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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대 가는 길 - 하늘과 땅을 함께 배우는 여행길
전용훈 지음, 심보선 사진 / 이음 / 2008년 7월
평점 :
<천문대 가는 길>(이음 펴냄)을 읽다가 만 원 짜리 한 장을 꺼내 지폐의 뒷면을 새삼스럽게 봤다.지폐 뒷면에 보현산 국립천문대의 구경 1.8m짜리 천체망원경이 혼천의와 함께 도안되어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우리나라 국립천문대의 주망원경이라 실었으려니' 했었던 그 천체망원경이다.
프랑스 텔라스사를 통해 30억 원에 들여온 이 망원경의 렌즈 구경은 1.8m. 국내 가장 큰 규모로 보현산 정상의 국립천문대(해발 1천124m)에서 영천 시내에 떨어진 100원짜리 동전 2개를 분리해 볼 수 있을 정도라는 소문이다. 대단한 성능이다. 하지만 이 망원경은 한참 동안 제 구실을 하지 못했었다.
이 망원경이 '첫 빛 받기'를 하고 전 국민들에게 공표한 것은 1994년 7월. 설치 초기부터 대형 망원경의 중요한 부분인 전자부(구동제어)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에러를 되풀이 했다. 이에 제작사에 여러 차례 문의하여 바로잡아보고 제작사의 기술자까지 여러 번 다녀갔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에러'는 몇 년 동안 계속됐다.
결국 망원경을 쓸 사람들, 즉 보현산의 천문학자들이 망원경 수리에 팔을 걷고 나선다. 그들은 망원경의 핵심이랄 수 있는 전자부를 자체적으로 새로 구성, 구동 알고리즘을 만들어 제작사의 전자부를 완전히 대체해버린다. 이런 대대적인 수술로 더 이상의 에러는 나지 않아 오늘날 우리의 명실상부한 국립천문대의 주 망원경으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현재 이 망원경은 1년 동안 세계 유수의 과학 잡지에 실리는 수십 편이 넘는 논문을 생산한다. 이 망원경으로 지금까지 발견한 새 별은 10개나 된다(첫 별에 보현산, 나머지에는 최무선, 이천 등 한국과학 선각자들의 이름을 붙였다). 이후 몇 사람의 손을 거쳐 성능과 기능이 더욱 보강, 국내외 저명한 천문학자들이나 천문학 전공 학생 등이 사용허락을 받고자 높은 경쟁을 할 정도이다.
저자가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별보는 일'이 '별 볼일 없는 일'로 생각되고 있는 것이다"라고 표현할 만큼 '우리의 천문관측 여건 및 대중화'는 선진국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선진국 같으면 망원경을 설치하고 운용하는 팀과 그 망원경을 이용해 연구를 하는 팀이 따로 있지만, 보현산 천문대의 연구원들은 이 둘 다를 모두 할 수 있는 팔방미인이 돼야만 하기 때문이다.
천문학자로서 자신의 연구를 하고 싶지만 우리의 여건은 그걸 쉽게 허락하지 않는단다. 스패너를 들고 나사를 돌리고, 전자장비의 납땜을 하거나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하기도 한다.
여름마다 해야만 하는, 1.5톤에서 2톤에 이르는 망원경 주거울 코팅도 연구원들 몫이다. 우리나라 과학 연구의 열악함을 보여주는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이런 과학 현실이 별도 달도 없는 밤하늘처럼 어둡다고 할까. 하지만 <천문대 가는 길>에서 만난 천문학자들의 이와 같은 집념과 열정의 고군분투는 하늘 방향의 지표가 되는 북극성처럼, 혹은 유독 밝은 샛별처럼 밝게 빛나고 있는 듯했다.
