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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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보다 뒤로 갈수록 와이너의 위트와 재치가 좀 무덤덤 하게 다가오긴 하지만, 끝까지 즐겁게 읽었다. 14명의 철학을 소개하는 것이다 보니 깊이 들어가진 않는다. 하지만, 기차를 타면서 이 모든 글을 쓴 작가의 의도는 참신했고, 각 지역과 연결한 설명은 그 장소들을 언젠가 방문하고 싶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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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2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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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에게 한방 되게 먹었다! 홀레가 사랑하는 사람과 삶을 경험한 뒤라 그런지 너무 부드러워졌다고 생각하니 김빠졌고, 스토리는 산만하고 엉성하면서 뻔한 것 같았는데 전말이 드러나면서 모든 것이 완벽하게 계산되고 짜인 요의 의도였다니! 다음 작품에 홀레가 어떤 사건과 함께 어찌 나타날지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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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불만이나 갈등이 생기고, 여러 이유들이 얽혀‘임신순번제’ 같은 말도 안 되는 문제가 생겨났다. 임신순번제는 말 그대로 한 부서의 간호사들이 비슷한 시기에 임신을 많이 하지 않도록 순번을 정하는 것이다. 수면 아래 있었을 뿐 오래 전부터 존재했던 문제다. 이제는 이미 뉴스에도 여러 번 보도되어 수면 위로 오른 문제지만 달리 대책은 아직 없다.

임신한 간호사를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급작스레 다른 부서로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간호사로서의 일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일인데 임산부로서 이런 스트레스까지 받아야 하니 과연 아이와 산모에게 도움이 되는 근무환경이 맞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임신은 죄도 아니고 눈치를 봐야 할 일이 아니고 오히려 많은 축하를 해줘야 하는 일이다. 남자 간호사로서 임신을 직접적으로 경험해본 일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다른 간호사들의 경험을 지켜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해왔던 부분이기에 꼭 언급하고 싶었다.

대화의 반 이상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통해 단 한 가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것은 그들은‘간호사’라는 직업을 너무 사랑하고‘간호사’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간호사’로서 평생을 살겠다는 그들의 열정이었다. 언어장벽에도 불구하고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학회장에는 실제로60대 나이의 간호사들도 제법 있었다.

실제로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들은 치료와 회복이라는 목적 아래 엄청난 고통을 겪는다. 우리는 과연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충분히 노력하는가? 질병의 치료에만 집중하여 그들의 고통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떤 의료인들은 이렇게 말한다.‘치료가 결국 회복으로 이어지고 고통을 없애는 궁극적인 길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받는 고통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앞서 여러 번 언급했지만 정말 그 상황에 처해보지 않는 이상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하다. 환자들이 겪는 고통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삼성서울병원에서 일할 당시 필리핀 간호사들이나 페루 간호사들이 연수를 오기도 했었는데 그때 이렇게 친절 했었나 혹은 환영을 해줬었나 하는 깊은 반성을 하게 만들었다. 투어를 통해 경험한 그 병원은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가 더 인상적이었다. 모든 것이 정책이나 프로토콜로 정해져있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어딜 가도 그런 정책이 곳곳에 게시되어 있었다.

영어. 중고등학교 때 못하는 과목은 아니었다. 하지만 영어 교육을 받을 당시의 한국 영어 교육은 실생활에서 영어를 사용할 수 있게끔 교육하는 말하기와 듣기 위주의 교육보다는 영문법과 문장을 읽고 해석하는데 치중하는 철저히 수능 영어 시험을 위한 교육이었다. 영어점수와 실제 영어를 구사하는 실력이항상비례하는 것은 아닌 아이러니한 교육 현실이었다.

언어라는 것이 그렇다. 사용하지 않으면 구사하는 능력이 퇴화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심근경색이란 의학 용어로는MyocardialInfarction(MI)이고 더 광범위한 용어로는 급성 관상동맥 증후군(AcuteCoronarySyndrome,ACS) 중의 하나이지만 일반 미국인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쉬운 용어인 심장발작(Heartattack)으로 불린다. 쉽게 설명하자면 심장으로 혈류를 공급하는 혈관들이 어떠한 이유로 막혀 심장 근육이 필요한 혈류를 공급받지 못하고 심장 일부가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기에 코끼리가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은 심각한 가슴 통증을 유발한다. 이를 유발하는위험요인에는 고령의 나이나 고혈압과 당뇨 같은 만성 질환, 건강하지 못한 식습관, 운동 부족, 흡연 등이 있다. 할머니는 일흔의 나이에 고혈압이 있었고 흡연자였다. 할머니께선 위험요인들을 가지고 있었고 전형적인 심장발작 증상인 심각한 가슴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학회 이후로 오랜만에 경험해보는 미국 병원의 중환자실 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미국 간호사들의 근무하는 모습도 보며 마냥 신기해했다. 그렇게 쉬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과 그저 신기한 미국 병원 중환자실의 광경을 뒤로 한 채 중환자실을 나왔고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할머니의 딸Joy와 마주쳤다.

Joy 역시 간호사였는데, 나는RN이었고Joy는LPN이었다. 미국에는 두부류의 간호사가 존재하는데RN(RegisteredNurse)와LPN(LicensedPracticeNurse)다. 둘 다‘간호사(Nurse)’라는 타이틀이 있지만 교육 및 훈련과정과 실제 하는 업무 범위가 다르다. 쉽게 말하면LPN은 업무 범위가RN보다 협소하고 교육과정이RN보다 훨씬 짧아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의 양도 깊이도 상대적으로 적다. 심근경색의 원인 및 치료, 회복 과정에 대해서 잘 모르는Joy를 위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대한 쉽게 설명을 하려고 노력했고 시술이 성공적으로 끝났으니 큰 고비는 넘겼다고 위로해주었다. 하지만 회복과 재활 역시 중요하고 앞으로의 할머니 생활방식(Lifestyle)의 변화가 정말 중요함을 강조했다.

