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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뱅이 언덕 - 권정생 산문집
권정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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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사는 빌뱅이 언덕길에 들어서서 온 마음을 달래고 추스르는 동안 몇 뼘의 생각은 자라난 것 같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자연의 소리와, 냄새, 작은 움직임들 그것들 하나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왜 하필 이 언덕에서 수많은 가르침들을 배우게 된 건지 새삼 알 것도 같다.

 

 

선생이 이야기하는 가르침은 한 번도 그 전모가 훤히 드러나는 법이 없는 바람의 풍향 같은 것이다. 아주 가깝고도 세밀하며 조화로운 관계의 틈들을 조망하도록 타이를 뿐이고 스스로 일깨우도록 일러주는 자연의 가르침과 닮아 있다. 그러니 그의 삶의 결들을 다 헤아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아주 오래된 나무의 나이테를 헤는 일처럼 수많은 역사를 생각하게 되고 그것을 차마 아름답다라는 단어로 귀결시킬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그 삶의 무늬는 촘촘하고 아주 아름답지만 이러기 위해 스스로 엄격했던 삶의 하루만을 돌아보아도 참으로 먹먹해지는 일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화두를 온몸으로 실험하고 실천하면서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삶을 사는 이의 길은 얼마나 고독한 것이었겠는가. 어찌 이리도 왜곡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은 몇 번이고 그의 작은 언덕길을 오르내리게 하는 이유였다.

 

 

 

권정생 선생은 마치 그가 평생 섬겨온 예수처럼 가난에 활짝 열려 있는 삶을 살아가고자 했던 것 같다. 사랑과 용서가 한가득인 마음을 다스리며 내 밖의 현실과 부딪히고, 내 안의 반성과 성찰이라는 싸움과 평생을 투쟁하면서 살았다. 예수가 결국 자신을 넘어선 또 다른 를 낳았듯이 권정생 선생이 살아온 발자취 또한 진정한 구도자의 삶, 오롯이 일 수 있는 생각하는 본질적 인간을 낳았음에 틀림없다. 언제나 성찰하고 자연의 생명을 아끼며, 이름 없는 것에도 기꺼이 사랑을 쏟는, 그러니까 사람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을 행복한 마음으로 부리며 살아가는 삶이었다. 정말 그것만 하다가 돌아가셨다. 이타의 습관이 몸에 밴 덕분인지 맨 마지막의 자리에서 꼴찌라는 자유의 이름으로 누리고 기어코 가장 낮은 곳의 세상을 사셨다. 그곳에 남아서 풍성한 터를 일구고 가난은 함께 사는 하늘의 뜻이라는 말의 융숭한 깊이를 다 헤아리지도 못할 정도로 깊고 넓게 펼쳐갔다.

 

 

자연에 순응하면서 소외의 열매만을 먹으며 세상에서 가장 맑고 풋풋한 언어를 쏟아낼 수 있다는 것은 그러니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의 철학과 인생관이 곧 자연이기에 가능한 일이며, 이를 닮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참으로 향기로운 감염인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 무엇이든 차고 넘치며 화려하고 획일화된 규범 속에서 구사할 수 있는 언어의 폭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날것 그대로, 유아 상태인 순수함, 때로 정밀하면서도 예리한 암시와 성토, 그의 내면을 엿보는 내내 생생한 자취는 한결같다.

 

 

 

 

또한 이 책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상상이라는 가공의 세계를 증폭시키고 무한인 황홀경을 맛보게 해주는 큰 기쁨이다. 가난의 시, 천진난만한 눈으로 보는 세상, 자기만의 놀이에 빠진 무아지경의 순수함 같은 것들은 선생이 왜 아이들에게 주목하고 이들에게서 진정한 신의 선물을 목도하심인지 알 수 있다. 자연에 마음껏 뛰놀며 상상할 수 있는 아이들의 세계관은 곧 예술의 본질이기도 해서 참 된 순수함의 결정체를 떠올리게 된다.

