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환경의 수수께끼 - 자연이 내게 던진 33가지 질문
조홍섭 지음 / 고즈윈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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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레즈비언 갈매기는 인간의 생명과 직결된다

레즈비언 갈매기가 늘고 있다고 한다. 무엇이 갈매기들을 비정상적인 짝짓기를 하게 만드는가? 레즈비언 갈매기를 따라가 보니 놀랍게도 인간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었다.

어느 날 우연히 둥지를 틀고서도 알을 낳지 않는 갈매기들이 관찰됐다. 무엇이 문제인가. 자세히 살펴 보니 암컷끼리 짝짓기를 하고 있었으며, 수컷은 짝짓기에 대한 의욕을 상실하고 자포자기하고 있었다. 수컷에게 종족 번식을 방해한 물질은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을 흉내내는 환경 호르몬이었다.

갈매기의 생식을 방해하는 이 물질의 원인은 오래 전에 살포한 농약에 있었음이 최근에야 밝혀졌다. 그럼에도 우리들의 농약 살포량은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늘고 있다. 기름지고 풍성한 먹을거리, 그 속에는 결국 인간의 파멸을 자초하는 물질들로 가득 차 익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50년 전에는 환경 호르몬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지구 온난화, 오존층 파괴와 함께 지구촌의 가장 심각한 환경 문제로 떠올라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먹이사슬의 가장 기초자에게 스며든 농약은 가장 위단계인 고등동물과 사람에게 스며들어 차곡차곡 농축되고 있다.

환경 호르몬 중 사람에게 가장 치명적인 다이옥신은 우리 몸에 한 번 들어오면 어지간해선 빠져 나가지 않는다. 빠져 나가는 데 수십 년이 걸리는 이 무서운 물질은 우리 몸 속에서 터를 잡고 있으면서 기형아 발생과 각종 암을 유발시킨다.

어느 날 우연히 발견된 레즈비언 갈매기 문제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느껴야 하는가.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저자와 함께 따라가 보는 <생명과 환경의 수수께끼>는 우리 인류에게 가장 긴박하고 절실한 것들이었다.

'생물의 맥도널드화'... 각국마다 외래종과의 치열한 싸움 중

생물이 '맥도널드화'되고 있다고 한다. 외래종 퇴치에 정부나 환경단체들이 나서면 혹자들은 말한다. 외래종이라고 모두 없애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물론이다. 그러나 정작 더 큰 문제는 생물의 맥도널드화다. 어느 나라에서든 돈만 지불하면 똑같은 모습의 햄버거를 만날 수 있듯 세계 어디를 가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난 획일화된 생물만 만나게 된다.

멸종되는 것들 중에는 인간들의 남획으로 사라지는 비극적인 도도새도 있지만 외래종으로 밀려나고 도태되어 사라지고만 생물군들도 많다. 지역마다 기후가 다르듯 고유 생물이 나름의 번식과 생존을 해야 하는데, 어느 날 날아든 외래종의 강한 생명력은 토종들의 씨를 말려 버리는 것이다.

국제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나라마다 외래종의 침투가 활발해지고 토종의 씨를 말려나가면서 그 나라의 커다란 이슈가 되고 있다. 자연과의 싸움은 워낙 변화 무쌍하고 뜻밖의 현상이라 잡기란 그리 만만치 않다. 손을 털고 있는 듯하면서도 은밀하게 움직이도 있는 자연을 인간들은 결코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흔하게 보는 하늘소는 미국의 단풍나무와 느릅나무를 훼손하고 있어서 미국 사회의 큰 이슈다. 반대로 우리 나라에서 문제 거리인 청거북이나 황소개구리, 돼지풀들은 북미산이다. 뱀과 뱀장어를 합해 놓은 물고기 '드렁허리'는 나라마다 긴장시키고 있는 공통적인 위협 존재다. 우리의 토종들이 외국에 나가 활개친다고 좋아할 일만도 아니다. 뒤집어 보면 우리의 절실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가장 큰 숙제 환경과 생태계

<생명과 환경의 수수께끼>는 오늘 날 인류에게 가장 절실한 환경 문제와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생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연이 던진 33가지 질문이란 주제어 설명이 있는데, 그간 우리 사회는 물론 국제적으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던 문제들이다.

나라마다 기후 조건이나 환경, 생태가 다르다. 따라서 그 나라의 환경 문제는 그 나라에서 그 나라 사람에 의하여 관찰되어야 하고 말해져야 한다. 그리고 그 나라의 고유한 생태가 모범이고 연구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물론 외국에서 나온 저작물이나 연구서들도 소중하고 가치가 있지만 정작 우리의 환경을 책임져야 하는 것은 우리들이다.

그래서 이 책은 반갑다. 우리의 환경에 대한 가장 중요한 문제들과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대안을 담고 있다. 물론 외국의 사례들을 탐구하고 설명하고 있지만, 저자가 기본으로 두고 있는 것은 우리의 생태에 대한 성숙한 관찰이다. 그리고 우리의 생태 환경에 대한 지극한 염려와 애정이다. 사실 환경 문제만큼은 지구촌 전체가 공동체적으로 합심하여야 할 문제다.