할머니께선 평생 잊지 못할 만한 고마움이라고 계속 말해줬고 이 일이 있기 전에도 충분히 잘해주셨지만 이 일이 있은 이후로는 정말 아들처럼 대해주셨다. 그렇게 할머니와의 특별한 인연이 시작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할머니의 위임 권한(PowerofAttorney,POA)을 맡게 되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APowerofAttorney(POA)isawrittenauthorizationtorepresentoractonanother’sbehalfinprivateaffairs,business,orsomeotherlegalmatter,sometimesagainstthewishesoftheother.’(POA는 어떤 한 사람의 개인적인 사정이나 사업 혹은 법적인 문제를 대신하여 대변하는 권한을 말한다.)

POA는 쉽게 말하면 의사결정자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할머니의POA가 되면 할머니에게 위급한 상황이 생기거나 의료적 의사결정이 필요할 때 할머니의 딸이 아니라 내가 의사결정자가 되는 것이다. 할머니께선 이 일을 겪은 이후 본인이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지했고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신 것 같다.POA를 부탁한 이유는 충분히 납득할 만 했다. 할머니의 위급한 상황을 잘 대처해준 행동에 대한 고마움과 신뢰 때문이었다. 처음 이 부탁을 받았을 때 많이 놀랐고Joy가 이 결정에 서운해 하지는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Joy는 흔쾌히 할머니의 결정을 받아들였고 응급한 상황에 할머니를 살렸고 충분한 지식으로Joy에게 설명을 하며 따뜻하게 위로하고 안심시킨 것에 대해 크게 감동을 받았기에 할머니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할머니께서 자신의POA가 되어달라고 말할 때 같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Iwanttodiewithdignity."
나는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본인의 질병 상태가 위중하여 삶의 질이 매우 낮은 상황이라면 고통 없이 편하게 보내달라는 것이 할머니의 뜻이었다. 부탁을 받고 참 많은 생각을 했지만할머니의 진심이 담긴 부탁과 할머니 딸의 격려로 결국 할머니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할머니의 의사결정자가 되었지만 그런 결정의 순간이 오게 되면 할머니의 딸과 충분한 상의를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할머니와 같이 할머니의 변호사를 찾아가 앞서 언급한 할머니의 사전의료지시서(Advancedirective)를 작성했고 법적인POA로 지정되었다.5년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 할머니는 다행히 건강하시다. 조언대로 운동은 꾸준하게 하고 계시지만 담배는 좀처럼 끊지를 못하고 계신다. 볼 때마다 그렇게 끊으라고 잔소리를 하는데도 몰래 피우는 것을 들키시곤 한다. 이런 모습을 본 사람들은 엄마와 아들 사이 같이 자연스럽다고 한다.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게 할머니를‘Mom(엄마)’이라고 부르는 것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처럼.

언젠가 이 영화 같은 이야기를 통해 얻은 할머니를 위한 마지막 의사결정권을 행사할 날이 오겠지? 하지만 가능하다면 그 날을 최대한 늦추고 싶다. 비바 할머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가슴 아플 이 마지막 의사결정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영어공부. 이런 영화 같은 일을 겪고 난 후 영어를 더 필사적으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어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미국에서 영어공부를 하기로 결정했을 당시에는 미국에 머무를 계획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왕 영어를 배우러 가는 김에 미국 간호사 면허 획득에도 도전해보고 싶었다. 미국 간호사 면허 시험은NCLEX-RN(NationalCouncilLicensureExamination-RegisteredNurse)으로 일명‘엔클렉스’라고부른다. 부끄럽지만 그 당시 이 시험 준비를 해보자고 한 목적은 정말 단지 한국 간호사가 이 미국 간호사 면허를 가지고 있으면왠지있어 보이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돌이켜보면 참 쓸데없는 이유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이유야 어찌됐든 그 덕분에 시간이 지나 미국을 더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 시험은 외국인으로서 치르기에는 서류를 준비하는 과정부터 시험을 치르기까지1년 이상이 소요되는 시험이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미국행을 결정하자마자 이 시험 접수부터 준비했다. 이 복잡한 절차를 혼자서 준비하는 간호사들도 많다. 하지만 어학연수를 준비하는 과정 때처럼 잘 알지도 못하는 복잡한 절차를 엉성한 영어실력으로 준비해 일을 그르치고 싶지 않았기에 이번에도 이 시험 접수를 도와주는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았다.

주위 사람들에게 항상 하는 말 중에‘전문가는 전문가인 이유가 있다.’라는 말이 있는데 한국과 미국, 서로 굉장히 다른 두 나라를 경험하며 이렇게 필요시마다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기에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혼자의 힘으로 모든 것을 다 이루지는 않았다. 강점을 찾는‘Strengthsfinder’라는 책을 보면서 강점에 대한 진단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최대의 강점은Maximizer였다. 이는 개인이나 조직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타인의 강점에 집중하고 그 강점들을 잘 이용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뜻이었다.

일상생활영어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국 간호사 면허 시험을 치른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더 필사적으로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지금까지도 미국에 와서 가장 큰 도전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을 받으면 영어(English)라고 말한다. 전략은 하나였다.‘기초부터 단단하게! 어린 아이가 영어를 배우는 것처럼 영어를 배우자.’

