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나무를 자르지 말아야 한다, 신은 존재한

문득 부드러운 바람이 그 모든 존재들 위를 스치며, 날 때부터 변함없었던 그들의 심드렁한 눈빛을 변하게 하고 한편으론 위로했다. 아! 메이지 존슨은 울컥했다. (의자에 앉아 있던 그 젊은 남자가 그녀의 가슴을 내려앉게 했기 때문이다. 분명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는 그녀 없이도 행복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없이는 행복하지 않았다.

어둠은 훨씬 더 묵직한 존재감으로 대낮의 빛이 나타내지 못하는 것들을 드러내준다.

그러자 그들은 자기 혈관에 축적되어 있던 소문을 퍼뜨렸다.

나는 외로워, 외롭다고!

요리사와 하인을 부리는 방법도 알게 되겠지만 남자들은 모두 제멋대로라는 것도 알게 돼.

그녀는 물을 무서워하는 여자들은 참을 수가 없었다.

비행기는 멀리멀리 날아가더니, 마침내 빛나는 한 점으로만 보였다. 하나의 열망, 한 점으로의 집중, 그것은 인간 영혼을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 같았다(그리니치에서 잔디를 깎고 있던 벤틀리 씨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히말라야삼목 주변을 돌면서 벤틀리 씨는, 집을 벗어나고자 하는 결심을 되새기면서 아인슈타인을, 철학을, 수학을, 멘델 이론을 생각했다. 비행기는 멀리 지나가버렸다.

찾고 탐색하고 말로 논박하는 인간을 초월하여 높이 솟아 있는, 육체의 옷을 벗은 영혼의 상징 안으로, 왜 들어가지 못하는 거지? 그가 망설이고 있는 동안 비행기가 러드게이트 서커스20 위로 날아갔다.

사실 그녀는 단 한순간도 신을 믿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메모지를 집어 들면서, 더욱더 매일의 삶 속에서 하인들에게, 개들과 카나리아에게, 무엇보다 남편 리처드에게 보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을 준 것은 남편이기 때문이다

그녀 삶의 중심은 한가운데가 텅 빈, 다락방에 놓여 있었다.

남녀 간, 혹은 같은 여자 간의 차가운 접촉에 잔물결을 일으키는, 그 표면을 부드럽게 부술 수 있는 포근한 무언가가 그녀에겐 결핍되어 있었다

세상은 어떤 놀라운 의미, 어떤 황홀함으로 부풀어 올라, 얇은 피부처럼 찢어지며 갈라진 틈과 상처 위로 기이한 치유의 힘을 퍼부었다!

그런데(코트를 치우면서 생각했다)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게 과연 가능할까?

글자 그대로 무일푼으로 온 그녀와 밤새 얘기를 나누면서, 클라리사는 자기가 얼마나 온실 속 화초처럼 살아왔는지를 깨닫게 됐다. 자신은 성性에 대해서도,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었다.

사람이 어떤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그것이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었겠는가?)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관심해진다.

이 아침 속에, 모든 지난 아침들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세상에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언제라도 만남의 장소를 제공하고, 지루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찬란한 빛을 제공하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는 존재였다. 그녀의 도움을 받는 젊은이들에겐, 한결같은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다른 면모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결점이나 질투심, 허영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찬에 초대받지 못해 들끓는 감정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런 감정은 정말 비열하다고 (마침내 머리를 빗으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그나저나 그 옷은 어디 있지?

그녀도 늙었구나, 그는 자리에 앉으면서 그렇게 생각했지만 절대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녀가 정말로 늙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왜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거지? 왜 다시 그때를 생각나게 하는 거지? 그때도 지긋지긋한 고통을 줬으면서, 왜 또다시 날 아프게 하는 거지? 왜?

그는 아직 그리 늙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생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쉰이 조금 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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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갖춘 모든 기능에도 불구하고 무가치해 보였다. 전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이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상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가려져 있는, 알려지지 않은 존재.

구두와 장갑을 보면 누가 귀부인인지 알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아, 마침 빅벤 종이 울렸다! 처음에는 음악적인 예고음이었고, 그다음은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둔중한 종소리가 공중에서 수많은 원을 그리며 부서져 내렸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정지 상태에서의 불안한 긴장감을(사람들은 독감을 앓은 후 심장이 약해져서 그런 거라고 하지만) 느꼈다.

