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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면 - 낮의 이별과 밤의 사랑 혹은 그림이 숨겨둔 33개의 이야기
황경신 지음 / 아트북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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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그림을 볼 때면 여지없이 생각나는 궁금증이 있다. ‘왜 하필 이 장면이었어야만 했나하는 생각이 그것이다. 그림 안의 풍경은 무조건 하나의 장면만을 담고 있으니 왜 하필이란 생각이 들어도 이상할 것은 없다. 정지된 단 하나의 동작 안에는 그 안에 벌어진 이야기, 풍경들이 숨을 멈추고 일제히 가장 자신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극대화된 상태로 멈추어 진다. 머금을 수 있는 최대의 공기를 품고, 찰나의 역사를 응축시키면 작가의 눈이 크로키처럼 빠르게 작동되어 연출되고 화폭에 담긴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물리적으로 크로키처럼 몇 초 안에 그릴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마치 살아있는 듯, 그 정교함이 예민해 보일수록 그린이의 을 탄복하게 되면서 상상의 나래는 한껏 부풀게 된다. 이미 멈춘 것이 아니기에 이후 완성되기 까지의 시간은 모두 작가의 상상과 의도로 꾸며지게 되어 있다. 그림 안의 단 하나의 장면을 위해 작가는 가장 효율적인 배치를 정하고, 스토리를 꾸미며, 방향과, 비밀을 적절히 배치하는 연극판의 연출가처럼 판을 짠다만약 그림 안에 다 담지 못한 게 있다면 그런대로 미완인 채로 남겨지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림은 그래서 서사가 정지된 와 같은 예술인지도 모르겠다. 순간에 명멸해버린 그 기운만이라도 담겨지면 그만인, 영원히 그 상태에서 정지해 버린 비극의 예술로도 불릴 수 있는 것이 회화 예술이 아닐까.

왜 하필 이것이어야 했나란 물음에는 우연보다는 필연이, 아무리 사소한 풍경의 단서에라도 마치 맥을 짚는 의사의 손길처럼 정확하고 유연한 진단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어떤 여인의 사소한 눈동자의 흔들림이 있다고 할 때 이 역시 결코 이유 없는 그냥이란 말을 갖다 붙일 수는 없는 것이다. 연동하는 가운데 정지버튼이 작동할 그 찰나인 이유에는 유기를 갖는 서사가 작동되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녀는 누구를 바라보고 있던 것일까? 그 전과 이후에는 어떤 일이 펼쳐졌던 것일까? 하나의 프레임 안에는 당초 모든 것들이 각자의 비밀과 필연을 품고 보는 이로 하여금 그 비밀을 풀어달라는 애원이 숨겨 있다. 그래서 오랜 시간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작가의 의도와 이야기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은 이해가 품어진다.

 

 

<눈을 감으면>에서 황경신 작가의 눈에 머문 찰나는 모든 상상의 가장 슬픈 지점의 곳에서 시작되는 이야기인 것 처럼 보인다. 그림을 보고 전후의 서사를 상상해 본 서른세가지 이야기가 이별, 슬픔, 성장과 사랑 네 가지 테마로 엮어져 있다.

황경신 작가는 월간 <페이퍼>를 통해 오랫동안 봐온터라 익숙하다. 유난히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슬픈 시처럼 흩뿌려 진 글을 쓰는 사람이다. 그녀의 상상력은 우주의 빅뱅과도 같아서 창조적 폭발이 수시로 이루어지는 사람처럼 보였다. 어리석게도 어떤 날 나는 그녀의 글이 달이 지나면 잊히고 사라져버릴 잡지에 실려도 좋은 걸까, 그러면 좀 아까운데 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어쨌든 그녀의 글은 매달 보더라도 한 번도 대충인 법이 없는 그런 응축된 미를 가장 잘 보이는 글쟁이었다. 어쩌면 그렇게도 결이 촘촘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쓸 수 있나 볼 때마다 의아했던 것 같다.

