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라에게

작은 몸집에 치열함이 가득한 너를
불을 뿜는 존재처럼 기를게.
절대, 아무것도 포기하지 마.

아버지는 건물 밖으로 모든 사람이 뛰쳐나갈 때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가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라고 늘 말씀하셨다.

우리의 심장은 연민과 인정이 넘친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누군가 때 이른 죽음을 맞아야 한다는 불공평함에 괴로워한다. 그래서 그런 불행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리고 낯선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불 속으로 뛰어들어간다. 또한 우리는 헌신적이다. 모두들 가끔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그래도 계속한다. 불길과 싸우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에서 너무도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인간으로서의 자신과 소방관으로서의 자신을 분리하는 것이 가끔 불가능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모든 구조 작업 뒤에는 구조 대원이 있고, 모든 구조 대원 뒤에는 누군가의 생명이 달린 결정을 내리면서 타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팀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일을 사랑한다. 그 일은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한계에 도전하도록 하며, 우리가 더 나은 사람, 더 준비된 사람, 더 열심히 싸우는 사람이 되도록 격려한다.

인생의 가장 어두운 시간을 지나는 사람들의 신뢰를 받는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다.

우리는 날마다 그날이 최고의 능력을 발휘한 날이기를 바란다. 사실 날마다 최고의 능력을 발휘해야만 한다.

소방관 하면 큰 키와 햇볕에 그을린 건강한 피부에 어딘지 모르게 음울한 눈빛을 띤 미남을 연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 이미지와 달리 소방서는 속옷 모델 같은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곳이 아니다.

직장 생활을 하는 내내 나는 고정관념과 싸워야만 했다. 내가 하는 일을 밝히면 악의는 없지만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예전에는 그런 장벽에 화가 나고 좌절하곤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를 수 있는, 진정으로 다를 수 있는 그 자유로움이 큰 힘이 되기도 한다.

소방관들이 자신을 지키면서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할 확률을 높이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아내야만 했다.

나는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오겠다고 결심했고, 인적 오류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긴급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밝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소방 구조대 및 카디프 대학교의 동료들과 힘을 합쳐 내 연구 결과를 실제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했다. 나는 더 능력 있는 소방관이 되고 싶었다. 더 현명한 의사 결정자, 더 나은 리더, 현장에서 더 큰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사람 말이다. 그리고 내 동료들도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소방관이 되는 데 꼭 필요한 기술과 마음가짐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이해가 자리 잡았으면 한다.

우리는 구조를 천직으로 선택한 사람들 아닌가. 한 사람이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대신, 다시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도록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절감하는 순간이 있다.

범죄율은 하늘을 찌르고 희망은 땅에 내팽개쳐진 곳. 명품 가게와 젊고 부유한 전문직 종사자들로 가득한, 최근에 새로 개발된 시내와는 크게 대조되는 곳이다. 1마일도 채 떨어져 있지 않지만 두 지역의 차이는 그보다 더 클 수가 없다.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완벽한 타인의 고통이 마치 나의 고통인 양 내 몸속을 관통하는 경험은 셀 수도 없이 많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날이 반복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아침에 눈을 떴다가, 세상이 돌이킬 수 없이 영원히 변하고 만 사람들로 이루어진 리스트.

그 고통, 내가 경험한 그 고통은 공감에서 나온 것이다. 공감이야말로 나를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조금 더 노력하게 만드는 동력이다. 나는 우리에게 의지하는 사람들과 공감할 뿐 아니라 나와 함께 일하고, 이제는 내가 지휘해야 하는 사람들과도 공감한다.

나도 아침에 일어나 여느 때처럼 시리얼을 먹고 일상을 시작했다가 하루가 채 끝나기 전에 자신의 온 우주가 찢어발겨지고 완전히 변해버리는, 그런 경험을 하는 사람 중의 하나가 된 것일까?

사고 통보 전화를 받을 사람들은 스티브의 가족이었다. 비통한 마음으로 병원으로 발걸음을 재촉할 사람들도 그들이었다. 몇 개월에 걸친 회복과 눈물, 분노에 찬 고함들, 그리고 다시 쌓아올려야 할 삶 모두 그들의 몫이었다. 마이크와 나는 피했지만 스티브와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피하지 못한 운명이었다.

죄책감은 ‘만일 이랬다면’이라는 가정과 뒤얽혔다. 만약 그 불기둥이 몇 분이라도 일찍 솟구쳐 올랐다면? 만약 마이크가 여전히 맨홀 속에 머리를 들이밀고 있었다면? 만약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다면? 나는 마이크를 잃었을지도 모르는 만약의 상황을 계속 내 머릿속에서 재생했다. 나는 전혀 다른 현장에 도착하는 상황을 상상했다. 그 순간을 생각할 때마다 공포가 밀려왔고, 뒤이어 안도감과 함께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

스트레스는 내 뇌의 정보 처리 용량을 감소시켰고, 결정을 내리는 능력을 방해했다. 그것은 실존주의적 경험이 아니라 단순한 생물학적 반응이었다. 그 상황에서 내가 실수를 할 확률이 훨씬 높아졌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뭔가를 잘못 이해하거나, 중요한 정보를 놓치거나, 최선이 아닌 대응을 했을 확률이 높았다는 의미다.

내 경험(내 공감)은 내가 연구를 포기하지 않고 연구 결과를 소방관들의 작업 환경에 적용하기까지 나를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 원동력이다. 그들은 내 동료들이고, 그중 일부는 영광스럽게도 친구라고까지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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