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사무실로 가기 전에 화장실에서 나온 남편을 안아주며 "오늘 하루도 잘 보내."라고 하는데

내 등을 쓸어주던 남편이, "오늘도 노브라?"라고 짐짓 놀란 척하면서 "요즘 여자들이 브라를 안 한다는 글을 읽었는데 너도 동참하는 거야?"라고 해서 집을 나서며 사무실까지 오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인터뷰 내용이 생각났다.


사람들이(여기서는 페미니스트들이라고 했다) 당신의 친구 엠마 왓슨이 <베니티 페어 Vanity Fair>의 잡지에서

사진 출처:  vanity fair


가슴을 너무 많이 노출하는 사진을(바로 위의 사진) 찍은 것이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배신이라고 비난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이렇게 말한다.

Feminists can wear anything they f***ing want!

Feminists can be able to walk down the street nude and be safe.

페미니스트들은 자신이 원하는 어떤 것이나 입을 수 있고, 거리를 나체로 걸어도 안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엠미 왓슨도 <가디언 Ther Guardia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It just always reveals to me how many misconceptions and what a misunderstanding there is about what feminism is,” she said.

"단지 얼마나 많은 잘못된 생각/의견/관점(misconceptions)과 페미니즘이 무엇인지에 대해 오해(잘못 이해) 하고 있는지 항상 드러내 보입니다."


Feminism is about giving women choice. Feminism is not a stick with which to beat other women with. It’s about freedom, it’s about liberation, it’s about equality. 

페미니즘은 여성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페미니즘은 다른 여성들을 비난하기 위한 도구(막대기)가 아닙니다. 페미니즘은 자유에 대한 것이며, 해방에 대한 것이고, 그리고 평등에 관한 것입니다. 


"I really don’t know what my tits have to do with it. It’s very confusing."

"저는 내 가슴/젖꼭지(의미로 더 많이 쓰임)가 그것(페미니즘)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I’m confused. Most people are confused. No, I’m just always just quietly stunned.”

“저는 혼란스럽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합니다. 아니, 저는 항상 조용히 할 말을 잃습(망연자실합)니다. "

 “They were saying that I couldn’t be a feminist and ... and have boobs.”

"그들은 내가 여성성을 드러내면서 (가슴을 가지면서)...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고....말하고 있었습니다."


기사 전문: https://www.theguardian.com/film/2017/mar/05/emma-watson-vanity-fair-cover-feminism

Disclaimer: 제멋대로의 번역이니 제가 하는 모든 번역이 정확한지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여자가 브라를 안 하는 것을 이슈화하는 것을 생각하니 떠오르는 드라마가 있다. 재미있게 본 한국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













드라마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역할인 우수지. 그녀는 브라 하는 것이 불편해서 브라를 안 하고 있는데 그것을 눈치챈 여자/남자 직원들이 그녀가 브라 안 하는 것에 대해서 뒷다마 까거나 음흉한 눈빛으로 쳐다 보는 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더구나 수지의 친구들마저, "너 또 브라 안 했어?"라고 타박/염려 하는 모습을 보고 나야말로 "just quietly stunned"였다. 물론 수지는 그것을 기회로 편안한, 개인의 신체를 살린 맞춤 브라의 사장님이 되지만.


페미니즘의 역사가 그리 오래되진 않았어도, 글로리아 스타이넘 같은 페미니즘 선각자들의 노력으로 이제는 많이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2017년의 엠마 왓슨의 케이스도 그렇고, 2020년 코로나 사태로 인해 여자들이 브라를 입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일이 왜 기사화가 되어야 하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이런 보이지 않는 폭력이 언제까지 계속 존재해야 하는 건지? 왜 꼭 하나만이 정답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


『길위의 인생』에 이런 구절이 있다.

