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기 중반이 몇 해 지난 어느 6월의 초저녁, 아일린 코널티 부인은 라스모이 마을을 통과해 지나갔다. 광장 4번지에서 출발해 머게니스 스트리트를 거쳐 헐리 레인으로 빠진 후, 아이리시 스트리트를 따라 클럭조던 로드를 건너 구세주회 성당으로 갔다. 밤은 그곳에서 보냈다.

선한 행실과 단호한 성품이 돋보였고 가사와 가족 문제에서 다소 엄격했던 한 인생이 끝난 것이었다.

오래전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아 기르는 삶을 택했을 때 기대했던 소소한 행복을 코널티 부인은 결코 누릴 수 없었다. 남편도 딸도 그녀를 낙심시켰다. 죽음이 다가왔을 때는 이제 다시 남편 곁으로 가야 할까봐 두려웠고 그러지 않아도 되기를 빌었다. 딸과의 이별은 아쉽지 않았지만 이제 쉰이 된 아들, 아기 때 처음으로 팔에 안은 순간부터 그녀의 귀염둥이였던 아들을 남기고 떠난다는 생각에는 눈물을 흘렸다.

평범한 작은 마을 라스모이는 움푹 꺼진 지대에 자리했는데, 지형이 왜 그런지 아는 사람은 없었고 궁금해하는 이도 없었다. 농부들은 매달 첫째 월요일에 가축을 마을로 들여왔고 마을의 은행 두 곳 중 하나에서 돈을 빌렸다. 그들은 광장에 있는 치과에서 이를 뽑았고 때로는 인근의 사무변호사와 상담을 했다. 또 니나 로드의 데스데블린스에서 농기구를 점검받았고 종자상인 헤퍼넌과 거래했으며 마을 곳곳에 있는 주점에서 술을 마셨다. 농부의 아내들은 식료품을 사기 위해 캐시앤드캐리의 창고형 매장을 이용했고 돈이 좀 있을 때는 맥거번스로 갔으며 신발은 타일러스에서, 옷이나 커튼 재료, 식탁에 깔 유포 등은 코벌리스 포목점에서 구입했다. 예전에는 제분소에도, 그리고 섀넌 강 발전 계획1이 시행되기 전에는 제분소 안의 발전소에도 일자리가 있었다. 이제는 유제품 공장과 연유 공장, 건축자재 야적장, 상점, 주점, 생수 공장 등에서 직원을 고용했다. 광장에는 법원이, 밀 스트리트 끝에는 버려진 기차역이 있었다. 또한 교회 두 곳과 수녀원, 기독교형제회 부속학교, 실업학교 등도 있었다. 수영장 건설 계획은 자금이 확보될 때까지 보류한 상태였다.

마을 사람들은 라스모이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불평하면서도 대부분 이곳에서 계속 살았다. 마을을 뜨는 쪽은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더블린이나 코크나 리머릭으로, 잉글랜드로, 어떤 이들은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다수가 되돌아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 또한 과장이었다.

검은 머리에 몸집이 마른 20대 초반의 이 젊은 남자는 라스모이가 초행이었다. 전반적인 행동거지나 녹색과 파란색 줄무늬의 화사한 넥타이 등은 얼핏 세련된 분위기를 풍겼지만 편안해 보이는 헐렁한 양복이 그 효과를 반감시켰다.

그는 혼자 살았다. 급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스스로는 자주 늙었다는 느낌을 받았고, 중년이 다 가도록 여태 자기 소유일 수도 있었던 것들을 너무 많이 놓치고 살았다는 회한을 느낄 때가 많았다.

누이가 촬영에 대해 얘기한 이유는 그가 듣고 걱정하기를 바라서이기도 했고, 장례식이 무슨 축제라도 되는 양 사진을 찍는 행위가 존중하는 마음이 부족하다는 뜻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혹시 누이가 지어낸 말이 아닐까도 생각해보았다. 누이는 가끔 말을 지어내곤 했다.

누이는 쉽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그녀가 갈수록 꼬인 성격이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시간이 그녀의 불만을 눅여주기를 바라며 몇 번인가는 기도하며 빌기도 했다. 두 사람이 어렸을 때 어머니는 딸을 부엌에 데려다놓고 아들에게는 혼자 나가 놀라고 한 적이 많았다. 그는 부엌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은 때에, 대개는 제대로 닫히지 않았는데,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면서 누이가 비계와 힘줄을 제거하는 법, 결을 봐가며 고기를 써는 법, 고기에 밀가루를 너무 두껍지 않게 뿌리는 법 등을 배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머니는 누이에게 국물을 얼마나 오래 고아야 하는지, 언제 경단을 넣고 비스토3를 넣어야 하는지 가르쳤다. 누이는 혼자서 경단을 만들게 되더니 파이에 넣을 사과껍질을 깔 수 있게 되었고, 이어 커스터드를 젓고 감자를 으깰 수 있게 되었다. 부엌은 모녀의 장소였으며 그들은 ? 시골 처녀가 되었든 돈이 필요한 마을의 과부가 되었든, 일손을 거드는 가정부와 더불어 ? 살림을 책임지는 사람들이었다.
여자들의 이런 세계에 익숙해지고 나자 조지프 폴은 더이상 신경을 쓰지 않았다.

