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 EBS CLASS ⓔ
강신주 지음 / EBS BOOKS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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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라는 사자성어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며 깨끗한 거울, 맑은 물 이라는 이 사자성어가 무슨 뜻인가 나도 궁금했던 것 같다. 어렴풋이 그런 기억이 있다. 이 사자성어는 무언가 더 설명이 필요한데, 하던 기분. 그 답을 이제서야 알아냈다.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자성어였다. 너의 마음은 깨끗한 거울인가, 고요한 물인가. 거울은 계속 닦아야 세상을 비출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때가 타 아무것도 비출 수 없지만, 물은 어떤 것이든 비춰내고 무엇이 와도 흔들리는 듯 하나 금세 다시 자기를 회복해 무엇이든 비출 수 있게 된다는 것. 그 모든 고통을 담아내는 지수와 같은 마음. 

명상을 하려고 누워 있다 보면 얻게 되는 지수와 같은 마음. 그러면서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서 조시마 장로님이 하는 이야기와도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심판자가 되지 말라는, 그 말은 어쩌면 지수와 같은 마음이 아닐까. 


한 시절을 견디게 해주는 것들이 있다. 한 시절 흠뻑 빠져있게 되는 것들. 한때는 김어준의 방송이 그랬고 (지금도 어느 정도 그렇지만) 어느 시절에는 강신주의 강연이 그랬다. 매일 설거지하며 강연을 들었다. 그때는 생생했던 강연이 또 금세 물러나 수처작주 입처개진에 감동받아 주인이 되고자 했던 다짐이 어느새 희미해지고 말았다. 또렷하던 생각들이 흩어져 마음이 어디 있나 돌보지 않고 살았던 것도 같다. 오랜만에 그의 책을 읽으며 '수처작주 입처개진'을 다시 떠올려본다. 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면 서있는 곳마다 모두 참되다는 경지. 


행복한 책이다. 좋았던 구절을 적으며 행복했다. 주인된 채, 몸과 마음이 함께 있어서 였나 보다. 

사랑에 대해 고민하는 친구가 있다면 이 책을 줘야 겠다. 애지중지하는 마음, 아끼는 마음으로 가득한 사랑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하는 책도 많지 않을 것 같다. 


차례를 다시 보았다. 모든 것은 무상하고 인생은 고통이 난무하나 나의 고통을 넘어서 인연의 한 줄기를 느끼며 주인된 마음으로 아낄 수 있다면, 눈부처를 볼 수 있다는 이야기라고 정리할 수 있을까. 

엄마가 애지중지하는 마음으로 나를 키워 그 마음을 부여잡고 살아가고 있음도 깨우쳤다. 누군가의 애지중지를 이해한다는 것, 그 타들어가는 마음, 책 제목에 따르자면 밥 한 공기의 사랑을 이해한다는 것, 그녀가 고통을 넘어서 만든 밥 한 그릇을 받아먹고 살아온 생, 자중자애하며 아끼는 것들을 마음에 잘 품고 잘 아끼고 살아야지. 


시간이, 세월이 사랑이 아닐까 적어두었는데, 시간과 세월을 지켜보는 힘은 사랑이므로, … 맞는 말인 듯 하다. 


네 녹슬어감을 사랑해 라고 말할 수 있게...



2026 2 19일 목요일


상대방의 기쁨과 나의 기쁨 사이

의 중도! 혹은 상대방의 자유와 나의 자유 사이의 중도! 바로 이것이 진정한 사랑, 즉 아낌의 지혜다.

-p.319


아끼는 대상이 무엇이든 우리는 그것의 행복에 있어 '한 공기의 연'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중략) 우리는 충분히 쉬어야 한다. 잘 쉬고 맛있는 것을 먹고 잠도 잘 자야 한다. 우리에게는 '한 공기의 연'을 채워야 할 때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p.327


삶은 '잘 살았다' 혹은 '못 살았다' 둘 중 하나일 뿐이다. 잘 살았다면 그냥 계속 그렇게 잘 살면 되고,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들면 제대로 잘 살려고 노력하면 된다. 

-p.341


이렇게 아끼면서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제대로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

-p.342




배고픔이든 고독이든 뭐든 타인의 고통이 사무치는 것이 사랑이니까. - P10

사랑은 ‘한 공기의 밥‘과 같은 것이다.

