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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
빌 브라이슨 지음, 이미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지구 반대편 사람들이 한국이란 나라를 떠올리면 어떤 생각이 드느냐란 질문의 답변을 듣고 황당해한 적이 있다. 달랑 분단국가, 한국전쟁, 김정일 정도를 떠올리는가 하면 기껏해야 ‘동양에 있는 국가’ 정도, 그나마 ‘대~한민국’을 외칠수 있다면 다행이었다.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서 한국은 여전히 대표될만한 이미지나 상징 같은 것들이 없어도 너무 없어 보였다. 많이 알려진 거라고 하지만 한국은 잘 모르는 나라이고, 동양의 그저 작은 나라일 뿐인 그저 그런 나라라는 소리다. 얼마 전 국제결혼을 한 지인의 시댁 어른들이 한국에 들어 올때 위험한 나라 아니냐는 둥, 말라리아 주사 따위의 예방접종을 해야 하지 않냐는 말을 듣고 자존심이 무척 상했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막상 좋은 호텔에 묵게 해주고 입 떡 벌어지는 진수성찬을 맛보게 해준다음, 종로 거리를 구경하고 나서야 그 파란 눈에도 한국이 적어도 미개한 나라는 아니구나 하는걸 알았다고 들었다.
몰라도 너무 모르는 통에 대관절 너희 나라는 세계사 공부도 안하냐고 다그치고 싶지만 사실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으로 살아온 오랜 역사성을 생각해볼 때 그들이 모르는 건 이상한 일도 아닌 듯싶다. 너무 멀긴 하니까. 이렇다보니 대한민국을 알리는 데는 여전히 풀어야할 숙제도 많고, 아주 길게 바라보고 가야할 먼 길임을 새삼 인지하게 된다.
코스모폴리탄이나 뭐다에 비행기 타고 몇시간이면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는 세상이 도래했다고는 하지만 막상 우리는 서로에 대해 거의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이웃해 있거나, 서로 오고 가는 게 있는 사이, 하다못해 피의 역사라도 있어야 다른 나라쯤을 알게 되는 것일까. 만약 가보지 않고 아주 먼 나라까지 알게 되는 것은 지구본을 하염없이 돌려대며 세계여행을 꿈꾸는 어린 몽상가의 상상 그것을 뛰어넘지 못하는 일이다. 이렇다보니 사람들의 간접경험 수단은 각종 매체나 특히 여행서로 그곳을 대신 여행해 보는 앎이 전부일 수 있다. 아주 많은 여행서들이 있다지만 각국의 이국적인 정취나, 거리, 박물관 등을 보며 느낀 이방인으로서의 소회들, 재미있는 주의사항 같은 것들은 차고 넘치며 이제 그 눈들이란 것도 비슷비슷하게만 보인다.
그 중에서도 빌 브라이슨과 같은 보석과 같은 여행작가를 알게 되는 것은 대단히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여느 책과는 다른 행보로 여행서의 역사에 한 획을 긋고도 남을 유명작가 행렬에 오르게 된 빌 브라이슨이라면 어떤 책이어도 다르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여행기를 쓰는 사람이면서 언제나 여행할 곳의 역사를 숙지하고 온 몸으로 그곳을 사랑하러 떠나는 사람이니 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미 호주란 나라를 체험해 본 사람도 많겠지만, 나처럼 여행에 문외한인 사람도 호주로 어학연수라도 다녀온 지인쯤은 있다. 익히 들어온 대자연의 나라이며, 동물이 자유롭게 노닐고, 도시 아니고는 쉽사리 탐험하기도 어려운 미지의 땅이라는 것을 실감나게 들은 적이 있다. 호주는 그리 낯설지는 않은 나라여서 빌 브라이슨이 왜 이곳을 선택했고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잔뜩 기대만 하면 그만이었다.
애초 작가가 호주로 떠나온 이유는 그가 생태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어떤 여행기에서 깊이 다루지 않은 자연, 동물의 참모습을 담고 싶었다는 점이 유익하다. 역시 작가는 결국 생태의 중요성을 가장 핵심 메시지로 담고 싶었던 것이다.
한번 물리기만 해도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맹독을 담고 사는 뱀, 작지만 아주 미세한 애무만으로 그 자리에서 즉사시킬 수 있는 표범 문어 등 처음 들어보는 동물들의 천국, 아직 알지도 못할 생물이 더 있을 수 있는 가능성과 멸종 됐다고 알려졌지만 혹시 생존해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희망해볼 때마다 호주라는 나라의 광활한 잠재력을 실감한다.
