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리오 트럭의 운전대는 높이도 경사도 로즈가 잡기에는 애매했다. 남들에게 ? 버뱅크 부인으로서 ? 어떤 모습을 보일지, 즉 몸을 펴고 꼿꼿이 앉아 운전대 위로 앞을 볼지, 아니면 몸을 숙이고 운전대 사이로 앞을 볼지 결정하기가 힘들었다.
위층으로 올라간 로즈는 아무도 안 사는 듯 깔끔한 아들의 방에 들어서며 형용하기 힘든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그 두려움의 근원 또한 짐작이 가지 않았다. 사람이 안 사는 것 같은 이 방의 분위기는 뭘까? 남자애 방이라면 마땅히 어질러져 있어야 하는데! 혹시 아이 아버지의 책들 때문일까? 그 책들은 조니를 떠올리게 하는 고통스러운 단서이자, 조니가 실패자였다는 판결문이었다.
로즈는 피터의 깔끔한 성격이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이제는 그 성격이 아들을 위험에 빠뜨릴 것처럼 보였다. 아들이 살짝 혀 짧은 소리를 내는 것을 리즈는 가슴이 아플 만큼 잘 알았다. 그 발음과 깔끔한 성격을 필은 대번에 조롱할 것이 뻔했고, 그러면 너무나 기분이 상한 아들이 헌든의 이 살풍경한 방으로 돌아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터가 이 방에서 행복하게만 지낸다면, 그날이 올 때까지 그럴 수만 있다면……. 그런데 그날이란 뭘까? 미래를 내다볼 능력이 없는 로즈는 법원 앞 계단에 모여 있던 남자들이 자신을 돌아보았을 때와 똑같은 뒷맛을 느꼈다.
그 책장은 조지가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를 읽기 시작한 후로는 열린 적이 없었다. 필은 그 책장이 조지의 인생을 보여 주는 작은 우주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동생의 삶은 대체로 그가 읽은 것으로 이루어졌다. 자기 의견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시피 한 삶이었다.
남들은 보고도 놓치는 것을 잡아내는 그의 놀라운 능력을, 그의 가공할 인내심을.
한 해가 지나자 조지는 오두막에 흥미를 잃었고(뭐든 싫증을 잘 내는 편이었으므로) 필만 그곳을 찾아 헤엄을 치면서 이따금 물에 비친 자신의 벗은 몸에 묘한 감동을 느끼곤 했다.
실은 그 공터 자체가 신성한 수풀이 되었고, 헤엄을 치던 물구덩이는 목욕재계를 하는 장소가 되었다. 오로지 그곳에서만 필은 옷을 다 벗고 몸을 씻었다. 그곳은 소중한 장소였기에 결코 다른 인간이 발을 들여 더럽히게 해서는 안 되었다. 다행히도 그곳의 통행로는 버드나무 수풀 속으로 난 외길뿐이었는데, 수풀이 하도 무성해서 허리를 숙이고 기어가야 했다. 세상천지에서 오로지 이곳만이 필의 자리였다. 그 까닭을 굳이 물을 필요가 있을까? 다 큰 어른이 된 지금도 그는 이곳을 떠날 때면 어김없이 천진해지고 순수해진 기분에 젖었다. 그곳에서 스스로와 짧은 성찬식을 마치고 나면 그의 발걸음은 더 가벼워졌고, 휘파람 소리는 아이가 부는 것처럼 신이 났다.
그해 여름 개울가에서 알몸이 되어 물에 들어가 목욕할 준비를 하던 필이, 까치도 아니고 산토끼도 아닌 어떤 것이 바스락대는 소리를 듣고 돌아섰는데 눈앞에 ‘낸시 아가씨’가 서 있었을 때 느꼈을 격분을. 그 소년은 사슴처럼 우아하게 서서, 눈 또한 사슴처럼 커다랗게 뜨고 있다가, 필이 자신을 향해 돌아서자 사슴처럼 날렵하게 달아나 무성한 수풀 속으로 뛰어들었다. 필은 냉큼 허리를 굽히고 셔츠를 집어서 벌거벗은 몸을 가렸다. 그렇게 우두커니 서서 가만히 바라보았다. 소년이 서 있던 자리를, 이 성스러운 공간에 뚫린 너덜너덜한 구멍을, 그 추한 공백을. 필이 받은 충격은 분노로 변했고, 그의 목소리는 개울물 소리를 뚫고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꺼져." 그가 외쳤다. "여기서 당장 꺼져, 이 개 같은 새끼야."
인디언이 백인만큼 술이 세지 않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었다.
에드워드는 아이에게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성장의 양식이자 꿈의 실마리였으므로.
에드워드는 어린 아들에게 진실을 가르쳐 주었다. 그가 아버지에게서 들은 진실, 천둥은 하늘에 사는 들소의 말발굽 소리이고 번개는 그 들소의 눈에 번득이는 빛이라는 진실을.
세상에는 그렇게 알지 못하는 채로 기억하는 것들도 있었다.