한 공기의 사랑이다. 그의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한 공기‘의 사랑을 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 P11

애지중지하는 마음은 그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것, 한마디로 그를 내 뜻대로 부리지 않겠다는 마음이다. - P11

고통에 직면하고 그것을 완화시키는 방법을 배운 사람, 그런 사람이 <고쳐 쓰는 묘비>에서 김선우 시인이 말한 "삶의 완성자"가 아닐까. - P23

웃음과 행복은 자신으로부터가 아니라 외부로부터, 정확히 말해 나와 타자와의 관계로부터 가능하다는 사실을. - P24

고통을 느끼는 것, 그래서 그 고통을 어떻게든 완화시키려 하는 것, 그것이 자비다. - P26

수단과 목적이 일치하지 않으면 ‘노동‘이고, 반대로 수단과 목적이 일치되면 ‘놀이‘라는 것이다. - P65

영원하지 않으니 불꽃은 이내 꺼질 것이다. 그러니 더 소중하고 더 집중해야 한다. - P69

무상을 직면한다는 것!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것이다.
- P72

벚꽃을 본다는 것, 그것은 벚꽃이 품고 있는 무상을 본다는 것이다. - P73

무상을 느끼지 않고 우리 마음에서 어떻게 사랑이 싹틀 수 있을까. 바로 이것이 싯다르타의 마지막 가르침 ‘제행무상‘이 가진 힘이다.
벚꽃의 무상을 본 사람은 자신의 무상도 동시에 본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 P78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무상을 얼핏 보거나 흐릿하게 보는 게 아닐까.
- P79

순간적이라고 믿는 우리의 선택이나 행동이 사실 ‘영원한‘ 선택과 행동이라고 이야기한다.
- P85

우리 삶은 영원한 것도 아니고 순간적인 것도 아닌, 다시 말해 영원과 찰나 그 중간 어디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 P99

안으로 들어가지 말고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 아무리 바깥에서 저잣거리에서 비루해졌다 할지라도, 바로 그곳에서 우리는 아름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넘어진 곳에서 일어나야 하는 존재다.
- P102

살아가면서 인간은 비루함을 벗어던질 수는 없지만, 그 비루함에서 삶의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 P103

타자와 연결되면서 거듭 새로운 나로 탄생한다는 이야기이니까. 우리는 세상과 무관한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타자와의 접촉을 통해 매번 새롭게 맺히는 이슬과도 같다.
- P103

나와 대상을 포함한 모든 존재가 사랑의 대상이 되느냐, 아니면 관조의 대상이 되느냐가 문제다.
- P112

결국 나 자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영원과 불멸이라는 한 극단‘과 ‘순간과 찰나라는 또 다른 극단‘ 사이 어딘가에 존재한다. 바로 이것이 싯다르타가 말한 중도의 의미다.
- P114

그러므로 중도의 길, 사랑의 길, 자비의 길에 들어서려면 균형 잡기가 필수다. 자전거를 탈 때처럼 영원 쪽으로 넘어지려 할 때는 순간 쪽으로 핸들을 틀고, 순간 쪽으로 기울어지려 할 때는 영원 쪽으로 핸들을 트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 P132

마음을 고요하게 하려는 이유는 세상을 냉담하게 관조하는 ‘명경‘이 아니라 세상의 아주 작은 움직임에도 파문이 일어나는 민감한 ‘지수‘처럼 마음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 P139

시인은 고요한 물과 같다. 그러니 돌이나 나무토막이나 쇳덩어리 등이 던져졌을 때, 고요한 물은 충격을 받지만 그 충격을 해소하며 자기 표면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무거운 것은 가라앉히고 가벼운 것은 흘려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 P144

세계는 ‘없음‘이 아니라 ‘있음‘으로 충만하다는 사실이다. (중략) ‘없음‘의 경험은 어떤 대상이나 어떤 사건에 대한 기억이나 기대가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 P150

수행이, 공부가, 성숙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그때부터는 세상이 아프게 다가온다. (중략) 성숙하면 자신이 강해지고 자신이 많은 것을 가지게 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을 아끼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아파하게 된다.
- P176

사물들이 다른 것에 의존하여 존재하는 것을 공(空)이라 부른다.
- P192

새로운 인연을 만들려면 우리는 과거의 인연을 펼쳐 보여줘야 한다. 동시에 이렇게 펼쳐진 주름을 싫어하지도, 조롱하지도, 비웃지도 않는 따뜻한 타자도 필요하다. 주름의 펼침, 그것은 나와 타자 사이의 애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기적이다.
- P203

자유란 별 것 아니다. 몸이 있으면 마음도 같이 있고, 마음이 있으면 몸도 같이 있는 것이다.
- P233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야 주인으로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략) 사랑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해주려는 의지니까.
- P240

