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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강렬한 감정에 흥분한다고 몇 번 말한 적이 있다. 격분, 기쁨, 증오, 고통. 그런데 애도는? 흠. 욕정과 수치심. 상중에 있는 사람과 섹스를 한다는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생각. 이보다 더 나쁜 생각도 있겠지.

해리는 일어서서 벽에 건 피코트를 집었다.

힘 있게 악수하고 안정적이고 똑바르게 눈을 마주치는데도 어딘가 모르게 화나 있고 상처받기 쉬워 보였다.

"고맙습니다." 해리는 그의 말을 믿었다. 어쩌면 맞잡은 손이 따뜻해서였는지도 몰랐다.

누군가는 장례식장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나면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고 말해주는 것처럼 위안을 얻는 듯했다. 삶이 계속되기를원하는 누군가는.

"누구나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하지만 언제나 마음이 강력히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거 아닌가요?"

보헤미안이면서 신형 아우디를 소유한 사람들. 번쩍거리는 모델이 아닌 신형 아우디가 서 있는 차고에는 잘 건조된 목재로 제작된, 오래되고 묵직하고 유쾌하게 실용적이지 않은 정원 가구가 가득했다. 뤼데르 사겐스 가는 이 나라에서 가장 비싼 거리 중 하나일지 몰라도, 사실 이 거리의 이상적인 주민은 할머니에게 집을 물려받은 예술가인 듯했다. 어느 쪽이든 주민들은 대체로 선량한 사회민주주의자들이자, 지속 가능한 발전을 믿으며 오래된 건축양식의 주택 여기저기에 튀어나온 지나치게 큰 목재 들보만큼이나 공고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해리는 엎어놓은 책을 보았다.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 젊은 여자가 음울하고 고독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여자는 남자가 아내와 별거 중인 줄 알지만 사실 남자의 아내는 다락방에 갇혀 있는 줄거리가 기억났다.

"내 멘토였던 해리라는 사람이, 다른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하고 추론에 기초한 결론이 부당하게 좋은 명성을 얻었다고 말씀하신 기억이 나는 거 같은데요."

같은 집에 살고 한 침대에서 자고 모든 걸 공유해도 서로 비밀을 다 아는 건 아니에요.

트룰스 베른트센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미국 드라마 <더 실드>의 첫 시즌의 세 번째 에피소드를 보았다. 전 시리즈를 이미 두 번이나 보고 새로 시작했다.

"네?" 그는 이 긍정의 한 마디에 애써 거절의 뜻을 담으려 했다.

가만 생각해보면 삶은 그렇게 복잡할 필요가 없다.

2014년에 의회에서 살인과 성폭행의 공소시효를 폐지한 뒤로 과거의 미제사건에 새로운 DNA 분석기술을 적용해달라는 주문이 폭주했고, 대기 시간이 급격히 늘어난 터였다.

"우리의 어떤 행동이 우리 자신만이 아니라 우리를 아끼는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죠."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고 싶은 것보다 더 많이 생물학으로 엮여 있는지도 몰라. 어쩌면 누구나 혈통 우월주의자와 인종 차별주의자와 민족주의자로 타고나서 나만의 가족을 위해 세계를 지배하려는 본능적인 욕구를 가졌는지도 모르지. 그러다 그런 욕구를 무시하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는 거고. 대다수는, 결국."

얼어붙을 듯 추웠다. 늘 추웠다. 카불처럼 기온이 영하 5도에서 영상 30도를 한참 넘게 오르내리는 곳에서는 6월이든 12월이든 밤이 되면 추위에 떨면서 아침이 밝기만을, 사막의 태양이 다시 몸을 데워주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오빠한테 그들 남매가 냉혈 인간으로 태어난 것 같은지, 파충류처럼 스스로 체온을 조절하지 못하고 외부의 열이 있어야 몸이 굳어 얼어 죽는 걸 막을 수 있는 것 같은지 물은 적이 있다.