오늘 날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환경과 생태계에 대한 것이다. 지난 날 인류의 발전이 가장 큰 관심이었다면, 이제는 눈부신 발전의 부산물로 인류가 떠안고 있는 자연 생태계의 문제들이 시급하게 제기되고 있다. 자연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만만찮다.

미국을 강타한 허리케인처럼 자연은 워낙 변화무쌍하고 예측을 할 수 없어서 확실한 대안이란 없다. 그렇다고 마냥 손 털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사람 사는 자연이 아름답다!"... 자연은 지키고 보호해야 할 저 바깥의 어떤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더불어 살아야 할 우리의 집 자체다."- 조홍섭

<생명과 환경의 수수께끼>가 다루고 있는 내용은 대략 이렇다.

▲공공의 적 황소개구리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소의 트림이 지구의 온난화 그 주범이라고 하는데 맞는 말인가? ▲호주는 140년 동안 토끼와의 전쟁 중이다? ▲수도권 2천만 시민의 식수를 책임지고 있는 것은 놀랍게도 물벼룩이라고 한다. ▲인간을 만난 지 150년만에 멸종하고 만 도도새의 비극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50년 후면 물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투발루 공화국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를 살리는 밥상은? ▲환경파괴의 대명사 시화호, 그럼에도 더 큰 실수를 자초한 새만금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어서 몇 가지만 덧붙여 보면 이렇다. 목록만으로도 솔깃해지는 독자들이 많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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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사랑 2005-10-25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화호와 새만금'만으로도 솔깃해져요. 공부하는 자세로 읽어야 겠네요.
 
아이 읽기, 책 읽기
조월례 지음 / 사계절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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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길이 있다고? 에헴 잘 골라 읽어야지"

서점에서 아이와 부모가 책을 놓고 실랑이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아이는 그 책을 사겠다고 떼를 쓰고, 부모는 다른 책을 고르라고 잔소리 한다. 아이들은 우선 재미있는 책에 눈이 가고, 부모는 이왕이면 학습에 도움이 되는 책을 골랐으면 한다.

아이들이 고르는 책이란 어른의 눈으로 보면 허접하기 이를 데 없다. 아이들은 만화에 왜 그렇지 끌리는지 모르겠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데 어디서 그렇게 잘 골라내는지, 아이가 고른 책을 보면 돈이 아깝다는 생각도 든다.

이왕이면 학교 공부에 도움이 되는 책을 고르지. 요즘에는 저마다 논술, 논술하는데 글씨도 좀 많이 들어 있는 위인전이나 과학책을 고르면 얼마나 좋아. 아니 기껏 본다는 것이 순 뻥 같은 이야기에, 설렁 설렁 한 시간이면 넘기고 말아버릴 그런 책을 골라?

부모와 아이의 책을 둔 실랑이는 어른에게는 사소한 문제겠지만, 아이에게는 '책을 더 가까이 하는가, 아예 멀리하게 만드는가?'의 중요한 계기가 된다.

아이들은'부모나 선생님이 골라 주는 책들은 재미없는 것들이 많다. 재미없는 책을 보느니 컴퓨터 게임이 훨씬 재미있고 좋다'고 생각한다.

자, 내 아이에게 어떤 책을 권해줄 수 있을까? 내 아이가 책이 좋아 정신없이 빠지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책 속에서 삶의 길을 터득하게 하는 그 길을 어떻게 찾아줄까?

우리아이에겐 어떤 책이 필요할까?

'북 스타트운동','도서인증제', '아침독서운동'등으로 아이들의 눈을 책으로 돌려보려고 해보지만 아이들을 더 강하게 유혹하는 것은 컴퓨터게임과 텔레비전의 화려한 영상이다.

요즘에는 지역도서관이나 어린이 전용서점, 아이들 책읽기 관련 동호회도 활성화되고 있지만 대부분 부모들에게 아이들 책읽기는 여전히 큰 숙제다.

더구나 최근에는 논술과 함께 학생들의 책읽기는 점수와 직결되어 버렸다. 가뜩이나 책을 멀리하던 아이들이 이젠 강박관념과 함께 책을 보기만 해도 지긋지긋해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냥 둘 것인가?

조월례의 <아이읽기, 책읽기>는 아이들 책읽기의 중요성을 아는 교사와 학부모에게 도움을 줄 만한 책이다.

1부는 많은 부모들이 혼동하고 고민하는 나이별 책읽기에 대한 글이다. 유아기에서 청소년기로 접어드는 고학년에 이르기까지'어떤 책을 어떻게 골라야하는지' 지금 우리 사회의 현실에 맞게 자세하고 쉬운 말로 설명해준다.

연령별로, 학년별로 제시하고 있지만 다만 참고삼으라고 말한다. 아이들마다 지적능력이나 관심, 흥미가 다른 만큼 '내 아이가 그 기준'이기 때문이다.