 

 

<눈을 감으면>에서는 그동안 많이 봐온 글쓰기에서 조금은 벗어나, 그림으로 출발한 상상의 서른세 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어 흥미로웠다. 특히 여기에 실린 회화 작품들은 그리 유명한 작품들도 아니라는 점이 눈길을 끌었던 것 같다유명한 작가라고 하더라도 대표작은 아닌 그림 위주로만 있어서 대부분의 작품들이 생소했다. 그래서 황경신 작가가 이야기하는 서사의 흐름 위에 나의 처음으로 보태지는 상상력이 흐르며 자유롭게 맥이 흐르는 기분을 선사해 주었다. 황경신 작가의 이야기에는 지독히도 내면을 파고드는 매력이 있지만 그 비밀이 다 헤짚어지는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위험이 흐르는 점도 재미있다. 이것 때문일까 그녀의 글을 읽고 있으면 밝음 보다는 침잠해지는 기운이 지배되고, 곧 그녀가 의도한 눈을 감으면, 들리지 않은 소리와 보이지 않은 희망, 잡을 수 없는 사랑같은 것이 싱싱하게 튀어 올랐다. 이는 역동성이라기보다는 슬픔의 분출처럼 느껴진다. 어째서 그것이어야만 했나 하는, 그림 속 하나의 재스춰 만으로도 온 이야기가 일제히 일어나 유동하고 언어로 춤을 추는 것 같은 마법이 가감 없이 펼쳐진다. 그녀의 눈길처럼 섬세하고 유려하게 펼쳐지는 밤의 이야기를 아주 흥미롭게 오래 펼쳐 보게 될 것 같은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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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 - 어느 여행자의 기억
변종모 글.사진 / 허밍버드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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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변종모의 글에는 그만의 독특한 향이 나 좋다. <짝사랑도 병이다>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 전작들의 제목에서만도 그의 범상치 않은 언어에 대한 유별함이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의 글에는 이방인의 정서, 익숙지 않은 조합, 아련함, 몇 번을 더 생각하게 만드는 여백의 말들로 무한함의 영원을 드러낸다.

 

 

작가에게 여행이라는 것과 풍경의 기록이라는 행위는 마치 내부운동이 이는 일과 같을 것이다. 말하자면 우주의 온 색, 작용, 섭리 같은 것들이 그곳의 자연과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응축되어 격렬함과 유유함, 시간의 순환 등 세상의 모든 성분이 담긴 성찰로 담긴다. 그래서일까 그의 글은 소박해 보이지만 유난히 아름답고, 평소 보지 못한 비밀을 전해주는 밀사의 언어 같다.

국경을 넘나든 숫자만큼, 이 마을 저 마을 사람들과 나눈 눈인사만큼이나 숱하게 소박한 일상이 거듭되고, 여과되고, 정화된 투명한 얼굴의 글이 바로 변종모의 삶이라 말할 수 있을지.

 

 

새삼 여행자라는 업을 두고 사는 이들이 부러운 건 마음껏 삶에 기대사는 면 때문이 아닌가 싶어진다. 세상이 치열하게 극복해나갈 대상이며 한 발자국이라도 먼저 내딛어야 하는 경쟁 구조 속 삶 말고, 천천히 돌아가도 좋고 유보되어도 좋을 여행자의 삶처럼 꾸릴 수 있다는 건 정말 크나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작가는 어디든 한국에서의 삶과 비교해서 같거나 다름을 보는 시선이 아니라, 얼마동안든 그곳에서의 생활자로 그냥 바라보는 일을 하는 시선이 참 좋다. 오랜 경험에서 묻어 나오는 품위로 읽혀지는 일이다. 그래서 그의 책은 여느 여행자의 책처럼 여행지를 소개하거나 장단점을 쉽게 말해주는 여행서도 아니고,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일화 일랑은 찾기 힘들다. 시종일관 그들의 삶에 묻힌 모습, 진지하게 다가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친구가 되고 그곳의 생활자로 머문 ‘지금 현재 내가 있는 곳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는 그런 삶이다. 역시 삶에 기대어 살 수 있는 삶이 진짜 쉼이고 진정한 여행은 아닐까.