"그래도 봐, 이야기를 들려주니까 애가 이렇게 잘 자잖아." 에드워드 나포가 지적했다.
"엄마 걱정은 안 해도 돼. 바빠서 정신이 없을 거야. 소도 돌봐야 하고." 아이는 터덜터덜 걸으면서도 눈은 앞쪽을 똑바로 향했다. "엄마 생각 안 했어요. 산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에드워드도 같은 것을 생각했다. 그가 오랜 시간에 걸쳐 아이에게 설명해 주었던 산을, 산자락을 기어오르듯 자란 짙은 숲과 여름에도 눈으로 덮인 수목 한계선을
에드워드는 아들이 마멋을 명중시켜 쓰러뜨렸을 때 가슴이 뿌듯했고, 그 마멋과 양파를 넣어 끓인 스튜를 먹을 때에는 배도 뿌듯했다.
뭘 판다는 생각을 하면 뜨거운 손에 뺨을 맞은 것처럼 얼굴에 피가 쏠렸다. 그는 물건을 팔아 이득을 취하는 것은 여자의 일, 긍지라는 것이 없다시피 하고 그것이 필요하지도 않은 이들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상자에 든 장갑은 어찌 보면 보험이었고, 그 덕분에 그는 남들이 탄 자동차가 쏜살같이 옆으로 달려갈 때에도 주눅 들지 않고 허리를 편 채 꼿꼿이 앉았다.
그 생생한 아름다움을 아들이 먼저 발견하다니, 이 얼마나 온당한가. 무언가 보는 것은 젊은이의 일이고 늙은이는 떠드는 일을 도맡는다는 것을, 에드워드는 일찌감치 깨달았다.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의 장모는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착한 노인이었다.
훈제 연어는 인디언이 좋아하는 것 가운데 드물게 백인도 좋아하는 것
조그맣게 괴발개발 쓴 글씨가 어린애 아니면 천치의 필적으로 보였는데 어느 쪽인지는 분간하기 힘들었다.
사랑아는 엄마 람포불을 켜노코 이그를 적꼬 있어요. 엄마, 카우보이로 사는 거는 점말 머쪄요.
그 애송이는 언변이 좋은 편이었다. "밤새 말을 타고 일했거든요." 그런 치들은 변명이 바닥나는 법이 없었다. 변치 않는 진리가 있다면 단 하나, 누구나 어떤 식으로든 변명거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에드워드는 자신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남의 뜻에 따라 보호 구역으로 이주하여 곰팡이 핀 빵을 사 먹고 총도 지니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면, 그렇다면 자기 힘으로는 그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이제 그의 소원은 단 하나, 이 땅에서 그들의 이름이 존경을 받는다는 믿음, 닫힌 문을 여는 마법의 이름이라는 믿음을 아들이 간직하는 것이었다. 아니면 아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지 말라던 제니의 경고가 옳았을까?
에드워드는 꼿꼿이 앉아 있는 아들을 돌아보았다. 모자가 흘러내려 눈만이 아니라 긍지까지 가릴까 봐 턱을 쏙 내밀고 앉아 있는 아들을. "아들하고 같이 야영을 며칠 할까 해서요. 저 애가 제 아들입니다, 저기 있는."
에드워드는 얼굴이 웃는 표정으로 너무 단단하게 굳어 버려서 다른 표정을 지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 아버지와 아들은 산속으로 들어가 평생 거기서 살아야 했다. 둘이서, 둘이 함께 쫓기는 신세가 되어. 그러나 자유롭게, 전에 없이 자유롭게!
"그래도 산은 봤잖니. 내 아버지의 산을, 우리 둘이서 봤으니까." 아이의 모자가 흘러내려 이마를 가렸다.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단다. 너도 봤겠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어머니가 그런 이야기를 할 때면 나한테도 바닷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고. 나도 그게 소원이었는데. 가끔은." "소원이 있었군요." "어, 나도 그 풍경을 다 보고 싶었어." "당신한테 이런 이야기를 듣는 건 처음이에요." "그럼, 전에는 해 본 적이 없지. 로즈, 전에는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 피터의 상상 속에서 조지가 빙그레 웃었다.
내 생각에 새아버지는 친아버지보다 좀 더 애써야 할 거 같아. 애쓰지도 않는 새아버지를 좋아할 애는 없을 테니까. 내가 그 애였으면 어떤 심정일지, 나도 알아.
어쩌면 증오의 유대인지도 몰랐지만, 피터가 아는 한 유대는 그 성질이 어떻든 쓸모가 있었다.
피터가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진실과 맞닥뜨렸을 때 그렇게 움찔했다.
"그 사람은 거실에 들어설 때 인사도 안 하잖아요. 찬바람을 몰고 들어와서는."