2부에서는 갈래별로 책을 선택하는 기준과 아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을 다루었다. 옛이야기, 우리 창작동화, 다른 나라동화. 동시, 글모음. 인물이야기, 놀이, 노래, 전통문화, 환경, 도감, 만화 등 아이 책 전반에 대하여 실었다.

책 목록을 따라가 보니, 아이들 책이지만 부모인 나도 읽고 싶은 책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요즘 아이들이 부러워진다. 이렇게 좋은 책이 많은데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이 좋은 책들을 아이에게 읽게 하고 있는지 한편으로 아쉬워진다. 이 책을 펼치게 될 부모나 교사들은 여기에 공감할 것이다.

'아이책 문화 운동가'인 저자가 자신 있게 권하는 책 목록을 보며 읽고 싶은 책들을 아이에게 골라보게 하는 것은 어떨까?

"...3부에서는 주제별로 책을 골라보았습니다. 가족, 가치관, 늙음과 죽음, 따돌림, 성교육, 평등한 여성상, 장애아, 평화, 우정 등 아이들 세계에도 수많은 문제가 있고 그것 때문에 부대끼는 것은 어른과 다르지 않습니다. 따라서 아이들이 다양한 주제의 책을 읽으면서 살아가는 이유를 발견하기도 하고, 우리 둘레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힘도 생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더 나아가 다른 분야의 책을 읽게 하는 계기가 된다면 더욱 좋겠지요. -머리말 중에서

4부는 책읽기와 관련한 궁금증과 질문인데 어린이 책 하나를 매개로 어린이 문화운동을 25년 이상 해온 저자의 고집과 열정, 시행착오 끝에 얻은 값진 경험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부록으로 인터넷이든 오프라인이든 아이들과 함께 떠나 볼 수 있는 책 여행 가이드에 도움될 것들을 실었다.

이 책은 이제까지 보아 왔던 아이들 책 지침서와는 분명 다른 점들이 많이 보인다. 저자의 아이들 책에 대한 애정이 아이들 가슴에 날아들어 튼실한 열매를 맺었으면 좋겠다.

"엄마, 나 이 책이 좋아요. 읽고 또 읽어도 계속 읽고 싶어요."

이제 다시 독서의 계절이다. 신문이고 방송이고 독서의 계절이라고, 그러니까 '일년 내내 책 한 권 읽지 않은 그대도 반드시 책 한 권은 사보아야 한다'고 은연중에 협박할 것이다. 우리 부모들도 아이들에게 "독서의 계절 가을이야. 컴퓨터게임은 그만하고 제발 책 좀 읽어라" 하고 잔소리할지도 모른다.

아이들마다 자라는 환경이나 특성이 모두 다르고, 관심과 호기심도 다르다. 그런데 언제까지 이런 저런 단체에서 제시하는 기준에 내 아이를 맞추고 있을 것인가. 부모로서 내 아이의 책은 내가 고른다는 자신감. 내 아이의 미래는 내가 열어준다는 애정으로 책읽기에 관심을 두자.

그런데 어떤 책을 사줄 수 있는가? 어떤 책을 내 아이가 읽기를 바라는가? 책에 어느 정도 빠져 사는 부모들이라면 그나마 덜 힘들겠지만 책읽기에 그다지 빠져보지 않은 부모들은 정말 막연한 문제다.

그럼 이런 든든한 길잡이 한 권 챙겨 들어라. 내 아이가 책에서 더 멀어 지기 전에. 가을이 더 가까이 영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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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사랑 2005-10-25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이 더 영글기 전에라.강렬한 구매욕구를 불러 일으키는데요.^^
 
핵의 평화 생명의 평화
도석스님 지음 / 열린아트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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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버려지고 또 버려지고...세 번 버려진 억울한 영혼들이여

"죽은 나의 시체를 일본 대사관 앞에 두고 여러 사람의 눈에 띄게 하라. 나도 면목이 없지만 외국인이라 하여 피폭자를 방치한 일본정부는 더욱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본문 121쪽

1975년 봄, 30년간 원폭피해 후유증에 시달리던 이남수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이렇게 유언하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다른 원폭 피해자나 그의 후손이 뼈저린 절망 앞에 목숨을 끊으려 할지도 모른다.

혹자들은 말할지도 모른다. '이미 30년이나 지났는데 지금까지 이남수씨처럼 목숨 끊을 만큼 나라에서 그냥 두었겠는가? 옛날만큼 못사는 것도 아닌데 나라에서 보상 없이 그대로 있을 것인가' 라고.

이남수씨가 목숨을 스스로 끊기 1년 전인 74년 손진두씨는 7년 동안의 외로운 재판 끝에 '한국인도 <피폭자 수첩>을 받을 수 있다'는 권리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일본은 바로 '후생성 402호' 규정을 두어 수첩 소지자가 일본 영토를 벗어나는 순간 지원을 받을 수 없게끔 만들고 말았다.

