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생명을 다루고24시간 돌보며 어쩌면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할 수도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함께 하는 사람이‘간호사’입니다.

사회 전반에 걸친 실업문제와 함께 매년 이슈가 되고 있는 간호사 부족 현상에 환자를 위한 마음과 소명 없이 간호사가 되기로 결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없어도 괜찮습니다. 지금이라도 그런 마음과 열정이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이민자도, 이민자 사회에서 아시아인도 소수(Minority)라고 치부되기 쉬운 집단입니다. 소수로서의 삶에 불만을 갖고 불평만 늘어놓는 삶을 살다가 많은 우여곡절과 그 속의 소중한 순간들을 경험하며‘어떻게 살지 결정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고, 삶은 마음가짐에 달린 것’이라는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마음가짐의 변화로 소수(Minority)가 진귀한 사람(Rarity)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어려서부터 소심하고 걱정만 많던 한Worrier가 난관들을 경험하지만 뚜렷한 목표, 직업에 대한 애정과 열정 그리고 강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승리하기 위해 노력하는Warrior가 되어가는 모습을 이 책을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누구나사람인지라 걱정을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걱정하는 시간은 줄이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계속 시도해보는 노력이 한 발 더 앞으로 나가는 데에 꼭 필요합니다.

어릴 때부터 꼼꼼하고 세심한 성격에 남에게 베푸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을 지닌 것을 눈여겨 본 누나의 추천으로 간호학과에 입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경험을 통해 얻은 사실은 열정과 애정 없이는 쉽게 해낼 수 없는 것이 간호학과 공부였다.

게다가 시험기간에 간호학과 학생들이 얼마나 지독하게 공부하는지는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집 혹은 기숙사에 돌아가지 않고 학교에서 밤을 새며 공부하는 여학생들도 많았다. 이런 치열한 경쟁 사이에서 목표 없이 적당히 공부하는 나 같은 사람이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생명을 다루는 환자 간호에 대해 정직할 수 없다면 너는 간호를 배울 자격이 없다."

"내가 네게 이렇게 모질게 했던 이유는 너를 가르치는 동안 훗날 네가 훌륭한 간호사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환자를 간호하는 일은 사람의 생명과 연관이 되어있는 일이다. 그렇기에 환자 간호에 있어‘거짓’과‘자만’은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이번 기회로 그것을 제대로 깨닫기를 원했다. 그리고 이젠 깨달았으리라 믿고 앞으로는 실망시키지 않으리라 믿는다. 자, 이제 맛있게 고기 먹으러 가자."

간호사는 멀티태스킹 능력이 필요한 직업이다. 정말 많은 일을 동시에 생각하고 수행해야 한다. 그래서 가끔 무언가를 잊어버리는 순간도, 그런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싶은 순간도 있을지 모른다. 나 역시 그랬다.

어디에서나 중요하게 여겨지는 직업윤리지만‘정직’은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간호사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임을 내 생애 첫 간호사 스승님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고 누구도 그 이상은 할 수 없었을 것이라 믿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고 했던가? 실망스러운 학점으로 여름 방학 동안 굉장한 슬럼프를 겪었다.
‘아 … 나는 죽도록 해도 겨우 이 정도구나.’ 이런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또 다시 무기력했던2학년 당시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이 한 번 슬럼프에 빠지면 쉽게 헤어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을 그때 절실히 깨달았다.

한국에서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난 뒤 병원에 간호사로서 채용이 된 이후 한국 간호사들이 힘들어 버티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이 충분하지 못한 실습 교육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보는 학생 간호사 실습은 졸업 후에 바로 병원에서 일을 하게 되어도 웬만한 것들은 큰 무리 없이 해낼 정도로 학생들을 준비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하면 한국에서의 학생 간호사 실습은 약간의 과장을 보태서 학생들에게 병원 환경 혹은 간호사 근무가 어떤지 한 번 구경시켜주는 정도라고 보면 된다.