캐나다의 로스쿨에서 우리는, 법은 보편적인 도구이기에 페미니스트들이 유연성을 기대해선 안 된다는 내용의 토론에 몰두하고 있다. 나는 유연성이 있으니까 재판관이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다면 정의는 컴퓨터에게 맡길 수도 있을 것이라고 논쟁한다. 대부분이 남성인 로스쿨 학생들은 어떤 예외도 위험하며 "파멸에 이르는 비탈길"을 만든다고 주장한다. 예외를 하나 만들면 그 수가 증가할 것이고, 법이 사실상 뒤집어질 것이라는 말이다.


나는 변호사가 아니다. 말문이 막힌다. 저 젊은 남성들은 청중 가운데 상식을 가진 다수를 대표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승리감으로 의기양양했다. 그때 청바지를 입은 젊은 여성이 뒤쪽에서 일어난다. 그녀는 조용히 말한다. "저기요, 제가 보아뱀을 한마리 키워요." 이 말에 청중들은 바로 조용해진다.


그녀는 이야기를 계속한다. "한 달에 한 번, 학교 해부 실험실에 가서 보아뱀에게 먹이로 줄 냉동쥐들을 얻어요. 그런데 이번 달에 새 담당 교수가 말하기를 "냉동 쥐들을 줄 수 없어요. 만약 내가 학생한테 냉동쥐들을 주면, 모든 사람들이 달라고 할테니까요." ....


그녀가 정곡을 찔렀다.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정의로운 법은 유연성을 가질 수 있다. 정의롭기 위해서 법은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  

pg. 196

정의롭기 위해서는 법도 유연성을 가져야 하는데 왜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유연성이 없는 것인지. 
나는 여자들끼리는 잘 지낼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부추기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직접적이든 글을 통해서든 절대로 응답하지 않았기에, 베티는 나를 겁내지 않았고 더 공격했다. 

 

pg. 237

많이 들어온 얘기지만 "여자들이 여자들의 적"인 것인 것인가. 글로리아 스타이넘도 다른 여자로부터, 더구나 평범한 여자가 아닌 베티 프리던에게 공격을 받았다니...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분명하게 말한다. "우리 여성들은 서로에게 어머니가 되어 주어야 한다."고. 그러니까 여자는 여자에게 적이 아니라 서로의 어머니가 되어 주어야 한다는 것. 서로 보호해주고, 감싸주고, 격려해주고, 사랑해주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귀 기울여 들어주고, 응원해주고, 물론 잘못하면 따끔하게 혼내주기도 하는. 배격하거나 비방하는 것이 아니라.


52년 전에, 그러니까 내가 2살이었을 때인 1968년 200여 명의 여성들이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가 열리던 뉴저지에 있는 아트란틱 시에서 여성 해방운동의 일환으로  브라를 벗어 태우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여성들이 그 자리에서 브라를 벗어던져 태우던 통은 이름하야 자유 쓰레기통 freedom trash can.


사진 출처: When Women Inspire


52년 전에 브라를 집어던져 태웠는데 아직도 브라를 안 입는다고 뭐라고 하다니. 뭐라고 하는 사람들이 페미니스트이든 아니든 한숨. 더구나 브라를 입지 않고 지낸다고 기사가 나오고. 남자나 아이들이 하루 종일 잠옷을 입고 지낸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그런 기사도 나오는 것이 아니고. 


2019년 11월에 방송된 내가 좋아하는 라디오 뉴스 쇼의 게스트는 글로리아 스타이넘이었다. 방송 내용을 대강 옮기면, 

"60년 전(지금은 61년 전)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여성운동을 도왔고, 플레이보이에 버니(분장을 한 여성들의 성을 상품화하고 이용)로 위장을 해서 취재하고 기고한 사건은 유명하며, Ms. 잡지를 창간했으며, 여성 운동의 선각자로 수십 년간 여성 운동을 이끌어 오고 있으며, 올해 그녀의 새로운 책이 출판되었습니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을 소개합니다."로 시작하는 방송을 듣는데 그녀와의 인터뷰는 고작 5분도 안 되는 듯.

책은 <The Truth Will Set You Free, But First It Will Piss You Off>. 아직 번역이 안 되었나?

