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날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완벽한 날들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꽃들이 이제 막 피고 만개한, 가히 꽃사태라고도 부를만한 이 봄날에 <완벽한 날들>을 읽게 된 것은 뭐랄까, 적정한 때에 맞는 수액의 기운처럼 아득하다. 알맞은 햇볕과, 온도와 습도, 물과 바람이 가장 좋은 채로 나무에 주는 일같이 머리에는 생기가 돌고 입술에 꽃을 머금은 향긋함이 있다. 그러나 고백하자면 메리 올리버의 글을 읽는 동안 싱그러움이 내내 느껴져서 봄이 연상된 것과는 조금 다른 기분들을 일단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작가의 글은 오히려 겨울의 정서와 많이 닮았다는 인상이 짙다. 격정의 바다보다는 잔류되어 도는 호수가 어울리고, 무엇보다 자연에 대한 관찰과 그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니 내밀하고 조용히 흐르는 시간에 대한 분위기에 압도되고 만다. 그러다보면 그 고요가 마치 정지된 듯한 상태 즉 죽음을 포착해내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녀의 글에 붙는 수식에 ‘슬픔’과, ‘텅 빈 아름다움’, ‘고독’과 같은 언어들이 따라오는 것은 아마 겨울적인 시선, 즉 침잠한 상태의 목격들이 주를 이루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생각에는 때로 박력이 넘치고 또 명료함이 전해지는 것과는 별개로, 상대되는 정서는 아니지만 집요함이라던가, 세밀함, 섬세함이 공유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천생 시인이다’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일이다.

명징한 표현들이 그것대로의 세세한 이유들을 품고 가만히 정지되어 흐르는 흡사 ‘죽음’의 생각으로 이어 지는 것은 지독하게 묻고 또 목도한 겹겹의 시간에 대한 영원을 담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를 굳이 작가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같은 후진 표현으로 들먹이고 싶지는 않다. 시인이라면, 작가라면 무조건 섬세해야 하는 게 당연한 자질일 테니까. 그렇더라도 메리 올리버가 유독 눈에 띄게 섬세한 언어감각을 가진 작가인 이유라면 아마도 그녀가 다름 아닌 ‘고요’를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완벽한 날들>에 나오는 기본 정서는 격정이 훑고 지나간 고요의 자리를 읽고 그 경이로움에 대한 감정들을 자주 등장시킨다. 분주한 시간이 지나간 망가지고, 떠나가고, 남겨진 것들에 대한 경이로움은 왜 이토록 아름다운 걸까?

 

 

우리가 당장 보는 나무의 외연에는 아무런 변화도 감지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 어제와 오늘의 미세한 변화는 읽을 수 있다. 나무의 내면에는 언제라도 새순을 밀어 올리고 푸른 유전자를 생산해 내느라 분주할 움직임이 있는 게 분명하다. 마치 죽은 상태와도 같은 고요함의 그 속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발견하기 힘든 내면의 화려함, 격렬함이리라. 이로써 메리 올리버의 글을 읽고 겨울의 정서 안에서 봄을 읽어내는 잠재를 동시에 읽을 수 있다는 설명을 할 수 있게 됐다.

 

 

이 책은 그녀가 사랑하는 시와 산문들이 큰 맥락에 상관없이 섞여 있다. 시의 작법에 대한 진지한 탐구들이기도, 사랑해마지 않는 작가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자연에 대한 찬미가가 아름다운 시어들로 노래처럼 흐르기도 한다. 단지 그냥 하고 싶은 말을 할 뿐이라는 작은 파문이 긴 여정으로 돌고 돌아온 느낌을 준다.

 

 

그렇다면 그저 그녀의 바람처럼 책갈피에 몰래 숨어 앉아 숨만 쉬면될까? 그녀의 시는 한 번 읽고는 작은 고갯짓을 하게 하지만, 두 번째에는 눈을 감게 되고, 세 번째는 나의 작은 숲을 생각하게 되는 자연의 향기를 잔뜩 머금는다. 꽃들이 꽃비처럼 흩날리는 이 봄날에 어쩌다가 이 책을 만나게 된 건지, 조용히 숨을 들이켜 그윽한 자연의 내부 소리를 듣게 되는 깊은 밤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