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의 서양음악 순례
서경식 지음 / 창비
"저기, 음악이 홀로 걸어간다"
애초에 연재로 기획되었기 때문일까, 이 책과 형제처럼 보이는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이번 서양음악 순례의 초반이 다소 밋밋하다고 느낄 수 있다. 글투가 변하지는 않았지만 그 특유의 ‘디아스포라의 시선’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작은 에피소드들의 나열처럼 시작된 책은 곧 궤도에 오른다.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하고, 때로 몽상에 젖으며, 문득 멈춰서 지금 이 세계의 지난 역사를 되돌아본다. 재미있는 사실들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가 ‘저 유명한’ 베를루스코니 총리와 친했기 때문에 진보적인 라 스칼라 극장 측과 마찰을 빚어 지휘자에서 낙마했다는 사실 같은 것들이다.
서경식 선생은 줄곧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나, 역사의 소용돌이 속을 살아 온 그의 삶은 이 세계의 역사와 현실을 끊임없이 호출하고 그 모두는 이내 글 속에서 섞여든다. 구성도 소재도 통일되지 않았으나 그의 ‘시선’이 짧은 글들을 한데 묶는다. 이 시선이야말로 숙명과도 같은 디아스포라의 눈길이며, 선생의 글을 읽으려는 독자들이 기대하던 바로 그것이겠다. 가혹한 운명에 음악으로 대항한 자들이 결국 부스러져버린 흔적을 바라보는 순간, 선생의 삶과 이 세계의 참혹한 역사와 독자들 속의 어떤 어둠이 서로의 경계를 허무는 순간들이 다가온다. 윤이상의 고향 통영에서, 모짜르트와 말러의 무덤 앞에서, 그리고 말러의 조카딸이자 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였던 알마 로제의 일화에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슈베르트의 인생 그 자체에서 음악은 운명과 뒤섞여 피할 수 없는 고통과 이해할 수 없는 비극으로 소급된다.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음악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소진상태였던 모짜르트는 어떻게 그 아름다운 클라리넷 협주곡을 써낼 수 있었는가? 슈베르트의 가곡들, 말러의 교향곡들, 저 아름다운 음악들은 어떻게 그 고난을 이겨내고 꽃피었는가? 선생은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다만 바라볼 뿐이다. 모조리 죽어 없어진 작곡가들이 남긴 아름다운 음악들이 홀로 살아 돌아다니는 모습을, 선생은 망연히 바라보고만 있다. 이 비극의 구렁텅이 위를 날개도 없이 떠 다니는 저것들은 대체 무엇인가? 침묵만이 그에 대답하며, 그 위로, 저기 음악이 홀로 걸어간다. - 예술 MD 최원호
최재천(변호사): 절망한 30대 청년이 길을 떠났다. 그것은 ‘서양미술 순례’였다. 그 청년은 30여년 뒤, 서양음악 순례자가 되어 돌아왔다. 이순일까. 그러나 여전히 그는 비관적이가. 서경식의 개인사와 가족사는 반도의 현대사다. 이 책에서 삶과 예술, 역사는 때로는 불협화음으로, 때로는 협화음으로 변주된다. 한참을 유쾌하게 이런저런 이야기 속에 실컷 빠져들다 지휘자가 지휘봉을 가만히 내려놓는 순간, 우리에게 울리는 그 명징한 울림이라니!
|
|

  |
희랍어 시간
한강 지음 / 문학동네
"한강 소설, 그 여자의 침묵과 그 남자의 빛"
여자는 말을 잃었다. 아이를 잃었고, 어머니를 잃었으니 말을 잃는 게 당연하다 상담가의 말에 여자는 말한다. 그렇게 간단할 수는 없다고. 오래 전에도 여자는 말을 잃었던 적이 있다. 그녀를 깨웠던 건 낯선 이국의 말. 여자는 이번에도 이미 저물어 죽은 언어가 된 희랍어를 택한다. 그리고 빛을 잃어가는 남자. 가족을 독일에 두고 혼자 한국으로 돌아와 희랍어를 가르친다. 말語을 잃어가는 한 여자의 침묵과 눈眼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빛이 만나는 찰나, 행간엔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정적인 의미들이 와글댄다.