경찰에게는 남들한테 없는 뭔가가 있었다. 결연함. 그에게는 결단력이 있었다. 성직자와도 조금 비슷해 보인다고 당뉘는 생각했다. 성직자들이 진실이라고 말하는 것을 그들 스스로 절실하게 믿기에 우리도 그들을 신뢰하는 것처럼.

그녀는 세 번 물었다. 누군들 그 이상 무엇을 요구할 수 있을까?

"외로워. 당신을 만나기 전에 나는 늘 혼자였어도 외로운 적이 없었어. 외로움은 새롭고, 외로움은…… 흥미로워. 우리가 함께일 때 당신이 모든 진공 상태를 채워준 건 아니지만 떠나면서는 커다란 아가리를 벌린 구멍을 남겼어. 사랑은 상실의 과정이라고 하더군. 어떻게 생각해?"

미군 병사 중 적어도 20 혹은 30퍼센트 이상이 PTSD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베트남의 미군 병사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연합군 병사는 이 수치가 절반으로 떨어져요. 심리학자들은 그 이유를 베트남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병사들이 그들이 치르는 전쟁을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봐요. 반면에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누구나 히틀러와 싸워야 하는 이유를 납득했죠. 베트남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병사들은 고국으로 돌아올 때 시가행진도 없었고, 그들을 의심의 눈으로 쳐다보는 사회와 대면해야 했어요. 더욱이 그들의 행위를 어떤 정당한 서사에 끼워넣을 수가 없었어요. 그러니 이스라엘을 위해 살인하는 게 더 수월한 거죠. 실제로 거기서는 PTSD 발병률이 8퍼센트로 떨어져요. 그곳의 폭력이 조금이라도 덜 끔찍해서가 아니라, 병사들이 적들에게 둘러싸인 작은 나라를 지킨다고 스스로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고 국민들에게도 폭넓은 지지를 받기 때문이죠. 그래서 살인에 대한 단순하고 윤리적으로 정당한 이유가 생기는 거예요. 그들의 행위가 꼭 필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는 거죠."

얇고 불그스름한 눈꺼풀에 실핏줄이 보이고 눈썹은 흐릿하고 살결이 희었다. 얼굴이 마치 불 켜진 전구를 삼킨 것처럼 보였다. 부풀어 오르고 속에서 불을 밝히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강요된 자매애의 연대와 감정에 호소하는 수사법에는 동조할 수 없었다. 가끔은 그녀들에게 닥치고 그냥 평등한 기회와 동일노동 동일임금 같은 구호나 외치라고 말하고 싶었다.

약간 투실투실하지만 착하고 귀여운 이 과학수사관은 그에게 주어진 복이 믿기지 않는 듯 그녀를 여왕처럼 떠받들고 자기를 한없이 낮추었다. 그녀는 비에른의 그런 태도를 함부로 이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많은 사람이(여자든 남자든) 단지 배우자가 허용한다는 이유로 괴물로 변해가는 예를 숱하게 봐왔다. 그녀는 노력했다. 진실로 노력했다.

카불 하늘의 연은 이 도시가 탈레반 정권에서 해방되었다는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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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는 가만히 기다렸다. 그 대답이 그대로 허공에 맴돌게 놔두었다. 사라가 얼굴을 찡그렸다. 해리는 다른 사건들에서 그런 표정을 본 적이 있다. 남겨진 사람이 슬픔과 싸우면서, 슬픈 감정이 마치 회유하고 속여야 할 짜증스럽고 성가신 적인 양 붙잡고 씨름하는 표정. 상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죽은 이의 위신을 깎아내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쩐지 그런 경우가 아닌 것 같았다.

그분은 똑똑하기도 했어요. 최고의 거짓말은 진실에 가까운 말이라는 걸 알았으니까요.

사라는 해리의 악몽에 나타날 부류가 아니다.