이익과 이해의 관계가 아니라 애정과 사랑의 관계라면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의무가 하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정직‘이다. 한마디로 말해 자신의 ‘본래면목‘을 있는 그대로 상대방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 P242

사랑하는 관계라면 자신이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상대방에게 그대로 표현해야 한다.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이자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의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고, 반대로 타인이 원하는 것에 복종하지도 않아야 한다. 이 두 가지 준칙 사이에서 유지되는 것이 바로 사랑이 아닌가. - P243

멈출 수 있어야, 혹은 그만둘 수 있어야 자유다. 멈출 수 있는 사람만이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있고, 관계를 단절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자기 뜻대로 관계를 만들 수 있다. (중략) 멈출 수 있는 자유를 가슴에 품을 때, 그가 누구이든 상대방은 우리를 사랑하지는 않더라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 P244

‘당신에게 기쁨과 쾌활함을 주는 관계가 있다면 그것을 목숨을 걸고 지속하고, 당신을 슬프게 하거나 우울하게 하는 관계가 있다면 목숨을 걸고 끊어버려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 바로 주인이다. - P246

몸과 마음 사이의 거리가 점점 줄어들면 우리는 주인으로서의 삶을 영위하게 되는 것이고, 반대로 몸과 마음 사이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면 주인이 아니라 노예의 삶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 P249

주인으로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면 마음이 가는 곳에 몸이 가고 몸이 가는 곳에 마음도 갈 것이다.
- P250

‘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면, 서 있는 곳마다 모두 참되다‘라는 뜻이다. 주인이 된다는 것, 그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 P250

주인이 된 자는 대부분 몸과 마음이 일치하는 삶을 영위한다.
- P251

사랑은 행동으로 증명되어야 할 그 무엇, 반드시 몸으로 드러나야만 하는 그 무엇이다.
- P275

현실에서는 타인에 대한 사랑과 자기에 대한 사랑이 항상 뒤죽박죽 뒤섞여 있다.
- P281

매번 발화할 때마다 상대방의 고통을 덜어 내게로 가져오겠다는 사랑의 각오를 다질 수 있게 해주는 표현, 아울러 자신의 사랑이 타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새로운 표현은 없을까. (중략) 바로 ‘아낀다‘는 말이다.
- P284

아낌은 그 사람 대신, 혹은 그 사람을 위해 기꺼이 감당하는 수고와 노동, 즉 사랑을 증명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 P288

중생들의 고통을 네 것으로 가져오고, 중생들의 수고를 네 것으로 가져오라. 바로 그것이 자비이고 보시다.
- P297

애지중지하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 P301

상대방이 나를 무시하지 않고 부처처럼 존중하니 나는 상대방의 눈에서 내 눈부처를 보고, 나도 상대방을 부처처럼 존중하니 상대방도 내 눈에서 자신의 눈부처를 본다.
- P311

꽃잎들을 열반에 드는 부처로 보는 순간, 그 한 장 한 장의 꽃잎들이 하나하나의 눈동자가 되어 시인의 모습을 비춰주었던 것이다.
- P313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를 자유롭게 한다는 의미이자, 그가 "노!"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을 긍정한다는 의미다.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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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산책 말들의 흐름 4
한정원 지음 / 시간의흐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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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병진이가 좋다며 소개했던 것 같다. 도서관에서 빌렸으나 몇 페이지 읽지 못하고 가져다줬다. 너무 감상적인데, 생각했었다. 

학교에 작가와 같은 이름을 가진 언니가 있었다. 그 언니가 이 책의 저자라고 했다. 문득 사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찾아보니 그 언니는 아닌 것 같다. 똘망똘망한 눈을 가진 예쁘고 귀여운 언니였는데, 그 언니가 이런 책을 썼다니 하며 한동안 두근거렸는데, 작가 얼굴이 그 사람이 아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렀더라도, 그 언니는 아니라 조금은 아쉬웠다. 그 사람이 소록도에 가거나 이런 글을 썼다면 더 좋을 것 같았던 이유는 뭘까. 

둔내에서 여기로 오는 기차에서, 집으로 오는 버스에서 읽었다. 형광펜으로 줄을 치다 보니 점점 많은 문장에 줄을 치게 됐다. 

아름다움에 대해 

행복에 대해 

노래에 대해 

오랜만에 생각했다. 인터넷이 주는 대로, SNS가 주는 대로 생각하는 데 익숙해지던 와중 오랜만에 생각이란 것을 했다. 행동을 바꾸는 생각, 행동을 바꾸는 문장


바다에는 모래보다 소금보다, 비밀의 밀도가 높을 것이다. 

