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심이 너무 갑자기 찾아오는 바람에 대위는 깜짝 놀랐다. 그는 군대에 가서 고통받던 이 남자, 연병장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혼자 떠돌고, 등 뒤의 수군거림의 표적이 되고, 잠들면 두려움을 안겨주는 꿈과 싸우던 남자를 상상했다.

그녀는 겨울에 먹이 헛간에 불을 계속 피워둘 때는 불 옆에 앉아 있곤 했다. 브리짓도 어렸을 때 그랬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루시는 그곳으로 가서 그늘진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불은 없었다. 오래전에 용도가 바뀐 뒤로는. "여기다가는 장작을 쌓아둘까?" 헨리가 마치 그녀의 의견이 중요하기라도 한 것처럼 물었다. 그때 그녀는 열한 살이었다.

그는 알 것이다. 그녀가 스스로의 어리석음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는 것을 알 것이다. 언젠가 슬픔이 가득한 답장이 올 것이고, 그녀도 다시 편지를 쓰고 싶을 것이고, 쓰려고 할 것이다, 아마 쓰지는 못하겠지만.

마무리되지 않은 바닷가 인물들의 자수가 소파 팔걸이에 걸려 있었고 옅은 파란색 실이 바늘귀에 꿰여 늘어져 있었다. 여기저기 색깔들이 채워지길 기다리는 빈 공간이 있었다. 그녀는 리넨을 말아 바늘과 함께 챙겨 자수 서랍에 넣었다.

그녀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런 예의가 아주 특이해 보였다. 다시 그들의 파괴된 삶을, 한때 행복이 있던 자리에 나타났던 공포와 혼돈을, 고통을 이야기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녀의 분노는 무너졌고 터져 나오지 못했다.

방의 정적 속에서 루시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할 수도 있었는데 못 했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쫓기듯이 집을 떠났으며, 어머니는 괴로움에서 결코 회복하지 못했다고 말하려 했다. 그것이 사실이었다. 남은 할 말은 그것뿐이었기 때문에 그 말을 하려고 응접실에 왔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녀가 아까 꽂아놓은 하얀 초롱꽃이 햇빛에 갈색으로 변한 벽지를 배경으로 창백했다.

상황이 그녀의 삶에 빈 곳을 만들어냈지만 이제 사랑의 서툰 열정은 다른 아주 많은 것들과 함께,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과거에 속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뿌리를 하나 더 캤다. 그들의 집안은 그들이 끝나면 끝날 것이고, 그러면 그 사람들에 대한 모든 의무도 완료될 것이고, 그 사람들에 대한 모든 기억도 죽을 것이다. 오직 신화만,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만 뒤에 남을 것이다.

브리짓의 단단한 필체는 낙농품 공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헨리가 맥브라이드 부인에게 목록을 건네주던 시절 이래 변함이 없었다.

이 집에는 서로 밤 인사를 하는 습관이 있었던 적이 없고 지금도 없었다.

아버지는 자연의 긴축을 그렇게 받아들이면서 웃음을 지었고, 그녀도 웃음을 지으며 아버지가 병적인 기대를 물리치는 과정을 함께했고, 아버지를 다시 사랑하게 되는 느린 여정 동안 예전에 그가 어땠는지를 기억했으며, 아버지를 말없이 책망한 것을 용서받았다.

대위의 죽음과 더불어 집에서는 어떤 격식이 사라졌다. 그의 과거에 속한, 그가 귀중하고 소중하게 여기던, 그가 돌아오면서 당연하게 자리를 잡았던 운영 방식이었다. "아니요. 그건 필요 없어요." 루시는 단호하게 말했다. 브리짓이나 헨리가 계속 접시가 든 쟁반을 들고 부엌과 식당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들이 그녀를 돌본다기보다는 그녀가 점점 그들을 보살피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제공하는 것에 어떤 가치가 있다고 주제넘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 더 나은 방법을 결코 찾을 수가 없었다. 주는 일은 그녀에게 기쁨이었고 라하단 벽에 이제 걸 자리가 남지 않았다고 말할 때의 과장도 기쁨의 일부였다.

자신에게도 아까 아코디언 연주자한테처럼 사람들이 허물없이 말 걸어주기를 그녀가 얼마나 바라는지! 친근한 농담에 참여할 수 있기를 얼마나 바라는지!