앞서 흥분은 오랜 추적 끝에 사건이 해결될 거라는 기대가 쌓일 때, 범인을 체포하여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클라이맥스에 도달할 거라는 기대가 있을 때, 상황을 변화시켜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이 남아 있을 때 자주 올라오는 감정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감정은 대개 사건을 해결한 후 며칠 혹은 몇 주씩 술병을 붙잡고 살면서 생기는 알코올과 얽힌 우울증이었다.

트룰스는 강력반에서 해리 홀레보다도 인기가 없는 인물이지만 바로 그 이유로 해리는 그가 부러웠다.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트룰스의 그 능력이 부러웠다. 하긴, 해리도 남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도 없었다. 아니, 경찰의 사명에 대해 현실적으로든 도덕적으로든 모든 책임을 모른 척하는 건 트룰스의 능력이었다.

"잘했어요." 트룰스가 씩 웃었다. "망누스는 멍청이예요."
해리는 그에게 손을 내미는 뜻으로 한 말인지 어떤지 모르고 그냥 대꾸하지 않았다. 더는 무분별하게 친구를 만들 생각이 없었다.

해리는 숨을 참았다. 언젠가 숨을 오래 참아서 죽을 수도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건 체내에 산소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산화탄소가 많아서 죽는 거라는 내용도 읽었다.

그동안 행복했다. 하지만 행복은 헤로인과 같다. 한번 맛보면, 행복이란 게 있는 줄 알면 다시 행복해지지 않고서는 평범한 일상에서 온전히 행복하게 살지 못한다. 행복은 소박한 만족 이상의 무엇이므로. 행복은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다. 행복은 전율하는, 예외적인 상태다. 지속하지 않을 게 분명한, 초, 분, 날이다. 행복하지 않은 순간의 슬픔은 나중에, 행복에 이어서 오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온다. 행복한 순간에 이미 다시는 이렇게 행복할 수 없고 지금 가진 것이 사라질 거라는 지독한 진실을 통찰하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을 빼앗기는 고통과 상실의 슬픔을 미리부터 걱정하면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을 인식하는 그 능력을 저주한다.

라켈은 늘 침대에서 신문을 보았다. 그가 좋아할 기사를 발견하면 읽어주기도 했다. 셸 아스킬센의 단편처럼. 그럴 때 그는 행복했다.

해리는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갈색 바다 같은 보츠 공원에 아직 회백색 눈의 섬들과 작은 대륙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며칠 새 보츠 교도소로 이어진 라임 나무에 움이 트기 시작했다. 앞으로 한 달쯤 지나면 싹이 나고, 오슬로에는 하룻밤 새 봄의 공습을 받은 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그러나 한없이 무의미할 것이다.

해리는 "하지만" 다음에 이어질 말이 없는 걸 알았다. 그저 본능적인 반대, 자신을 버티려는 저항, 세상이 현실 그대로 흘러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부정일 뿐이었다.

숲 향기. 그녀가 어떤 향수를 쓰든 향기 교향곡의 저변에는 따스한 햇볕이 비추는 노르웨이 숲 향기가 깔려 있었다.

라켈은 어떻게 찍혀도 못 나온 사진이 없었다. 전혀. 단 한 번도 잘못 나온 적이 없다. 젠장.

인적이 드문 묘지에 들어와 보는 이 없는 곳에서 개똥을 그냥 싸지르고 도망치는 개 주인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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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청소를 대단히 잘하진 않았다. 카일라스는 더러운 것을 없애는 대신 그저 위치만 바꿔놓았다. 하지만 타고나기를 친절하고 정직한 사람이었고, 알고 보니 변덕스러운 노트북과 프린터를 다루는 귀재였다.