-p.78


이런 문장들로 이루어진 책을 쓴 사람이라면 행복하겠다는 생각


마음 하나로 빚어낸 


때로 스스로가 너무 사치스러운 인간은 아닌가, 다들 돈벌이를 하느라 하고 싶지 않아도 그걸 하느라 바쁜데 그것을 거의 포기하고 있는 나라는 인간의 잉여스러움에 부끄럽던 차, 이 책을 보니 꼭 그런 것은 아니라고, 다들 열심히 가고 있는 거기 당도하고자 하지 않음이 나쁘거나 방종한 것은 아니라고 다른 데 도달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고 도달하지 않고 그저 여기저기 둘러보거나 하며 살 수도 있는 게 아닌가, 삶에 정답은 없으니 


문장을 꼭 끌어안고 잠들고 싶은, 


나는 질문으로 세상을 살지 않고 있나?


여기 있는 책을 다 읽고 싶은 마음、 오랜만에 느껴보는

그때 읽지 않아 다시 리스트를 만드는 일이 결국 쓸데없이 시간만 쓰고 제대로 하지 않는 것 같지만

그래도 리스트를 만들어 하나하나 읽어보고 싶은 



2026 1 21일 수요일




내가 보는 것이 결국 나의 내면을 만든다. 내 몸, 내 걸음걸이, 내 눈빛을 빚는다. - P25

가슴속에 노래를 간직하고 있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의 차이였을 것이다. - P32

행복은 그녀나 나에게 있지 않고 그녀와 나 사이에, 얽힌 우리의 손 위에 가만히 내려와 있었다. - P32

그렇게 생각할 때, 나와 생각 사이에 또 행복 같은 것이 있었다. - P33

가지지 못한 것이 많고 훼손되기만 했다고 여겨지는 생에서도, 노래를 부르기로 선택하면 그 가슴에는 노래가 산다. 노래는 긍정적인 사람에게 깃드는 것이라기 보다는, 필요하여 자꾸 불러들이는 사람에게 스며드는 것이다. - P34

나의 최선과 당신의 최선이 마주하면, 나의 최선과 나의 최선이 마주하면, 우리는 더는 ‘행복‘에 기댈 필요가 없다.
- P35

기쁘고 슬플 것이나 다만 노래하자고.
- P35

숫자 11의 생김새를 골똘히 보면, 나무 두 그루 모양이다. 잎을 다 떨구고 빈 가지만으로 서 있는 만추의 나무. 그 잎들은 바람을 타고 멀리 가기도 하겠지만, 대개는 나무 바로 밑 둥치로 떨어져 모인다.
- P39

나와 아저씨들은 끝까지 서로의 신상에 관해서는 몰랐지만, 아랑곳 않고 곁을 내주었다. 집 앞 담벼락과 트럭 밑처럼, 거기 둥근 밥그릇처럼, 질박한 공간을 당당히 차지하도록 허락했다. 우리는 구석에서 사는 사람들이었다. 구석의 목소리는 곧 꺼질 불씨처럼 위태로워서, 구석끼리 자꾸 말을 시켜 되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우월함을 드러내는 연민이 아니라, 서로에게 원하는 것이 있어 바치는 아부가 아니라, 나에게도 있고 타인에게도 있는 외로움의 가능성을 보살피려는 마음이 있어 우리는 작은 원을 그렸다. - P55

점점 뜨거워지고 따가워질 울음이다. 매미는 자신의 마지막을 알아서 더 애태우는 것일까, 몰라서 열중할 수 있는 것일까. - P59

사랑은 불처럼 일어서는 마음이었고, 이별은 불 때문에 끝내 사그라드는 마음이었다. 남자는 보이지 않는 불꽃을 보여주려고 조바심을 냈지만, 여자는 이미 검은 재와 흰 연기의 시간에 도착해 있었다. - P60

뜨거운 존재들이 견디고 있는 것은 ‘지금‘이라는 시간이다.
- P61

혹시 나에게는 불 대신 빛이 있을지. 불을 지를 수는 없지만 당신을 환하게 비출 수는 있을지. 은은하게 나의 사랑을 연명해나갈 수도 있을지. - P61

바다에는 모래보다 소금보다, 비밀의 밀도가 높을 것이다.
- P78

그래서 나는 바다 곁에서 살기를 바라고 있다. 걸어서 바다에 닿을 수 있는 크지 않은 집에서, 가능한 아는 사람들 없이 혼자 혹은 둘이서, 변함없이 덧없이 사랑하면서. - P79