그녀는 카페에 있는 사람들을 조금 더 지켜보았다. 아코디언 연주자는 돈을 받지 않을 차를 마저 마시고, 아기는 유모차 안에서 자고, 커플은 생선과 감자튀김을 먹고, 두 여자는 열중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장갑 안에서 3페니 동전을 발견하고는 찻잔 받침 가장자리 밑에 놓았다. 계산은 카운터에 가서 했다.

"직접 만드신 건가요, 부인?"
그들은 주위에 몰려들어 구경했다. "아름답네요." 액자를 받아 든 관리인이 말했다. "아름답군." 한 사람이 따라 하자 다른 사람이 같은 말을 하고,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선물을 받을 사람을 면회하는 것이 가끔은 가능한지 물었다.

면도칼은 어디에 보관하든 거무스름해지지만 다시 빛나게 할 수 있다, 쿼크 씨는 말했다. 아주 쉬운 일이다. 일을 다 마치면 공장에서 나온 신품보다 좋을 거다.

어떤 얼굴들은 다른 얼굴들보다 쉽게 떠오른다.

손이 닿는 곳에 거미가 거미줄에 매달려 있다. 밤새 짜놓은 것이다. 그녀는 거미를 창으로 가져가 창문을 살며시 밀어 올린 다음 거미를 놔주고 남은 거미줄도 걷어낸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매일 아침 어딘가에 거미줄이 있다.

그가 좋아하던 색깔들이었다. 빨강과 녹색, 노랑과 자주, 그리고 가장 좋아하던 파랑.

그는 주사위를 던졌고 말을 움직였다. 그는 늘 그녀가 이기기를 바랐다. 그렇게 말했던 적은 없었지만 그녀는 알았다. 그녀는 그의 목소리를 그때 한 번, 응접실에서 듣고 다시는 듣지 못했다.

그를 사로잡은 망각이 그의 비밀이었다. 정신병원에서는 비밀이 많다, 젊은 관리인이 말했다. 어디나 정신병원에서는 비밀을 아주 소중하게 지킨다. 다른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망각은 환자의 마지막, 유일한 소유물일 때가 많다. 그 젊은 관리인은 약간 기발한 이야기를 하곤 했다.

즐거운 일이다. 수녀들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은. 보통 화요일에 온다. 그들은 여기에 처음 방문한 후 한 주도 그녀를 잊은 적이 없다.

"두 분은 착하시네요." 그녀가 말한다. 그들과 신앙이 같지 않은 사람, 고독하다는 소문을 들은 사람에게 구태여 마음을 쓰는 것이 착하다. 여기까지 와주는 것이 착하다. "친절해요." 그녀가 말한다.

사실, 사람들이 서로 찾아가거나 관 뒤를 따라 걷는 이유가 그렇게 중요한가? 그렇게 한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그녀는 그들 없이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 그들은 자주 말한다. 그녀는 혼자 있는 생활을 예술로 만들었기 때문에. 부엌에는 더러운 것이 전혀 없다. 그녀는 그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젊었을 때보다 훨씬 세심하게 옷을 입는다. 가끔 미용사가 에니실라에서 와서 차분한 노년에 접어든 그녀를 돌봐준다.

그러나 수녀들은 우연을 믿지 않는다. 신비가 그들의 본령이다.숲에서 신비를 벗겨내면 서 있는 목재만 남는다. 바다에서 신비를 벗겨내면 짠물만 남는다. 그녀는 응접실 서가에 있는 책을 처음 읽던 무렵 어딘가에서 그런 말을 발견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그녀는 그 말이 떠올랐을 때 수녀들에게 전해주었다. "어머, 깔끔하게도 표현했네요!" 앤터니 수녀가 감탄하여 외쳤고 메리 바살러뮤 수녀는 저자가 찰스 키컴이나 프라우트 신부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니라고 말했다. 어떤 외국 사람, 그녀는 생각했다.

그들은 이미 변화가 와 있는데도 그 모든 변화에 관해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들은 이미 있었던 일,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의 안전함을 좋아한다. 수녀들도 쫓겨날 것이다. 그녀에게 유일한 가족이 그랬듯이. 클래시모어의 모렐 부부, 아글리시의 구버네이가家, 링빌의 프라이어가, 스위프트가, 보이스가가 그랬듯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또 그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손님들에게 상처가 될 것 같아 그녀는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침묵으로 하는 작은 거짓말이다.