피터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얼마나 또렷이 들렸는지 말하려다가, 그 생각을 머릿속 한구석에 치워 두었다. 그의 세계에는 비밀이 필요했기에, 그는 비밀들을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
"그게, 어딘가 차가운 구석이 있어요. 나는요, 저 애를 사랑하지만어떻게 사랑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나는 사랑이 저 애한테 뭔가 도움이 되면 좋겠는데, 저 애한테는 아무것도필요 없는 것 같아요. 저 애 아빠한테 그런 차가운 구석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더 성공했을 텐데."
내가 지금 설명하는 게 냉정함은 아닌 것 같아요. 무심함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 아일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존을 원망하는 것도 아니고요. 좋은 사람이었으니까요."
"아무튼, 내가 보기엔 산에서 야영을 하려고 했던 것 같아. 근데 인디언은 보호 구역을 떠나서 돌아다니면 안 되는데." "왜 안 돼요?" "돌아와서…… 음, 시끄럽게 구니까. 몇 명이 고향으로 돌아와서 시끄럽게 굴기 시작하면, 다들 자기네 옛 땅으로 돌아올 거 아니야. 와서 시끄럽게 굴겠지."
에드워드 나포는 그 여성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자그맣고 예쁘장한 여인, 소를 키우거나 요리를 하거나 장갑을 만드는 식으로 남자에게 보탬이 될 것 같지는 않은 여인이었다. 뭐랄까, 얼굴로 봐서는 여러 번의 겨울을 넘기기 힘들지 싶은 여인이었다. 조금이라도 혹독한 겨울이 이어진다면.
그리하여 에드워드가 늙은 말을 돌려세우는 동안 그의 어린 아들은 한껏 뿌듯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보며, 모자를 고쳐 썼다.
필은 마지막 문을 열다가 손등을 조금 긁혔다. 피가 희미하게 비치는 정도의 상처였지만, 이는 사소한 짜증거리가 또 생길 거라는 경고였다. 필은 그런 사소한 짜증거리가 하나로 끝나지 않는 것을 살면서 익히 목격했다. 그리고 그 경고는 옳았다. 그는 머리 위로 구부정하니 늘어진 버들가지를 피하려고 안장 머리 위로 몸을 숙이고 갔지만, 가지 하나가 교묘하게 콧등을 가로로 때렸다. 그는 그 가지를 손으로 쥐고 꺾어 버렸다.
늙은 인디언은 필 쪽으로 등을 돌리고 앉은 채 냉큼 돌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필의 말이 다가오는 소리를 틀림없이 들었을 텐데도. 어쩌면 그 늙은이는 피치 못할 사태를 마지막까지 미뤄 두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세상에는 그런 인간들도 있었으므로.
쌍안경을 감춰 놓는 것은 누군가 도둑질을 할 거라고 의심한다는 뜻이었는데 이는 조지가 이해할 수 없는 성질의 범죄였고, 조지는 그런 의심 때문에 괴로워하느니 차라리 쌍안경을 새로 사는 편이 더 마음이 편했다.
필은 화가 뻗칠 때면 누구 앞이든 가리지 않고 속에 있는 말을 다 쏟아냈다. 일꾼, 요리사, 가족, 손님, 친구까지. 조지는 어찌 보면 그의 방식이 옳다고 생각했다. 이것저것 속에 쌓아 두지 않고 터놓고 말하는 것이 옳다고. 그러나 입조심을 할 줄 모르는 성격을 필은 엄청난 이점으로 활용했다. 남들이 그의 입에서 폭죽처럼 터져 나올 끔찍한 진실을 두려워해서 그를 거스르기 전에 거듭 숙고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는 노인장과 노마님조차도.
루이스 부인은 자신이 ‘하늘의 영원한 집’이라 부르는 곳에서 남편과 재회하기를 꿈꾸었으나 홑몸으로 그날을 기다리는 사이에 어느새 독설과 비관과 섬뜩한 격언의 보따리로 변하고 말았다. "맛 좋은 과일도 먹고 나면 금세 잊어버리지요." 루이스 부인은 뜬금없이 그런 말을 했다.
"우리가 앞날을 내다볼 수만 있다면, 아무리 깊은 강도 그렇게 깊지는 않겠지요."
운전에 서툰 트랙터 기사가 그만 트랙터 삽날로 그 관을 깨뜨렸을 때, 관 속에 누운 시신의 머리카락은 죽은 후에도 계속 자라서 기다래진 상태였다.
"내가 보기엔 너희 아버지 생각이 옳아. 한번 그런 습관이 들면 나중에는 사는 게 끝도 없이 피곤해질 테니까. 습관이란 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만들어지잖아."
롤라는 매주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고, 로즈는 그 애 아버지가 한 번도 답장을 보내지 않아 걱정하다가 결국 이렇게 물었다. "아버지한테서 답장은 자주 오니?" "에이, 안 와요. 아버지는 글쓰기를 배운 적이 없거든요. 읽기도 거의 못해요. 편지는 동생들이 읽어 드려요. 그치만 어머니는 책도 많이 읽고 글도 잘 썼어요." "그럼 넌 어머니한테서 읽고 쓰기를 배웠겠구나?" "그럼요, 당연하죠.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다 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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