언어는 사용해야실력이는다.어린아이가 어른의말을 듣고 반복적으로 따라하고 흉내 내면서 언어를 습득하듯내영어공부 전략도‘흉내 내기(Mimicking)’였다. 학교에서 새로 배운 단어나 표현이 있거나 누군가와 대화하다가 모르는 단어나 표현이 나오면 되묻고 따라하고 그것을 노트로 옮겨서 하루 종일 다른 사람들에게 사용해서 입 밖으로 한 번 더 꺼내보곤 했다. 또 올바른 언어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문법과 단어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영어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 중에 문법과 단어에 대한 이해는 제쳐놓고 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혹은 실제 외국인들과 대화하면서 그들의 표현을 따라하며 기초 없이 무작정‘경험’을 통해 영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있다.

절대 잘못된 방식은 아니다. 실제 그런 방법을 통해 영어 의사소통 실력이 향상되는경우를 많이 봤다. 이 방식의 가장 큰 장점은 영어를 입 밖으로 내는 것에 대한‘두려움(Fear)’를 없앤다는 것이다. 영어실력을향상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이다. 기초나 기본이 없이 경험을 토대로 습득하는 방식의 단점은 듣거나 말하는 것이 중심인 일상생활 영어는 큰 문제없이 구사하게 할 수 있지만 기본적인 문법이나 다양한 어휘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하는 읽기나 쓰기가 중심이 되는 아카데믹한 영어를 구사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영어를 계속 사용하여 두려움을 없애되 문법과 단어를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미국을 오기 전 잠깐 한국에서 영어 학원을 다닐 때 한 영어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조언이었다. 이 조언을 토대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한 전략을 세웠다

가장 큰 장애물인 영어로 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한국인 특유의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는 또 실수를 두려워하는 특성을 버리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자연스럽게 말을 섞으려고 노력했고, 실수를 하더라도 일단 입 밖으로 영어를 최대한 많이 뱉으려고 시도했다. 그와 동시에 학교에서 배우는 기본 영문법과 어휘 공부도 충실히 복습하고 반복했다.

새로운 단어를 배우면 꼭 노트에 기입하고 할머니에게 어떤 식으로든 문장에 집어넣어 사용해보곤 했다. 눈치 빠른 할머니는 오늘은 어디서 그 단어를 배웠냐며 가끔은 자연스럽지 않은 문장을 올바르게 고쳐주곤 했다. 영어공부의 기억을 되짚어보고 책을 쓰고 있는 지금도, 어떻게 해냈을까 고개를 계속 저을 만큼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Youneedtopulloverhere."
여기에 차를 대야 해.

라고 말씀하셨다.‘도대체 뭘Pull(당기다)하라는 걸까?’ 라고 생각했다. 이해하지 못했으니 당연히 그곳을 지나쳤고 할머니께서는 당황하셨다.

"David,whydidyounotlistentome?"
데이비드, 왜 내 말을 듣지 않은 거야?
"Whatdoyoumean,pullover?"
Pullover가 무슨 뜻이에요?
"Pullingoveris…topullover."
Pullover는pullover야.

더 설명을 잇지 못하시는 할머니를 보고 영한사전을 찾아봤다.‘길가에 차를 대다.’라는 뜻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질문은 미국인에게‘차를 대는 것이 무슨 뜻이야?’라고 한 것이었다. 할머니의 대답은‘차를 대는 것은 차를 대는 것이다.’이었다. 근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Pullover’에서‘차를 대다’는 뜻을 유추해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영어를 배우는 동안 머리로 쉽게 이해되는 것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더욱 힘들었던 것 같다.

최근 스스로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고 운동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기에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이번에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자고 생각하여 개인 트레이너를 고용해서 기본적인 운동 방법과 근육을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를 통해 깨달은 것은 영어를 배우는 것이 헬스장에서 근육을 키우는 일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런 경험해본 적이 있지 않은가? 하루 운동 아주 열심히 한 후에 거울 앞에서 몸을 쳐다보며‘오늘 열심히 운동했으니까 복근이 좀 달라졌을까?’ 운동을 처음 시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경험일 수 있다. 단 하루의 노력으로 눈의 띄는 큰 변화를 확인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눈에 보이진 않지만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본인이 인지하지 못할 만큼 아주 천천히. 몸에 자극을 느껴가면서 가끔은 무게를 중량하면서 꾸준히 해야 몇 달이 지나고 그제야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다.

헬스장에 가는 것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면 당연히 기대하는 효과를 달성하기 힘들다. 며칠 운동하고 며칠 만에 훌륭한 복근이 보이는 효과를 기대하면 안 되며 그런 큰 기대가 실망을 가져다주며 결국 포기로 이어지기 쉽다. 꾸준히 운동을 하다가 오랫동안 하지 않으면 만든 근육이 손실되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운동이 즐거워야 한다.

영어의 경우에도 똑같다. 하루 공부로 큰 기대를 확인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본인이 인지하지 못할 만큼 아주 천천히 실력이 늘고 있다. 몸에 자극을 느껴가면서 운동하는 것처럼 영어 또한 정확한 문법에 맞춰 구사하고 운동도 가끔은 무게를 중량 하는 것처럼 때로는 조금은 어려운 어휘들을 익히면서 꾸준히 해야 몇 달이 지난 뒤 그제야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다. 헬스장에 가는 것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면 운동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처럼 영어를 사용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거나 두려워하며 영어를 사용하면 실력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며칠 공부하고 며칠 만에 영어실력이 일취월장하리라는 기대를 하면 안 되며 그런 큰 기대가 좌절로 좌절이 포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영어공부를 꾸준히 하다가도 오랫동안 놓고 있으면 쌓아온 실력이 줄기도 한다. 영어를 공부할 때도 가장 중요한 것은 영어를 배우고 구사하는 것 그 자체가 또 배우는 그 방법이 즐거워야 한다.

한 가지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하자면 운동도 유산소 운동, 근력 운동, 스트레칭 등 균형 있게 해야 건강에 좋은 것처럼, 영어공부 역시 읽기, 듣기, 쓰기, 말하기, 문법, 어휘를 골고루 공부하고 연습해야 실력이 균형 있게 잡힌다.