 

 

 

신작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에서는 좀 특별하게 작가의 혀끝에 감도는 맛의 여운에 대한 여행의 일을 담았다. 시선이 음식에 가 있긴 하지만 결국은 그것들이 내 혀로 전해지기까지의 소소한 하루와 사람들의 잔잔한 마음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세상 어느 곳이든 한 접시의 인생이 깃들여 있는 건 진리일지도 모르겠다. 고유의 역사와 환경, 문화가 녹아 들어간 음식이 모두 제각각인 건 그래서 참 흥미로운 여행의 시작인 것이다. 하루라도 먹지 않는 날이 없는 것을 감사하면서 풍요롭지 않지만 접시 하나, 대충 넣어 만든 한 잔의 커피에서 느껴지는 맛의 풍경은 먹어보지 않아도 따뜻한 정이 전해지는 군침이 도는 맛일 것 같다.

 

 

작가의 아름다운 말과 맛에 취하다 보면 어느새 강렬하게 잊을 수 없는 매력을 또 차곡차곡 쌓고 있다는 걸 눈치 챌 수 있게 된다. 그것은 그가 직접 찍은 사진의 기록들이다. 전작들에서와 같이 이번에도 그는 유난히도 맑게 빛나는 사람의 눈동자를 주시하곤 한다. 아이의 극대화된 얼굴 안에는 순수하고 투명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있다. 천진하고도 수줍은 미소의 입가를 보면 소박한 한 접시의 음식을 작게 오물거리는 모습 역시 떠오르게 만든다. 동원될 수 있는 모든 감각들이 일어나서 생생하게 전해주는 이 고요한 부축임을 영락없이 당하고 말게 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세상 어느 곳을 가든 마음이 전해지는 맛을 느껴볼 수 있다는 건 삶의 가장 근원적인 감사의 일일 것이다. 작가는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매일 그들이 주는 양식으로 배를 채우며 인상을 마음으로 채운다. 맛의 정취는 여행지에서 주는 일부의 풍경일 테지만 소박한 맛이라도 결코 잊을 수 없게 되는 이유는 그 일부가 모여 전부가 되기 때문은 아닐까.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날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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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인시공 - 책 읽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
정수복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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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책 한권을 읽는 다는 것은 정신의 무게 몇 그램 정도를 덜거나 더는 일이다. 책이 주는 경중의 개념이 더 좋거나 나쁘거나를 의미한다기 보다는 계속해서 밸런스를 유지해 나가는 마음의 윤활유 같은 것에 가까우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더하면 더해지는 대로 좋은 일이고 덜어지게 되더라도 그만큼 값진 일일 것이다.

 

 

고백하자면 아직은 더 많이 읽어야 알 수 있는 것이겠지만, 책 한 권으로 마음에 이는 잔물결이나 혹은 폭풍우 치는 나날이 반복된대도 그게 나로 하여금 더 나은 값진 인생으로 미치게 되었는가를 자신 있게 자문하고 답한 일은 없는 것 같다. 좋은 책을 옆에 두고도 웬 실없는 소린가 싶지만 여러모로 부족한 기질 탓이다. 그러나 용기 내어 말하자면 내 형편없는 경우라도 이 책에 나오는 권리 장전에 의하면 분명히 합당한 범주안의 것인 모양이어 안심이다. 다행히 그 어떤 시간을 누리게 된 때보다 책과 함께 하는 시간이 가장 마음의 고요를 주고 지금 이대로면 어떤가 싶은 만족감을 주는 것은 내가 바라는 책의 가장 이상적인(아직까지는) 면모이기에 그런대로 괜찮다. 책을 만나는 시간은 대게 이런 식으로 얼토당토않게 쌓이기도 하는 일이니까. 