카일라스는 어깨너머로 나와 아내의 말을 들으며 영어를 배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난 망했어"와 "당장 나가" 같은 구어를 앵무새처럼 따라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카일라스는 우리에게 자기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중에 나와 아내가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을 때 카일라스도 우리와 함께 갔다. 엄밀히 말하면 카일라스는 여전히 우리의 고용인이었지만 언젠가부터 카일라스는 우리를 자기 부모라고 지칭하기 시작했다. 마음이 불편했지만 우리가 새로 맡은 역할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내가 분기별로 돈을 송금해주었기 때문에 카일라스는 겨울엔 너무 춥고 여름엔 너무 더운 델리의 자그마한 아파트에서 살 수 있었다

옆에서 이 상황을 지켜본 인도인 친구들은 내 노력에 회의적이었다. "너무 미국인처럼 생각하고 있어요." 그들은 미국인처럼 생각하는 게 무슨 정신병인 것처럼 말했다. "카일라스는 낮은 계급, 낮은 카스트 출신이에요. 모든 걸 해낼 순 없다고요. 현실을 좀 직면해요."

할리우드 영화보다는 더 들쑥날쑥한 궤도를 따랐지만, 결말은 영화만큼 행복하다. 지금 카일라스는 허름한 동네에서 중산층이 되겠다는 포부를 품고 살고 있다. 또한 남편이자 아버지가 되었다. 집주인이기도 하다. 2층짜리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 가족과 함께 그 건물의 꼭대기층에서 산다. 1층에는 딸의 이름을 따서 에마라는 이름을 붙인 작은 문구점을 열었다. 그곳에서 공책과 펜, 간디 사진이 있는 지갑을 판다. 카일라스와 나는 더 이상 금전적으로 매여 있지 않다. 우리의 유대는 그보다 더 견고하다.

나는 인도인이 아니다. 금욕적인 사람도 아니다. 비폭력을 실천하긴 하지만 못 그럴 때도 있으며 은은한 수동공격성도 있다. 간디는 사람들을 이끄는 지도자였다. 나는 그 누구도, 심지어 우리 집 개 파커도 이끌지 못한다. 파커는 더 큰 힘에 복종한다. 바로 음식이다. 사망 당시 간디의 소유물은 작은 숄더백에 다 들어갈 정도였다. 내가 가진 물건을 다 넣으려면 그보다 훨씬 넓은 공간이 필요하며, 나는 지금도 쇼핑 중이다. 하지만 간디는 내게 말을 건넸고, 나는 그의 말을 들었다.

간디는 투사였다. 그는 영국과 싸웠고, 편협한 외국인 및 인도인과 싸웠다. 목소리를 내기 위해 싸웠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싸움은 싸우는 방식을 바꾸기 위한 싸움이었다.

자기들은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며 자랑하는 부부를 한번 떠올려보자. 그들의 이혼 소식이 들린다 해도 그리 놀랍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만 하면 싸움은 생산적이다. 양쪽이 윈윈하는 해결책에 다다를 수도 있지만, 애초에 싸우지 않았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해결책에 다다를 수도 있다. 동점으로 끝났지만 경기장이 전보다 더 푸릇푸릇하고 건강해진 축구 경기를 떠올려보라. 간디는 싸움을 필요악이 아닌 필요선으로 보았다. 우리가 잘 싸우기만 한다면 말이다.

미국의 기자이자 전기 작가인 루이스 피셔는 간디의 아시람에서 그를 만났을 때 가슴이 떡 벌어진 탄탄한 남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2 간디의 "다리는 가늘고 긴 근육질"이었고 실제 키 165센티미터보다 훨씬 커 보였다. 간디는 "매우 남자다웠고 남성의 강철 같은 신체와 의지를 가졌다." 피셔는 썼다.

용기와 남자다움이 없는 남자는 절대로 수동적인 저항자가 될 수 없다."

간디는 폭력을 혐오했지만 그가 폭력보다 더 싫어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비겁함이었다.

나는 투사가 아니다. 나는 물리적 충돌을 회피한다. 내가 해본 유일한 주먹다짐은 열일곱 살 때 볼티모어 교외에 있는 하워드 존슨 호텔 주차장에서 새벽 2시경에 일어났고, 코가 부러지는 것으로 끝이 났다. 내 코였다.