영어를 듣는 것에 자신이 없어 주야장천 듣기만 해봤자 질리기만 할뿐 실력이 늘지 않는다. 구분지어 말했지만 사실 읽기, 듣기, 쓰기, 말하기, 문법, 어휘 이 여섯 가지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렇기에 자신 없는 것 혹은 자신 있는 것 하나씩에만 매달려 있는 것보다 균형 있게 공부하는 것이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모든 문제 해결에는 그것을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인지가 첫 번째 단계라고 생각한다. 이 소중한 시간과 경험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만은 조금 달라지자고 하루에도 수백 번 다짐 했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얼굴에 두꺼운 철판을 깔고 자유롭게 영어를 구사했으며, 걱정은 접어두고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영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마치 언어를 배우는2~3살 어린 아이처럼 말을 계속 반복적으로 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흉내 내기도 했다. 걱정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가두고 있던‘타인의 시선’과‘실수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벽을 깨고 나오니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먼저 말을 거는 것은 미국에선 이상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친근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었다. 그렇게 사람들과 어울려가며 그동안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던 미국의 문화와 관습을 접하게 되고 그와 더불어 영어실력은 조금씩 향상되어갔다. 그때 깨달았던 것 같다. 새로운 언어를 익힌다는 것은 본인의 피나는 노력뿐만 아니라 그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의 문화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나누는 사람들과의 자유로운 소통 두 가지 모두 필요하다는 것을.

근육을 키우는 것도 영어를 배우는 것도 시작은 참 어렵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거울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조금 좋아진 것 같은 몸을 볼 때의 그 행복함,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영어실력이 늘어 영어가 유창해지는 것 같다는 칭찬을 들었을 때의 그 뿌듯함을 생각하면‘그 어려운 시작을 극복하기 위한 작은 용기와 노력은 충분히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라고 그 힘든 과정을 지나 행복함과 뿌듯함을 모두 경험한 사람으로서 감히 말할 수 있다.

미국 중환자 간호학회에서 만난 엄청난 인연인Kathy에게 학회에 다녀온 이후 영어로 감사 이메일을 보낼 일이 있었다. 그때 이메일에 감사의 인사와 함께 마지막 멘트로‘Iwillkeepintouchwithyou.(또 연락드리겠습니다.)’라는 문장을 쓰려고 했는데 미미한 영어실력 탓에 실제로 쓴 문장은 이러했다.

"Iwilltouchyoulater."
나는 나중에 당신을 만질 겁니다.

이 문장을 읽은Kathy가 얼마나 당황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물론 똑똑한Kathy는 문맥을 잘 파악하여 본래 의도를 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도 그 이메일을 떠올리면 밤새 이불킥을 하고 싶을 정도다.

한참 영어공부에 모든 것을 쏟던 그 당시 반갑지만 반갑지 않은 소식이 찾아왔다. 그 소식은 미국에 오기 전부터 준비했던 미국 간호사 면허 시험 응시 자격이 승인되어 시험을 등록 및 응시할 수 있다는 소식이었다. 열심히 공부한 만큼 영어실력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은 스스로도 알고 있었지만 그 당시의 영어실력으로 과연 일상 영어가 아닌 각종 의학 용어들이 난무하는 미국 간호사 면허 시험을 치를 준비가 되었는지까지는 확신이 서질 않았다. 그 사실을 듣고 걱정하기 시작한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다. 비바 할머니께서도 어려운 시험이라고 들었는데 괜찮겠냐고 반복해서 물었다.

걱정은 하면 끝이 없고 또 다른 걱정을 낳는다. 걱정의 사슬을 끊을 무언가가 필요했다. 때로는‘자신감(Confidence)’이라는 것이 그런 걱정의 사슬을 끊기도 한다.‘생각해보면 미국 간호사 면허 시험이라는 것은 이제 간호사가 되려는 학생들이 치르는 시험이잖아? 이미3년 넘게 그 힘든 중환자실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공부하다 왔는데 뭘 두려워하는 거야?’

그렇다. 이미 한국 간호사 면허를 소지한 간호사였다. 단지 영어로 되어있을 뿐 그 시험은‘간호사가 되기 위한 시험’이었다. 자신감을 조금 가졌을 뿐인데 두려움이 사라지고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물론 철저한 준비를 통해 그 자신감을 더 키우고 싶었고, 자신감이 자만심으로 변질되어 대충 준비했다가 일을 그르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공부 외에 따로 늦은 밤 까지 미국 간호사 면허 시험공부도 같이 열심히 했다.

미국에서 처음 치르는 국가시험이었다. 주경야독으로 공부했지만 많이 긴장되었다. 이 미국 간호사 면허 시험은 신기한 형식을 갖추고 있었다. 총250문제였지만 일단75문제를 푼 다음, 그75문제의 정답률에 따라75번에서 끝날 수도 혹은250번까지 풀 수도 있는 시험이었다. 그래서75번에서 끝난다는 말은 정답률이 엄청 높아서 그만 풀어도 되는 수준이거나 엄청 낮아서 더 볼 필요도 없이 불합격이라는 뜻이다.

정답률이 애매할수록 더 많은 문제를 풀어야 하는 잔인한 형식을 가진 시험이었다. 한국 간호사 국가고시가1년에 단 한 번 치를 수 있는 시험이고 페이퍼 형식이라면 미국 간호사 면허 시험은 상시 응시할 수 있고 컴퓨터로 응시하는 시험이다.1년에 단 한 번 응시했기에 많은 응시자들로 시험장소가 북적북적했던 한국 간호사 국가고시 시험장 분위기와는 달리 미국 간호사 면허 시험 장소에 응시자는3명뿐이었다.