 

 

진지하게 책이라는 물성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은 별로 없지만 <책인시공>을 읽게 되면서 자연스레 책과 아우른 상황과 시간들에 대한 주변부를 생각해보게 된다. 권하는 말에 소설가 김영하가 말하는 것처럼 조만간 책이 물성까지 잃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이 몰락 덕분에 새삼 책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옛날 보다는 훨씬 더 다양하고 많은 판매 부수로 서점을 메우는 양적인 현실에 이르렀지만, 사실상 사람들이 다양한 매체 속에 굳이 책일 필요가 없게 된 것, 더불어 전자책의 시대 도래로 물적인 책의 판매는 더욱 줄게 된 것이 지금의 실정이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 세기의 풍요로움의 상징물들이 더 이상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게 된 걸 보면 지나친 말도 아닐 것이다. 계산기, 전축, 카메라, 컴퓨터, 지도 등 거의 모든 아날로그 적인 것이 핸드폰 하나에 모든 것을 담게 될 세상이 이렇게 빨리 찾아 올 줄 예측하기란 힘든 일이었다. 책이 주는 질감, 서가에 꽂힌 단순한 물욕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전자책이 주는 간편함과 가속성의 유혹에 빠져들지 못하리란 예감은 변함이 없지만 어쨌든 시대는 변하고 있다. 우리는 책의 위기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맥없이 지켜볼 노릇이지만 그것대로의 장단점을 각자 판단하면서 영위하게 될 일이다. 

이 책은 작가가 책의 위기 때문에 구상하기 시작한 진단서도 아니고, 책이 주는 여러 이로움이라야 어느 시대 어떤 특정한 시점에 나와도 이상한 일이 전혀 없는 것이어서 자칫 평범한 책같기도 하다. 다만 책과 둘러싼 여러 현상들과 속성들에 대한 생각만을 줄창 해본적은 없어서 책 자체로서의 어떤점을 주목하게 되었는가를 꾸준히 보게 되면 책의 다른 면이 이렇게도 많았는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그런 책이다.

 

 

 

정수복의 <책인시공>은 책이 주는 삶의 여러 이로운 태도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당연한 소리지만 책은 현실과 세상으로부터 잠시 도피되어 ‘나’와 마주한 고유한 시간을 주는 매개체다. 이 안에 여러 역설이 숨겨져 있다는 건 새삼 흥미롭다. 말하자면 ‘나’를 마주하지만 나를 잊게 되는 시간을 주고,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장소에 놓이게 되지만 책은 또 다른 ‘세상’을 보여주는 역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국 또 다른 ‘나’와 ‘세상’을 보고 싶어 하는 본능을 가진 것이다.

 

 

작가는 책에 대한 여러 고찰을 하면서도 나열하고 정리하는 선별자의 태도가 아니라, 마음껏 책 위에서 노닐고 독자에게도 과감히 이 안에서 뛰어 놀라고 말하는 독려자처럼 다가온다. 그것은 마치 아주 오랫동안 책의 습성과 관성들을 견디고 터득한 사람이 내보이는 버릇 같다. 섬세한 시선의 누적이 구체적인 버릇들의 발현으로 하나의 규칙이어도 좋을 그만의 책세상이 펼쳐지는 것이다. 어디에서든 그 나름의 의미들이 있고 내가 해보지 않은 시간과 장소에서 책을 펼쳐 읽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일이기에 하나하나 눈여겨보게 되는 매력이 있다. 나만의 책버릇을 자신있게 영위하고 싶은, 용기가 북돋아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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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책 읽기 - 그 시절 만난 책 한 권이 내 인생의 시계를 바꿔놓았다
김경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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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진성하게 즐길 줄 안다는 것은 곧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그 당위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할 때 가장 좋은가? 이 질문에 용수철이라도 달아놓은 것 마냥 마음에서 곧장 나만의 활용법이라도 튀어 나와 준다면 참 다행인 일이지만. ‘그러니까, 음, 가만있어 보자...’ 간투사 정도로 유예하면서 사뭇 느긋한 골몰을 쓰게 된다면 어떨까. 이쪽의 경우라면 앞으로 제대로 살 궁리나 진지하게 다짐하는 쪽이 면이 설 방도를 찾는 일일게다.