<채식주의자>, <내 여자의 열매>, <바람이 분다, 가라>의 작가 한강의 장편소설. 시적인 문장과 압축된 언어가 그 여자의 침묵과 그 남자의 빛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주어와 태를 결정하지 않고는 한 단어도 내뱉을 수 없는 희랍어처럼, 소설은 망설이고 조심스럽다. 예민한 기척과 절제된 언어,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미 죽은 말을 배우며 이들은 더듬더듬 서로를 스친다. 진실로 아름다운 소설, 오래 읽을수록 그 의미가 은은하게 빛난다. - 소설 MD 김효선
책속에서: 네가 나를 처음으로 껴안았을 때, 그 몸짓에 어린, 간절한, 숨길 수 없는 욕망을 느꼈을 때, 소름끼칠 만큼 명확하게 나는 깨달았던 것 같아.
인간의 몸은 슬픈 것이라는 걸. 오목한 곳, 부드러운 곳, 상처입기 쉬운 곳으로 가득한 인간의 몸은. 팔뚝은. 겨드랑이는. 가슴은. 샅은. 누군가를 껴안도록, 껴안고 싶어지도록 태어난 그 몸은.
그 시절이 지나가기 전에 너를, 단 한 번이라도 으스러지게 마주 껴안았어야 했는데.
그것이 결코 나를 해치지 않았을 텐데.
나는 끝내 무너지지도, 죽지도 않았을 텐데.
|
|

  |
철학카페에서 시 읽기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김용규의 철학카페'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푹신한 의자에 앉아 달콤한 라떼 한 잔 놓고 이런저런 책을 뒤적이다 설핏 잠에 빠져 몸과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인테리어가 멋지진 않지만 세상의 모든 지혜를 품은 듯한 미소로 우리를 반겨주는 주인 아저씨가 있는, 오늘 신문에 올라온 얘기부터 어제 본 드라마, 요즘 읽는 소설, 읽다가 덮어둔 먼지 쌓인 철학책까지, 두런두런 수다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내린 어스름에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따뜻한 방바닥에 몸을 뉘이면 그제서야 고단한 삶에 위로와 용기가 되었음을 문득 깨닫게 하는 그곳, ‘김용규의 철학카페’를 소개합니다.
5년 전 개업할 때는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였는데, 오랜만에 들러보니 가게 이름을 <철학카페에서 시 읽기>로 바꿨더군요.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저씨는 안 계시고, 시와 함께 그려진 멋진 그림들이 반갑게 맞아주네요. 학창시절 시화전을 떠올리며 잠시 머뭇거리던 차에 어느새 나타난 아저씨가 어깨를 두드립니다. 조금 두꺼워진 안경알과 꽤 늘어난 뱃살을 빼면 여전한 모습이네요. 묻기도 전에 바뀐 가게 이름을 말씀하시는데, 시를 읽다 보니 어느새 시인이 되었다는 꿈 같은 이야기를 천역덕스럽게 하시는 모습이 반갑더군요. 그러고 보니 이 아저씨 <일 포스티노>에서 네루다 역할을 맡은 필립 느와레를 빼닮았습니다.
이런저런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아저씨는 시, 시인, 은유, 상징을 읊조리며 제가 고민하는 연애와 사랑 문제의 해결책부터 소비사회와 위험사회로 치닫는 세계’적’ 문제까지 줄줄이 풀어내시더군요. ‘시와 삶과 철학의 기적 같은 해후’라는 홍보 문구가 허언이 아니었습니다. 시에서 세계를 발견한 경이에서 세계를 시에 담아보자는, 시를 쓰고 싶다는 마음으로 옮겨간 아저씨의 삶이 이 카페에, 함께 나눈 이야기에 그리고 제 가슴에 새겨지는 기분 좋은 날이었습니다. 기쁜 마음에, 그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저만의 비밀 장소 '김용규의 철학카페'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참, 개업 기념으로 아저씨가 직접 고른 시 29편을 담은 예쁜 시집 '철학카페가 사랑한 시'를 준다네요. 서두르세요. - 인문 MD 박태근
책속에서: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철학카페의 관심은 철학 이론을 도구 삼아 작품을 해석함으로써 드러나는 우리의 갈 길을 찾자는 데 있습니다. 폴 리쾨르가 갈파했듯이, 하나의 작품을 해석한다는 것은 그것을 통해 자신의 새로운 ‘존재가능성’을 찾는 일입니다. ‘텍스트 앞에서의 자기 이해’를 얻는 것이지요. 그것은 텍스트를 향해 자신의 고유하고 한정된 이해 능력을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 앞에 겸허히 나서는 일입니다. 그럼으로써 텍스트에서 더 넓어진 자기를 얻는 것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