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 아침 7시부터 일을 했는데 수술이 6개만 있어서 환자 두 명을 돌보고 일찍 집에 와서 거의 8시까지 잤다. 아직 몸이 많이 회복이 안 되어 그런가? 병든 닭처럼 자꾸 꾸벅거린다. 그나마 일을 하면 집중할 대상이 있으니까 그런 일은 없지만. 다른 직업(행동을 하는 직업이라도 혼자 하게 되어 졸다가 손가락이 잘리어 병원에 오는 사람도 있는데)과 달리 간호라는 직업은 행동을 해야 하는데 상대가 있는 직업이라 꾸벅꾸벅 조는 일은 없다. 없을 수밖에 없겠지?


내가 맡은 두 번째 환자는 또 스페인어만 하는 할아버지 (82세)였다.(하루에 적어도 한 환자는 스페인어만 한다.ㅠㅠ) 오른쪽 무릎 수술을 2달 전에 받고 오늘은 왼쪽 무릎 수술을 받았다. 노인 환자를 돌보게 되면 늘 걱정을 하는 편이다. 잘 회복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싶어서. 섬망이 오는 것뿐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회복이 어려운 경우가 젊은 사람들 보다 많기 때문인데. 하지만, 이 할아버지는 잘 회복하셨다. 그런데 잠이 드시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눈을 확 뜨시고는 좀 놀라는 표정을 짓고 뭔가를 노려보는 표정을 반복하는 거다.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못하는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통역기를 사용하고 했을 때 할아버지의 대답은 다 괜찮다는 것이었다. 뭐가 괜찮다는 것인지 몰라서 답답했는데 마침 청소하는 M이 왔길래 통역을 부탁했다. 왜 그러시냐고. 그랬더니 본인이 수술을 하고 나온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좀 놀랐다. 아프다고 해서 약도 드렸는데 그럼 왜 아픈지 몰랐다는 것인가? 아무튼, 할아버지에게 수술이 잘 끝났다고 하니까 갑자기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더니, "할렐루야!"라고!!! 아 놔~~~~.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귀여웠다.ㅋㅋ


회복이 잘 되시고 다른 유닛으로 이동을 하기 전에 할아버지의 와이프가 방문하실 수 있게 해드렸다. 할아버지가 82세라서 나이가 비슷한 할머니일 줄 알았더니 젊으셨다. 나중에 할아버지 다리 엑스레이 찍을 때 잠깐 그 와이프와 얘기를 했는데 자기가 40대였을 때 자녀가 6명이었단다! 하지만 남편의 도움을 하나도 받지 못하고 혼자 힘들게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는데 이 할아버지가 자기 집의 문을 고치러 왔다가 어떻게 정이 들어 결혼을 하고 6명의 아이들을 다 대학에 보내줬다고. 와이프는 영어를 잘 했는데 더 놀라운 것은 내가 "두 사람이 만날 운명이었나 보다."는 말을 했더니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말을 인용하는 것이 아닌가!!! "There is a tide in the affairs of men!"라고. 내가 또 사람의 겉만 보고 판단을 했던 것 같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니까 교육을 많이 안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부터 나이가 많으니까로 이어지는 선입견. 


그런데 좀 전에 소노 아야코의 <약간의 거리를 둔다>를 읽는데 역시 '때'에 대한 글이 나왔다. 그녀는 구약성서에 있는 내용을 아래와 같이 인용했다.



매사 때가 있다. 구약성서 코헬레서(전도서) 중에는 중에는 다음과 같은 훌륭한 구절이 있다.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긴 것을 뽑을 때가 있다. 죽일 때가 있고 고칠 때가 있으며 부술 때가 있고 지을 때가 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기뻐 뛸 때가 있다.

돌을 던질 때가 있고 돌을 모을 때가 있으며 껴안을 때가 있고 떨어질 때가 있다.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간직할 때가 있고 던져버릴 때가 있다.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침묵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의 때가 있고 평화의 때가 있다." - P 59-60





겉모습은 보잘것없어 보였던 아주머니였지만, 그 안에 저런 교양이 들어있다니,, 좀 놀라웠고, 책 좀 읽는다고 거들먹거리는 나는 정작 인용할 수 있는 문장 하나 없는 것이 부끄러웠다. 덕분에 셰익스피어의 저 구절은 잊지 못할 것 같다.
