대부분의 사람들,평범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일상적인 대화를 충돌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나도 안다. 하지만 나는 충돌이라고 여기며, 가능하면 피한다. 편집자, 가족, 이웃, 나와 함께 지하철에 탄 승객들과의 충돌(예상된 충돌) 역시 피한다. 내가 이런 회피 전략을 언제 어떤 이유로 습득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게 별 도움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신을 존경하지 않는다. 신을 숭배하거나 두려워할 수는 있지만, 신을 존경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인간을, 자신보다 더 나은 버전의 인간을 존경한다. 간디는 신이 아니었다. 성인군자도 아니었다. 열두 살 때 간디는 부모와 형의 돈을 훔쳐 담배를 샀다. 몰래 숨어서 육식을 하기도 했는데(간디가 속한 카스트에서는 육식을 금지한다), 자신처럼 영국인의 육식 식단이 신체를 더 강하게 만들어준다고 믿었던 한 친구와 함께 강가에서 염소 고기를 씹어 먹었다.

간디는 열세 살 때 결혼했다. 그는 좋은 남편이 아니었다. 질투심 때문에 아내 카스투르바를 채찍질하기도 했다. 한번은 집안일을 하지 않으면 집에서 쫓아내겠다고 아내를 위협하기도 했다. 카스투르바는 흐느껴 울며 말했다. "창피하지도 않아요? 나보고 어디로 가라고요?"

간디는 인도의 아버지였지만 제 자식에게는 형편없는 아버지였다. 정계에서도 간디는 여러 실수를 저질렀다. 그는 엉망이 된 자신의 정치 캠페인을 "히말라야 산맥처럼 커다란 실수"라 칭했다. 간디가 벌인 실험에 관해 말하자면, 도를 넘은 것들이 있었다. 일흔다섯 살에 간디는 자신의 금욕 서약을 시험해보겠다며 종손녀 마누를 포함한 어린 여성들과 나체로 잠자리에 들었다.

자기 생각을 바꾸길 겁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괴짜와 변덕쟁이, 미치광이"를 끌어 모아 그들을 전부 수용한 사람이었다. 지독한 수줍음과 자기 회의를 극복하고 한 국가를 이끈 사람이었다. 대의를 위해 기꺼이 죽으려 하되 다른 사람을 죽이려 하지는 않는 사람이었다. 대제국과의 기싸움에서 이긴 사람이었다. 신이나 성인군자가 아닌, 피와 살을 가진 사람으로서, 좋은 싸움이 어떤 것인지를 세상에 보여준 사람이었다.

간디는 영적 잡식동물이었다. 기독교에서 이슬람교까지 여러 다양한 종교의 별미를 맛보았지만, 결국 간디의 허기를 확실히 채워준 것은 힌두교 경전인 《바가바드기타》였다

"의혹이 나를 덮칠 때, 너무나도 실망스러울 때, 눈앞에 아주 조금의 희망도 보이지 않을 때 나는 《바가바드기타》를 펼치고 나를 위로해줄 시구를 찾는다. 그리고 압도적인 슬픔 한가운데에서 즉시 미소 짓기 시작한다."

필요하다면 그것이 폭력이더라도 자기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 《바가바드기타》의 기존 해석이다.

간디는 이 책을 다르게 읽었다. 그는 《바가바드기타》가 "오늘날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묘사한 하나의 비유라고 말했다. 진짜 전쟁터는 우리 마음속에 있다. 아르주나는 적이 아닌 자기 자신과 싸운다. 아르주나는 자신의 기초적인 본능에 굴복하는가, 아니면 더 높은 경지로 도약하는가? 간디는 《바가바드기타》가 사실은 비폭력을 향한 찬사라고 생각했다.

"네겐 노력할 권리가 있지만, 반드시 그 노력의 결실을 취할 권리는 없다. 절대로 보상받기 위해 행동에 나서지 말 것이며,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바라서도 안 된다."5 《바가바드기타》는 노력과 결과를 분리하라고 가르친다. 모든 시도에는 100퍼센트의 노력을, 그 결과에는 정확히 0퍼센트의 노력만을 기울일 것.