1. 대부분 정답은 문제 속에 있다.
2. 맞는 것을 고르는 문제냐, 틀린 것을 고르는 문제냐 다시 한 번 봐라.
3. 한 문제에 집착하지 마라. 모르면 표시하고 그냥 넘어가라.

다양한 시험을 치르면서 자주 했던 실수들을 바탕으로 생각해낸 문장들인데 시간이 많이 지난 아직까지도 시험이 있을 때마다 적고 시작하는 문장들이다. 집중하며 문제를 풀었고75번이 지나고 난 뒤 창이 닫히며 시험이 종료되었다. 합격인지 불합격인지 알려주진 않았다. 종료 후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사람 마음처럼 간사한 건 없다. 너무 힘들면 그저 포기하고 싶고 왜 이렇게까지 노력해야 하는지 부정적인 생각들만 하다가‘성취감’이라는 것을 맛보면 그 땐 왜 그렇게까지 힘들어했을까 왜 포기하고 싶어 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니까 말이다. 성취감… 아직도 그 달콤한 중독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미국에 오기 전에 영어실력 향상이라는 목표 이외에 두 가지 목표들을 이루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자고 생각했었다. 그 두 가지 목표들 중 하나는 미국 간호사 면허 획득이었고, 다른 하나는 만족할만한 공인 인증 영어 시험 성적을 취득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다지 변하지 않았겠지만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강하게 느낀 것은‘성과=시험 점수나 자격증같이 입증 가능한 것’이라는 인식이 만연하다는 것이다. 어떠한 시험의 합격이나 고득점만이‘성과’라고 내세울 수 있는 것들은 아니지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이런 부분을 강조하고 있었다. 영어실력에 관한 부분도 예외는 아니었다.‘영어실력=공인 인증 영어 시험 고득점’

일 년의 어학연수를 선택하면서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제대로 된 성과를 내고 돌아오고 싶었기에 가장 어렵다는 시험을 택했다. 물론 안 될 것 같다고 단호히 말하는 친구들의 가정도 틀렸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목표도 흔히들 넘기 힘들다고 말하는 마의100점을 넘기는 것으로 정했다. 토플이라는 시험은 읽기, 듣기, 말하기, 쓰기의 네 가지 영역으로 구성된 시험으로 각 영역이30점, 최고점이120점인 시험이다.

한눈팔지 않고 공부만3개월을 더 했는데 겨우2점이 올랐다는 사실에 충격적이기도 하고 엄청 실망하고 좌절했다. 가장 큰 문제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원인이 무엇일까?’,‘계속 공부한다고 점수가 오르긴 할까?’,‘시간과 돈만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9개월이라는 시간을 영어공부에 전념했는데 목표치에 근접해보지도 못했다는 사실에 낙심하고 그것이 이내 불확실함에 대한 불안으로 바뀌었다. 살아가면서 예측 가능한 일보다 예측 가능하지 않은 일이 더 많고 그래서 삶이 또 재밌을 수 있는 것인데 그 당시는 도저히 이렇게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영어 선생님은 아니지만 가끔 토플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어떤 시험이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을 한다.‘영어’라는 언어 자체에 익숙하지 못하면 고득점하기 굉장히 힘든 시험. 누군가 알려주는‘요령’만으로는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 시험이 아니라 영어를 이해하고 영어를 제대로 구사할 줄 알아야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 시험. 또 시험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아무리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해도 훌륭한 점수를 얻기 힘든 시험. 실제 경험을 통해 깨달은 토플이라는 시험에 대한 주관적인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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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네가 제기한 그 가정은‘소수로서의 불만’보다‘더 빛날 수 있는 기회’를 선택하고 더 빛나려는 그 친구의 보이지 않는 노력까지 무시하는 가정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소수의 집단에 있으면‘나는 소수구나.’라는 생각은 하기 쉬워도‘나는 특별하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보잘 것 없는 토익 점수에 대해선 앞서 충분히 언급했고 높은 토익 점수와 실제 영어실력이 항상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낮은 토익 점수와 영어실력의 상관관계에 대해선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실수를 하면 지원받은 돈을 날려버리게 되는 꼴이니 모든 과정에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밤 근무와 간호사라는 직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러나 나이트 근무를 좋아하는 간호사는 많지 않다. 나이트 근무의 장점이라면 진단 혹은 치료를 위한 검사, 시술 그리고 수술은 대부분 낮에 이루어지기에 일의 강도는 상대적으로 낮보다는 낮은 편이다.

사실 병원에서 일하면서‘조용하다’ 혹은‘한가하다’는 금기어다. 그 말을 내뱉으면 그때부터 격하게 바빠지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YoumustneversayQwordorSwordatwork."
일하러 와서는Q로 시작하는 단어와S로 시작하는 그 단어를 입 밖에 내는 것은 절대 금해야 한다.

그렇다면 나이트 근무의 단점은 무엇인가? 첫째, 밤을 새며 일을 하는 그 자체가 고통이다. 밤에 일하고 나면 낮에 잠을 자야하는데 낮에 자는 잠은 밤에 자는 잠보다 소음이나 빛 때문에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 몸의 바이오리듬은 낮에 깨어있고 밤에 수면을 이루는 것에 최적화되어 있다. 그렇다보니 밤에 일을 하면 몸이 고장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밤 근무가 끝나고 그 다음 날이 휴일이라면 그 휴일은 나이트 오프라고 불린다. 나이트 오프를 좋아하는 간호사는 드물다. 밤새 일하고 와서 오전에는 피곤해서 자느라 시간을 다 보내게 되고, 그날 밤은 일하지 않아도 되니 잠을 자려고 해도 이미 낮에 잠을 다 잔 탓에 잠이 오지 않는 부작용이 있다. 이런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해 오전에 퇴근하고 가급적 깨어있도록 필사적으로 노력하는데 하루 종일 몸은 피곤하고 정신은 육체를 떠난 듯 멍해서 생산적인 일을 전혀 할 수가 없다.