실습 시작은 병동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병동 간호사 선생님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는 것에서부터 비롯되었다. 한국 간호사 근무 환경 속에TV나 다른 매체들을 통해 불필요하다 싶을 정도로 과한 위계질서가 형성되어 있음은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기에‘인사성’은 간호사 혹은 예비 간호사로서 꼭 갖춰야 할 품성 중에 하나다.

일반 회사원의 일과는 달리 간호사의 일은 내가 돌보던 환자를 다른 간호사가 잘 돌볼 수 있도록 내 근무 동안 일어났었던 일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정확하고 상세하게 보고(인계)를 해주어야 한다. 돌봄(Care)의 연속성(Continuity)을 위해서는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다. 하지만 물려받고 넘겨주는 일이다보니 근무하는 동안 한 일들에 대해서 비판 혹은 비난을 받기 쉬운 직업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라. 출근해서 열심히 일하고 퇴근하기 직전 직장 상사에게 한 일들을 일일이 보고하고 마무리하지 못한 일 또한 보고해야 하는 상황. 그리고 직장 상사가 다음 근무를 잘 이어나갈 수 있게 만들어놓아야 하는 그 환경. 뒷장에서 학생 간호사로서 간접 경험한 인수인계가 아니라 신규 간호사가 되어 직접 경험한 인수인계, 그 네 글자의 무서움을 다시 서술할 기회가 있겠지만 그 당시는 간접 경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수인계 동안 목을 졸라 오는듯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곧 죽을 텐데 혈당을 측정해서 뭐해! 혈압을 측정해서 뭐해! 그냥 진통제나 줘!"

간호사는 당황한 기색을 보였으나 애써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그 환자는 혈당측정기를 든 간호사의 손을 내려치고는 더 심하게 소리를 질렀다. 숨기려고 노력했지만 병실 밖으로 나가는 그 간호사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나 역시 처음 접하는 상황에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왜 저렇게 화가 나 있는 것일까?’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라 알고 싶었다. 가뜩이나 숨도 가쁜데 저렇게까지 소리를 지르며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흉부 압박(Chestcompression)을 제외하고도 제세동술(Defibrillation)이나 다른 약물치료도 이 심폐소생술에 포함될 수 있다. 이를 시행하여 심장의 기능이 돌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통계적으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다고 한다. 그리고 이 처치의 심각한 부작용 중 하나는 가슴을 압박하면서 늑골이 부러지는 경우가 있고 그 부러진 늑골이 다른 장기를 찔러 장기를 손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간호사로서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알게 된DNR은 안락사와는 또 다른 개념이다. 환자가 가진 질병의 진행 상황과 전반적인 상태와 예후를 고려했을 때 심폐소생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와도 그 심폐소생술을 통해 회복을 할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질 때, 환자가 존엄하게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수 있도록DNR이라는 의사결정을 고려하게 된다.

사망 진단이 내려진80세 환자가 영안실에서 되살아난 이야기를 뉴스를 통해 본 적이 있다. 단언컨대 절대 흔한 일이 아님을 언급하고 싶다.

한국에서 일할 당시 이DNR에 대한 의사결정은 환자에게 응급상황이 발생한 순간 혹은 발생하기 바로 직전에 고려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이를 이미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 환자 본인보다 환자의 가족과 함께 결정한 순간들이 더 많았다.

미국에 와서 경험한 것은 환자 스스로가 미리 본인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미국인들이 사전의료지시서(Advancehealthcaredirective)라고 부르는(혹은 흔하게livingwill이라고도 부르는) 서류를 가지고 있다. 이는 본인이 질병이나 다른 원인으로 인해 본인 건강에 대해 더 이상 스스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 오면 어떤 중재를 원하는지에 대해 적혀있는 법적으로 유효한 서류다. 어떤 치료는 원하고 어떤 치료는 원하지 않는지 상세하게 적혀있다. 마지막 순간에 대해 의사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을 때 미리 결정해놓는 것이다.

병원에서 일하면서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들이, 가족들과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 한국에서는 의사결정 능력을 잃어버린 환자에게 어떤 치료들을 얼마나 더 제공해주어야 하는지에 대해 의료진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여전히 큰 과제로 남아있다.