손진두씨가 외로운 투쟁으로 얻어내고 싶었던 것은 진정 무엇이었을까?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지는 순간 일제에 징용당해 끌려간 7만의 한국인이 피해자가 되었다. 그 순간 4만 명이 죽고 3만 명은 후유증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다. (60년이 지난 지금 대다수는 한을 풀지 못한채 세상을 떠났고, 10% 피해자가 생존해 있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은 원폭 피해자가 부모임을 숨겨야만 하는 억울한 삶을 살고 있다.)

이남수씨는 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만 했는가? 손진두씨는 왜 외로운 투쟁을 해야만 했는가?

▲ 자수공예가인 스님은 지난 10여 년간 한 땀 한 땀 수를 놓아 버림받은 우리 피폭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위령제와 추모사업을 해왔다 .또 원폭투하로 희생된 영혼들 중 명단이 확인된 2914위의 무연고 영령을 우리 땅에 모셔와 평안을 기도하고 있다.
이들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의 생자들 7만여 명 중 일부일 뿐이다. 한사람은 고국조차 외면하고 있는 그들의 권리를 위하여 투쟁했고, 또 한사람은 죽음으로써 자신들의 억울한 고통과 한을 단 한사람에게라도 알리고자 했다.

그러나 지금 원폭피해자들에게 일본 정부는 어떤 태도인가. 그들의 고국인 우리나라 정부는 또 어떤 태도인가. 우리들은 그들에 대해서, 그들의 고통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가. 일본이 외면한 것도 억울한데 우리 스스로 그들을 버리고 있지 않은가.

억울하게 끌려가 피폭의 고통으로 버림 받았고, 일본의 전쟁야욕으로 피폭 당했음에도 적절한 보상은 물론 마땅한 사과조차 받지 못한채 버림 받았다. 그리고 제 백성을 지켜내지 못한 조국에게 다시 버림받았다.

그들은 이렇게 세 번 버림받았다. 그리고 여전히 외면당하고 있다.

평화라는 화두를 들기까지...

"나는 지극히 평범한 승려입니다. 그런 내가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것은 60년 전 일본 땅에서 원폭에 죽어 간 7만 여명의 한민족 영령들과, 지금도 원폭의 고통 속에 방치된 채 처절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 1세와 그들 2세의 존재에 대해 널리 알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도석스님은 비교적 어린 나이인 여고생 때 전통자수와 접했다. 1970년에는 일본의 기모노나 오비에 수를 놓아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던 시절이었다.또한 1978년부터는 대한무역진흥공사에서 중간 연결자 없이 직접교역이 가능한 길을 열어주었다.

기모노 하나에 자수를 완성하면 당시 3~4천만원은 쉽게 받을 수 있었으며. 고급품에 1~2년을 걸려 수를 놓아주면 1억원이 넘는 대가를 받을 수도 있었다.

ⓒ2005 열린아트
이런 돈벌이의 단순한 거래처였던 일본에 이제는 그들의 평화를 가장한 이중성에 맞서는 선두가 되었다. 스님은 말한다.

"일본인에게 고문당한 후유증으로 정신병자라는 손가락질을 받다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아버지도, 일본에 수를 놓아 돈을 벌었던 지난 시절도, 죽은 목숨으로 타의에 불가에 입문하여 스님이 된 것도 모두 지금 이 길을 가기 위한 인연이었다."

어떻게 스님이 되었는지, 우리 불교계의 큰 별 성수스님과의 인연이 어떻게 닿았는지 보다는 도석스님의 피폭자들에 대한 거룩한 발원에 더 주목하여 마음으로 읽어 보았으면 한다.

혹시라도 스님이 쓴 글이니 종교서 쯤으로 생각하여 외면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이 책의 초점은 스님의 평화에 대한 화두다. 억울한 우리 피폭자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만 하는 것들과 정부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하는 것들이다.

일본은, 자국의 원폭 자들에 대해 대대한 지원을 하는가하면 원폭의 후유증으로 죽어간 소녀마저 이용하여 자국의 평화를 위장하는데 혈안이면서 자신들의 전쟁야욕으로 희생된 한국인 피폭자들에게는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 그럼 그들의 조국인 우리는 그들을 위하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 중 얼마가 그들의 고통을 아는가?

이 책을 통하여 저희가 스스로 저지른 전쟁의 부끄러움도 평화라는 이름으로 위장하여 세계에 원폭의 피해자라 하소연하는 뻔뻔스런 그들의 실체를 낱낱이 보기 바란다. 아울러, 해방이라는 이름 뒤에 억울한 피폭으로 버려진 우리 동포들의 아픔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헤아리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이다.

일본에 대해 알고 싶거든 반드시 읽어라

ⓒ2005 열린아트
책 속에는 도석스님의 원폭 피해자자들에 대한 거룩하고 원대한 서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단 한나절 읽을 수 있을 만큼 글들은 속속 스며든다. 마음속에 그대로 소름끼치도록 깊은 자각과 감동으로 스며드는 글들이다.