선명함을 잃을 때 모든 존재는 쓸쓸함을 얻는다. - P121

여기에 잘못 온 것 같은데, 그렇다고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 P123

시도 저녁도 어려운 것인데, 어느새 나는 그것에 기대서만 간신히 살아간다. 뚜렷하고 익숙하며 사라지지 않는 것은 이 세계 어디에도 없음을 알게 되어서이다.
- P124

세상과의 결속에서 틈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나의 내면이 나의 존재와 끊어지지 않으려 분투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누구인지 영영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계속 시도해보겠다는 의지 같은 것. - P125

창문에는 이름과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같은 것도 붙고, 눈이나 돌멩이로 위장한 진심도 스쳐간다. 그것은 숨겨져 있다가, 어두워진 창이 바깥 풍경을 지우고 내 얼굴을 비추면 그 위로 슬그머니 상을 겹친다.
그러니 나에게도 파로흐자드에게도 창문이 필요했던 이유는, 그것이 상상이고 이해이며 꼭 한 번은 거울이 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 앞에서는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는.
- P132

산책의 마지막 기쁨은 돌아가는 길을 얼마나 순순히, 서두르지 않고 걷느냐에 달려 있다.
- P155

말이 맥락에서 일탈할 때, 말 속의 희비극이 돌연 짙어지는 것을 느낀다. - P156

걷다가 죽어가는 벌게 곁에 있어주고, 창을 내다보는 개에게 인사하고, 고양이의 코딱지를 파주며 탕진하는 시간이 나는 부끄럽지 않다. 그 시간의 나는 진짜 ‘나‘와 가장 일치한다. 또한 자연이나 스치는 타인과도 순간이나마 일치한다. 그 일치에 나의 희망이 있다. 부조리하고 적대적인 세계에서 그러한 겹침마저 없다면, 매 순간 훼손되는 존재를 어떻게 바라보고 견딜까
-방안에 있을 때 세계는 내 이해를 넘어선다. 그러나 걸을 때 세계는 언덕 서너 개와 구름 한 점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윌러스 스티븐즈, <사물의 표면에 대하여>)
- P157

한 사람을 오래 응시할 수 있으려면 마음이 단출하고도 단단해야 할 거예요. - P167

누구를 기다릴 때면 그 잠잠한 시선을 떠올리며 자세를 가다듬습니다. 펄럭이지 말자, 다짐하면서요. - P167

삶에서 그만한 사랑이 찾아오는 때는 단 한 번이라는 것, 어쩌면 그것도요. - P168

"같이 걸어요."
모든 시작이 이런 말이면 어떨까요. 같이 걷자는 말. - P169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이야기했지요. 나무가 보이면 나무를, 벽이 보이면 벽을, 사람이 보이면 사람을.
- P170

그건 하나의 마음을 평생 가져가는
- P170

오래 바라보니, 그건 그대로 기도가 되었어요. 제 기도는 늘 질문이고요.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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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하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18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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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영원히 당신은 나의 마음속에 깊은 상처로 남을 것이고, 나 역시 당신의 마음속에 똑같은 상처로 남을 테니까요. (까쩨리나 이바노브나)
- P1336

어쩌면 그것은 거짓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순간만은 진실이었다. 그리고 그들도 자신의 말을 절대적으로 믿었다.
- P1337

서로 못된 성격을 가지고 있기는 마찬가지죠! 모두 못된 인간들이에요! 그러니 누가 누굴 용서한단 말이죠?
- P1338

이렇게 큰 바위 옆에서 우의를 나누던 일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최소한 이 순간만은 착하고 훌륭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마음속에서는 비웃지 못할 겁니다. 또한 아름다운 이 추억이 우리를 커다란 악으로부터 지켜 줄 겁니다. - P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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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상 - 도스또예프스끼 전집 17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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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각각의 캐릭터가 있다. 표도르 까라마조프가 있고 그의 아들, 첫째, 둘째, 셋째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이다. 그들 주변의 인물들, 지금 보고 있는 까쩨리나 역시 완전히 다른 캐릭터이나 그 캐릭터가 선명하다. 그들 입에서 자기 캐릭터를 말한다. 텔링이 아니라 쇼잉으로. 모든 인물들이 그렇게 움직인다. 


종교와 현실 사이의 문제라고 봤으나

이타심과 이기심 사이다.

이타심이라는 가치와 이기적인 동물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들

거기에 비열함, 굴종감, 욕정, 자기애, 자존심 등이 결합되어 

한 인물마다의 캐릭터에 따라 이 가치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기도 하며 


주변인물들로 인하여 강화된다. 