아직도 누군가 내게 어떤 것이 맞는지 물으면casebycase(경우에 따라 다르다.)라고 말한다. 정해진 답이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적어도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DNR이 환자를 포기하는 것은결코아니다.’는 것이다.

실습 첫 날부터 한 환자의 임종을 통해 이런 윤리적인 문제와 갈등에 부딪히게 되면서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나는, 단순히 암기를 통한 공부가 아닌 실제 병원에서의 환자 간호와 관련지어 공부를 해야 할 필요성 또한 느꼈다. 아직도 진리라고 생각하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다.

아는 만큼 환자와 그 상황을 더 잘 공감할 수 있고 더 좋은 간호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좋은 간호사가 되기 위한 공부란‘경험하는 모든 지식을 환자 간호와 접목시켜 지금 배우는 것이 무슨 이유에서, 어떤 식으로 환자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를 계속 생각하며 하는 공부’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전에 했던 노력이 정말로 내 한계였는지, 노력의 끝이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실망스러웠던 그 결과가 한계가 아니었음을 믿고 싶었다. 이전과 다르게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였음에도 결과가 좋지 않다면 그 땐 결국내 한계는 거기까지라고 생각하며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남들 시선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 시기는 다른 누구와의 경쟁이 아니라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실망스러웠던 결과에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 번 일어나서 도전했고 미래에 좋은 간호사로서 다양한 지식을 바탕으로 훌륭한 간호를 제공하려는 분명한 목적의식을 갖고 최선을 다해 좋은 성과를 냈다는 사실이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 이후로‘아… 나는 죽도록 해도 이 정도구나.’가 아니라‘하니까 되더라!’로 생각이 바뀌었다. 이런 확신이 생기면서 삶은 조금씩 달라졌다.

"아동은 성인의 축소판이 아니다."

아동간호학을 배우면서 가장 처음 접한 말이다.

소아청소년기 환자들은 특수한 발달 양상과 시기적 특수성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돌보기 쉽지 않은 환자다. 그리고 가장 힘든 부분 중 하나는 병원 생활을 어려워하는 소아 환자들에 대한 공포감을 줄여주는 것과 아이를 환자로 두고 있는 부모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지켜보는 것이다.

동정과 연민으로 마음이 휘둘리다보니 본질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나는 미래의 간호사였고 연민의 감정이 아닌 공감을 통한 참된 간호를 제공할 필요가 있었다.

남학생 최초 간호학과 수석이라는 타이틀은 내게 꼭 필요했던‘성공’이었고, 이 서울대학교병원 입사 불합격은 그 당시 꼭 필요했던‘실패’가 아니었나 싶다.

긍정적이고 잘 웃는 편이라 환자나 보호자 분께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할 수 있고 책임감이 강하여 주어진 업무를 잘 수행할 자신이 있습니다.

질병을 치료해야 함에 초점이 맞춰져, 환자를‘하나의 인격체’가 아닌‘치료해야 하는 질병체’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같은 진단명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환자마다 호소하는 증상이나 나타나는 징후가 다르고, 그렇기에‘질병’을 치료한다고 생각하기보다 개개인의‘환자’를 치료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 질병은 어디까지나 질병일 뿐 환자는 한‘사람’으로서 존중받아야 하며 질병명이 그 환자를 정의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싶다.

가끔 일이 너무 바쁠 때 의사나 다른 간호사와의 의사소통 중 환자를 이름 대신 쉽게 병실번호나 진단명으로 지칭하고 싶은 유혹이 드는 때가 있다. 하지만 변화를 위해선 나 자신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믿기에 예나 지금이나 항상 환자를 이름으로 부르려고 노력한다.

불행하게도 병원에 입사 이후 어떤 부서로 배치될지에 대해서 간호사는 투입 직전까지도 알 수 없다. 간호사의 희망사항이나 선호도보다 병원 내 부서의 인력 필요도에 따라 배치가 되는 편이다. 쉽게 말하면 빈자리가 생기는 곳에 신입 간호사를 투입시키는 것이다. 물론 병원에서 갓 입사한 간호사들에게 어떤 부서에서 일하고 싶은지1차부터3차 지망까지 적도록 했으나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입사 동기들이 본인의 지망과는 크게 관련 없는 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미국 병원은 채용과정부터 많이 다르다. 미국은 병원 단위로 간호사 채용을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부서 단위에서 간호사를 채용한다. 그렇기에 간호사 채용에 있어서 부서장(수간호사, 미국의 경우Nursemanager)의 자율성과 권한이 높다.

