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쓰는 간호일지.

일이 많아서 너무 바쁘고, 보너스 준다고 해서 엑스트라 시프트까지 해서 그랬는지 간호일지 쓴 것이 없구나. 좀 아까 오거서 님의 서재에서 CPR에 대한 글을 읽으니 우리 중환자실에서 CPR 두 번 하시고 살아나신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87세에 연세도 많은 분이지만, 똭 봐도 기골이 장대한 할아버지였다. (과거 시제로 말하는 이유는 내가 할아버지를 간호한 지 이 주는 넘었기 때문이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아님) 

할아버지가 (백인) 우리 병원 중환자 실에 오게 된 연유는 정말 의료사고라고도 할 수 없고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안타까운 경우였다. 할아버지는 집에서 워커를 이용해서 걸어다니셨는데 집에는 매일 간병인 같은 사람이 와서 할아버지의 수발을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워커를 이용해 걸으시다가 바닥에 깔린 카페트가 말리는 바람에 걸려 넘어지셔서 엉덩이를 다치고 머리를 다치셨다고 한다. 그런데 다행히 머리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엉덩이 뼈와 왼쪽 팔을 다쳐서 수술을 하셨는데 특히 왼쪽 팔의 수술이 덧나서 문제가 생겼다.

문제가 생기려니 그렇게 된 것 같은데 수술한 팔에 염증이 생기기 시작하자 그게 걷잡을 수가 없게 되고, 패혈증으로 진행이 되기 시작했다. 처음에 패혈증 증상이 생겨서 우리 병원 응급실에 왔다가 맥이 안 잡혀서 CPR을 하게 되셨는데 CPR을 하는 과정에서 (여기서 오거서 님이 밑줄 그으신 것 인용)


CPR 전담 팀이 득달같이 달려와 가슴을 압박하고 심장에 충격을 주고 아드레날린을 주입하는 등 중단된 생명을 되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다. 소생술은 뼈를 으스러뜨릴 만큼 격렬하다. 의사들은 환자의 부활을 소망하며 생명의 기운이 모두 빠져나간 몸에 맹렬한 공격을 퍼붓는다. 하지만 애초에 헛된 소망일 경우, 즉 나이가 너무 많거나 상태가 너무 악화돼 심장이 다시 뛰어도 사람답게 살기 어려울 경우, 그들이 초래하는 결말은 예외 없이 추하고 잔인하다. 존엄이라곤 찾을 수 없다.


여기서 "소생술은 뼈를 으스러뜨릴 만큼 격렬하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다. 기본적으로 얼마만큼 압박을 해야 심장에 그 힘이 전달되기 때문에 압박을 얕게 하면 기계가 더 하라는 경고를 준다. 그러니 깊게 세게 할 수 밖에 없다는. 어쨌든 그 과정에서 87살의 이 할아버지 가슴 뼈가 부러졌다. 그래도 소생 하셔서 우리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계셨다.


그런데 내가 맡게 된 날, 할아버지가 우리 중환자 실로 옮겨 온 지 2주가 거의 다 된 시점에, 오전 9시쯤 할아버지가 숨을 안 쉬고 맥박이 없어서 2번째 CPR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2번째에서도 역시 격렬한 CPR을 하니까 부러졌던 가슴 뼈가 더 많이 부러져서 내가 맡았을 때는 가슴 부분이 아주 심하게 움푹 들어가 있었다. 너무 안타까웠다. 더구나 이 할아버지가 정신이 있으셨을 때 우리 간호사들에게 얼마나 친절하고 젠틀 했는지 그 할아버지를 간호했던 간호사들이 눈물을 머금을 정도로 안타까워 했었다. 나는 CPR을 하고 소생 한 상태인 할아버지를 정성껏 간호한 것은 물론이고 또 숨을 안 쉬고 맥박이 없는 경우가 생길까 봐 할아버지 병실에서 거의 떠날 수가 없었고, 계속 해서 할아버지를 부르고 나를 쳐다보고 내 말을 듣도록 노력했었다. 


그날 밤에 할아버지(독신이라 본인의 가족은 없다)의 조카 딸과 조카 사위가 다른 주에서 페이스타임을 신청해왔다. 그 당시 할아버지의 맥박은 아주 높았고, 혈압은 아주 낮은 상태(이러가다 환자들의 맥박이 줄어들면서 죽게 되는 경우가 아주 많음)라서 마음의 준비를 할 것을 암시했었다. 그래서 조카와 조카 사위는 할아버지에게 계속 사랑한다는 말만 하고... 암튼, 그 순간 너무 슬펐었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할아버지의 의식이 돌아오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중환자실에서 일주일을 더 계시다가 DOU라고 중환자실 밑 단계의 치료하는 곳으로 이동이 되셨다. 할아버지가 이동이 될 때 거의 모든 간호사들이 할아버지 주변을 둘러싸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지금도 눈에 선 하다. 나도 그중 한 사람.