드미뜨리가 끌고 다닌 인물과 그의 가족들

가난과 


돈과 현실의 문제

돈과 마음의 문제

자존심


내가 평생 몇 번인가 다시 볼 용의가 있는 책 중 한 권이다. 어린왕자와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그리고 몇 권이 더 있을 텐데, 채근담도 그럴 수 있으려나. 노인과 바다도.

1413페이지의 벽돌 같은 책 두 권이다. 두 권으로 나눠져 있는데 각 권이 딱 벽돌 크기라 이 딱딱한 속에 무엇이 들어있나 싶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다 읽고 다시 펴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20대 중후반 즈음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뒤 친구가 선물해준 책을 오랫동안 책장에 처박아 뒀다가 오랜만에 빼서 읽었다. 근 20년 만에 읽었으나 여전히 흥미진진했다. 20년의 세월 속에 그때 받았던 많은 인상들은 사라져서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누구지, 라는 추리소설 같은 이 이야기의 답을 알고 있었음에도 사건의 진행은 모두 잊고 있었다. 

중요한 장면이었던 이등 대위 스네기료프와 그의 아들의 일화도 완전히 기억 속에서 사라졌었다. 오랜만에 다시 보니 그들이 소설 속에 꼭 등장해야 하는 인물들임을 다시 알게 되었다. 심지어 소설 마지막은 아들의 장례식으로 끝이 나는데도, 어린 시절에는 대단히 유쾌한 끝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됐다. 


스네기료프는 어쩌면 표도르 까라마조프와는 반대되는 아버지로서 등장하는 걸까

그의 대사 "나 같은 인간도 누군가의 사랑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지요…..."는 심부를 찌른다. 

"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그런 생각이 인간처럼 야만스럽고 사악한 동물의 머리에서 떠올랐다는 거야." 라는 이반의 대사 역시 마찬가지로 다른 어딘가를 훅 찌른다. 

그런가하면 이런 대사도 마찬가지다. 

"어리석을수록 더 선명해진다는 말이지. 어리석음은 간결하면서도 결코 교활할 수 없는 법이지만, 지성은 요리조리 핑계를 대고 꼬리를 잘 감추지. 지성은 비열하지만, 어리석음은 솔직하고 정직하잖니."

-p.420


어쩌면 난 너를 통해 나 스스로를 치료하고 싶은 것인지도 몰라.

-p.420


역시 마찬가지로 삶의 어느 부분을 관통해버린다. 



돈과 멸시, 경멸, 욕망, 삶의 갈망들, 고통과 용서, 자유, 사랑의 겸허함

이런 단어들을 적어두었다. 

21세기의 드라마 역시 이런 식의 주제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요새 빅뱅이론을 열심히 봐서인지 이런 주제들이 우리 안에 분명히 존재할 수밖에 없음에도 요새는 도외시하거나 일부러 모르는 척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 만나고 조금씩 관계가 치열해질수록 저런 주제들 속으로 들어가고 만다는 면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한 가족 속에서 그런 관계들을 그려냈으니, 어쩌면 나 역시 나의 가족들과의 관계에서도 저런 감정들이 다루어지지만 역시 보고 싶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조시마 장로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의 죄악을 바라볼 때면 이렇게 자문하게 됩니다. <힘으로 취할 것인가, 아니면 겸허한 사랑으로 취할 것인가?> 그러면 언제나 <겸허한 사랑으로 취하겠다>고 결정하십시오. 언제나 그렇게 결정하면 온 세상이 정복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겸허함은 무서운 힘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우연한 순간이 아니라 어느 때에나 실천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대사들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야지.



예전에 딱딱한 책 속에서 빛이 난다는 글을 쓴 적이 있었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고 나서 였던 것 같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이 벽돌 같기만 하던 책이 몇몇 문장들을 다시 읽다 보니 빛이 나기 시작한다. 삶이라는 이 관문을 어떻게 통과해나갈 것인가, 심판자가 되지 말고 어린 애들처럼, 천상의 새들처럼 부디 즐거이...


도스토예프스키가 얘기한 것은 자존심일까. 한 사람 마음에 자리잡은 자존심, 아니 주인된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모든 캐릭터가 주인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 그 안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주인이 되기 위해 고뇌하다 내뱉은 대사들. 

주인공들뿐 아니라 까쩨리나, 그루셴까 등도 모두 주인공이 되기 위해 발버둥치며 자기 성격 속에서 고뇌하고 그런 대사들이 넘쳐난다. 


살인은 스메르쟈꼬프가 저질렀으나 그는 이반의 사주를 받았다고 한다. 이반 또한 그로 인해 괴로워한다. 스메르쟈꼬프가 어떻게 사주되었는지, 그가 어떻게 살인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 이반의 목소리를 잘 들여다보면 증명되기도 한다. 