 

 

 

 

 

 

 

이 책에는 또 그가 펴낸 수많은 동화와 시, 산문들이 왜 그렇게 슬프고 아름다웠는지 그 뿌리가 되었던 사건들의 고백이 이어진다. 가끔 그가 사는 작은 언덕, 손바닥만 한 방, 소박한 밥상을 떠올리면 아이와 이웃을 사랑하는 그였더라도 슬픔을 채워주기는 그 어떤 것이기도 힘들었겠구나 하는 이해가 들었다. 그에게 가난은 평생 자발적 가난자이게 한 수많은 사연과 사건이 있어서였고, 가장 낮은 곳에서 소외된 자이기를 기꺼이 꿈꾸게 한 마음의 부채가 있어서였다. 그를 결코 떠나지 않을 한 많은 불행과 그들이 있어서였기 때문에. 상실의 땅에서 매일 입고 먹을 것을 걱정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이웃들이 있는 한 그의 번민은 계속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거의 소유하지 않은 남루한 그에게서는 세상 그 어떤 이에게서도 나지 않는 품위와 정서적인 풍요로움이 흐른다.

 

 

그가 사는 언덕 위에도 어김없이 봄이 되면 풀씨가 날아다니고 빛 좋은 꽃과 열매들이 맺힐 것이지만 자연의 이러한 아름다움의 이면에는 수많은 눈물과 소외의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선생의 삶은 말해주고 있다. 고독하지만 살아가야 하는 이유,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되 변화를 위한 실천적 행동을 해야 함을 상기하라고 가르친다. 그의 소박한 죽음은 몸서리쳐질 정도로 정확히 인지시켜주는 강렬한 실천이었다.

 

 

 

 

문득 어김없이 시간이 되면 울려 퍼지던 교회의 은은한 종소리가 듣고 싶어진다. 궁핍의 언덕, 소중하고도 푸른 꿈이 잉태되는 예술의 방, 빌뱅이 언덕에서 모두가 행복해지는 진심의 기도를 올리던 한 가난한 종지기의 꿈이 이루어지는 세상, 그런 세상이 오기를 가만히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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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 박범신 논산일기
박범신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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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작가에게만 허락될 우울이란 우물 속의 깊이를 가늠해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혹 동화됐던들 주변의 모든 일들이 유폐된 유리관 안의 안락한 온도로만 감지되는 일일 텐데 진짜일리는 만무하다. 책을 아무리 읽어도 그런 것이다. 물론 이 책이 덩달아 우울하게 만드는 이야기만을 담는 것은 아니다. 청년의 기백, 소소한 일상, 기쁨과 슬픔이 모두 담겼다. 다만 나는 작가가 주는 여러 감정의 전파 중 우울의 틈에 끼어 든 것이다. 엄마 손을 놓은 고아처럼 슬피 울어보지만 작가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각자에게 허락된 우물이 따로 존재하기 때문은 아닐지 그런 생각을 해봤다. 과연 끝 모를 깊은 세계는 유한하게도 펼쳐진다.

 

 

작가는 제 안의 깊이를 자꾸만 확장시켜 나가기 위해 홀로 걸어가는 구도자, 한사코 말리는 싸움을 부리는 열네 살 소년, 혓바닥이 시퍼레지도록 애원해도 소용없는 투정꾼 같다. 아니면 제 안의 여러 소년들을 데리고 곧 연기처럼 흩어져버릴 피리 부는 사나이는 아닐까?

그의 보폭으로 따라가는 내내 운율에 맞춰 부를 수 있는 수만 가지의 노래가 흘러나오지만 돌아서면 아무 음표도 생각나지 않는 희미한 악보만이 손에 쥐어져 있다. 그래서일까, 그에게 금방이라도 닿을 수 있는 거리가 아닌 언제나 구름 하나쯤 걸쳐 내려앉을 수 있는 만큼으로만 따라가고 싶어진다. 서로를 위해서 필요한 간극인 것 같아서. 누구나 고유한 향기를 지닐 권리쯤은 얼마든지 필요하니 말이다. 작가가 향기롭게 늙어가고 싶다란 말을 할 때 이 뜻은 홀로 폈을 때 나는 향기리라 싶었다. 아무리 시든 꽃을 손에 쥐어든다 해도 결코 그 향기를 의심하지 않을 것 같은 명징함이 작가에겐 있다.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는 바로 향기롭게 늙어가기위해 영혼의 정원에서 꽃을 가꾸는 일일의 기록이다. 스스로 먹을 밥을 짓고, 살기위한 글을 짓고, 홀로 방안을 가득 채울 수날의 외로움과 기쁨, 숱한 회한의 언어들이 눈먼 달에게 속삭이고 자연을 응시하고 있다.