"이 망원경(소백산 천문대의)이 우리나라 천문학이 자생력을 갖추도록 하는데 제1주인공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대견해 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소백산의 망원경은 아직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살아있는 기기이지만 외국에서는 같은 수준의 망원경 중 현재 제 구실을 하는 망원경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중략) 망원경은 아직도 1년에 SCI급 세계 유수 학술지에 실리는 5~6편의 논문을 생산하고 국내 전문잡지에 실리는 논문까지 약 15~16편의 논문을 생산하고 있다. 동급의 망원경으로 세계 최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국에서는 소백산 망원경을 통해 이루어지는 변광성 연구를 '한국식 연구'로 인정하고 있다… 한국의 특장 분야로 인정한다고 한다. - 소백산 천문대 편에서
우리의 어려운 천문관측 현실에 보현산 국립천문대와 더불어 천문관측의 듬직한 보금자리 역할을 하는 곳은 소백산 천문대. 우리의 천문관측 첫발이 시작된 곳으로 렌즈구경 61cm 반사 망원경이 주망원경이다.
소백산에 국립천문대가 설치된 것은 1974년 7월, 이 망원경은 그해 12월에 도입되었다. 서울대학교에 천문기상학을 개설(1958)한지 16년만의 일이다. 근대 천문학이 망원경을 사용한 연구라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 열악한 출발이다. 첨성대를 비롯하여 조선시대 수많은 과학기술을 자랑하는 후손으로서 너무 때늦은 감이 있는 부끄러운 출발이다.
그런데도 국제천문연맹(IAU)이 '짧은 기간에 이룩한 대단한 천문관측의 성과'라고 평가할 만큼의 우수한 천문관측 연구 성과들을 어떻게 내고 있는가. 이는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미국 애리조나 주 레몬산 천문대에 홀로 서 있는 소백산 천문대의 쌍둥이 망원경 덕분이다.
이 망원경은 우리나라 대덕천문과학원 연구실에서 인터넷을 통해 원격제어 컨트롤, 관측 돔을 열고 소백산 천문대가 쉬는 시간의 천체를 관측한다. 레몬산 망원경이 이렇게 관측한 결과를 대덕천문과학원 컴퓨터에 보내오면 소백산에 전송, 천문학자들이 받아 연구를 한다. 우리와 밤낮이 정반대인 미국의 자연조건을 적극 활용, 그 효과를 극대화한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구경 61cm급의 망원경이 우리나라 대표 망원경이라는 사실을 알고, 왜 우리나라에는 구경 5m, 10m급의 대형 망원경이 없느냐고 묻는다. 사실은 한국과 같은 계절풍 기후대에 속한 지역에서는 소백산 망원경보다 큰 망원경이 효율적이지 못하다. 더 큰 망원경이 있다고 해도 특별한 목적이 아니라면 제대로 된 성능을 발휘하기 힘든 것이다. 망원경이 크면 관측에 유리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그 망원경이 놓인 곳의 기상조건을 거의 고려하지 않을 때의 이야기다. 국내의 기상 조건에서 소백산 망원경이나 보현산 천문대의 구경 1.8m 망원경보다 더 큰 망원경은 그 쓸모가 크지 않다. - 책속에서
우리의 대표 망원경은 보현산 국립천문대의 1.8m 망원경과 소백산 천문대의 61cm 쌍둥이 망원경. 가까운 일본의 8.4m. 남아프리카에 설치 된 구경 11m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우리의 이 망원경들은 부족한 비용과 우리의 실제 관측일 수(170~190일 가량)를 고려한 천문학자들의 적극적인 아이디어로 세계 선진국들의 규모 큰 망원경들과 당당하게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천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국내 30여 군데의 천문대 중 천문대 여행을 일부 전문가들이나 천문관측에 뜻을 둔 사람들이나 꿈꾸는 것쯤으로 어려워하는 일반 독자들이 쉽게 갈 수 있는 전국 각지의 천문대 10곳을 선정, 천문관측과 관련된 별별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천문대가 주최하는 일반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나 축제 등의 프로그램들도 자세히 소개한다. 역사까지 전공한 저자는 '천문대 가는 길'에만 목적을 두지 않는다. 천문대 가는 길에 인접한 고장의 역사의 현장과 그곳의 사람들을 만나 들려주는 이야기들 또한 간결하면서도 정서적이라 책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별이 쏟아지는 마루'를 뜻하는 '별마로 천문대'가 있는 영월에서는 김삿갓이 묻힌 곳과 단종의 슬픔을 대신 울어준 소나무 앞에서 김삿갓과 단종의 비애를 만난다. '금구원 조각공원 천문대' 가는 길에는 만권의 책을 켜켜이 쌓은 형상인 채석강과 유서 깊은 내소사가 있다. 김해 천문대 가는 길에 만나는 허황옥과 쌍어문의 비밀도 반갑다.