우리는 결과 중심적이다. 헬스 트레이너, 비즈니스 컨설턴트, 의사, 대학, 세탁소, 갱생 프로그램, 영양사, 재정 자문가. 많은 곳에서 결과를 약속한다. 이들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능력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할 수는 있지만, 우리는 결과를 지향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전제에는 그다지 의문을 품지 않는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과정 중심적인 접근법이 결과 중심적 접근법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간디의 생각조차도 동적이었는데, 기민한 두 눈과 표정이 풍부한 얼굴에서 그 동적인 특성이 잘 드러났다. 간디를 만난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반짝이는 거울"이라 말했다. 한 기자가 간디에게 본인의 철학을 한 문장으로 설명해달라고 하자, 간디는 대답하지 못하고 고민하다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학문적 글쓰기와는 잘 안 맞아요. 행동하는 것이 나의 영역입니다."

간디의 병사들은 다른 병사들처럼 대의명분을 위해 기꺼이 죽으려 했다. 하지만 다른 병사들과는 달리 대의명분을 위해 다른 사람을 기꺼이 죽이려 하지는 않았다.

"혁명을 하다 보면 이런 일도 생깁니다." 레닌은 자신의 집단 학살 명령을 변호하며 이렇게 말했다. 간디의 혁명은 그렇지 않았다. 간디는 피비린내 나는 수단을 이용해 인도의 독립을 쟁취하느니 계속 영국의 속박을 받는 것이 낫다고 보았다.

간디는 "구덩이 안으로 내려가지 않고 구덩이를 팔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고 말했다.

다른 이를 잔인하게 대하는 사람은 곧 스스로를 잔인하게 대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혁명이 결국 실패로 끝나는 것이다.

수단과 목적을 혼동한 사람은 스스로를 집어삼킨다. 간디가 보기에 목적은 절대로 수단을 정당화하지 못했다. 수단이 곧 목적이었다. "불순한 수단은 불순한 결과를 낳는다. 정확히 뿌린 대로 거두게 되는 법이다." 유독한 땅에서 장미나무를 키울 수 없듯이, 피 묻은 땅에서는 평화로운 국가를 세울 수 없다.

간디는 절대로 비폭력을 하나의 전략으로, "마음대로 걸쳤다 벗었다 하는 옷"으로 여기지 않았다. 비폭력은 하나의 원칙이며, 중력의 법칙처럼 침범할 수 없는 법칙이다.

우리는 자신이 볼 수 있는 것에만 퇴짜를 놓을 수 있다. 이 작은 개자식 파커는 내가 볼 수 있게 도와준다.

폭력적인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힘들게 노력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주먹을 날리거나 총에 손을 뻗는다. 너무나도 빤한 반응이다. 간디라면 나의 파커 문제를 힐끗 보고 창의적으로 생각해보라고 충고할 것이다. 실험을 해봐.

대부분의 인도인은 간디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고, 카일라스가 내게 말한다. 인도인들은 간디의 사진이 들어간 돈을 좋아한다. 그게 다다. "사람들은 간디가 겁쟁이라고 말해요. ‘상대방이 나보다 더 강하면 간디처럼 행동해야겠지. 하지만 내가 더 강하면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해요." 슬프게도 이것은 흔한 오해 중 하나다.

내 생각은 델리의 공기만큼 깨끗하다. 나는 충돌을 피하려고 다른 사람의 뜻에 따르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리고 말없이 뚱하게 있는 것으로 내 불만을 표현한다. 나는 은밀하게, 깨끗하지 못하게 싸운다. 겉으로는 고분고분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전쟁 중이다. 간디는 수동-공격적이지 않았다. 간디는 공격-수동적이었다. 그의 행동은 겉으로는 공격적이거나 적어도 적극적으로 보였지만, 그 밑에는 그 어떤 적의도 없었다. 오직 사랑뿐이었다.