 

세계는 끝도 없이 작가의 눈과 귀에 대고 순간의 진심을 반추하도록 종용한다. 그의 마음에 언어로 떠돌아 뒷문을 통해 걸어 나오는 그 뒷간의 풍경을 한참도록 서성여 봐도 지루할 틈이 없다.

 

 

 

나는 가끔 작가들이 제 삶을 돌아보기를 어디로부턴가 끊임없이 떠나가는 유배자란 신분을 고백할 때 의아해 하곤 했었다. 제 홀로 시련을 내리는 심보는 어떤 행복을 위한건지. 굳이 애쓰지 않아도 어느 순간 찾아오는 게 외로움의 정서일텐데 왜 작가들은 수만 번이라도 떠날 것을 주저하지 않는 걸까. 이 추상적인 상태를 감내하는 자질은 대관절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이길래. 그런데 여기 박범신의 고백을 듣고서야 무엇이 각자의 몸을 부풀게 하는지를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어차피 그것들은 하루아침에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게 아니기에, 삶은 다만 순간에 소속된 은하의 자장 안에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각자의 오목하거나 볼록한 눈으로 감지하는 망이 있고, 그것이 끊임없이 어디론가 홀로 떠날 준비를 도와주는 촉매제가 되어 주는 것 같다. 이는 예민하게 감지해 내는 사람에게만 열리는 특권인 것도 알겠다.

 

 

 

때때로 작가의 그것은 좀 더 날선 포물선을 그리며 불시착하기도 한다. 그가 아니라면 우리가 대신했을 세상의 끝점에 서서 기꺼이 체험하고 미지의 세계를 생생히 증언하는 대범함이 있다. 그래서 그들의 불시착이 언제라도 아름다운 여정일 수 있게 돕나 보다. 작가에게는 늘 오롯이 놓인 바위의 기개, 그 틈을 비집고 나온 야생초의 은은한 향이 맡아진다.

 

안락은 작가의 몫이 아니풍향계처럼 외부의 새바람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제 이데올로기는 굳세게 지키는 청년이기를 희망하는 부분에서는 그만의 고유한 의지가 느껴진다. 악센트 없이도 장엄한 연주가 흘러나오는 삶의 연주자처럼 무수한 이야기를 기대하게 한다.

 

마냥 즐거울 낙관이 없고, 명백히 뻗쳐간대도 흉이 아닐 고고함을 벗어버리는 태도도 흥미롭다. 그 삶이 알 수 없이 흩뿌려진 별의 배열처럼 헤아리지도 못할 역사가 되니 과연 장관이란 생각만 든다.

 

 

 

이 책은 자주 을 이야기한다. 반백의 청년이지만 아직도 그는 자주 길을 잃고, 오가다 만난 살아있는 모든 것에 연민하며 눈물 흘리는 헐거운 눈을 가졌다. ‘차라리 어서 우물 밑에 닫기를 기다린다니 그는 어쩌자고 이 상한 얼굴에 어두운 출구만을 쫓는 걸까. 언제고 부스스 일어나는 붉은 흉터 자국을 신화처럼 간직하고 싶어서?

 

그가 때때로 세상에 걷어차인 방랑자처럼 굴긴 하지만 결코 제가 죽을 나무 위에서 걸음을 멈추고 울어버리는 눈먼 조울증 환자는 아니다. 길 끝에 놓인 비밀을 알려주는 열쇠를 손에 쥐고서도 과감히 그것을 강물 속에 던져 버릴 용기가 있고, 매순간 사랑할 줄 알며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성장의 기로에 언제고 놓여있다.

 

 

 

작가의 하루만을 쫓는데도 잔뜩 피로가 몰려오는 것 같다. 길은 사랑이 끝나지 않는 한 계속 될 테고 저녁이 되면 그저 밥 짓는 연기 앞에 서서 자욱 거리는 만큼의 포만감을 상상하면 그만일 것 같다. 그가 가꾼 꽃들이 만발한 길옆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는 늦은 오후에, 나의 반백 '청춘'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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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이 어깨동무 합니다 -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며
김제동 지음 / 위즈덤경향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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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입 안 가득 버석거리는 모래알을 씹더라도 황무지를 걷는 편이 나을 사람들이 있다. 내몰린 길 위에서라지만 해맑게 걸음걸음 내딛는 힘을 투지라 이름붙일 수 있을지. 그런 거라면 정말 이 에너지들이 과연 어디서부터 나올 수 있는 건지, 묘연하다. 이래서 사람의 능력은 그 끝을 알 수 없다고들 하는 걸까.