둘째는 밤에는 환자들이 수면을 취하는 편이고 검사나 수술이 적어서 상대적으로 업무 강도가 낮은 편이지만 그 때문에 생기는 단점들도 있다. 환자는 잠을 자지만 간호사는 환자들을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서 수시로 순회를 해야 하고 그 간호사의 순회가 수면을 방해한다고 생각하는 환자들이 있다. 이런 경우는 참 곤란하다. 이에 관한 일화를 하나 들려주고 싶다. 간호사 친구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다. 그 친구는 나이트 근무를 하기 위해 밤에 출근을 했고 담당 환자들을 배정받았다. 낮에 근무한 간호사로부터 한 환자가 그 전 날 밤에 간호사가 자꾸 들락날락해서 잠을 전혀 이루지 못했다고 하루 종일 그 이야기를 간호사실에 나와서 했다는 인계를 받았다. 그 환자는5일 전 무릎 관절 수술을 받은 환자였고 내일 퇴원 예정인 환자였다.

사인은 폐색전증(Pulmonaryembolism)이었다. 이는 혈전(혈관 안에서 혈액이 부분적으로 응고된 것)이 폐의 혈관으로 이동하여 폐의 혈관을 막은 상태를 말하며 외상이나 수술 이후 혹은 장기간 침상안정을 취하는 환자들에게 흔하게 발생한다. 이는 수술 이후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갑자기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게 되며 응급한 치료 없이는 빠르게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밤에도 새벽에도 환자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환자분들의 노발대발에 굴하지 않고 죄송하다는 사과를 연발하며병실문을 연다. 닌자처럼 발자국 소리도 나지 않게 걸으며 조심스레 작은 손전등에 의지하여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최대한 환자의 수면을 방해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이 간호사다.

그 친구가 첫 순회를 시작하기 위해 오후9시 정도에 그 환자의 방에 들어가자마자 아니나 다를까 처음 하는 말은 이러했다.

"어제 그제 한숨도 못자서 오늘밤엔 꼭 자야 되니까 이 시간 이후로 아침까지 절대 내 방에 들어오지 마. 소음안내고 들어오겠단 말도 하지 마. 그냥 들어오지 마. 이렇게 말했는데도 들어오면 네 상사 불러서 엄청 따질 테니까 그렇게 알아!"

화가 단단히 난 채 이렇게까지 말하는 환자를 보며 그 친구는 겁을 먹었다. 수술 이후 상태가 많이 좋아져 내일 퇴원 예정이었기에 그 간호사는 환자에게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꼭 간호사를 찾으라는 당부와 함께 방을 나왔다. 그리고 오전5시가 되어‘오전5시 정도면 그래도 혼나지 않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환자의 방에 들어갔고 몇 초 뒤에 그 친구는 정말 다급하게 뛰어나와 다른 간호사들에게 절박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환자가 숨을 쉬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병원 전체에 이 응급상황을 알리고 많은 의료진들이 도착하여 심폐소생술을 하고 최선을 다해 살려보려고 애썼지만 환자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셋째, 불행하게도 수면을 방해받고 싶지 않은 사람은 환자만이 아니다. 나이트 근무를 하다 보면 의사와의 의사소통을 전화통화에 의지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의사는 낮에 진료를 보거나 수술하는 경우가 많기에 밤에 수면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일부 상급종합병원 의사들이 중환자실 내24시간 상주하는 곳도 있으나 일반 병실까지24시간 의사가 상주하는 곳은 거의 없다. 이렇다보니 밤에 간호사가 의사에게 알려야하는 부분이 생기면 전화를 해야 하는데 밤에 일하고 있는 간호사와 자다가 깬 의사 사이의 의사소통이다 보니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도 참 많다.

간호사로서 환자를 위한 일이니 당연히 망설임 없이 전화를 걸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자는 사람을 깨워야 하는 상황이니 약간의 망설임을 경험하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응급상황이라면 망설임 따위 없다. 하지만 당장 급한 일은 아닌데 그렇다고 오전까지 기다리기에는 좀 애매한 문제를 갖게 될 때 그 망설임은 극대화된다. 이렇게 주저하는 이유는 물론 사람마다 다르지만 자는 사람을 자주 전화로 깨우면 평소 엄청 젠틀한 사람도 말에 짜증이 섞이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간호사로 일하면서 의사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을 하는지 옆에서 지켜보고 잘 알고 있기에 그 수면을 방해하기 싫어 망설여지기도 했다. 하루 종일 서서 수술실에서 수술을 보조하고 밤에는 온콜로 병동 혹은 중환자실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입원 환자를 돌봐야 하는 상황은 굳이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힘든 일임을 알 수 있었다.

이렇다보니 누구하나 나이트 근무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다. 밤을 새고 퇴근을 할 때면 그 하루 만에 몸이 부쩍 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은 근로기준법 상 임산부는 밤에 일하는 것이 금지되어있다. 하지만 미국은 임산부들도 나이트 근무를 한다.