이 책을 읽어 나가는 많은 사람들이 원폭 피해자들의 아픔에 나처럼 부끄러워하기를 바란다. 또한 그 부끄러움에 울고 싶기를 바란다. 나아가 원폭 피해자자들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그들에게 힘이 되는 마음의 동참이든 물질적인 동참이든 적극 나서길 바란다.

아쉽다면 이 책을 읽은 사람이 선뜻 동참할 수 있는 경로를 덧붙여두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 받았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이제라도 수정을 하여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동참을 할 수 있게 독려했으면 좋겠다.

일본정부의 마땅한 사과와, 고국의 든든한 지원 못지않게 우리들에게 같은 동포라는 끈끈한 지원을 받아야만 하는 그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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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사랑 2005-10-25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 아픈 글은 사실 손이 잘 안 가는데...하지만 외면하다고 피해지는 것은 아니니까.
읽어보고 싶네요. 추천!
 
촌놈 임락경의 그 시절 그 노래 그 사연
임락경 지음 / 삼인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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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런 이야기 어떠실지 모르겠는데. 십수 년 전에나 유신 시절에는 세상에 나올 엄두조차 못 먹었을 그런 내용들 아닐까요. 말하자면 빨갱이로 몰리거나, 죽어도 열두 번은 죽다 살아났을 그런 이야기들 아닐까..."

"그렇지요. 그나마 지금처럼 언론이 이만큼이라도 자유로워졌으니 감히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지요.'풍경소리'라는 곳에 몇 년간 기고했던 글인데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는가에 따라 책으로 낼 수 있다 없다'라고 우리들은 말하기도 했습니다."
- 저자와의 짧은 전화 인터뷰 중에서

<촌놈 임락경의 그 시절 그 노래 그 사연>은 제목만으로는 낭만과 아련한 향수의 노래들 같다. 지난 날 많은 사람들에게 불려졌던 노래들을 추억하며 쓴 글이지 싶었다. 전원에 묻혀 사는 사람이 옛날을 추억하는 노래들이려니... 그러나 그 예상은 단단히 빗나갔다.

어떤 노래들일까. 목록을 더듬어 보며 '이건 잘못 선택한 거야'라며 후회했다. 그러나 머릿글부터 급격하게 빠져 들고 있었다. '이런 사람이 있었구나!' '이런 소재로 이렇게 훌륭한 책이 될 수 있구나!' '혹시라도 누가 몇 권을 슬쩍 들고 갈지 모르니까 이 책만큼은 나만 아는 곳에 미리 숨겨 두어야겠구나!'라면서 책과 그 책을 쓴 임락경을 만나게 됐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결코 뱃속이 편하지 않다. 오히려 이 책을 읽으면 불편할 사람이 많을 듯하다. 말로만 '애국 하네' '환경보호네' '우리 모두 더불어 잘살아 보세'라고 떠벌리며 사는 사람들이 우선 그 축에 들겠다.

그리고 우리의 잘못된 역사 인식과 시대적 오류로 졸지에 위인의 반열에 든 사람들이 살아온 날을 더 이상 자부하지 못하리라. 그뿐인가! 그 후손들은 응당 부끄러워하며 역사바로잡기에 더 앞장서야 할 것이다.

<권불십년> 편에 '이박사찬가'와 '이 대통령 찬가'가 있다. 영웅 대통령에게 빌붙어서 앞날이 창창하고 싶어서 이런저런 찬가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가르친 것이다. 민심이야 굶주리든 말든 영웅 대통령 생일상 앞에서 굽실거리며 또 칭송하여 불렀다. 이런 세태를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1. 왔네 왔네 해방 왔네 망명 갔던 이 박사가 일제탄압 물리치고 조국 광복 이룩코져 중국 미국 건너가서 해방 싣고 돌아 왔네 얼씨구 좋다 지화자 좋다- <이박사찬가>

1956년도에 어떤 충(忠) 무엇(犬)이 지어 국민 학교에 보급한 노래다. 노래를 가르치신 선생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좀 어색해 하면서 맘에 없는 것 같으면서 위엄 있게, 이박사의 노래가 아니고 찬가(讚歌)라는 대목을 강조하면서 가르치셨다. 4.19혁명이 지나도록 전국에 보급되었다. 여학생들은 고무줄놀이하면서 부르고... 스스로 없어져 아쉬운 마음도 있고, 역사는 역사라서 적어본다.

- '이박사 찬가에 대하여'

2. 우리나라 대한 나라 독립을 위해 일생을 한결같이 몸 바쳐 오신 고마우신 이 대통령 우리 대통령 그 이름 길이길이 빛내오리다 - <이 대통령찬가>

사방의 날 1960년 3월 15일, 이른바 3.15 부정선거 기념일이다. 역시 이승만 대통령의 생일로 기억된다... 그러다가 휴일로 정해야 되겠기에 1956년경으로 생각되는데, 갑자기 3월 15일을 사방의 날이라 정하고 정식 공휴일로 정했다... 여학생들은 생일상 앞에서 대통령찬가를 불러야 했다. 대통령이 지방 어느 도시로 행차하시거나 무슨 기념일 때나 행사때 나타나시면 여고생들은 이 노래를 불러야 했다. 오래 가지는 않고 2~3년 부르다 4.19 때 없어진 노래인지라 기억하는 이가 없어, 그 이름 길이길이 빛내고자 이렇게 적는다. 어느 충견이 지으셨는지 모르지만.