 

교묘히 구획되어 놓은 작은 원 안에 당해 낼 리 만무한 일들을 감내하면서도, 매일 적중하는 화살을 잘도 버텨가는 것, 심지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원대해지는 무언가가 있다.

 

 

아주 촌스러운 영화의 기승전결처럼 뻔 한 결말을 알겠는데도 그저 속아주는 제스처를 하는 것은 얼마나 허탈한 일인가. 적당의 반응을 해주면서 이 극이 어서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심정은 요원함을 저당 잡힌 지루함만 한 가득이다. 언젠가 돌아봤을 때 이 이미지들은 실컷 조롱이라도 할 수 있을까? 사실 그런 상상을 품는 일조차 후련해지리란 기대보다는 어서 잊어버리고 싶어지는 깊은 한숨만을 내몰 것 같다.

 

 

폐허의 흔적이야 사라지겠지만, 분명한 건 지금 몰래 중얼거리는 이 순간에도 언제 갈겨질지 모르는 뒤통수를 서늘하게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쉽게 잊혀질 과거는 아닐 것이다. 어쨌든 참 굳세게도 각자의 위치에서 가장 잘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동질감의 정서를 눈빛으로 나누고 살아갈 수는 있으니 최악은 아니라 말할 수 있을까.

 

 

 

사실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이 책을 보면서 그렇게 심각했던 건 아니니까. 그저 자주 궁금했던 생각만이 불현 듯 스쳐 지났을 뿐이다. 원 밖의 사람들에 대해서.

 

저들이 말하는 진짜 좋은 세상은 대체 무엇을 담보로 하는 것이었나, 좋은 세상이란 의미를 알기나 할까 아는데도 묵살하는 걸까 아니면 정말로 모르는 걸까. 정말로 모르는 거면 연민을 느껴야 할까 아니면 영영 무시해버려도 좋을까 등등.

 

특별한 공덕을 쌓으라한 적이 없는데도 왜 그렇게들 제 식대로의 계몽에 혈안이며, 가치라 말하고, 명분을 덧칠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그래봐야 스스로의 덫에 저당 잡혀 살아갈 뿐인 존재들인데, 이들에게는 정말 이 야유가 아무런 상처도 죄책감도 동반하지 않는단 말인가. 완벽하게 방음이 되는 슈퍼 귀마개라도 달고 사는 것일까? 그래봐야 약간 추해보이겠지 뭐 더 있겠어? 하는 안도감이 무기였던 걸까?

 

 

 

황량한 바람이 일긴 해도 잠시 맞아줄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가 그래도 같은 세상에 놓인 사람이라는, 인간된 도리가 남아서인지 모르겠다. 다만 모든 맥락들이 뒤엎어지고 사라지는 것 은 오래도록 잘 기억하고 싶다. 다시 일으킬 생각을 하자니 비축해둘 창고가 끝 모르게 늘어서는 것 같아 서늘해진다. 지치지만 같이 해야 할 일이다.

 

사회적 책무를 모르거나, 손 놓고 코푼 사람들 천지인 세상이라 해도 그나마 더불어 살 궁리를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이런 때에 너무 소중하다. 천 원 한 장 비지 않는 잃어버린 지갑을 찾게 되는 일처럼 아직 감동할 사연을 누군가는 만들고, 살짝 앞에 서서 인도해 준다는 믿음을 주는 게 마냥 고맙다.

 

 

 

<김제동이 어깨동무 합니다>는 이렇게 기꺼이 정다운 미소를 지어보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정치적인 사람이거나 혹은 전혀 사회적 발언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같이 공유하며 나누면 좋을 삶의 방식들이 진솔하게 펼쳐져 좋다. 원대한 말만을 늘어놓지 않고 사소한 일상을 말할 수 있는 것도 좋다. 그들의 행보가 주변이 은은히 밝혀지는 만큼의 빛의 세기로 흐르기 때문에 상관없는 것이다.