가끔 어머니는 장 보러 갈 때 그를 데리고 다니며 ‘우리 꼬마 신사’라고 불렀다. 엄마를 화나게 하는 일이 없는 아이다, 어머니는 말했다. 천성이 그럴 수 없는 아이다. 매일 아침 모자는 식사를 마친 후 난롯가에 앉아 함께 시간을 보냈다. 지금 그가 앉은 곳에서 채 1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자리였다.

동생을 괄시하는 것은 누이가 마음속 원망을 표시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였다. 그는 그것을 알았고, 알기에 견디기가 수월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은 여전히 성격 표현에 영향을 미쳐서, 그것만 아니었다면 지금 그녀를 눈에 띄게 만드는 수수한 아름다움이 더욱 도드라졌을 터였다. 그 아름다움은 잿빛 푸른 눈과 담담한 미소에 깃들어, 예전에는 불안스러웠던 눈빛과 자신 없이 머뭇거리던 미소를 지워주었다. 다루기 힘든 부드러운 금발은 이제 그런 머릿결에 가장 적합한 스타일로 뒤로 넘겨 묶었다.

"그거 조심해." 그가 말했다.
"깜빡했어요." 엘리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남편이 레이번 뚜껑을 자꾸 열지 말라고 했던 것을 잊어서가 아니라 그가 아직도 부엌에 있다는 걸 몰랐기 때문에 화가 났다. 그는 늘 조용히 움직였다. 엘리는 그가 마실거리를 나중에 갖다달라고 했을 때 밖으로 나갔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그녀에게 잘해주었고, 실수를 해도 신경 쓰지 않았으며, 농장 생활에서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아 일처리가 미숙할 때도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녀는 속으로 그렇게 말하며 스토브의 철제 뚜껑을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계단 아래 벽장에 쓰레받기를 걸고 그 옆에 빗자루도 걸었다. 또 창문 두 개를 다 열어 잠시 환기를 시켰다. 비 오는 날에도 빠뜨리지 않는 매일 아침의 일과였다.

엘리는 이제 거실로 갔다. 기분 좋은 여름 곰팡내와 희미한 검댕 냄새가 풍겼다. 외짝 창틀에 놓인 흰 물병에는 분홍색 장미꽃이 향기를 잃고 축 늘어져 있었다. 그녀는 시든 꽃을 부엌으로 가져가 물병을 헹궈낸 뒤 집 앞 정원에 있는 덩굴시렁에서 싱싱한 꽃송이를 꺾었다. 꽃을 잘 꽂은 다음 닭장으로 가 암탉들에게 모이를 주고 달걀을 주워 모았다. 그리고 밸브에 문제가 있는 자전거 뒷바퀴에 공기를 주입했다. 그렇다고 오늘 어디 갈 데가 있는 건 아니었다.

꼭 필요하지 않은데도 고해성사를 한 번 더 하는 일도 많았으며, 대단히 재미있지도 않은데 코벌리스 뜨개질 매장에서 버크 양이 읽는 소설 내용을 들을 때도 있었다. 늙은 오펀 렌이 인사를 건네기도 했는데, 가끔은 그녀를 알아보기도 했다.

플로리언의 개, 이제는 젊지 않은 검정 래브라도가 그를 따라 위를 쳐다보았고, 꼭 무엇을 찾는지 아는 듯한 모습이었다. 요즘 개는 혼자 힘으로 해내는 일이 별로 없었다.

상대에 대한 헌신으로 밝게 빛나던 결혼생활에서 부부는 서로의 크고 작은 기벽을 다 받아주었고 빚쟁이들마저 예사로 매료시켰다.

그는 살림을 꾸리거나 채소를 키워 팔거나, 자두가 나무에서 떨어져 키 큰 풀 사이로 사라져버리기 전에 따는 일 같은 것을 잘해내지 못했다. 전화는 최근에 끊겼고 발행된 수표는 지급불능으로 되돌아왔다. 채권추심 대행업자는 정기적으로 전화를 해왔다.

외롭게 외동아들로 태어나 아동기와 이후의 시기를 무난하게 보낸 그는 성인이 되어서도 기질적으로는 어린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는 예의 바르고 가식이 없고 말수가 적었다. "얘가 수줍음을 좀 많이 타요." 생전에 나탈리아 킬데리는 종종 그렇게 말했지만, 그 말에는 아들 이야기를 할 때마다 드러나는 애정이 담겨 있었다. 다정한 가족이었다.