그녀는 일주일 가운데 이날을 가장 좋아한다. 친구들이 가고 나면 한동안 외롭기는 하지만. 겨울이면 그들은 그녀를 위해 응접실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곳에서 커피를 마신다. 앤터니 수녀는 농장에서 수녀원으로 왔고, 메리 바살러뮤 수녀는 보호시설에서 왔다. 가끔 그들은 그 이야기를 하고, 어린 시절 알던 동네를 떠올리고, 그녀가 들어봤을 수도 있는 사람들을 회상한다.

낮의 열기는 식었다. 늦은 오후에는 햇빛을 받은 아지랑이가 있고, 바다는 그녀가 언젠가 한 번 본 것처럼 잔잔하고, 파도는 아주 부드럽게 찰싹여 언제까지나 그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녀는 서두르지 않는다. 서둘 필요가 없다. 신비인 편이 낫고, 여전히 입에 오르내리는 이야기 속에 있는 편이 낫다. 비록 브리짓과 헨리는 그것 때문에 화를 냈지만. 자비의 은혜, 수녀들은 그렇게 말했다. 음악이 연주되고 자신을 죽일 살인자들이 집 안에 들어와 있는 동안에도 용서는 성 체칠리아의 봉헌송이었다. 그들은 이탈리아의 그 성당을 찾아갈 것이다. 언젠가는, 그들은 말했다.

그녀는 그 모든 것을 웃어넘긴다. 일어난 일은 그냥 일어난 것이다.

그녀는 어렸을 때 죽었어야 했다. 그녀는 그것을 알지만 수녀들에게 말한 적이 없었고, 몇 년처럼 느껴지던 며칠 동안 무너진 돌 사이에 누워 있던 자신의 이야기에도 포함한 적이 없었다. 그 이야기를 했다면 그들의 기분이 가라앉았을 것이다. 그녀의 기분은 고양되겠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녀의 나들이는 오후를 다 잡아먹고,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는 새에 저녁이 찾아온다.

그녀는 창가 의자에 자리 잡고 앉아 수국의 어둑한 푸른빛을 물끄러미 내다본다. 진입로는 어슬어슬해져 나무들의 윤곽이 하늘을 배경으로 또렷하다. 매일 저녁 이 시간이면 그러듯 떼까마귀들이 내려와 풀밭을 헤저으며, 하루가 희미해지는 것을 지켜보는 동안 그녀의 벗이 되어준다.

비록 나이는 많고(1928년생이다) 이미 더할 나위 없이 확고한 자리를 굳힌 작가임에도, 마치 대성할 느낌을 주는 신인을 바라보는 듯한 묘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향년 88세였으니 수를 누리지 못했다는 말은 하기 힘드나, 우리에게 소개된 과정만 보자면 왠지 요절한 듯 아쉬운 느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물론 그는 평생 성실하게 작가로 산 사람답게 많은 작품을 남기고 갔으며, 읽어본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그 작품들은 아마 작가보다 긴 수명을 누릴 것이다.

"현재 글을 쓰는 사람 가운데 운명과 시간이 한 개인의 삶에 조용히 작용하는 방식을 윌리엄 트레버보다 잘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이 작품은 아일랜드 역사의 격동기에 극적인 상황에서 벌어진 극적인 사건에서 출발하고 있는데 ‘조용히’라니! 하지만 바로 이 점이 트레버를 이해하는 열쇠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옮긴이가 단편집을 소개하면서도 했던 말이다.

아무리 극적 우연과 운명이라도 그의 손을 거치고 나면 조용해진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그가 사건 자체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작용하는 방식’에 주목하기 때문인 듯하다.

따라서 바로 위의 문단 마지막에 옮긴이가 한 말은, 이 소설은 극적 우연이 사람들의 인생에 조용히 작용하는 과정을 거의 80년 동안 추적한다, 로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트레버의 루시 소설은 그러면 무엇일까? 트레버의 글은 이 질문에 답을 하는 힘겨운 과제도 물러서지 않고 수행하고 있는 듯한데, 어쩌면 그것이 이 작품이 시종 조금도 풀어지지 않고 팽팽하게 긴장감을 유지하는 비결이고, 독자들도 그렇게 긴장된 상태에서 트레버와 함께 답을 찾아가게 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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