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헤드 1
모치즈키 미네타로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0년 4월
평점 :
품절


어둠. 갑작스레 눈을 뜬다. 주위는 어둡고 사물을 분별하기는 힘들다. 역한 비린내가 코를 쑤신다. 익숙치않은 어둠을 이기고 주위를 둘러보니 자신의 친구들이 끔찍한 상태로 죽어있다. 살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은 꿈이다. 꿈이다.. 꿈이다... 꿈.... 

   모치즈키 미네타로의 <드래곤헤드>는 이와 같은 황당함(혹은 상상하기 싫은 가장 끔찍한 공포)으로 시작한다. 불과 몇 분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일상이었다. 교토에서 도쿄로 돌아오는 수학여행 귀경길. 서로 CD를 바꿔들으면서 그리고 정말 재수 없는 선생(뭐 흔히들 게쉬타포라 불리는 선생은 어느 학교에든지 꼭 있지 않은가)을 씹으면서 돌아오는 길에 갑작스레 '어떤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여기서 '어떤 사고'는 무엇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화산이 폭발했는지 아니면 핵전쟁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해답은 6권에서야 밝혀진다). 문제는 갑자기 어떤 충격으로 인해 정신을 잃고, 다시 정신을 차리니 살아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일이다. 나머지 생존자 두 명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믿기 힘든 일이 눈앞에 벌어지고 나서 주인공인 테루가 정신을 수습하기에는 꽤 긴 시간이 흐른다. 신간선 열차의 유일한 생존자인(아직까지는) 테루가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자신은 이 열차의 유일한 생존자이며 이 열차에 타고 있던 승객 전원과 자신은 매몰된 터널에 갇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혹시나 하는 생존자를 찾던 도중 세토라는 여자아이와 노부오라는 남자아이를 발견한다. 더 이상의 생존자는 없으며 어둠과 죽음만이 존재하는 매몰된 터널 안에서 이들은 정신적 패닉상태에 빠진다. 이들 셋이 망가지는 과정은 이들의 현실에서의 삶과 연관되어 망가진다. 

  

테루와 세토 

   테루는 이들 셋 중 살아야 할 목적의식이 가장 투철하다. 자신이 매몰되었음을 가장 먼저 알아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구를 찾는데 가장 적극적이다(게다가 가장 덜 망가진다). 테루는 너무나 단란한 가정이 있고, 학교에서의 생활도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는 이 끔찍한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 이 안에 있으면 그는 잃을 게 많기 때문이다. 

   반면에 노부오는 지옥과도 같은 이곳을 빠져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곳은 말그대로 지옥이다. 친구들과 선생님의 시체는 이상열기로 부패하고 있는 상태고 음식물도 남은 게 거의 없는 상태다. 주위는 온통 어둠으로 둘러쌓여 있는데도 노부오는 붕괴된 터널 안에서 그보다 더 작은 공간인 시체들이 즐비한 객차 안으로 들어간다. 노부오는 왕따 학생이었(던 것 같)다. 그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선생님이건 학우들이건 그는 언제나 놀림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바꾸었다. 노부오를 놀리던 이들은 다 죽어버렸다. 이제 노부오만이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을 우습게 봤던 모든 이들은 이제 노부오의 지배권 하에 있었다. 시체를 태우건 쑤시건간에 노부오 맘대로다. 단, 살아있는 두 사람만 빼고는... 

   이들 서로의 긴장 관계는 권력 쪽으로 흐른다. 남아있으려는 노부오와 탈출구를 찾으려는 테루 사이에서 세토는 갈등하게 된다. 세토는 이 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은 없어 보인다. 단지,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세토는 테루처럼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그녀의 부모님은 돌아가셨다)  

   노부오는 점점 공포에 잠식된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들처럼)자신의 몸에 문양을 그려 자신을 숨기기 시작한다. 객차가 자신의 통제권 안에 있다 하더라도 그는 불과 17살(이 만화에서는 나이는 명시되지 않았지만 수학여행은 대개 고 1때 갔다오니까 그쯤 되지 않았을까?)이다. 수많은 시체더미(게다가 이상열기로 부패가 급속도로 진전되고 있는 상황)안에서 그는 방향을 상실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앞서 얘기했던 정말 재수 없던 선생('미니라'라는 '괴수'이름으로 불리는)의 시체를 끌고와 왕좌에 앉힌다. 그라면 이러한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을 것 같기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부오는 점점 더 공포에 잠식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어떤 것, 그 무엇이 자신을 조여오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노부오  

"난 왕따여서 알 수 있어... 무서운 것은... 없애버리던지 아님 친구가 되어버리던지 둘 중 하나라는 거야." 

   결국 그는 어둠과 친구가 되는 조건으로 미니라를 제물로 바친다. 어둠은 그 댓가로 노부오를 어둠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인간은 모든 것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존재다. 처음의 테루와 노부오도 그랬고, 나중에 테루와 세토가 동경으로 가는 까닭은 '자신의 눈으로 이 모든 소문의 진위를 확인해보고 싶어서'이다. 계속되는 공포를 피하고 싶어서 더 큰 공포를 만든다(이건 이토 준지의 만화에서도 다루고 있는 주제이다).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행동은 대개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한 무모한 행동이다. 우리는 공포영화에서 그런 것을 많이 보아왔다.(지하실에서 소리나는 그 무언가를 보기 위해서 일행과 떨어지는 인물들같은 경우) 그들 모두가 죽는 것을 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직접 확인한다. 이건 이성의 힘이 아니다. 그저 본능이다. 그렇다면 이성의 힘이 발휘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일까? 