부엌으로 가서 커피를 끓이고 토스트를 구웠다. 서두르지 않았다.

책상 위에는 아버지의 골동품 레밍턴 타자기가 있었으며 한 귀퉁이에는 아버지의 일기장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들은 부모라서 어쩔 수 없이 아들을 너무나 대단하게 보았다. 플로리언은 그 사실을 알았다. 심지어 당시에도 대충은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나타날 거야. 때가 되면 드러나겠지. 세상일이 다 그렇잖아. 그리고 아이는 이 집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어. 자기 길을 찾으면서 말이야.
플로리언은 찾지 못했다.

"집 잘 보고 있어." 플로리언은 떠나기 전에 개에게 일렀고, 개는 다시 엎드리며 이해했다는 듯이 꼬리를 바닥에 내리쳤다. 개의 이름은 제시였다.

사제로서도 한 개인으로서도 존경받았으며, 교구민들에게서 좋은 소식이 들려오면 크게 기뻐했다. 감사할 일이 정말 많다, 신부는 자주 그렇게 단언했다. 어디를 둘러봐도 마찬가지다, 반드시 덧붙이는 말이었다. 오늘 아침에도 엘리는 이 말을 들었다. 그리고 역시 감사할 일이 많다고 믿는 그녀도 신부의 말에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펀 렌은 라스모이 기차역에서 매일 아침, 그리고 매일 저녁을 기다렸다. 사시사철 조바심 내지 않고 기다렸다. 여름 기운이 완연한 따뜻한 아침에 역에 나와 있으니 기분이 좋아서 그는 졸음을 쫓지 않았다. 더블린 기차가 전진하는 소리가 들리면 깨어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차는 오지 않았다. 기차역이 폐쇄된 후로 기차는 온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다시는 오지 않을 터였다.

오펀은 현재에도 살고 과거에도 살았다. 그는 오래전 리스퀸 저택을 소유한 세인트존 가문에 고용되어 도서관 장서 목록을 정리하는 일을 했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때 이후로 그 집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다. 비록 세인트존 가문은 32년 전에 저택과 토지를 시장에 내놓았고 가구는 경매에 넘겼지만 말이다. 수대에 걸쳐 학자들이 드나들던 저명한 세인트존 도서관은 장사꾼들에게 약탈당했고 그들이 쓸어가고 남은 것은 마당에 피운 모닥불 속으로 던져졌다. 집은 비워지고 지붕의 납판과 슬레이트는 벗겨져나갔다. 벽난로 선반과 천장, 문과 벽판, 그리고 계단 양 측면에서 곡선으로 휘어지며 널찍한 2층 층계참의 특징이 되던 발코니는 따로 해체되어 팔려나갔다. 폐허가 된 건물 뼈대는 완전히 철거되었고, 수톤에 달하는 석재 역시 밖으로 운반되어 팔려나갔다.

나이가 들면서 오펀은 몸이 비쩍 마르고 얼굴 살은 뼈에서 분리된 듯 처졌으며 약해진 턱 밑은 동굴처럼 움푹 들어갔고 눈은 푹 꺼져 조그만 구멍처럼 보였다. 옷은 몸에 헐렁하게 걸쳐져 있었는데 늘 입는 나달나달한 외투는 단추가 떨어져나가고 없었다. 낡은 밤색 신발도 뒤축과 밑창이 다 떨어져 있었다. 기차역에서 햇살을 받으며 앉아 있는 오늘 아침에도 그는 추위에 떠는 사람처럼 보였다.

고양이 한 마리가 오펀의 다리로 기어올라 정강이에 몸을 비볐다. 그는 허리를 숙여 고양이의 매끄러운 검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가 잘 아는, 함께 있으면 기분 좋은 고양이였다. 하지만 고양이는 늘 그렇듯 갑작스럽게 흥미를 잃고 살그머니 사라져버렸다.

잠시 후 광장에 있는 낯선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허리가 꼿꼿하고 자신감 있는 몸짓이 멀리서 보아도 세인트존 가문 사람이 분명했다. 세인트존 가문이 떠난 뒤에 태어난 조지 프레디 씨의 손자, 조지 앤서니라고 이름 지은 아이일 터였다

암양 한 마리가 죽어서 시간이 약간 지체되었다. 헤더 관목 사이에 그냥 버려둘 수도 있었지만 남은 사체를 묻어주기 위해 더 좋은 장소를 찾았다. 그는 감상적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양을 존중했다.

그가 머릿수를 세는 동안 개들은 양떼를 제자리에 붙들어두었다. 자욱하던 안개가 걷히고 하늘이 개었다. 보송보송한 흰 구름이 부드럽게 떠다녔고 잿빛 사이로 군데군데 파란색이 내비쳤다.