작년에 이 책이 나왔는데 그녀의 나이는 당시 85세!!

사진 출처: 뉴욕 타임즈

그리고 여전히 이렇게 건강해 보이고 멋지다.


사회자가 "당신은 어떻게 미국 여성 운동을 이끈 지도자가 되었나요? 누가 하라고 시켰나요? 아니면.."이라고 하는데 그녀가 말한다.

글로리아: 아니요, 내가 여성 운동을 이끈 지도자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 당시 서로의(여성들) 필요성에 의해 아주 커다란 혁신이 일어났고 나는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일을 했을 뿐이에요. 나는 기자였기 때문에 그 운동에 대한 기사를 썼고, 여러 곳에서 나에게 그것에 대해 말해달라고 했고, 그러면서 이 운동의 필연성과 열정이 얼마나 깊고 널리 퍼져있는지 이 길을 통해 그 진실을 알게 되었죠.


얘기를 듣고 있는데 사회자가 이런 질문을 한다.

사회자: 당신의 지금까지 길고 오래된 커리어 중에서 한 의미 있는 순간에 대해서 알게 되었어요. 당신이 원더우먼을 구하는 역할을 했다면서요?


글로리아: 네, 원더우먼은 제가 자랄때 아주 좋아하는 캐릭터였어요. (그녀의 나이가 지금 86세라고 하는데 나도 어릴 적 내가 자랄때 가장 좋아하는,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원더우먼이다!!! 반가움에 눈물 쭉) 그런데 내가 Ms. 잡지를 창간할 당시 원더우먼은 그녀의 모든 마법의 힘을 잃었어요. 당신도 알다시피 1950년대는 원더우먼을 포함해서 모든 여성에게 힘든 시기였죠. She had become kind of like a carhop. 그녀는 일종의 차로 음식을 날라주는 웨이트리스처럼 되어 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 원래의 모습을 Ms. 잡지에 싣고 그녀가 모든 파워를 지닌 채 다시 돌아오게 해 달라는 로비를 해주기를 독자들에게 요청했습니다.

사진 출처: Pacific Standard


우리의 요청대로 많은 독자들이 원더우먼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게 해 달라는 편지도 쓰고, 로비도 하고 그래서 결국 만화책 출판사는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다시 부활시켰습니다. 그때 만화 출판사의 최고 경영자는 나(글로리아)에게 전화를 해서, "OK. OK. 그녀는 모든 마법의 힘을 되찾았습니다. 그녀는 날 수 있어요. 사람들이 진실을 말하게 하는 채찍도 갖고 있고, 누비아라는 이름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마존 자매도 있습니다. 이제 나를 내버려 둘 수 있어요?"라고 했어요.


나도 웃고 방청객들도 웃었다. ㅎㅎㅎ


사회자: 잠깐만! 결국 당신의 영향력으로 1970년대 린다 카터가 주연한 원더 우먼이 나오게 된 거예요?

글로리아: 음, 정확히 TV 쇼는 아니에요. 하지만 그녀는 적어도 그녀의 힘을 되찾았죠!

사회자: 저는 그것이 (TV 쇼 원더 우먼이 나온 것) 당신의 잘못이라고 믿을 겁니다 그리고 12살짜리 제 딸이 당신께 감사해합니다.

53살인 저도 글로리아 당신께 감사합니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모든 마법의 힘을 가진 상태의 원더우먼을 부활시켰지만, 초기의 원더우먼에게는 약점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아마존 여성이 남자가 팔찌에 수갑/체인을 채우는 것을 허용하면 남자들이 지배하는 세상의 평범한 여성들처럼 약해진다는 아프로디테의 법이라나.

