 '자아'를 분리한 모습입니다. "나는 단수가 아니다"라는 말이 정말 재미있네요. 

   그리고 김연수 작가 또한 사회적 자아와 소설을 쓰는 자아가 있다고 얘기한 걸 보면 문학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봐요. 대신 강신주 선생님의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문학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라는 말씀에 위안을 삼아야 할런지... ^.^; 

김혜리: 보통은 그냥 "작가로서 성숙했다"고 표현할 텐데 복잡하네요. 같은 사람이지만 소설을 쓰는 순간의 자신은 다른 존재라고 여기시나 봅니다. 

김연수: 왜 소설 쓰는 자아와 제 자아가 다르냐면 창작하는 과정에 단절이 있어요. 처음 사회적 자아로서 뭘 쓰겠다고 결심하고 나면 먼저 스토리를 만드는데 쓰레기 같은 것들이 나와요. 평소의 내가 얼마나 후진 생각을 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죠. 마감을 앞두고 잠도 안 자고 더이상 쓸 수 없을 때까지 고쳐 쓰다 뻗어버리는데, 내 자만심도, 습득한 지식도 다 부정하고 아무것도 없이 깡그리 벗겨진 그 상태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진짜 이야기예요. 그러니 평상시의 저와는 다른 존재가 썼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대표적인 예가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이에요. 그 작품을 끝내는 순간에는 "이것은 소설임에 틀림없다"는 환희가 들었어요. 독자들도 제 에세이와 소설이 다르다는 걸 알아요. 에세이와 평소의 저를 좋아하지만 소설은 어려워하는 분도 있어요. 저 역시 독자들을 만나 소설을 설명할 때면 이미 평소의 자아로 돌아가 있기 때문에 남이 쓴 작품을 말하듯 어색해요. 문예지에 연재할 때는, 첫회가 제일 쉬워요. 마감하고 한달 놀고 한달 자료 찾고 마지막 달에 2회분을 쓰려고 첫회를 읽어보면 너무 잘 썼어요. 도저히 이렇게 쓸 수가 없고 남이 써줬다고 생각해도 할 말이 없겠다 싶어요. 그렇게 비참해하다가 간신히 쓰죠. 그리고 3회에 가면 또 가까스로 썼다고 여긴 2회분이 훌륭해 보여요. 그 상황이 반복되는 거죠. (웃음) 

[김혜리가 만난 사람] 소설가 김연수 중에서, 『씨네21』No. 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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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io 2010-03-16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다방면에 관심도 많으시고 깊이도 있으시네요. 종종 님의 블러그에 오면 놀랄 뿐입니다. ^^

Tomek 2010-03-16 17:05   좋아요 0 | URL
아이고... 깊이는 커녕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잘 모르는 경우도 많은걸요... 그저 이런 저런 글쓰기는 제게 있어서 '치유'의 과정일 뿐이예요.
고맙습니다. ^.^;

2010-03-18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19 0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