이 책을 읽어 나가는 동안 자칭 '촌놈 임락경'의 이야기가 어떤 애국자의 말보다 곧으며 떳떳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거침없는 말과 자유분방한 이야기는 진솔하고 호소력이 있었으며 더 아프게 다가왔다.

누가 이미 묻혀 버린 아프고 치욕스러운 노래들을 채록하길 원할 것이며, 앞날을 살아가는 희망의 씨앗으로 다시 심을 수 있으랴. 그것도 뼈 있는 일침으로 말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노래들은 젊은 세대들에게는 대부분 낯선 곡들이다. 하지만 지금도 노래방에서 더러 불려지는 <댄서의 순정>이나 비교적 많이 알려진 <단장의 미아리 고개> 같은 노래들도 있다. 또한 농촌에서 계몽적인 운동에 자주 불렸거나 군대에서 자주 불려졌던 노래들도 하나의 주제로 묶어 들려 준다.

어린 시절 언니가 불러 자연스레 알게 됐던 <달 따러 가자> <뚝딱 뚝딱 해는 저문다> 같은 노래도 있다. 지금도 많은 아이들이 부르는 <새 나라의 어린이> 같은 노래도 있다.

잊혀지다가 저자에 의해 기록되고 있는 노래들은 아픈 세대들의 귓전에 쟁쟁하던 곡들이 많다. 이런 저런 금지도 많고 계몽도 많았던 그때 그 시절에 많이 불려졌던 곡들이며, 어쨌든 불러야만 했던 곡들이다. 설움 대신 부르던 노래들이었고 부끄럽게 불러야 했던 노래들이었다.

노래마다 담겨 있는 사연들은 왜 그리 아픈지 모르겠다. 민초라는 이름이 왜 그렇게 억울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또 왜 그리 많은지... 거침없이 들려 주는 노래 이야기들을 따라 우리가 살아 온 부끄럽고 아픈 역사를 다시 읽는다. 민초들의 사회사를 다시 읽는다.

'해방가'로 시작하여 '수정가'로 끝나는 72편의 노래들을 이제 새삼 모두 알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도 가물가물한 노래들이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이제 새삼 다시 부른다고 억울한 맺힘이 치유될 턱도 없다. 그러나 가급적이면 많은 사람들이 이젠 이쯤에서 한 번 알았으면 하는 노래 그 이상의 이야기들이다.

야사(野史). 야사만의 걸죽한 분위기나 화통한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썩 만족할 수 있을 법하다. 이 한 권으로 야사적인 특별하고 남다른 그 맛을 흠벅 맛보았다고나 할까.

이 한 편의 글로 이 책의 이야기를 제대로 알린다는 것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예로 든 것처럼 정치적인 목적의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남편을 전선에 보낸 아내의 이야기나 험한 세상 살아내야 하는 여인의 이야기 등 서러운 이야기들이 더 많다. 그야말로 대부분 '민'자 돌림들의 설움에 지친 눈빛의 노래들이다.

▲ 양봉을 해서 철따라 꿀을 딴다. 이곳은 추워서 벌들이 겨울나기가 힘들다(책 속 사진 설명).
ⓒ2005 삼인

강의가 끝나고 대학 1학년 학생이 첫 질문에 선생님은 왜 눈이 작으냐고 묻는다. 내 답변은 이랬다.

"눈이 작으니까 눈꺼풀 열고 닫는 데 기력이 적게 소모되고, 눈알 굴리는 데 윤활유가 적게 먹고, 먼지나 티가 적게 들어가고, 눈병이 나면 안약을 다른 사람 두 방울 넣을 때 한 방울만 넣어도 되고, 총 쏠 때 한 눈 안 감아도 되고, 세상 구경 다하고 죽으려면 남보다 배는 오래 살 수 있다."


▲ 지금까지 즐겁게 살았으나 앞으로는 기쁘게 살고 싶다(책 속 사진 설명).
ⓒ2005 삼인

책을 읽어나가는 중간에 저자가 참 궁금했다. 그야말로 꼭 인터뷰하고 싶은 마음에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궁금한 것 우선 몇 가지를 물어 보았다. 좀 더 나은 날 인터뷰를 하자는 약속도 잡으면서... 책을 모두 읽고 나니 뒷부분 <인생가>와 <설움에 지쳤던 눈빛이 보여요> 편에 좀 더 많은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 모두 72편인데, 전 잘 모르는 노래들이지만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노래 이상의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책도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데요. 앞으로 계획은 없으신가요?
저자: "원래 계획 잡았던 곡 중에서 8곡을 덜어냈습니다. 책이 너무 두꺼워져서요. 두 번째도 앞으로는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책도 보는 사람이 있긴 있군요."