사고와 취향이 다르다는 건 낱낱이 충돌될 분자를 뜻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융화되고 쉴 새 없이 연동될 공기를 가공하는 일일지 모른다는 믿음이 생긴다. 어쨌든 각자의 일상을 신뢰할 만 하고, 그 속에서 박애(?)를 느끼며, 보편적 희망을 관찰할 수 있는 게 우리가 스스로 진정한 주인일 때 가능하리란 생각을 해봤다.

 

 

이런 믿음을 준 몫은 전적으로 인터뷰어 김제동의 깊은 이해와 호기심 덕분이겠다. 그의 포용력은 사람을 구분 짓지 않고, 상대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를 진정 궁금해 하는 솔직한 관심이 담겨있기에 가능하다.

 

무대와 관객이 있는 곳에서라면 언제나 있는 모두를 행복의 도가니로 빠뜨릴 준비가 돼 있는 그여서, 이 시대 진짜 익살꾼 김제동이라 불리나 보다. 그가 빚어내는 행복 바이러스는 온 세포를 무장해제하고 마음껏 감염되고픈 용기를 준다. 필연적으로 미래를 살아가야 할 우리에게 이 소소한 물음과 대답의 문답은 제 각자의 미래로 흐르게 하는 놀라운 에너지를 선사한다.

 

 

그의 팔에 잠시 에둘러진 어깨에 그새 이상한 고요가 얹어지고, 자꾸만 만화 같은 웃음이 피어오른다. 일단은 그를 향해 안녕에 대한 미소의 예의를 지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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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평가단 10기 활동을 마무리합니다.
소울푸드 - 삶의 허기를 채우는 영혼의 레시피 소울 시리즈 Soul Series 1
성석제 외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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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꽤나 무료하게 살고 있는건지 모르겠는데, 만약 시간을 일주일 단위로 쪼개서 가장 흥분되고 기대되는 사건을 꼽는다라고 한다면 단연 신간평가단으로 신경쓰게 되는 시간들이라 답할 것 같다. 어느 가수의 노랫말처럼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없다'를 끝없이 도돌이표로 읊게 되는 나날이었지만, 지난 몇 달 신간 페이지를 들락거리면서 내심 어떤 책이 출간됐을까 기대하고 궁금해한 시간들을 어찌 쉽게 잊을수 있을까. 매순간 첫 장을 펼치게 되는 흥분만큼 기쁜 순간도 드물었으니 으레 고마운 채근질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일이 없겠다.

수많은 책 가운데서 겨우 다섯손가락에 끼워넣어야 하는 아쉬움을 달래며 한권 한권 독자들과 함께 하고픈 책을 추리는 일 역시 소소한 기쁨이었다. 어찌됐든 계절은 바뀌었고, 10기 신간평가단을 마치게 된다. 

적잖이 애로사항을 감내하셨을 신간평가단 담당자님께 감사의 말씀 전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에세이를 전보다 더 많이 읽게 되면서 몇 배는 더 마음이 풍요로워진 것 같은 뜻밖의 선물을 받게 되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   

 

 

 

 

1) 10기 신간평가단 도서 중 가장 좋았던 책

 

살아가면서 위로를 받고 싶은 순간이야 셀 수 없이 찾아온다. 이런 순간 저마다 하릴없이 눈을 지긋이 감거나, 잠을 청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눈물을 한 말이나 쏟고 나서야 풀 수 있다면 다행인 일일까. <소울푸드>는 그 수많은 처방 가운데 가장 따뜻한 한 그릇의 위로를 건네는 책이다. 유명 작가들이 풀어 넣는 쓰디쓴 한순간의 기록에 마법의 가루가 뿌려져서 이윽고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스프가 된 것 따위의 동화같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각자가 맛 본 참으로 소박한 한그릇의 위로가 책을 읽는 사람들의 미각과 후각을 모두 자극한다. 물론 이럴 수 있는데는 거기에 진짜 마음이 담겼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타인에 의해서든 아니면 내가 만들어낸 씀씀이의 마음이든 말이다. <소울푸드>를 읽으며 별스럽지 않은 태도나 마음따위가 어떤 식으로 큰 위로와 빛이 될 수 있는지를 엿보게 되었다. 한번도 위로받은 적 없는 나만의 소울푸드는 어떤걸까, 부쩍 궁금해지는 밤이다.