학생 간호사로서 중환자실에서 실습할 당시에‘이런 곳에서 일하게 되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바로 그만둬야겠다.’라고 생각했었다. 실습한 그 중환자실만의 문제가 아니라 중환자실을 처음 접하는 학생 간호사들은 자주‘중환자실’이라는 공간이 가져다주는 그 차가움과 공포감을 경험하게 되고 이는 학생 간호사로서 감당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었다. 실제로 많은 기계들과 환자에게 부착된 수많은 선들을 보면서도 압도당하게 된다.

실망하기만 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다른 좋은 기회가 올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중환자실이라는 공간이 잘 맞는지 아닌지는 조금 더 경험해보고 생각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이때의 생각이 맞았음을9년이 지난 지금 알게 되었다.9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중환자실에서 일하고 있고9년 동안 다양한 부서에서 일을 하러 오라는 제의를 받았지만 그때마다 결국은 중환자실에 남기로 결정을 했다. 지금은 중환자실을 떠나는 것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중환자실이란 공간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남다르다.

이 일이 본인에게 잘 맞는지 아닌지, 그 부서가 본인에게 맞는지 아닌지 너무 섣불리 결정하지는 말라고. 그 자리에서 머물며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결론적으로 이 당시 중환자실로의 배치는‘Ablessingindisguise’(전화위복)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신입 간호사 생활? 조금의 과장도 보태지 않고 군대 이등병 생활과 비슷했다. 입사 전까지는 간호사의 위계질서가 이렇게 엄격한지 전혀 몰랐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왜 그렇게 엄격해야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군대에서 이등병 생활이 힘들었던 이유 중에 하나가 이미 유대가 탄탄하게 형성되어있는 그룹에‘뉴페이스’로 들어가기 때문에 겪게 되는 고립감 때문이었다. 나만 모르는 추억을 떠올리며 웃고 나만 모르는 사람을 언급하며 웃고 떠들 때마다 사람인지라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몸은 소속되어 있지만 정신은 소속되어 있지 않은 것 같은 이런 느낌은 이등병으로서만이 아닌 신입 간호사 시절에도 느낄 수 있었다.

느릿느릿하게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일을 하고 있는 내내 뒤에서 말없이 항상 심각한 표정을 짓고 계시긴 했지만 느린 것에 대해서는 크게 혼낸 적은 없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신규 간호사를 가르치는 입장이 되면서 느낀 것이지만 이‘기다림’과‘인내심’을 갖는 것이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배우는 사람에 대한‘기다림과 인내심’은 경시되기 쉬운 부분이지만, 배우는 사람으로서 그‘기다림과 인내심’은 정말 꼭 필요한, 배움의 질(Quality)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임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빨리 대충하는 것보다 느리더라도 정확하게 해야 합니다. 손이 느린 것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집니다. 하지만 일을 대충하는 습관은 경력 간호사가 되면 고치기 쉽지 않습니다. 처음 배울 때 정확하게 배우고 정확하게 수행하도록 하세요. 느리게 배우는 것에는 지적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원칙을 지키지 않고 일하는 일은 없도록 하세요."

환자의 생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더 꼼꼼하게 더 세밀하게 일해야만 한다는 것이 그날 선생님의 가르침이었다. 올바르지 못한 검사 수행으로 잘못된 검사 결과가 보고되면 그로 인해 환자에게 적절하지 않은 처방이 날 수 있고 그것은 오히려 환자를 해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는 의료인으로서 무해성의 원칙(Nonmaleficence)에 위반되는 행위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의료인은 환자에게‘해’가 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환자에게 가해지는 위험과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원칙(Principle)과 근거(Evidence)를 바탕으로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그날 선생님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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