해저 몇 만리에 사는 우리가 알지 못한 생물이 살고, 그나마 알려진 몇 몇 괴물어라 불리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같은 땅 위의 생물조차도 다 알지 못하는 데 지구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생물들이 살아갈까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곳은 호주라는 단 하나의 나라의 이야기라니 놀랍지 않은가. 곰곰히 작가가 선보이는 대자연의 장엄함을 관찰하다 보면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수많은 삶의 부분 부분이 그저 지구를 이루고 우주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빌 브라이슨의 책이 세계적으로 많은 호응을 얻게 된 데에는 사실 그가 시종일관 뿜어내는 유쾌한 에너지를 잘 전달해서일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답답한 현실을 탈출하고픈 욕망들이 있고 그것을 아주 발랄한 방식으로 실현하고픈 계획을 품게 되는데 작가는 이를 정말 잘 행하는 추진력이 있다. 타지에서 어김없이 만나게 되는 괴짜들과의 지긋지긋한 대면식하며, 언제 어느 곳에라도 도사리고 있는 위험천만한 순간들이 지혜와 모험심으로 극복되고 이런 하루하루가 어깨에 얹어진 짐을 바깥으로 발산해 버릴 수 있는 힘을 주기에 여행을 떠나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어느 관계에서든 아주 섬세한 지점을 잘 캐내어 사람들에게 유쾌한 방식으로 전달한다. 즉 그 안과 밖을 자연스럽게 통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 어떤 여행서에서도 볼 수 없는 밀착된 관계라던가, 이국적인 풍광을 아름답게 상상하도록 유도하고, 특히 자연을 다루는데 있어 특정한 나라의 소유라거나 책임이라고 전가하기보다는 우리 모두 힘을 실어서 극복해야 할 문제라는 의식을 심어주는 것이 좋다. 그는 유명한 학자이지만 그것을 내세우기 보다는 언제나 이웃집 뚱뚱한 아저씨의 모습으로 쉽게 다가오는 진짜 지식인이다.
이 책이 좋은 또다른 점은 무엇보다 희귀 동물에 대한 깊은 애정이 샘솟는다는 점이다. 능선을 지나 노을이 비친 어느 평원에서 동물과의 해후 같은 것을 꿈꾸게 되는 낭만이 있다. 적막 속 가장 은밀하고도 생기 돋는 교감을 어느 누가 마다할 수 있을까.
동물은 각 생김마다 특징들이 있는데 이곳은 생존에 대한 극렬함이 커서인지 매력적인 동물이 정말 많다. 뿔처럼 보이는 걸 달고 살아야 한 이유 같은 것, 이를테면 이것은 숙명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주 오랜 세월 목소리의 울림을 좀 더 크고 잘 전달하려고 진화해온 흔적들이 고스란히 자신의 생김으로 남겨진 이유를 달고 살게 되는 숙명 말이다. 이런 식으로 척박한 땅 위에서 동물들은 나름의 방식의 얼굴을 하고 자신의 색을 지키면서 수많은 자연의 비밀을 안고 살아오게 된 것 같다. 자연의 색은 언제나 그곳의 음역을 타고 공생 또는 경계 태세를 놓치지 않는 날선 촉을 세우면서 서로의 거리를 유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자연의 섭리를, 넘칠만한 어리석은 정복 따위로 꿈꿔보지 않은 인간과는 다른 숭고함을 품고 진화해 왔다.
빌 브라이슨 여행기의 묘미는 사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작은 충돌과 에피소드 같은 것들이 흥미롭다. 핑퐁 하듯 톡톡 튀어 오르는 식으로 참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지만 어느 곳에서나 사람들은 참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는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해준다. 이 책 역시 낮과 밤의 주기처럼 기운이 내내 자연의 온도처럼 느껴졌다. 작가가 만나는 사람들과 사건들, 그곳의 역사를 새롭게 알게 되고 하루하루가 신선한 에너지로 가득 차 여정은 마치 낮에 먹는 즐거운 점심식사처럼 느껴진다. 맥주라도 곁들이면 한껏 더 크게 웃을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고 반짝거리는 오스트레일리아라는 땅의 광활한 낮의 온도가 전해지는 듯하다. 그런데 멸종됐다거나 하는 식의 소식을 접하게 되는 날에는 어딘가 서늘해지고 우리가 잘 살아가고 있는 게 맞는가 싶어지는 우울의 순간이 있기도 하다. 유구한 세월을 버텨온 자연에게 대체 우리는 무슨 짓을 행하고 있는 걸까, 암흑이 금방이라도 밀려오는 건 아닐까 하는 밤의 정서가 훅 끼얹는 안타까움이 언제라도 있다. 알 수 없는 아쉬움, 그리고 수 없이도 많이 묻히고 지워졌을 사체의 기록들이 이 드넓은 미지의 땅에서 귀를 기울이라 재촉하는 듯 싶어진다.
작가는 그 어떤 사람보다 자연과 역사 관계에 능한 사람이어서 그가 하는 모든 메시지는 되도록 많은 사람들의 눈과 귀에 큰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호주라는 나라가 아직 미지의 땅이어서 새롭고, 언젠가 꼭 머물게 된다면 땅에 대고 고맙다란 말을 전하고 싶어지는 그런 땅의 목소리를 나누고 그리고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