- 일반적인 노래에 대한 비슷한 책들은 좀 있었지만, 전 이런 노래, 이런 내용의 책은 처음입니다. 노래들마다 덧붙여 들려 주는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의 역사, 민초들의 설움을 많이 보았습니다. 가장 알리고 곡은 어떤 곡인지요.
저자: "첫 번째 <달 따러 가자>에 보면 '이 세상 어딘가엔'이 있지요? 그 곡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제가 늘 이상으로 두고 있는 것들을 담고 있는 노래지요. 그 곡을 가장 앞세우고 싶습니다."

- 책에 보면 사회 전반에 대한 올곧은 이야기, 사회공동체 간 더불어 살아가는 이야기나 역사적 주체성의 글들이 많은데 그래도 아쉽거나 다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면?
저자: "제가 하고 있는 일이 환경 생태계에 관한 것들인데 생각보다 많이 담아내지 못해 아쉽습니다."

이 책의 첫 곡이자 머릿글로 앞세우는 곡은 '해방가'이고 마무리 글과 마지막 곡은 '수정가'다. 역사는 역사라서,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기록했다고 한다. 그 기록의 글들의 빛깔은 가닥가닥 아프고 서럽기 이를 데 없지만 저자가 바라는 것은 이 사회에 대한 희망이다.

또 아픈 시대를 살아 낸 우리 민족의 저력을 말하고 싶어한다. 말만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불우한 사람들과 제대로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책은 물론 저자와의 짧은 인터뷰는 두고 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 우리 집은 우리 식구들이 손수 짓는다(책 속 사진 설명).
ⓒ2005 삼인

저자 임락경은 스스로 '국민학교만 나왔지만 대학 나온 사람들과 토론해 보는 것이 소원'이라 하는데 현재 상지대학교 초빙교수로 그 소원 하나를 이루었다고 말한다. 틈틈이 글을 쓰면서 강연도 다닌다. 지난날 간첩이나 간첩 비슷한 걸로 지목되어 자주 고문도 받았으며 늘 감시의 인물에 속하기도 했다.

거주 지역에서 환경에 대한 여러 가지 감투와 함께 농사일이나 아픈 사람들에게 좋은 음식을 알리는 일을 더 좋아하는 목사 임락경은 정신과 몸이 불편한 사람들의 안식처에서 그들을 위해 일하며 그들 서른 명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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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스타벅스에 가다 - 커피와 다방의 사회사, 인사 갈마들 총서 1 인사 갈마들 총서
강준만. 오두진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커피 한 잔 드릴까요?"

<고종 스타벅스에 가다>는 커피와 다방이 우리 사회에서 진화해 온 과정을 알려주는 책이다. 그간 우리가 흔히 볼 수 없었던 귀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비교적 자세하고 쉽게 커피를 둘러싼 많은 것들을 알려준다는 데 이 책의 의미가 있다 하겠다.

우리 나라는 커피콩 한 알 나지 않는데도 세계에서 커피를 많이 마시는 나라의 그룹에 든다. 또한 커피 소비국 13위며, 우리의 커피냉동건조기술은 기술개발국가인 미국보다 우수한 것으로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저자가 표현하는 것처럼 '기형적인 인스턴트커피 발전국가'로 연간 8만 톤의 원두를 수입하며, 이중 90~95%는 인스턴트커피로 가공된다고 한다.

많은 소비와 함께 놀라운 가공기술은 그만큼 커피가 우리 생활에 깊숙이 관여해 왔다는 중요한 증거다. 기호품이면서 '국민음료'로 등극한 이 커피는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의 기분에, 커뮤니티에 깊숙이 관여한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도 손님에게 선뜻 말한다.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우리에게 커피는 무엇이며, 어떻게 진화해 왔는가?

이 책은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사회 전반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사람, 혹은 앞으로 더 알고 싶은 게 많은 사람들이라면 읽어볼 만하다. 커피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커피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숨겨진 우리 근대사를 풍성하게 접할 수 있다. 커피를 둘러싼 이야기가 이렇게 많았나 싶을 만큼 흥미롭다.

커피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1890년대 들어왔으며, 고종은 커피마니아, 말하자면 커피 중독자였다. 은둔의 나라에 커피는 개명국의 상징으로 들어와 사랑받기 시작하여 한때 '찬사'의 대상이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민간에서 커피는 보약의 개념인 양탕국으로 불려졌고, 힘들게 구한 커피를 가마솥에 끓여 잔치를 벌였을까.

'커피'와 '다방'은 암울한 일제시대에 최고 엘리트들의 살아가는 모습이었고 슬픈 보헤미안들의 울분이기도 했다. 다방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예술인들이었다. 시인 이상은 다방 이름으로 종로경찰서를 조롱하기까지 하였다고 이 책은 쓰고 있다.

커피는 우리 나라 역사와 함께 여러 가지 모습으로 꾸준히 진화를 되풀이하면서 우리 삶에 배어들었다. 미군 주둔은 그 귀했던 커피가 민간인에게 한층 더 가까이 다가서는 계기가 되기도.