물론 시간을 후회 없이 보내고 싶은 생각이야 풍성하다 못해 평생 자책해 온 주된 골몰에 가깝긴 하다. 성취감을 주는 ‘일’을 제외하고 나머지 시간들을 과연 어떻게 보내느냐에 대한 고민은 아마 평생 시간에 들러붙어 일관된 적 없는 어제와 오늘을 조롱하며 괴롭혀댈 것이다.

 

 

 

<젊은 날의 책읽기>를 읽다가 왜 느닷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한 자책까지 늘어놓느냐 하면, 이 문제가 결국 ‘행복’ 또는 그런 대로의 ‘만족’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잘 보내고 싶은 것은 감정의 ‘좋음’의 상태를 유지하고 싶은 위함이고 둘은 뗄 수 없는 고리에 맞물린 인과가 있다. 시간을 잘 누려서 내가 행복하거나 만족에 이르는 최적의 꺼리를 찾는 행위는 인생에 가장 중요한 과정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러니 무엇이든 누릴 수 있는 게 있다면 무조건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도저도 아닌 이유로 머뭇거려진다면 그건 나쁘거나 조롱할 일이라기보다, 그저 잠시 나를 들여다 볼 시간임을 말해주는 일이다. 마음을 천천히 또한 열심히 들여다보면서 이것저것 경험해 보는 것 외에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이 책의 저자도 밝히는 바지만 흥미로웠던 것이 지난날을 돌아볼 때 적지 않은 사람들이 활자 중독이었음을 고백하며 닥치는 대로 읽었던 독서 습관에 대한 이야기하는 대목들이다.

매 맞을 일만 없다면 저녁 끼니 거르는 것은 물론이고 밤을 패서라도 숨바꼭질이나 돈가스 놀이를 하고 싶었던 나의 어린 날에 비하면, 자신에게 이런 말까지 하고 싶지 않지만 ‘격’까지 운운하고 싶어질 정도다. 나는 되도록 활자와는 거리를 둔 시간만을 누리고 싶어 했고, 사람이 책을 좋아할 수도 있다는 것도 믿고 싶지 않았지만 알았대도 ‘활자 중독’이 호환마마보다도 무시무시한 질병인줄 알았을 것이다. 책을 좋아하는 어린이들은 대관절 무슨 우아를 떨고 싶어 태생적으로 그리 폼을 재는 기질을 타고난 걸까? 농담이다. 어쩌겠는가. 독서가 그리 좋았다는데.   

 

 

사실 이들이 책을 붙들고 산 덕에 가득 차있는 지식의 샘을 부럽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시간을 누린 습관과도 같은 행위들이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이어지는 그 충성도가 좀 부럽긴 하다. 입맛도 변하고 생각도 변하지만 유독 독서 습관 같은 것은 여간해서는 변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저자가 일일이 축적해 온 독서의 요령들이나 감상들이 아주 탄탄한 맥을 타고 흐르는 인상을 준다. 어릴 때의 추억이나 소소한 생각들을 버무리면서 인상 깊었던 각각 책의 요소를 짚어 내는 것이 저자가 어떤 기질의 사람인가도 잘 설명해 준다. 차분히 앉아 책을 읽으며 정리한 시간의 축적이 많은 사람들만이 풍길 수 있는 그런 품위 같은 것이 엿보인 달까. 양질의 책을 골라내고 안목을 정비하는데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을지 가늠이 된다.

 

 

 

작가는 몇몇 테마로 책에서 읽고 느낀바 중 특히 어떤 대목을 주목했는지 인용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진지한 접점, 또는 차이 등 교감하려는 시도가 주를 이룬다. 이러한 글쓰기는 주제와 말하려는 바를 콕 집어서 말해주는 장점이 있지만 앞 뒤 맥락이 흐린 채로 인용한 부분에 깊은 동감을 하기란 쉬운 것은 아니어서 좀 아쉬운 점이기도 했다.