사람들의 저 눈빛 속에, 활기찬 몸놀림 속에, 터벅터벅 걷는 무거운 발걸음 속에, 고함과 아우성치는 소리 속에, 마차들, 자동차들, 버스들, 화물차들, 발을 끌고 몸을 흔들며 지나가는 샌드위치맨들3, 취주 악대들, 손풍금 소리, 승리에 넘친 환호, 머리 위를 지나는 비행기가 내는 기이하고도 높은 소음 속에 그녀가 사랑하는 것이 있었다. 인생이, 런던이, 6월의 이 순간이 있었다.

결혼해서 매일 같은 집에 사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약간의 자유와 독립을 허용해야 한다.

그리고 상점 주인들은 진열장 안에 있는 인조 보석이며 다이아몬드며, 미국인들을 유혹하려고 옛 18세기풍으로 만든 아름다운 청록색 브로치들을 초조한 마음으로 만지작거리고 있었다(하지만 절약해야지. 딸 엘리자베스를 위해서라도 물건을 함부로 구입하지 말아야 한다). 조지 왕조 시대의 조신朝臣들을 선조로 둔 그녀는 그런 화려한 세계를 터무니없는 열정으로 사랑했다.

그녀는 빅토리아 거리를 가로질러 건너며 인간이 너무도 어리석은 바보처럼 느껴졌다. 무엇 때문에 인생을 그렇게 사랑하고, 어떻게 그런 관점으로 인생을 보고, 여전히 꿈을 꾸는 걸까. 인생을 쌓아 올렸다가 허물어뜨리면서도 매 순간 왜 또다시 지으려는 걸까.

그녀는 이제 어떤 사람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고 싶지 않았다. 또한 자신이 대단히 젊고, 동시에 말할 수 없이 늙었다고 느꼈다. 자신이 모든 것을 칼처럼 조각조각 얇게 베어내는 것 같기도 했고, 동시에 밖에 서서 방관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지나가는 택시를 바라보고 있으면 자기 혼자 멀리, 바다 멀리 나와 있는 느낌이었다. 하루를 살아내는 것도 대단히, 대단히 위험한 모험 같았다. 그녀는 자신이 영리하다거나 보통 사람과 크게 다르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어딘지 모르게 경쾌하고 생기 넘치는 청록색 어치새 같았다. 클라리사 댈러웨이 부인은 횃대에 앉은 새처럼 꼿꼿하게 서서, 퍼비스는 보지도 않고 길을 건너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죽어야 한다는 것이 문제인가? 이 모든 것은 분명 나 없이도 계속될 것이다. 그게 화가 나는가? 죽으면 모든 게 다 끝난다고 믿으면 위안이 될까? 그러나 사물의 밀물과 썰물이 일어나는 런던 거리 여기저기에서 그녀는 여전히 살아 있고, 피터도 살아 있다. 서로가 서로 안에서 살고 있었다. 자신이 고향에 있는 나무들의 일부이듯이, 저기 추하고 짜임새 없이 늘어선 집들의 일부이듯이,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의 일부이듯이, 그녀의 존재는 절친하게 지내는 사람들 사이에 안개처럼 퍼져 있었다. 언젠가 본, 안개를 떠받치고 있는 나무처럼, 그들도 자신들의 나뭇가지로 그녀를 떠받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삶, 그녀 자신은 그 나뭇가지보다 더 멀리 퍼져나가 있었다. 그런데 해처드 서점 진열장을 들여다보고 있는 지금, 그녀는 무엇을 꿈꾸는 것일까? 무엇을 되찾으려 하는 걸까? 펼쳐진 책 속에서 본 것과 같은, 시골의 하얀 새벽과도 같은 그 무엇일까?

짙은 쪽빛으로 저물어가는 멋진 여름날의 끝에 제비고깔과 카네이션과 칼라를 발견한 소녀가 된 기분이었다. 저녁 6시와 7시 사이, 그때 안개 자욱한 곳에 있으면 장미, 카네이션, 붓꽃, 라일락 등 모든 꽃들이 하얀색, 보라색, 빨간색, 진한 오렌지색으로 부드럽고 순결하게 타오르는 순간이 있었다. 그때 페루향수초와 달맞이꽃을 안팎으로 맴돌던 은빛 나방들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단추처럼 작고 둥근 얼굴을 한 핌 양이 즉시 반겼다.