중환자실에서 죽어가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 할아버지처럼 좋아져서 가는 경우도 있는데, 간호사 경험 거의 일 년 중에 CPR 2번 받고 살아나가신 분은 처음이다. 대부분 첫 번째 CPR 받다가 죽는 경우가 70%니까. 30%는 살아난다고 해도 얼마 못 간다. 그래서 나는 CPR하는 거 완전 반대는 아니지만 (젊은 사람들은 희망이 있으니까) 나이 많이 들어서 CPR 받는 거 나는 반대다. 나도 더 늙으면 내 기록에 CPR하지 말라는 서류를 작성할 생각이다. 그것을 DNR 이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Do Not Resuscitate이라고 말 그대로 소생 시키지 말라는 의미이다. 그 DNR도 종류가 여러가지라서 DNR-DNI등등이 있는데 여기서 그런 얘기까지 할 건 아닌 것 같다.


어쨌든 누가 언제 왜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좀 전에 남편이 그러는데 남편의 친구인 경찰인 사람이 내일 심장 절제 수술을 받는다고 한다. 건강해 보이고 정말 튼튼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가슴에 통증이 있어서 응급실에 갔더니 benign tumor라고 암처럼 다른 곳으로 전이되는 것은 아니지만, 더 커지고 있어서 절제를 해야 한다고 했단다. 


내가 간호사로서 생활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건강에 대한 팁이라고 한다면, 예방이다. 모든 것을 다 예방할 수는 없지만, 어디가 아프면 병원에 가기를. 병이 더 커지는 경우를 대비해서. 암튼, 그 할아버지 성이 영어로 너무 쉬운 단어라 지금도 기억이 나는데 (HIPAA로 성을 여기다 쓸 수는 없지만;;) CPR 두 번 받고 살아나셨으니 이제는 의료 서류에 DNR로 고치시기를 바란다. ^^;;


Bee Gees - Stayin' 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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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0-28 17:22   좋아요 5 | URL
헉. 너무 무섭네요. 가슴뼈가 ㅠㅠ 고통이 얼마나 클까요. 상상도 안 되지만. 살아나셔서 다행이에요. 울라로님 간호하는 모습이 왠지 생생하게 상상이 돼요. 눈에 선해요. 라로한테 천직이라는 생각 들어요 힘들지만 너무 잘하고 계시는 모습 막 상상되는 거 있죠. 친절하고도 단호한 태도로 자신감 있게 마구마구 멋지게 그런^^
진짜 에너지도 대단해야 할 듯. 건강!

라로 2021-10-29 09:57   좋아요 0 | URL
모든 사람이 다 가슴뼈가 부러지는 건 아닌데 87세의 노인분이라 아무리 기골이 장대해도 부러진 것 같아요. 삶의 현장은 냉정하네요.ㅜㅜ 저는 가호사 되길 너무 잘 한 것 같아요. 제게 어울리는 건 모르겠는데 많은 것을 배워요. 꿈도 커지고,,,^^;;;; 좋은 말씀 해주셔서 오늘 일하러 가는데 힘이 될 것 같아요~~~!!😍🥰😘

오거서 2021-10-28 17:41   좋아요 4 | URL
CPR 은 인간 존엄을 떨어뜨린다는 글을 이미 읽어서 그런지 라로님의 활약이 돋보이는 것 같아요 ㅎㅎㅎ 라로님 받으세요, 양손 엄지척!!

라로 2021-10-29 09:59   좋아요 1 | URL
제 활약은 없는데~~~ 좋게 봐주시니 몸둘바를,,,^^;;; CPR은 주로 남자들이 하고 저희 간호사들은 약주입과 기록을 주로 해요,,, 지금까지 CPR 가장 오래 한 건 1시간이나 되었는데 그분은 가슴뼈도 부러졌지만, 결국 돌아가셨죠... CPR하는 거 보게되는 코드 블루는 그래서 두렵습니다.ㅠㅠ

오거서 2021-10-29 12:08   좋아요 0 | URL
CPR 후에 환자의 손을 살며시 잡아주는 것이 존엄과 건강 회복에 크게 도움된다고 하는데 라로님이 그런 역할을 잘 하실 것 같아요. ^^

책읽는나무 2021-10-28 17:49   좋아요 5 | URL
헉헉....긴박한 상황!!!ㅜㅜ
그래도 다행입니다.할아버지 소생 하셔서요.
라로님 정말 대단한 일을 하고 계십니다.
보너스 더 많이 받으셔야 할텐데요~
읽으면서 16 년 전 친정아버지 심근경색으로 심정지 와서 CPR 받으셨던 때가 생각 나 조금 아찔 했네요ㅜㅜ
암튼 우리 라로님!!!!
좀 더 힘내 주세요^^

라로 2021-10-29 10:01   좋아요 1 | URL
아!! 책나무님 아버님도 CPR을 하셨군요!!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의 심정이 어땠을지....ㅠㅠ
아버님도 고생 많으셨고, 가족들도....
늦었지만, 심심한 위로를 전합니다.ㅠㅠ
할아버지는 어떻게 지내실지 가끔 생각해요. 정말 대단한 경우라서요.
기본 건강이 그러고보면 중요해요, 생명에 운을 논하긴 그렇지만,,,
운도 아니 타이밍도 엄청 중요한 것 같아요.
오늘부터 3일간 연속으로 일합니다.
그동안 너무 많이 놀았어요.ㅎㅎㅎ
알라딘에 매일 글도 올리고,,ㅎㅎㅎㅎㅎㅎ
제가 알라딘에 글 올리는 날은 일 안 하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