사진 출처: Comic Vine




브라를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가 여전히 이슈가 되고 있는 세상이다. 브라는 아직도 우리에게 남자들에 의해 채워진 수갑 같은 아프로디테의 법인가? 다시 브라를 태워야 할 때가 온 것인가?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oonnight 2020-04-22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엠마 왓슨 예쁘군요 ^^ 글로리아 스타이넘에게 나 좀 내버려두라 한 최고경영자 이야기에 저도 웃었어요ㅎㅎ

라로 2020-04-23 01:22   좋아요 0 | URL
너무 이쁘죠!! 더구나 저 가슴 라인 어쩔거에요!!^^;;;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말을 조근조근 하시는데 재밌게 표현을 하셔서 그런지 다들 아주 크게 웃더라구요.
글로리아 스타이넘 같이 강한 여성, 멋진 여성, 지혜로운 여성,,,꿈입니다요~.^^;;;;

곰곰생각하는발 2020-04-22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브라를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 것도 사실 차별의 결과이기도 하고 학습된 결과이기도 하죠. 구한말 사진 찾아보면 아늑들이 일부로 가슴만 노출하고 다니는 사진 많습니다. 가슴을 성적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일종의 여성 상품화의 결과인 셈이죠. 처음에는 이상하게 보일지는 모르나 나중에는 아무 느낌도 안 날 겁니다. 남성의 상체 누드를 성적으로 소비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언젠가 그럴 날이 오겠죠..

라로 2020-04-23 01:2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는 학습된 결과라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어쩌면 가슴이 안 이쁜 여성들의 파워로 그런 결과를 가져왓을까요? (ㅎㅎㅎㅎ소설을 써봤습니다.ㅋㅋ)
여성의 성 상품화,,,이제는 변했으면 좋겠어요. 어제도 뭔가를 검색하는데 정말,,,,할말을 잃게 만들어요. 자본주의. 암튼,,,,조그만 페이퍼하나 올리고 자꾸 일을 크게 벌리는 것처럼 주제가 커지네요.ㅎㅎㅎ
언젠가 그런 날이 올 때를 기대하며,,,곰발님과 건배!!^^

2020-04-22 1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4-23 0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20-04-23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인터뷰와 원더우먼에 대한 이야기 잘 읽었어요!

누군가 알려줘서 노브라를 비난하는 한 여성 유튜브 운영자의 영상을 보았어요. 남성인 제가 봐도 말도 안되는 소리를 무척 불쾌하게 떠들면서 노브라가 문제라고 선동하더라구요.

사실 본인이 입던 안 입던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저도 생각은 하지만, 막상 내 가족이 그러면 솔직히 신경이 쓰일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저와 연애하던 시절부터 애들 엄마는 여름에 브라를 안 하고 다녔는데, 그 자리에 주머니가 있거나 소재가 두툼해서 겉으로 표시가 나지 않는 옷을 입으면 괜찮았지만, 얇은 옷을 입으면 어쩔수없이 신경이 쓰이긴 하더라구요.

실은 저도 여름에 티셔츠 하나만 입고 돌아다니는데, 그러면 당연히 젖꼭지가 두드러져 보이거든요. 실제로 몇몇 여성들이 제 젖꼭지가 솟아오른 모습을 지적하며 너무 야하다고 하길래 그래서 어쩌라는 건가 싶었는데, 이건 여성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요.

머리로는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는데, 실제로 모두가 받아들이는 측면에서는 쉽지 않은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라로 2020-04-24 10:39   좋아요 0 | URL
사실 저도 이제서야 노브라를 하고 다니지만 (자가격리 잖아요!!^^;;)
학교 다니거나 그러면 꼭 브라는 하고 다녀요. 하지만 잘 때는 편하니까 노브라로 자고요.^^;;

어떤 남자들은 부인이나 여친이 노브라 하는 것을 은근 좋아한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그러고보면 뭐든 적당히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사실 노브라가 남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안 보고 싶은데 안 볼 수 없게 만드는 상황도 있잖아요. 여기는 한국보다 더 그런 상황이 심각하죠. ^^;;

제 남편은 그래서 그런가 여름에도 꼭 속옷을 입고 겉옷을 입더라구요. 그러니 이 모든 상황이 시쳇말로 케바케이고 사람 나름인 것 같아요. 그래서 쉽지 않은 문제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