경기도 양주 '송암스타스밸리'는 국내 내로라하는 한 기업가가 차곡차곡 돈이 쌓인 말년에야 돈의 제대로 된 쓰임새를 깨달아 조성한 곳으로 한때 조각공원으로 유명했던 장흥에 있다. 김해 천문대의 학생들과 연계한, 시민을 찾아가는 천문관측 프로그램도, 대전시민천문대의 별 음악회에 거는 기대도 크다. 서귀포 천문과학문화관 가는 길에 들려주는 조선시대 노인성 관측 이야기도 흥미롭다.
이 책에는 저명한 과학 잡지에서나 볼 수 있는 신기한 천문관측 사진들이 많다. 그 사진들을 찍은 사람은 아마추어 천문가인 고 박승철씨. '한국 근대 천문사에 신기루 같은 존재인 그의 이야기와 함께 책 전반에 실린 그의 사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탐내는 사람들이 있을 법'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만큼 그의 이야기와 사진들도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본문도 좋고 부록까지 좋은 책들이 있다. 이 책이 그렇다. 이야기마다 뒤편에 별도의 부록을 실었는데, 별자리 여행을 위한 관측 장비와 사용법부터 북극성으로 하늘 찾기, 별똥별 헤아리기, 밤하늘의 별을 쉽게 관찰할 수 있는 별지도, 사계절 별자리, 탄생 별자리들의 재밌는 점성술 이야기 등, 이 부록들 참 마음에 든다. 천문대를 향하지 않아도 일상에서 밤하늘 보기에 도움 될 그런 부록들이다.
1995년 봄에 이 책 두 번째 주인공으로 개인 천문대 1호인 금구원 조각공원 천문대에 간적이 있다. 조각공원의 조각품들을 만난 우리는 천문대 관측 돔 앞에서 몇 번 망설이다가 스스로 쭈뼛해져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거대 망원경으로 별을 볼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와 설렘으로 호기심은 많았지만 전문가들이나 갈 수 있는 곳이란 선입견에 위축되어 문이 활짝 열려 있음에도 선뜻 들어서지 못한 것이다.
<천문대 가는 길>은 천문대 여행서로는 국내 첫 책이다. 책의 맛을 최대한 살리고자 저자와 출판사 편집자, 사진가가 동행하여 쓰고 만든 책이라고 한다. 이 책이 좀 더 일찍 나왔다면 눈앞의 천문대에서 발길을 돌린 후 오랜 세월 후회하는 일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하루라도 빨리 자리를 박차고 천문대 가는 길에 나섰으면 한다. 그리고 그곳에 이르는 길가에서 강물과 들꽃과 나무와 절터와 석탑들을 함께 돌아보기를 바란다"는 저자의 바람이 나의 소망이 되고 있다.
망원경 하나 사서, 올 여름 들어 부쩍 "저건 내별!"이라며 밤하늘을 자주 보는 사춘기 딸아이와 함께 밤하늘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럼 유년기에 자주 보던, 나이를 먹으며 잃어버린 별똥별을 볼 수 있을까.
저자에 의하면 "달빛이 없는 캄캄한 밤이라면 별똥별을 잘 볼 수 있다. 맑은 밤하늘을 10~20분 정도만 바라보면 한두 개의 별똥별은 꼭 볼 수 있다. 맑은 밤하늘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별똥별은 매일 지구에 2500만 개나 떨어진다. 하루 동안 지구에 떨어지는 별똥별의 총량은 약 100톤이나 된다고 한다"고 할 정도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