부엌에서 주전자에 물을 받았다. 물이 끓자 혼자 있을 때 쓰는 작은 찻주전자에 차를 우렸다. 달걀을 삶을까 생각하다가 배가 고프지 않아 그만두었다.

차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오늘 버터밀크를 가지러 오기로 한 해든 부인일 것 같았다.

해든 부인은 지갑에서 동전을 꺼내면서 양로원으로 보낸 이모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보고했다.
"가슴이 미어져요." 부인이 말했다. "활기가 없는 곳은 아니에요. 너무 조용한 곳은 의심해봐야 하거든요."

호리 굴드는 백한 살까지 살았고, 마지막 10년 동안은 매년 생일이 돌아올 때마다 새 양복을 사 입었다. 그분 나름의 저항 방식이었다, 해든 부인은 그렇게 말했다.

‘금독수리’라는 이름의 자전거는 손잡이 기둥에 독수리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녀는 그런 이름으로 불리는 자전거를 본 적이 없어서, 흙받기가 우그러지고 낡기는 했지만 사실 특별한 자전거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 남자가 다시 라스모이에 나타나면 길 반대편으로 갈 것이다. 말을 걸면 가봐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고해성사에서 이런 얘기를 하면 창피하겠지. 바보 같은 짓이니까, 그 사람이 머리에 떠오르면 생각을 다른 데로 돌리기만 하면 되니까.

그렇게 하려 해봐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남자가 캐시앤드캐리에서 버즈 젤리 상자나 겨자 캔, 삭사 소금 등을 배경으로 서 있는 모습이 계속 아른거렸다. 그 물건들에 어떤 의미라도 있는 것처럼, 그냥 물건을 넘어선 무엇이라도 되는 것처럼 머리를 떠나지가 않았다. 엘리는 궁금했다. 그 물건들이 다시 예전과 똑같아 보일 수 있을까, 자신이 산 브라운앤드폴슨의 옥수수전분, 린소 등도 예전 같아질 수 있을까. 그녀는 자신 역시 예전과 같아질 수 있을지 궁금했다. 자신이 이제는, 그리고 앞으로도, 코널티 부인 장례식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 게 아닐까 궁금했다.

그날 남자가 누구 장례식이냐고 물었을 때, 그것이 시작이었지만 엘리는 알지 못했다. 코널티 양이 광장에서 그 사람을 가리켰을 때에야 그녀는 깨달았다. 캐시앤드캐리에서 그가 미소 지었을 때도 알았다. 햇살을 받으며 함께 서 있었을 때, 그가 담배를 권하고 그녀가 고개를 저었을 때 그녀는 이미 달라져 있었다. 함께 있는 모습이 사람들 눈에 띌 수 있었는데도 개의치 않았다.

처음 면도 비누가 거품으로 변하는 모습, 그리고 면도기가 거품을 긁어내는 모습을 보았을 때 엘리는 깜짝 놀랐다. 식탁에서 남자와 마주 앉아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아내가 되기 전에, 가정부로 지내던 시기에 모든 것에 익숙해졌다. 다른 사람과 침대를 함께 쓰는 것만 빼고는.

우리가 어디에 있든, 어떤 모습이든,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는 때는 없다. 하루의 매순간, 인생의 매순간.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 우리가 저지른 죄의 엄청난 짐을 덜어주시기 위해 우리와 함께한다. 고백해라, 참회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말씀드려라. 그분은 그것 이상을 바라시지 않으니까.

건물이 없어졌다고 인연도 모두 끊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곳의 일부로 살던 때의 우리 자신과 우리 유년기와 그 시절의 순진함과 완전히 이별하는 것은 아니다.

엘리는 잠시 가만히 서서 고해성사를 할 용기를 달라고, 자신의 생각에서 자신을 보호해달라고 기도했다.

성모마리아님, 지금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소서…… 어떤 경우든 고백을 하고 나면 기분이 나아졌다.

열다섯 해 전에 홀아비가 된 개헤건은 농장 일을 돕는 사람도 두지 않고 혼자 살았으며 만나려 해도 찾을 수 없는 때가 많았다.

딜러핸은 그곳을 지나쳤다. 잠시 후 차를 멈추고 울타리 문을 열어 개들을 내려주었다. 이제 개들은 매일 저녁 자기들끼리 소들을 안으로 몰아넣었다.

수채화는 예전만큼 생생하지도 화사하지도 않았다. 도화지는 우글쭈글하고 파리 떼가 남긴 자국으로 더러웠으며 햇볕에 바랜 데다 압정에서 나온 녹까지 묻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빛을 잃은 상태에서도 그 그림들은 탁자 위에 정렬된 사진들을 시시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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