2. 오늘은 할로윈데이이다. 아침에 출근했더니 마취과 의사가 Outpatient 쪽으로 가기 위해 내가 있는 PACU를 지나가면서 한국에서 생긴 일이 사실이냐고 물었다.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어떻게 대답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한 시간 후에 나와 같이 일하는 PACU 직원이 오자마자 뉴스를 봤다고. 너무 슬픈 일이라고. 너무 슬픈 일이다. 여전히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 더구나 어린 자녀들의 죽음이 대부분이라 그 부모들의 황망한 억장은 또 어떻게 보듬어야 하는지 마음이 너무 아프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발생한 안타까운 죽음이 결코 허무한 죽음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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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22-11-01 15: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정말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믿을 수가 없어요. 이렇게 쉽게 시스템이 무너질 수가 있나 싶고요.

psyche 2022-11-01 15:27   좋아요 5 | URL
그런데 저 할아버지 정말 대단하시네요. 싱글맘과 결혼해서 6명을 모두 대학에 보내시다니! 그리고 저 말이 셰익스피어에 나온다는 걸 알아들은 라로님도 대단하세요. 저는 들었다면 이게 뭔 소리다냐 했을 걸요.

라로 2022-11-02 14:52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정말 다른 사람들이 물어보는데 뭐라고 대답할지... 휴

저 할아버지 정말 존경스러웠어요,,
근데 수술 끝났는데 많이 안 아프셔서 그런가 너무 좋아하시더라구요!!ㅎㅎㅎ
저는 예전에 영문학 수업 들었거든요, 그떄 셰익스피어의 비극 공부하면서
저 문장 유명하다고 해서 배운 기억이... 제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저도 뭔 말이냐 했을 거에요,,ㅋㅋ

아참! 프님 잘 지내시죠??
댓글 폭탄을 봤는데 제가 일하고 자야 해서 (방금 영화보고 왔거든요.)
내일 댓글 달게요. 댓글과 좋아요, 넘 감사합니다!!! 항상!!! 프님 최고!!!^^;;

레삭매냐 2022-11-01 20: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매사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
격렬하게 동의하는 바입니다.

무슨 일에는 자각과 그에 따른
필연적 행동이라는 삶의 법칙
이 적용되지 않나 싶습니다.

31일 할로윈 당일날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이들이 홍대 거리
에 다수 출몰해서 아랑곳하지
않고 좀비처럼 떠돌더라는 뉘
우스가 너무 무서웠습니다.

타인에 대한 공감대가 없는 이
들과 같은 공간에서 살고 있
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했습니다.

라로 2022-11-02 14:54   좋아요 1 | URL
오늘 블랙 아담 보면서
그 말을 또 깊이 느꼈어요!!

맞습니다 매냐님,,
나이들수록 그런 것이 더 느껴지네요.

아~~ 말씀을 들으니
이 세상이, 젊은이들이
많이 두렵습니다...
그래도 다 그렇지는 않으니
여전히 희망을 얘기하고 싶어요.

coolcat329 2022-11-01 21: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감동적이에요.
세상에 할아버지 참 멋지고 좋은 분!
정말 할렐루야~~
근데 저 셰익스피어 대사를 알아들으신 라로님도 멋지세요.
몰라서 찾아봤는데 줄리어스 시저에 나오는 대사군요~

라로 2022-11-02 14:56   좋아요 1 | URL
진짜 어떻게 그렇게 하셨는지
저도 얘기들으면서 참 부럽고(응? 왜??;;;)
좋았어요. 할렐루야도 넘 웃기고요,,
그런 분 첨 봤거든요.ㅎㅎㅎㅎㅎㅎㅎ
저 예전에 영문학 수업 들으면서
교수님이 인용하셔서요,,
보통 기억력이 무지 나빠서 기억이
안 나야 하는데 그분이 넘 잘 인용을 하셔서
그랬는지 제가 이런 글을 쓰려고 그랬는지
똭 기억이 나더라구요.^^;;;
네, 셰익스피어의 비극 중 하나인 쥴리어스 시저에
나오는 대사에요. 모르면 찾아보는
쿨캣님도 멋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