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이 오븐의 온도를 232도로 해서 농어의 살은 부드럽고, 회향의 향은 향긋하고, 레몬 조각은 검게 타서 아삭아삭하도록 요리한 것이었다.

백작은 와인을 따르면서 드라이한 몽라셰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에밀의 농어 요리에 아주 잘 어울리는 와인으로, 분명 안드레이가 골랐을 것이다. 백작이 여배우를 향해 잔을 들어 올렸다.

매일 밤 저녁 식사로 생선을 먹는 것보다 더 안 좋은 삶을 살았을 수도 있잖아요.

해 질 녘에 엄마 몰래 집을 나와 마을의 굽이지고 경사진 길을 걸어 내려가곤 했다는 것이다. 해안가에 있는 아빠를 만나서 아빠가 그물을 수리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였다. 그녀의 얘기를 들으면서 백작은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의 미덕을 다시 한번 인정해야 했다.

첫인상이라는 것은 단지 하나의 화음이 우리에게 베토벤에 관해 말해줄 수 있는 것, 또는 하나의 붓 터치가 우리에게 보티첼리에 관해 말해줄 수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너무 변덕스럽고 너무 복잡하고 엄청나게 모순적이어서 우리가 숙고해야 할 뿐만 아니라 거듭 숙고해야 하는 존재다.

인간은 우리가 가능한 한 많은 상황에서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겪어보기 전에는 그 사람에 관한 견해를 보류하겠다는 확고한 결심이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그곳엔 사과나무 숲이 있지요. 우리 러시아처럼 오래되고 자연적인 사과나무 숲이 있어요. 그 숲에서는 사과들이 무지개 빛깔처럼 갖가지 색깔로 자라죠.

"삶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생각에는 확실히 매력적인 게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어떻게 집과 여동생과 학창 시절의 기억들을 포기할 수 있겠어요."

젊은 남자로서 백작은 평소 한발 앞서 상황을 이끄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적시에 나타나기, 적절한 표현, 필요한 것을 예측하기……. 백작에게 이 같은 것들은 교양 있게 잘 자란 남자의 특징이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는 한발 뒤처지는 것이 그 나름의 장점이 있다는 것을 백작은 새삼 깨달았다.

남녀 간의 사랑에서 한발 앞서는 것은 부단한 경계심을 요하는 일이다.

달리 말하면 남녀 간의 사랑에서 한발 앞서는 것은 진이 빠지는 일인 것이다. 반대로 한발 뒤처지는 것은? 유혹당하는 것은? 음, 그것은 의자에 기대앉아 와인을 홀짝이며 상대의 질문에 머릿속에 맨 먼저 떠오른 생각을 그대로 말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한발 뒤처지는 것이 한발 앞서는 것보다 더 편안하면서 더 자극적이기까지 했다.

어쨌든 불과 몇 시간 전에 백작 자신이 관찰한 것처럼, 잘 훈련된 개에게는 노련한 사람의 손이 어울리는 법이다.

그들이 자정에 나도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그 시간에는 이 세상의 감정이 서린 잡스러운 소리와 분노 같은 것들에 시달리는 일 없이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살아생전의 그 모든 노력과 분투, 희망과 기도, 두 어깨에 짊어졌던 기대감, 참아야 했던 여러 견해들, 품위 있게 살고자 했던 바람, 그리고 수많은 대화들을 뒤로한 지금,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단순히 약간의 평화와 고요일 뿐이다. 이 생각이 옳든 그르든, 아무튼 백작은 복도를 걸어가면서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커피 한 잔보다 더 많은 쓰임새가 있는 게 어디 있겠는가? 우아한 리모주 도자기 컵에 마시든 집에서 양철 컵으로 마시든 간에 커피는 새벽녘에 부지런한 사람의 기운을 북돋우고, 정오에는 생각에 잠긴 사람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한밤중에는 괴로운 사람의 정신을 일으켜 세울 수 있다.

"라일락이 피면 벌들은 알렉산드롭스키 정원으로 날아가기 때문에 꿀에서 라일락 맛이 나지요. 그렇지만 일주일쯤 지나면 벌들은 사도보예 환상도로로 날아갈 것이고, 그러면 꿀에서 벚꽃 맛이 날 겁니다."

그리하여 여름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고, 불이 사위기 시작하고, 벌들이 머리 위에서 빙빙 돌기 시작했을 때, 두 사람은 각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누었다. 길을 달리는 마차 바퀴가 덜컹거리고 잠자리가 풀밭 위를 날아다니고 시야가 온통 사과꽃으로 가득하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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