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네가 제기한 그 가정은‘소수로서의 불만’보다‘더 빛날 수 있는 기회’를 선택하고 더 빛나려는 그 친구의 보이지 않는 노력까지 무시하는 가정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소수의 집단에 있으면‘나는 소수구나.’라는 생각은 하기 쉬워도‘나는 특별하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보잘 것 없는 토익 점수에 대해선 앞서 충분히 언급했고 높은 토익 점수와 실제 영어실력이 항상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낮은 토익 점수와 영어실력의 상관관계에 대해선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실수를 하면 지원받은 돈을 날려버리게 되는 꼴이니 모든 과정에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밤 근무와 간호사라는 직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러나 나이트 근무를 좋아하는 간호사는 많지 않다. 나이트 근무의 장점이라면 진단 혹은 치료를 위한 검사, 시술 그리고 수술은 대부분 낮에 이루어지기에 일의 강도는 상대적으로 낮보다는 낮은 편이다.

사실 병원에서 일하면서‘조용하다’ 혹은‘한가하다’는 금기어다. 그 말을 내뱉으면 그때부터 격하게 바빠지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YoumustneversayQwordorSwordatwork."
일하러 와서는Q로 시작하는 단어와S로 시작하는 그 단어를 입 밖에 내는 것은 절대 금해야 한다.

그렇다면 나이트 근무의 단점은 무엇인가? 첫째, 밤을 새며 일을 하는 그 자체가 고통이다. 밤에 일하고 나면 낮에 잠을 자야하는데 낮에 자는 잠은 밤에 자는 잠보다 소음이나 빛 때문에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 몸의 바이오리듬은 낮에 깨어있고 밤에 수면을 이루는 것에 최적화되어 있다. 그렇다보니 밤에 일을 하면 몸이 고장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밤 근무가 끝나고 그 다음 날이 휴일이라면 그 휴일은 나이트 오프라고 불린다. 나이트 오프를 좋아하는 간호사는 드물다. 밤새 일하고 와서 오전에는 피곤해서 자느라 시간을 다 보내게 되고, 그날 밤은 일하지 않아도 되니 잠을 자려고 해도 이미 낮에 잠을 다 잔 탓에 잠이 오지 않는 부작용이 있다. 이런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해 오전에 퇴근하고 가급적 깨어있도록 필사적으로 노력하는데 하루 종일 몸은 피곤하고 정신은 육체를 떠난 듯 멍해서 생산적인 일을 전혀 할 수가 없다.

둘째는 밤에는 환자들이 수면을 취하는 편이고 검사나 수술이 적어서 상대적으로 업무 강도가 낮은 편이지만 그 때문에 생기는 단점들도 있다. 환자는 잠을 자지만 간호사는 환자들을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서 수시로 순회를 해야 하고 그 간호사의 순회가 수면을 방해한다고 생각하는 환자들이 있다. 이런 경우는 참 곤란하다. 이에 관한 일화를 하나 들려주고 싶다. 간호사 친구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다. 그 친구는 나이트 근무를 하기 위해 밤에 출근을 했고 담당 환자들을 배정받았다. 낮에 근무한 간호사로부터 한 환자가 그 전 날 밤에 간호사가 자꾸 들락날락해서 잠을 전혀 이루지 못했다고 하루 종일 그 이야기를 간호사실에 나와서 했다는 인계를 받았다. 그 환자는5일 전 무릎 관절 수술을 받은 환자였고 내일 퇴원 예정인 환자였다.

사인은 폐색전증(Pulmonaryembolism)이었다. 이는 혈전(혈관 안에서 혈액이 부분적으로 응고된 것)이 폐의 혈관으로 이동하여 폐의 혈관을 막은 상태를 말하며 외상이나 수술 이후 혹은 장기간 침상안정을 취하는 환자들에게 흔하게 발생한다. 이는 수술 이후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갑자기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게 되며 응급한 치료 없이는 빠르게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밤에도 새벽에도 환자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환자분들의 노발대발에 굴하지 않고 죄송하다는 사과를 연발하며병실문을 연다. 닌자처럼 발자국 소리도 나지 않게 걸으며 조심스레 작은 손전등에 의지하여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최대한 환자의 수면을 방해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이 간호사다.

그 친구가 첫 순회를 시작하기 위해 오후9시 정도에 그 환자의 방에 들어가자마자 아니나 다를까 처음 하는 말은 이러했다.

"어제 그제 한숨도 못자서 오늘밤엔 꼭 자야 되니까 이 시간 이후로 아침까지 절대 내 방에 들어오지 마. 소음안내고 들어오겠단 말도 하지 마. 그냥 들어오지 마. 이렇게 말했는데도 들어오면 네 상사 불러서 엄청 따질 테니까 그렇게 알아!"

화가 단단히 난 채 이렇게까지 말하는 환자를 보며 그 친구는 겁을 먹었다. 수술 이후 상태가 많이 좋아져 내일 퇴원 예정이었기에 그 간호사는 환자에게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꼭 간호사를 찾으라는 당부와 함께 방을 나왔다. 그리고 오전5시가 되어‘오전5시 정도면 그래도 혼나지 않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환자의 방에 들어갔고 몇 초 뒤에 그 친구는 정말 다급하게 뛰어나와 다른 간호사들에게 절박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환자가 숨을 쉬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병원 전체에 이 응급상황을 알리고 많은 의료진들이 도착하여 심폐소생술을 하고 최선을 다해 살려보려고 애썼지만 환자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셋째, 불행하게도 수면을 방해받고 싶지 않은 사람은 환자만이 아니다. 나이트 근무를 하다 보면 의사와의 의사소통을 전화통화에 의지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의사는 낮에 진료를 보거나 수술하는 경우가 많기에 밤에 수면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일부 상급종합병원 의사들이 중환자실 내24시간 상주하는 곳도 있으나 일반 병실까지24시간 의사가 상주하는 곳은 거의 없다. 이렇다보니 밤에 간호사가 의사에게 알려야하는 부분이 생기면 전화를 해야 하는데 밤에 일하고 있는 간호사와 자다가 깬 의사 사이의 의사소통이다 보니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도 참 많다.

간호사로서 환자를 위한 일이니 당연히 망설임 없이 전화를 걸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자는 사람을 깨워야 하는 상황이니 약간의 망설임을 경험하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응급상황이라면 망설임 따위 없다. 하지만 당장 급한 일은 아닌데 그렇다고 오전까지 기다리기에는 좀 애매한 문제를 갖게 될 때 그 망설임은 극대화된다. 이렇게 주저하는 이유는 물론 사람마다 다르지만 자는 사람을 자주 전화로 깨우면 평소 엄청 젠틀한 사람도 말에 짜증이 섞이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간호사로 일하면서 의사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을 하는지 옆에서 지켜보고 잘 알고 있기에 그 수면을 방해하기 싫어 망설여지기도 했다. 하루 종일 서서 수술실에서 수술을 보조하고 밤에는 온콜로 병동 혹은 중환자실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입원 환자를 돌봐야 하는 상황은 굳이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힘든 일임을 알 수 있었다.

이렇다보니 누구하나 나이트 근무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다. 밤을 새고 퇴근을 할 때면 그 하루 만에 몸이 부쩍 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은 근로기준법 상 임산부는 밤에 일하는 것이 금지되어있다. 하지만 미국은 임산부들도 나이트 근무를 한다.

신기하게도 미국에선 나이트만 하는 임산부들이 많음에도 유산을 하는 경우를 아직 한 번도 보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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