   눈에 보이는 공포와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폴 바호벤이 감독한 <스타쉽 트루퍼즈>와 <할로우 맨>을 예로 들어보자. <스타쉽 트루퍼즈>는 벌레와 인간의 싸움이다. 엄청난 떼로 몰려드는 벌레에게 사지가 절단되고, 목이 날라가고 다리가 갉아먹히고 내장이 튀어나오고 피가 사방에 흩날리는 지옥도와 같은 풍경이 펼쳐지지만, 관객은 그것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거짓이기 때문에. 분명히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긴 하지만, 그것은 허구이고 더구나 관객의 시선은 모든 것을 구경하는 구경꾼의 시선이기 때문에 공포가 개입될 여지가 없다. 반면에 <할로우 맨>은 투명인간이라는 대상은 영화속 등장인물들뿐만 아니라 우리 눈에도 보이지 않는다. 투명인간이 된 세바스찬이 그의 동료들을 죽일 때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맞서는 인물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들과 같은 공포를 느끼게 된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우리가 파악할 수 없는 존재니까. 

   투명인간은 영어로 'Invisible Man'이다. 그런데 폴 바호벤 감독은 왜 'Hallow(속이 텅 빈) man'이라 했을까. 플라톤은 <국가론> 2권에서 투명인간의 예를 들었다. 한 남자가 투명인간이 되는 반지를 줍자 그는 그 반지를 껴서 투명인간이 된 후 궁전에 들어가 왕비를 탐하고 왕을 죽이고 그 나라의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즉 인간이 내적인 도덕률 때문에 올바르고 겸손하게 사는게 아니라 사회의 구속력에 어쩔 수 없이 순종하기 때문에 그런 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라는 얘기다. 만일 그러한 구속력이 다 제거된다면 과연 인간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할로우 맨>은 이러한 물음에 끔찍하게 대답한다. 말 그대로 투명인간이 된 인간을 그 자신의 외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내면까지도 텅 비게 만든 것이다. 우리가 지금껏 배워오고 반복학습하며 믿고있는 최소한의 양심이라는 것이 우리를 구속하는 그 모든 것이 사라진다면 전혀 쓸모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는 것. 그 자체가 공포가 아닐런지.  

   노부오는 자신을 구속하는 모든 것이 사라지자 인간이라고는 믿기 힘든 모습을 보여주었다.(어쩌면 그것이 인간의 본 모습일지도 모른다) 친구와 선생님의 시체를 능욕하는 것과 죽음에 임박했다는 것을 느끼며 세토를 강간(성공은 못했지만)하는 것은 옳고 그른 잣대를 댈 일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분별력으로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있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구속력은 사라져 버렸다. 

   터널 안은 이성은 사라지고 본능만이 남은 세계이다. 테루, 노부오, 세토 이들 셋은 각기 방법은 다르지만 서로 살려고 한다. 자신에게 방해가 되면 가차없이 죽이려 한다. 모든 것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려 한다. 이상한 소문은 믿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러한 소문들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한다. 모든 것이 꿈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눈을 뜨면 여전히 끔찍한 현실이다. 이성은 꿈속에서만 발휘되고 현실에서는 본능만이 있다. 살아야 한다. 

   그 끔찍한 지옥에서 벗어난 테루와 세토는 여러가지 사건을 겪고 마침대 도쿄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이상한 집단과 마주치게 된다. 그들은 목이 (반쯤)베어져 있거나 팔 혹은 다리가 잘리거나 상처를 입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자해한 집단이다. 언제부터 시작되어진지도 잊어버린 끔찍한 공포속에 머물러있다 보니 감각 자체를 잊어버린 것이다. 그들은 감각을 찾기 위해서 스스로를 자해한 것이다. 그리고 구조활동을 벌이는 구조대를 사냥(!)해서 목을 베고 불을 피우며 구조대를 공포에 떨게한다. 공포에서 벗어나는 길은 더 큰 공포뿐이라면서. 

   마침내 테루는 집에 도착한다. 자신의 눈으로, 파괴된 자신의 집을 확인한다. 결국 테루는 모든 것을 다 확인했다. 어쩌면 제일 무서운 상황은 이것이 아닐까. 모든 상황을 다 헤집고 결국 살아남아 확인했을 때, 그나마 어렴풋하게 가지고 있던 기대가 완전히 박살나는 상황. 만화나 영화야 이런 상황에서 THE END하면서 상황종료 하면 되지만, 그것이 만일 현실이라면 그 상황을 짊어매야하는 주인공의 심정은 '공포 그 자체'가  아닐까. 

   이 걸작이 절판인 상태로 머물러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그렇다고 애장판이나 완전판이 나오기에는 주제가 너무나 무겁고 심각해 잘 팔리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재판본으로 다시 감상할 수 있을 기회가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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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da 2009-11-07 0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제 책장에도 꽂혀있는데... 예전에 재밌게 봐서 헌책방에서 샀는데 다시 보진 않아서 글도 보진 않았어요~

Tomek 2009-11-07 12:01   좋아요 0 | URL
제 리뷰는 읽지 않으시더라도, 책은 꼭 다시 읽어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