신기하게도 미국에선 나이트만 하는 임산부들이 많음에도 유산을 하는 경우를 아직 한 번도 보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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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입장(예를 들면 모든 지식은 감각에서 나온다는 입장)을 편안하게 받아들이자마자 다른 무언가가 우리의 확신을 뒤엎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처럼 편안함과 확신에서 끝없이 멀어지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나를 끌어당기는 것은 그의 생각이라기보다는 그가 생각에 도달하는 방식(망설이며, 빙 돌아서)이다

나처럼 몽테뉴도 몸과 마음이 늘 부산하다. 나처럼 여행을 좋아하지만 집에 돌아오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나처럼 강박적으로 밑줄을 긋고 주석을 단다. 나처럼 손 글씨가 형편없고 자기가 뭘 썼는지 잘 알아보지 못한다. 나처럼 돈 계산에 약하고 세상사에 남달리 무능하다("계약서를 꼼꼼히 읽는 것만 아니라면 그 무슨 일이라도 할 것이다"). 나처럼 요리를 못한다("내게 온갖 조리 도구를 준다 해도 나는 아마 그냥 굶는 편을 택할 것이다"). 나처럼 세상과 교류하긴 하지만 강렬하고 저항 불가능한 필요 때문에 주기적으로 세상에서 도망쳐야 한다. 나처럼 감정 기복이 심하다. 나처럼 스스로에 대해 글 쓰는 것을 불편해하면서도 어쨌거나 쓰긴 쓴다. 나처럼 몽테뉴도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나와 달리 자기 두려움에 정면으로 맞선다.

"이 세상 모든 지혜와 이론의 핵심은 결국 바로 이것이다. 우리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

우리는 매일 아침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대해 걱정하며 잠에서 깨지 않는다. 그렇다면 죽음에 대해서는 왜 걱정하는가? 태어나기 전에 우리는 존재하지 않았고, 죽으면 다시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가 존재할 때 죽음은 현재가 아니며, 죽음이 현재일 때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몽테뉴에게 가장 쓰라린 죽음은 친한 친구였던 에티엔 드 라보에티의 죽음이었다. 라보에티가 전염병으로 서른두 살에 사망했을 때 몽테뉴는 "나 자신이 반으로 쪼개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나는 몽테뉴가 나처럼 필요할 때는 그럴듯한 외향형처럼 굴 수 있는 내향형이었으리라 추측한다. 우리 같은 사교적 내향형들은 세상을 속일 수 있지만 거기에는 대가가 따른다. 꾸며낸 외향성은 우리를 소모시킨다. 진을 빼놓는다.

몽테뉴는 이 탑의 모든 면을 사랑했다. 탑에서 가족의 포도밭이 내려다보이는 것을 사랑했다. 탑의 고요함을 사랑했다. 눈 돌리는 곳마다 시선 끝에 책이 보이는 것을 사랑했다.

우리는 자기 자신과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서 스스로를 바라보지 못한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에게 푹 파묻혀 있으며 우리의 시야는 코의 길이밖에 안 된다." 몽테뉴가 말했다. 그러니 코를 움직일 것. 여기저기 다른 곳에 코를 들이밀 것. 외적 거리는 내적 가까움을 가능케 한다.

오래된 격언들 사이에 몽테뉴가 직접 적은 글귀가 보인다.크세주Que sais-je.3 ‘나는 무엇을 아는가?’ 이 짧은 문장은 몽테뉴의 철학과 그가 살아온 방식을 깔끔하게 압축해 보여준다.

몽테뉴는 확신하기 위해 의심했다. 한 번에 하나씩 의심하며 자기만의 확신의 탑을 쌓았다.

몽테뉴도 여러 각도에서 세상을 보았다. 한 생각을 집어 들고 다양한 관점에서 들여다보았다. 모든 것을, 심지어 자기 고양이도 그렇게 바라보았다. 내가 고양이와 놀아주고 있는 걸까, 아니면 고양이가 나와 놀아주고 있는 걸까? 몽테뉴는 궁금했다. 너무나도 몽테뉴다운 생각이다. 모두가 아는 것(모두가 안다고생각하는 것)을 시험해볼 것. 가지고 놀 것. 몽테뉴는 말한다. 죽음이 무엇인지 안다고 생각하겠지만, 정말로 그러한가? 그 생각을 가지고 놀아보라.

몽테뉴는 자기 철학이 아닌 자기 자신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리스인들은 "너 자신을 알라"고 간청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몽테뉴는 알려준다. 우리는 시도하고 실수하고 시시포스처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함으로써 스스로를 알 수 있다.

몽테뉴에게는 자신의 우연한 철학을 담을 문학 형식이 필요했다. 그런 문학 형식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몽테뉴는 직접 하나를 만들었다. 바로 에세이다. 프랑스어로에세이assay는 ‘해보다’라는 뜻이다.에세이는

몽테뉴는 삶을 잘 살아내지 않고서 잘 죽을 수 없었고,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지 않고서 삶을 잘 살아낼 수 없었다.

몽테뉴는 "나는 나에게 나 자신을 보여주었다"라고 말하며 이를 "터무니없고 말도 안 되는 계획"이라 칭한다.

몽테뉴는 자신이 빠르고 단호하게 걷고, 키가 작고 다부지다고 말한다. 몽테뉴는 밤색 머리칼과 "통통하진 않지만 동그란" 얼굴을 가졌다. 하얗고 곧은 자신의 치아를 자랑스러워한다. 시를 사랑하고, 여름의 열기를 싫어한다. 자신의 땀 냄새를 참지 못한다. 저녁을 먹은 뒤에 머리카락을 자른 적이 한 번도 없다. 늦잠 자는 것을 좋아한다. 똥 싸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똥 쌀 때 방해받는 것을 싫어한다. 운동 신경이 둔한데, 승마만은 무척 능숙하다. 잡담을 싫어한다. 체스와 체커 게임을 좋아하지만 둘 다 잘 못한다. 꿈속에서 또 꿈을 꾼다. 기억력이 나쁘다. 빠른 속도로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어서 가끔 자기 혀를 깨물고 어떤 때는 손가락을 깨물기도 한다. 고대 그리스인처럼 와인에 물을 타서 먹는다.

