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망과 질투, 열등감과 자부심이라는 내면적 갈등은 그녀의 전 작품에 고루 깔린 배음이 된다. 빈곤층의 화자가 부르주아지에게 느끼는 내면적 갈등은 사립학교 입학과 더불어 시작되어 청소년기와대학 시절에 이르기까지 집요하게 그녀의 마음에 뿌리를 내린다.

부모의 취향과는 전혀 다른 생활 세계로 진입한다. 이후 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하고 결혼을 통해 시부모로부터 반듯한 대접을 받으며 비로소 세련된 중산층 지식인이 된 것에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남편과 시부모의 친절과 예의범절이 중산층의 위선과 가식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부차적으로 깨닫게 된다.

아니 에르노의 작품에는 하층민과 중산층 사이에 낀 경계인이 느끼는 불편한 자의식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출신 성분이 부끄럽다.그런데 그런 수치심에 빠진 내 모습에 다시 수치심을 느낀다. 게다가 그 수치심을 글로 옮겨 만천하에 드러내는 일은 나를 낳아준 계급을 배반하는 짓이기 때문에 더욱 수치스럽다).

비교적 짧은 분량의 글, 문단 사이의 여백, 그리고 단숨에 독자의 관심을 끄는 첫 대목, 담담한 문체, 그리고 오로지 사실만을 기록하고자 애쓰며 기억의 확실성을 저울질하는 자기성찰, 그리고 자신의 글의 장르적 정체성─내가 쓰는 글이 과연 문학일까─등에 관한 대목이 거의 전작에서 되풀이된다.

『단순한 열정』과 『탐닉』을 발표한 후 그녀는 2005년 대담에서 자신은 항상 무엇인가를 상실한 후에 "커다란 공허를 강렬하게 느끼며 그 결핍을 바탕으로 글을 썼고, 일상생활에서 그 공허를 채우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할 필요가 있었고" 학업에 매달리고 교수 자격시험을 통과하고 아기를 낳는 등 현실적 일에 매달려 살아가던 중 가장 환상적인 두 가지 일은 "글쓰기와 섹스"였다고 고백했다.

말과 글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의 소외와상처를 표현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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