간디는 자서전에서 돈을 훔치고 담배를 피우고 육식을 한 것을 아버지께 고백하는 편지를 썼던 때를 회상한다. 간디는 손을 덜덜 떨면서 아버지께 쪽지를 건넸다. 아버지 간디는 자세를 바로 하고 쪽지를 읽었고, "진주 같은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 종이를 적셨다." 간디는 말한다. "그 진주알 같은 사랑의 눈물이 내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했고 내 죄를 씻어주었다. 그런 사랑이 어떤 것인지는 오직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가끔 간디는 화를 폭발시키면서 자기 가슴을 세게 때리기도 했다. 하지만 간디는 말년을 향해 가면서 이런 자기 학대에서 벗어났고, 친구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그 누구에게도 성질을 내지 말 것.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강제로 복종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끝난 것처럼 보이는 논쟁이 어쩌면 그저 다른 갈등 상황의 시작일 수도 있다."11 《간디의 방식: 갈등 해결 핸드북》의 저자 마크 위르겐스마이어는 말한다. 또한 당신은 "베일을 쓴 폭력"에 기댐으로써 파트너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해치게 된다.

반대로, 파트너에게 ‘양보’해서 이탈리아 요리를 먹는 데 동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은 내내 뚱한 채로 저녁을 먹는다. 이건 그저 다른 형태의 폭력일 뿐이다. 심지어 더 나쁘다. 부정직하고 "깨끗하지 못한" 폭력이기 때문이다. 아무 원칙도 없는 척하느니 자기 원칙을 두고 싸우는 편이 낫다.

다른 요리를 제안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일본 요리. 하지만 그건 아무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는 뜻이며, 그러는 사이 아래에 숨은 갈등은 더욱 심해진다. 간디는 이런 타협을 경계했다. 그는 기브 앤드 테이크에 찬성했지만 그것이 원칙의 문제일 때는 달랐다. 자기 원칙을 타협하는 것은 곧 굴복하는 것, "모두 주고 하나도 얻지 못하는 것"이라고, 간디는 말했다. 더 나은, 더 창의적인 해결책은 양측이 자신이 원하는 줄도 몰랐던 것을 얻게 되는 것이다.

간디는 "그저 반대한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이 늘 나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간디에게는 반대자가 많았지만 적은 없었다. 간디는 사람들에게서 최고의 모습을 보려고 노력했을 뿐만 아니라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잠재적 선량함도 보려고 했다. 그는 사람들에게서 지금의 모습이 아닌 앞으로 될 수 있는 모습을 보았다.

부드럽게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라. 간디가 말했듯, 당신의 목표는 비난이 아니라 변화이므로.

갈등의 양측은 전체 파이가 아닌 진실의 일부만을 지닌다. 파이의 조각을 거래하는 것보다 파이의 크기를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간디가 늘 좋은 사람인 것은 아니었다. 그는 요구가 많았고, 가끔은 냉혹하기도 했다. "간디와 함께 사는 것은 칼날 위를 걷는 것과 같았다."13 한 추종자가 말했다. 나는 그만큼 균형 잡힌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궁금해졌다.

"나는 그럴 거야." 내가 카일라스에게 말한다. "나는 간디와 함께 살 거야."
내 말을 마치 다른 사람의 말처럼 내 귀로 들으면서 그 말이 사실임을 깨닫는다. 가끔 우리는 입으로 직접 말해야만 진실을 깨닫는다

나는 더욱 안락해지려는 노력에 상당한 시간과 돈을 쓴다. 그게 정말 필요한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에피쿠로스라면 뭐라고 말했을까?충분한 걸로는 부족한 사람에게는 무엇이든 충분하지 않다.

사망했을 때 간디의 소유물은 안경과(식사할 때 사용하는) 나무 그릇, 회중시계, 그리고 "그 어떤 악도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말하지 않음"을 상징하는, 일본인 친구가 준 자그마한 자기 원숭이 세 점뿐이었다.

결과는 내가 원한 것과 달랐지만 내 괴로움의 뿌리에 있는 것은 결과가 아닌 나의 욕망이다. 게다가 나는 앞으로도 싸울 일이 많을 것이다. 싸울 일은 언제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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