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든이가 꼼지락거리며 만화를 그렸는데 이제 사춘기가 되면서 그림을 좀 더 입체적으로 그리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 같다. 아까 저녁 먹으면서 아빠에게 "손 그리는 거 알려주세요."라고 한다. 남편이 해든이에게 그럼 줄이 쳐 있지 않은 노트를 가져오라고 하니까 해든이가 찾다가 옛날에 내가 쓰다만 (보통으로 일기장 시작하면 오래 못 가는 일인이었음.ㅠㅠ) 몰스킨 일기장을 가져왔;;;
다른 공책을 찾아봐도 줄 친 노트는 많은데 줄 안 친 노트는 별로 없어서 결국 내가 쓴 일기 부분을 다 찢었;;;
남편이 그 위에 해든이가 보고 따라할 수 있도록 설명을 그리고 써 준다. 이렇게.
뒷장도 있는데 안 찍었음.
가만히 보고 있던 내가, "왜 손 설명만 해줘?" 하니까
다른 부분도 그리고 싶으면 물어보겠지. 물어보면 그때 해주면 돼. 안 물어보면 그만이고.
나라면 아이가 하나 물어보면 신나서 10개가 넘게 해줄 텐데,,,라고 생각해보니 나는 그래서 아이들을 자주 질리게 하는 엄마였던 것 같다. 지레 겁먹고 포기하게 하는 엄마. 하지만 남편은 또 너무 얄짤없는 아빠 같으다. 하나 물어보면 두 개는 해주면 안 되나?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보니 내 방식보다 남편의 방식이 훨씬 효율적이었다는. 밥을 먹일 때도 마찬가지. 나는 배가 터지도록 먹이는데 남편은 아이가 먹고 싶어 하는 만큼만 먹이고 안 먹으면 그만. 나는 안 먹으면 한 수저만 더 먹으라며 막 떠먹이는. 한 수저마저 먹여야 엄마로서 내 책임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어쩌면 나는 그동안 나를 위해 아이들을 그렇게 처묵처묵하게 했던 것 같다.
지난번 해든이와 우리 부부가 카탈리나 섬에 놀러 갔을 때다. 집으로 돌아오는 배를 타러 갈 때 짐이 많으니까 남편은 짐과 함께 우리를 선착장 앞에 내려주고 차를 다시 집에 주차하고 돌아오기로 했다. 그러면서 해든이에게 큰 트렁크를 책임지고 가지고 줄을 서라고 당부했다. 내가 들어도 되는데 어려도 남자라고 시키는 것인지.. 암튼, 그런데 이 트렁크가 예쁜 트렁크이긴 하지만 겉이 딱딱한 재질로 되어 있고 바퀴가 동서남북으로만 가지 부드럽게 회전이 안 되는 트렁크였다. 해든이가 트렁크를 끌고 가는데 그 위에 있는 더플백이 자꾸 떨어지는 거다. 그래서 안쓰러웠던 나는 해든이에게 엄마가 들 테니까 내가 드는 짐과 바꿔 들자고 했더니, 얼굴이 시뻘게 지면서 아니라고 하면서 더 빨리 가려고 용을 쓰는데 더플백은 자꾸 떨어지려고 하고,,나는 계속 엄마 달라고 하고,, 해든이가 사람들이 많으니까 막 참으면서 아니라고 하면서 더 빨리 가려고 하고. 결국 해든이가 떨어지는 더플백을 계속 올리면서 줄에 먼저 닿았다. 나는 해든이 옆으로 가서, "엄마 달라니까 왜 그랬어?" 그러니 이 녀석 도리어 나한테 화를 내면서, "내가 끝까지 할 건데 엄마 왜 자꾸 달라고 해?"라며 씩씩거린다. 해든이 씩씩거리는 거 첨 봄. 워낙 다정다정한 아이기도 하지만 이런 일이 없었으니까.
나는 나대로 막 서운해서 남편이 차를 주차하고 왔을 때 일렀다. 그랬더니 남편 왈, "그럴 땐 혼자 figure out 하게 놔두는 거야. 재도 이제는 사춘기야. 애기가 아니라고."
어쨌든, 해든이 교육(?) 제대로 해 본 적 없는 내가 뭘 알겠냐마는, 이제는 더 이상 아기아기는 아니라는 사실은 알겠다. 그 아기아기가 아닌 소년이 그림을 좀 더 입체적으로 그리고 싶어 해서 아빠에게 물어보고, 엄마가 좋아하는 오케스트라를 그만두지 않으려고 8학년에는 가장 먼저 시작하는 (7시 10분인가? 수업 시작) 조각 수업도 하기로 했단다. 오케스트라 안 하면 그렇게 안 해도 되는데 이 엄마 때문에 오케스트라도 하고 조각 수업도 듣고 하기로 했다는 얘기를 남편으로부터 듣고 좀 감동했다. 아이가 6시에는 일어나서 준비를 해야 된다는 얘기지만,,,,이 엄마도 오케스트라 포기 못해. 미안해 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