2025 12 29일 월요일


큰 고난에 빠지겠지만, 그 고난 속에 행복이 있단다. 네게 주는 나의 유언은 고난 속에서 행복을 찾으라는 것이다. - P144

누구든지 진실을 말해야 할 것 같아서….... 왜냐하면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진실을 말하고 싶어하지 않으니까요….... - P341

그리고 지금 발을 구르며 나한테 어릿광대라고 욕을 해댄 아이도 역시 인간의 모습을 한 천사입니다. - P361

일이라고는 전혀 할 수 없는데도 입만은 여전히 벌리고 있을 테니, 누가 나를 먹여 살리겠습니까? - P363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잔인한 집단이지요. 제각기 떨어져 있으면 천사 같지만, 함께 어울릴 때는, 특히 학교에서는 말입니다. - P365

비록 멸시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고결한 마음씨를 지닌 우리 헐벗은 아이들은 겨우 아홉 살에 불과한 나이에 벌써 이 땅의 진실을 배우게 되는 겁니다. 부자들은 평생에 걸쳐서도 그런 깊이에 이르지 못하지만 우리 일류샤는 광장에서 도련님 형의 손에 입을 맞추는 순간, 바로 그 순간에 모든 진실을 깨달은 겁니다. 그 진실이 그 애의 마음속에 파고들어 영원히 치료되지 않는 상처를 남기고 만 것이지요. - P366

그애는 <아빠, 아빠, 세상에서 부자가 가장 힘이 센가요?>라고 묻는 것이었어요. <그래, 일류샤, 부자보다 힘센 사람은 없단다>라고 대답해 주었더니, <아빠, 난 부자가 되겠어요, 장교가 되어서 적들을 모두 물리친 다음, 황제의 상을 받아 돌아오면 그땐 아무도 우리를 멸시하지 않을 거예요> - P368

"치욕의 대가로 당신들의 돈을 받는다면 내가 우리 아이한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소?" - P377

내 마음속에 들어 있는 이처럼 열렬하고 거친 삶을 향한 갈망을 이길 만한 그런 절망이 이 세상에 존재할까 하고 말이야. 내 생각에 그런 것은 없는 것 같아, 적어도 서른 살까지는 말이야. (중략) 나는 살고 싶고 또한 살고 있어. - P409

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그런 생각이 인간처럼 야만스럽고 사악한 동물의 머리에서 떠올랐다는 거야. - P417

내겐 응보가 필요해. 그렇지 않으면 난 자멸하게 될 테니. 응보는 무한 속의 언제 어디선가가 아니라, 내가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이 땅 위에 필요한 거야. - P434

고통으로 영원한 조화를 사기 위해 모두가 고통을 겪어야 한다면 아이들이 어째서 거기에 있어야 하는 거지? 어디 한번 말해 봐? 어째서 그 애들이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어. 어째서 그 애들의 고통으로 조화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거냐고? - P434

왜냐하면 그 애의 눈물은 보상받지 못한 채 버려졌기 때문이야. 그 애의 눈물은 보상받아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조화란 불가능할 테니. - P435

그리고 지옥이 있다면 조화란 있을 수 없는 거야. 난 용서하고 싶고 포옹하고 싶어. 나는 더 이상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 것을 원치 않아. - P436

만일 그들이 용서할 수 없다면 조화란 어느 곳에 있을까? 그렇다면 이 세상에 용서할 수 있고 용서할 권리를 가진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단 말이야. 난 차라리 보상받지 못한 고통과 함께 남고 싶어. 비록 내 생각이 틀렸다고 하더라도 차라리 보상받지 못한 고통과 해소되지 못한 분노를 품은 채 남을 거야. - P436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천상의 빵의 이름으로 당신을 따른다 해도 천상의 빵 때문에 지상의 빵을 경시할 능력이 없는 수백만, 수천만의 사람들이 남게 될 것이 아니오? (중략) 따라서 반드시 거짓말을 해야만 하므로 그 거짓말 속에 우리들의 괴로움이 깃들어 있는 것이오.