 

 

  

2) 10기 신간평가단 도서 중 내맘대로 베스트 5

 

 

<16인의 반란자들>은 노벨문학상의 세계 문호들의 인터뷰집으로 어떻게 반란자들이라 이름 붙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개인의 역사들을 통해 엿볼 수 있어 좋다. 가장 소외된 사람들을 위하여, 시대의 불의에 가장 먼저 앞설 줄 아는 지식인의 자세를 깊은 한숨과 함께 되짚어가는 소중한 기록들이다. 

 

 

 

<꿈꾸는 자 잡혀간다> 기꺼이 노동자의 삶을 걸어가며 투쟁가로서 그들을 위한 시를 쓰고 시대에 쓴 소리를 하는 꿈꾸는 시인 송경동. 시인의 신분으로 어떻게 감옥에 갇히는 기획자이자 투쟁가이게 되었는지 개인의 역사가 그의 시와 함께 펼쳐진다. 아프고 암울한 시대를 희망으로 저항하고 꿈꾼 자의 목소리는 퍽이나 곱다. 

 

     

 

프랑스 문단의 거장 미셸 투르니에가 전하는 세상의 본질에 대한 다름의 인식을 전하는 이 책은 인간의 감각 능력과 경험 밖의 이야기에 화두를 던지는 개념서이다. 그 어떤 책보다 쉽고 재미있어서, 전혀 뜻밖의 상상력에 핑퐁이 왔다갔다 하는 흥미로운 시간을 맛볼 수 있다. 개념서인지도 모를만큼. 계속 읽다보면 문득 나만의 생각, 나만의 개념을 창조(?)해보고 싶어지는 욕심도 드는 개념 권장서랄까? 

 

 

  

히라노게이치로의 <소설 읽는 방법>은 책을 읽는 방법 가운데서도 ‘소설’에 대한 좀 더 특화된 읽기 제안을 하는 책이다. 읽는 방법에 대한 빌미를 얻어 우리의 관습적 태도에 대한 성찰을 도와주고, 책을 대하는 창조적 해석을 이끌어내는 흥미로운 책이다. 무엇보다 음미하면서 천천히 읽는 것, 어렵지만 가장 중요한 태도다.

 

 

 

<잡문집>은 하루키의 사적인 면모와 생각들을 궁금해 하는 독자들에게 아주 반갑고 소소한 재미를 줄 수 있는 책이다소설가로 살면서 매일 허구의 인물에 말을 걸고, 그들을 통해 보편적인 삶의 이면을 들여다 보게 하는 것. 삶을 어딘가 색다르게 펼쳐보이는 다양성을 일깨워 준다. 도무지 늙는 법을 모르는 사람처럼 언제나 변함이 없는 사람 '하루키' 그에게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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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5-22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자면, 저는 <꿈꾸는 자 잡혀간다>와 <소울푸드>가 제일 좋았어요. 다른 책들은 어려워서 원. 특히 잡문집은 첫 챕터부터가 읽히질 않더군요. 고양이, 고양이 하는 부분만 수 번을 읽었는데도 뒤로 넘어가질 않아 접었어요. 미셸 투르니에의 책은 그나마 괜찮았던 것 같네요. 생각보다 어렵지도 않았구요.

puriul 2012-05-24 00:53   좋아요 0 | URL
하핫 고양이고양이하셨나봐요^^ 다 좋은 책이 와서 기쁘긴 했지만 저로서도 잘 읽히지 않을때는 이걸 어떻게 써야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저 역시도 이 두권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네요 ^^

알라딘신간평가단 2012-05-24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리울님. 제가 감사하지요.
10기 활동하시는 동안 기쁨을 드렸다니, 제가 기쁩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계절 보내세요! :)
(어제 화제의 서재글에서 이 글을 만나고 어찌나 반갑던지!! ㅎㅎ)
 
[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 - 호시노 미치오의 마지막 여정
호시노 미치오 글.사진, 임정은 옮김 / 다반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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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평생 어디론가 훌쩍 떠나본 일이 드물고, 떠난다고 해봐야 정해진 루트대로 우르르 몰려갔다가 먹여주는것 먹고 사진 몇 장 찍고 오는게 다라고 여기는 그런 여행만이 즐비하다. 몇 시간 눈을 정화시키고 일탈의 자유를 잠시나마 느끼는 것, 뭐 나쁠 건 없지. 그러나 이런 여행은 그곳을 안다고 하기도 민망해서 편한게 다가 아닌데란 말을 곱씹게 될 때가 많다. 