몽테뉴도 그러기까진 시간이 좀 걸렸다. 몽테뉴는 초기 에세이에서 "약간 다른 사람의 물건 냄새가 났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어갈수록 그는 점점 자신감 넘치고 대담해진다. 어느새 나도 그를 응원하고 있다. 딴소리가 구구절절 이어질 때 딴 데 정신을 팔았다며 그가 나를 비난할 때조차 나는 응원을 멈추지 않는다("내 글의 주제를 놓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부주의한 독자다"). 몽테뉴가 자기만의 목소리를 찾았을 때 나는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빌리고 구걸하라고 배웠더라도 우리 모두는 "우리 생각보다 더 풍요롭다." 몽테뉴가 말한다.

죽음은 삶의 끝이지만 삶의 목표는 아니다.

몽테뉴는 "그때는 내 삶이 내 입술 끝에 매달려 있는 것만 같았다"고 회상한다. 이상하게도 그는 고통도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다. 그는 눈을 감고 마치 부드럽게 잠으로 미끄러지듯이 기꺼이 자신을 놓아주었다. 몽테뉴는 만약 이것이 죽음이라면 그리 나쁘지 않다고, 아니 전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5

"어떻게 죽어야 할지 모른다 해도 걱정하지 마라. 때가 되면 자연이 전부 다 제대로 알려줄 것이다. 자연이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해놓을 것이다. 괜히 걱정하지 마라."

죽음의 해결책은 더 긴 삶이 아니다. 절망의 해결책이 희망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죽음과 절망 모두 같은 약을 필요로 한다. 수용이다. 보부아르처럼 몽테뉴도 결국 받아들였다. 마지못한 수용이 아니라 완전하고 관대한 수용이었다. 죽음에 대한 수용이기도 했지만 삶에 대한 수용이자 자기 자신에 대한 수용이기도 했다. 자신의 긍정적 성격에 대한 수용이자("자신을 실제보다 낮추어 말하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어리석은 짓이다") 자신의 결점에 대한 수용이었다. 예를 들면 게으름이 그랬다. 몽테뉴는 종종 시간을 낭비하는 자신을 질책했다. 하지만 결국 그런 질책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지를 깨달았다. "우리는 정말 바보다. 우리는 ‘그 사람은 평생을 허송세월했어’라거나, ‘난 오늘 한 게 없어’라고 말한다. 아니, 그동안 살아 있지 않았단 말인가?"

"고통스러운 삶에서 죽음으로의 변화는 그리 잔인하지 않다." 몽테뉴는 말한다.

그는 14세기에 마신 약 덕분에 영원히 죽지 않는다. 처음에 그는 불멸을 크나큰 축복으로 여기고 좋은 곳에 쓰려고 노력한다. 자신이 돌보는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점차 그는 불멸을 저주로 여기게 된다. 그가 사랑한 모든 사람이 죽는다. 지루하다(심지어 꿈조차도 지루하다). 관용도 사라지는데, 불멸의 존재는 희생할 게 없기 때문이다. 그의 삶에는 긴급함과 활력이 빠져 있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사실은 불멸이 죽음보다 훨씬 더 나쁘다.

몽테뉴는 1592년 9월 13일 자기 저택에서 쉰아홉 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늙은 나이가 아니었다. 사망 원인은 편도선이 감염되어 목에 고통스러운 농양이 생기는 편도선염이었다. 마지막 며칠간 몽테뉴는 말을 하지 못했다. 대화를 "인생에서 가장 달콤한 활동"으로 여긴 사람에게는 특히나 가혹한 고통이었다.

빌려온 진실은 빌려온 속옷만큼이나 잘 맞지 않으며 그만큼 기분 나쁜 것이다.

몽테뉴 철학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자신을 믿을 것. 자신의 경험을 믿을 것. 자신의 의심도 믿을 것. 경험과 의심의 도움을 받아 인생을 헤쳐 나가고 죽음의 문턱을 향해 다가갈 것. 타인과 스스로에게 놀라워하는 능력을 기를 것. 스스로를 간질일 것. 가능성의 가능성에 마음을 활짝 열 것. 그리고 몽테뉴는 동포인 시몬 베유와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한다. 제발, 주의 좀 기울여.

하지만 내가 이번 여행에서 배운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인식은 선택이라는 것이다. 세계는 내가 만들어낸 생각이다. 그 생각을 좋은 생각으로 만들면 되지 않나?

인생의 사소한 좌절을 침착하게 처리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쯤이면 아마 추측 가능할 텐데,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나는 깨진 액정이 무언가를 나타내는 조짐이며, 좋은 조짐은 아니리라 결론 내린다. 그리고 계산한다. 액정이 아래쪽을 향해 떨어질 확률은 겨우 50퍼센트인데, 그 50퍼센트의 확률이 내게 일어났다. 사건 종료. 온 우주가 나를 괴롭히고 있다. 깨진 액정은 마치 기관차처럼 우울과 불안을 줄줄이 끌고 온다. 박살 난 휴대전화는 박살 난 인생을 상징한다. 나를 포함해 자기 앞에 있는 모든 것을 게걸스레 집어삼키는 쇼펜하우어의 의지가 작동하고 있다. 소로가 말한 "무한한 세상에서의 나의 몫"은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소로가 "쉽게 사라지는 순간"이라고 부른 이런 흩어진 시간의 조각들을 한데 모아 깨진 액정 위에 시선을 고정한다. 정확히 말하면 액정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지는 않다. 나는 액정을 다르게 바라보고 있다. 처음에는 이 각도로, 그다음엔 다른 각도로. 나는 고장 난 휴대전화를 들여다본다기보다는 휴대전화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보는 것은 곧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보통은 따분한 대화지만, 이따금 이런 대화가 시적인 특징을 띨 때도 있다. 눈의 언어에 유창한 소로 같은 사람에게 삶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한 편의 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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