세상이 채찍을 들었다. 어디를 내리칠까?

댈러웨이 부인은 팔에 스위트피를 한 아름 안고 창가로 와서, 질문하듯 찌푸린 작은 핑크색 얼굴로 밖을 내다봤다.

자신이 어떤 목적의 무게에 눌려, 인도에 뿌리박힌 듯 서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목적이란 게 뭘까?

하지만 실패는 감추어야 한다. 공원 같은 데로 그를 데려가야만 한다.

있었다(그는 수년 동안 법을 잘 집행해왔고, 옷 잘 입는 여자를 좋아했다)

개개인의 변화는 너무도 사소해서, 중국에서 일어난 지진의 파장을 잴 수 있는 기계조차 그것을 감지할 순 없었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보면 엄청난 감정적 변화였다.

떠나버린 자동차가 일으킨 동요가 아래로 가라앉으면서 마음속 깊은 무언가를 건드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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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01-02 2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버지니아 울프의 이북이군요.
라로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라로 2022-01-05 23:51   좋아요 0 | URL
네, 페크님, 버지니아로 2022년을 시작합니다. 페크님은 어떤 책으로 시작하셨나요?
페크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늘 감사드립니다.^^

바람돌이 2022-01-03 0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댈러웨이 부인부터 시작하셨군요. 이 책도 좋았어요. 물론 전 등대로가 더 좋았지만요. ㅎㅎ
전 좀 있다 올랜도 읽으려고요. ^^

라로 2022-01-05 23:52   좋아요 0 | URL
뉍! 추천해주신 <등대로>는 댈러웨이 부인 다음에 읽으려고요. 그런데 댈러웨이 부인이 읫기의 흐름 기법이 약하다고 하니 저는 등대로 잘 읽을 수 있을지??^^;;;
올랜도 언제 읽으실지 모르지만, 비슷한 시기에 읽게 되길요.^^

바람돌이 2022-01-06 00:19   좋아요 1 | URL
전 다음책 바로 올랜도입니다. 새해니까 왠지 울프를 읽어줘야 올해 전자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런 마음요.

라로 2022-01-06 00:58   좋아요 0 | URL
올 울프 전작에 도전하시는군요!!! 화이팅!!!^^
제가 바람돌이님 따라서 울프 전작에 도전하는 거 아닙미꽈!!!ㅎㅎㅎ
 

프야님의 책 <내가 당신을 볼 때 당신은 누굴 보나요>의 5번째 이야기는 영화 The Hours. 시작하는 글부터 밑줄을 그어 본다. 


우리의 삶은 어떤 식으로든 타인의 삶과 연결되어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누군가의 삶은 또 다른 누군가의 삶에 배어들고 시간을 넘어 상상을 초월한 힘을 발휘한다. 끊을 수 없는 타임루프처럼 시간은 그렇게 섞이고 돌고 돌고 돌아서 현재로 회귀하고 '언제나'는 '영원히'와 등가를 이룬다.


내가 당신을 볼 때 당신은 누굴 보나요

- 45

-배혜경















아! 이제 그때 하신 그 '언제나'가 그냥 언제나가 아니라 이중의 의미를 지닌 언.제.나.였다는 것을 깨닫는 미욱한 나.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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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1-12-13 22: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랑 비슷하게 읽으시는 듯 합니다.
또 저 혼자 정한 라로님과 같이 읽기 책이에요ㅋㅋㅋ

라로 2021-12-13 23:03   좋아요 2 | URL
책나무님도 시작하셨군요!!! 좋아요!!!^^
제가 책나무님 따라잡아야 할텐데,,, 또 시험이라 며칠 못 읽을 거에요.ㅠㅠ
 

지바고의 아내는 이미 이때 유리와 라라의 운명이 피해갈 수 없는 것이란 직감을 받은 것일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ㅠㅠ

머리에 내리는 눈처럼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다는 표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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