- P451

인간이라는 불행한 존재들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지녔던 자유라는 선물을 한시 바삐 넘겨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 고통스런 고민은 없는 것이오. (중략) 인간 존재의 비밀은 그저 살아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살아가느냐에 있기 때문이오. (중략) 그 자유를 배가시켜 인간의 정신적 왕국에 영원히 고통을 안겨 주지 않았소. - P453

당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허약하고 비천하게 창조되어 있는 것이오! 당신이 했던 일을 인간이 해낼 수 있을 것 같소? 당신은 인간을 너무나 존중했기에 인간을 동정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고 말았소. (중략) 그러므로 불안과 혼란과 불행은 당신이 그들의 자유를 위해 수난을 겪은 후에 남겨진 현재 인간의 운명이란 말이오. - P456

그러면 나머지 사람들은 어찌 되오? 강한 인간들처럼 견뎌 낼 수 없었던 나머지 허약한 사람들은 대체 무슨 죄를 지은 것이란 말이오? 그처럼 무서운 재능을 부여받을 수 없었던 허약한 영혼은 대체 무슨 죄를 지은 것이오? 당신은 오로지 선택된 자들을 위해, 선택된 자들만을 찾아온 것은 아니오? 그렇다면 그것이야말로 신비이며 우리들은 그것을 이해할 수도 없소. 하지만 만일 신비가 존재한다면 사람들의 자유로운 의사 결정이나 사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신비이며, 설혹 양심에 거리낀다 할지라도 사람들이 무조건 복종해야 할 것은 신비라고 전도하고 가르치는 것이 정당할 것이오. - P457

인류의 무능을 너무나 딱하게 여겨서 사랑으로 그들의 짐을 덜어 주고 우리들이 허락하는 한 비록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그들의 허약한 본성을 용납하는데도 우리들이 인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소? - P458

만일 내가 진정으로 끈끈한 새 잎에 집착하게 된다면 너를 회상하며 그것들을 사랑하게 될 거야. 네가 이 세상 어디엔가 살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난 만족해서 산다는 것에 싫증을 느끼지 않을 거야. - P469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중략) 많은 반대자들이 있을 테지만 그 원수들조차 너를 사랑하게 될 거야. 인생이 너에게 많은 불행을 안겨 주겠지만 그로 인해 행복해질 것이고 인생을 축복할 것이며 결국 다른 사람들의 인생도 축복하게 될 테니. - P505

하느님의 백성을 믿는 사람은 비록 그전까지는 스스로도 믿지 않았다 할지라도 민중들 속에서 자신의 보물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 P521

인간의 모든 죄악을 떠맡고 그 책임자가 되십시오. 벗이여, 바로 그것이 옳은 길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죄에 대하여 만인에 대하여 진정으로 그 책임자로서 처신한다면 그때 여러분은 그것이 진정으로 사실이며, 당신이야말로 만인에 대해, 모든 죄에 대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나태와 무력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린다면 사탄의 자만심을 갖게 되어 하느님께 불평을 터뜨리는 결과가 나올 뿐입니다. - P570

왜냐하면 영원한 심판자는 당신에게 당신이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을 묻는 것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을 묻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략) 진정으로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떠돌고 있는 것과도 같으니 - P570

사람들은 절대 심판자가 될 수 없음을 특히 기억해 두십시오. - P571

그는 모든 사람들의 모든 것을 용서하고 싶었고 또 용서받고 싶었다. - P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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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자 - 근현대 산문 대가들의 깊고 깊은 산문 모음 봄날의책 한국산문선
강운구 외 지음, 박미경 엮음 / 봄날의책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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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읽는 동안 마음이 따끈해졌다. 


은경이에게 선물로 줬던 산문집 '나는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에 대한 답장으로 받은 책이다. 은경이가 그 책이 좋았다며 다음으로 읽을 산문집을 고르며 내 것도 하나 골랐다며 보냈다. 

이동 중에 주로 봤다. 광주로 가는 버스에서, 강릉으로 오는 기차에서 한 편씩 읽었다. 초반부는 따끈하고 좋았는데 후반부의 백석이나 이상의 산문은 너무 오래 전 사람들이라 그런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산문도 시대가 있나? 낯선 단어들도 걸렸고, 느낌도 그때와는 달라서일까. 

엮은이는 이 글들이 탱자 같다고 했다. 그래서 제목을 탱자라고 했다고.

그러고 보면 탱자나무를 직접 본 것도 여기에 와서 였으니 내 삶은 많이 달라졌다. 원하던 방향이다. 경제적인 가치, 사회적인 가치 면에서는 조금 어려워졌지만... 탱자나무가 어떻게 생겼나 찾아봤을지도 모르니, 사람이 가는 길은 자기만 아는 법인가. 

글에서 사람은 솔직할 수 있다. 가난에 대해서도, 나의 한 시절에 대해서도, 가감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부끄럼 없이, 그런 게 좋다. 동정이나 연민도 없이, 그저 지나온 걸음들, 가고 있는 걸음들을 적고 그게 어떤 공명음을 불러일으키고. 


2025 12 29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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