읽어보지 못한 책들의 목록을 메모하면서 시간을 잘 보내는 것에 대한 생각들이 천천히 지나가는, 책읽기를 권하는 부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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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날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완벽한 날들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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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이 이제 막 피고 만개한, 가히 꽃사태라고도 부를만한 이 봄날에 <완벽한 날들>을 읽게 된 것은 뭐랄까, 적정한 때에 맞는 수액의 기운처럼 아득하다. 알맞은 햇볕과, 온도와 습도, 물과 바람이 가장 좋은 채로 나무에 주는 일같이 머리에는 생기가 돌고 입술에 꽃을 머금은 향긋함이 있다. 그러나 고백하자면 메리 올리버의 글을 읽는 동안 싱그러움이 내내 느껴져서 봄이 연상된 것과는 조금 다른 기분들을 일단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작가의 글은 오히려 겨울의 정서와 많이 닮았다는 인상이 짙다. 격정의 바다보다는 잔류되어 도는 호수가 어울리고, 무엇보다 자연에 대한 관찰과 그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니 내밀하고 조용히 흐르는 시간에 대한 분위기에 압도되고 만다. 그러다보면 그 고요가 마치 정지된 듯한 상태 즉 죽음을 포착해내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녀의 글에 붙는 수식에 ‘슬픔’과, ‘텅 빈 아름다움’, ‘고독’과 같은 언어들이 따라오는 것은 아마 겨울적인 시선, 즉 침잠한 상태의 목격들이 주를 이루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생각에는 때로 박력이 넘치고 또 명료함이 전해지는 것과는 별개로, 상대되는 정서는 아니지만 집요함이라던가, 세밀함, 섬세함이 공유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천생 시인이다’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일이다.

명징한 표현들이 그것대로의 세세한 이유들을 품고 가만히 정지되어 흐르는 흡사 ‘죽음’의 생각으로 이어 지는 것은 지독하게 묻고 또 목도한 겹겹의 시간에 대한 영원을 담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를 굳이 작가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같은 후진 표현으로 들먹이고 싶지는 않다. 시인이라면, 작가라면 무조건 섬세해야 하는 게 당연한 자질일 테니까. 그렇더라도 메리 올리버가 유독 눈에 띄게 섬세한 언어감각을 가진 작가인 이유라면 아마도 그녀가 다름 아닌 ‘고요’를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완벽한 날들>에 나오는 기본 정서는 격정이 훑고 지나간 고요의 자리를 읽고 그 경이로움에 대한 감정들을 자주 등장시킨다. 분주한 시간이 지나간 망가지고, 떠나가고, 남겨진 것들에 대한 경이로움은 왜 이토록 아름다운 걸까?

 

 

우리가 당장 보는 나무의 외연에는 아무런 변화도 감지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 어제와 오늘의 미세한 변화는 읽을 수 있다. 나무의 내면에는 언제라도 새순을 밀어 올리고 푸른 유전자를 생산해 내느라 분주할 움직임이 있는 게 분명하다. 마치 죽은 상태와도 같은 고요함의 그 속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발견하기 힘든 내면의 화려함, 격렬함이리라. 이로써 메리 올리버의 글을 읽고 겨울의 정서 안에서 봄을 읽어내는 잠재를 동시에 읽을 수 있다는 설명을 할 수 있게 됐다.

 

 

이 책은 그녀가 사랑하는 시와 산문들이 큰 맥락에 상관없이 섞여 있다. 시의 작법에 대한 진지한 탐구들이기도, 사랑해마지 않는 작가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자연에 대한 찬미가가 아름다운 시어들로 노래처럼 흐르기도 한다. 단지 그냥 하고 싶은 말을 할 뿐이라는 작은 파문이 긴 여정으로 돌고 돌아온 느낌을 준다.

 

 

그렇다면 그저 그녀의 바람처럼 책갈피에 몰래 숨어 앉아 숨만 쉬면될까? 그녀의 시는 한 번 읽고는 작은 고갯짓을 하게 하지만, 두 번째에는 눈을 감게 되고, 세 번째는 나의 작은 숲을 생각하게 되는 자연의 향기를 잔뜩 머금는다. 꽃들이 꽃비처럼 흩날리는 이 봄날에 어쩌다가 이 책을 만나게 된 건지, 조용히 숨을 들이켜 그윽한 자연의 내부 소리를 듣게 되는 깊은 밤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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