사실 내게는 며칠이었지만 딱 한번 혼자 여행해본 경험이 있긴 하다. 정보도 별로 없이 떠났고, 이방인인 채여서 처음 느껴보는 이질감이 무척 흥분되고 오래 기억 남는 여행이었다. 다행히 좋은 추억이 되어서 여행의 참 묘미라는 걸 어렴풋하게나마 가늠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떠나 새로운 곳을 알고 마음에 새기는 일은 언제나 좋은 에너지와 살아갈 의지같은 것을 북돋아 주는듯 하다. 끝없이 낯섬을 찾아 유랑하는 이들, 탐험가나 여행가라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마냥 설레고, 마치 밤 하늘의 별을 보며 양을 지키는 목동의 일처럼 느껴진다.   

 

 

여행가를 여행가이게 하는 것, 여느 직업군과는 다르게 본인의 의지만이 순수하게 많이 담긴 직업이어서 그런지, 그들의 작업물을 보다보면 이들이 참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행가들에게는 참으로 거대한 여백이 있고, 그들이 전혀 말을 하지 않고 단 한장의 사진으로만 전하는 순간에도 그 적막은 참으로 근사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새삼 여행에 매료된 단 한가지의 이유만으로도 한 사람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 역시 극적이고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무엇보다 여행가에게 부러운 성질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들에게 존재하는 ‘공간’에 대한 엄청난 호기심과 사랑이다. 눈앞에 펼쳐진 그림 같은 풍경들을 보고 탄성을 내지르며 호기롭게 ‘나중에 여기서 살아봐야지’라고 떠들 수는 있지만 정말 그렇게 살아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 말이다. 제 삶의 모든 삶을 ‘공간’을 떠도는 것만으로 채울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부러운 삶이지 않은가.

 

호시노 미치오의 <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는 우연히 본 텔레비전의 알래스카의 정경에 단숨에 매료되어 일생 탐험하고 관찰해온 여행가의 미완 여행기이다. 그가 담아내는 알래스카의 풍경을 순수하게 다 느끼기는 힘들더라도 더없이 섬세한 설명들과 무수히 많은 별처럼 느껴지는 시 적인 묘사들을 보고 있으면 알래스카의 바람과 푸르름이 느껴지는 것 같다. 아니면 오도카니 서서 바람에 흩날리는 강아지풀의 몸짓마냥 이리저리 움직이는 대지의 고요를 맛보는 것 같기도 하다. 빙하가 있고 또 안개가 자욱한 숲도 있다는 매력의 공간 알래스카. 그 한 가운데서 온도를 느끼고 입가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호흡의 순간을 느낄 때마다 그는 자연과 하나 되는 아찔한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곰의 습격을 받아 영원히 자연에 묻혔지만 마지막 순간, 왠지 그 삶이 허무하다거나 불행하고 느끼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든다.

세상에서 가장 고요한 나라, 어느 누구에게는 불쾌하고 한없이 빈곤해 보이기만 한 척박한 땅이지만 그곳을 수백 수천 년간 지켜온 원주민들과 동식물과, 그곳을 사랑한 탐험가 호시노에게 만큼은 더없이 풍요로운 땅이라는 것을 알 것 같다. 

 

 

 

그는 비록 미완인 채로 알래스카의 더 많은 일상을 담아 내지 못했지만, 왠지 하늘에서도 멈추지 않고 알래스카의 땅을 같이 일구고 또다른 면모를 들춰내는 몽상가인 천상 여행자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머지 3회의 이야기를 더보지 않아도 전혀 아쉬운 마음이 남거나 하지 않는다. 

 

어쩌면 호시노가 첫 발을 디뎠을 때의 감흥처럼 언젠가 혼자 대자연의 한가운데 서서 온 자연이 나를 응시하고 교감하는 전율을 느끼게 될 날을 꿈꿔 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번에는 정말 나도 진짜 여행을 한 걸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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