박정희가 주도하는 5·16 군사정권은 각종 '금지'를 만들었는데 커피도 망국의 범인으로 지목돼 금지의 대상이 되었다. 아울러 이 책은 커피와 관련한 수많은 사회, 역사적 자취를 자세하면서도 쉽게 적어 나가고 있다.

책 내용을 바탕으로 위 사진을 설명하면, 커피와 함께 여러 가지 형태로 발전해 온 다방에 1970년대부터 뛰어난 미모의 얼굴마담이 생겼다. 이 얼굴마담의 미모와 역할에 따라 다방 매출이 큰 차이가 나서 다방 업주들은 이 얼굴마담 유치에 혈안이 될 정도였다. 1970년대는 다방이 발전한 시기여서 음악다방과 DJ가 생겨나기도 했으며 젊은 청춘들이 다방으로 급속히 몰려들었다. 음악다방과 DJ 출현은 우리 나라 대중음악사에도 깊숙한 관여를 하였다.

1984년 처음으로 안성기가 커피 광고에 출현하였다. 어떤 이미지, 어떤 분위기의 모델이 광고를 하는가에 따라 커피 브랜드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또한 어떤 모델이 광고를 하는가에 따라 커피 매출이 크게 달라졌다. 지금도 커피 회사마다 각각 내세우는 독자적인 분위기의 커피 광고를 유지하고 있다.

"커피 한 잔을 시켜두고 그대 오기를 기다려 봐도…" 펄 시스터즈의 '커피 한 잔'이라는 노래는 젊은층의 커피문화를 대변하며, 단순한 커피 한 잔이 아니라 우리 나라 커피 역사의 한 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커피를 소재로 하는 노래는 많이 불려지고 있으며, 또한 남녀간의 사랑과 이별을 커피 향기가 물씬 풍기는 노래로 자주 표현하고 있다.

1976년에 등장한 커피믹스. 다방커피에 익숙해진 한국인의 기호를 고려해 커피의 크림과 설탕을 적절히 배합해 내놓은 이 제품은 더운 물만 있으면 어디에서나 간편하게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하며 커피 대중화에 큰 역할을 하였다… 모두가 가난했던 그 시절, 손님이 오면 접대하려고 한 봉지 45원 하는 '커피믹스'를 한두 개 사들고 가던 모습은 흔한 풍경이었고, 당시 한 봉지의 커피믹스는 70년대의 인정을 함축했다.

인정의 다른 편엔 낭만이 있었다. 77년 장계현이 부른 <나의 20년>에서 "커피를 알았고 낭만을 찾던 20살 시절에 나는 사랑 했네"라고 묘사되었듯이, 커피는 낭만의 상징이었다. - 제4장 <찻집의 고독>에서 '맥스웰 하우스 커피'로 -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만나고 싶다"로 이미지 광고에 성공한 캔커피는 91년 국내에 선보였다. 맥스웰 하우스의 캔커피는 다른 업체들까지 경쟁업체로 뛰어드는 계기가 되었으며 휴대가 간편한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는 시점이 되기도 하였다. 캔커피의 고급화, 컵커피, 병커피의 제품과 아울러 요즘에는 원유를 혼합한 고급제품이 많이 판매되고 있다.

자판기의 커피를 우리들은 '길다방 커피'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판기의 보급으로 커피는 더 깊숙이 일반인들에게 스며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자판기의 무분멸한 설치 보급은 중, 고등학생들을 커피 중독에 빠져들게도 하였다. 또한 이 과정에서 커피자판기 설치와 관련하여 일부 학교에서는 비리까지 생겨나 결국 학교에서 자판기가 모두 철거되는 일도 있었다.

커피 자판기 보급으로 커피가 서민에게 급속도로 보편화되면서, 처음에는 예술인들의 중요 터전이었고 이후 실직자와 사기꾼으로 북적이는 등 커피와 함께 성장해온 다방은 설 자리가 없어졌다. 한동안 티켓다방으로 사회의 문제점이 되기도 했지만, 일부는 젊은 취향에 맞추어 '커피전문점'으로 변하면서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수용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후 스타벅스 같은 커피전문점이 세계에 급속히 번지면서 국내에도 상륙하여 번성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면 으레 스타벅스 같은 커피전문점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부에서는 이런 현상을 우려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커피와 관련한 80년대 이전의 일화를 자세히 다루는 대신, 최근에 커피를 둘러싸고 사회의 문제가 되었던 것들은 거의 말하지 않고 있다.

대신, 이 책은 327개의 각주(책 페이지 내용 하단부에 곁들여 덧붙이는 설명이나 자료)를 성실하게 제시하고 있다. 사실 커피의 역사를 이 한 권의 책으로 모두 알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일이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1970년대 이전의 이야기는 높은 비중을 싣는 데 비해 2000년 이후의 커피 역사는 잠깐 다룰 뿐이다. 아래 덧붙인 각주를 통하여 더 알아 볼 수도 있다.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 나가는 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지난 날 커피 역사까지 새삼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 나라 어른들 중에서 커피와 관련한 추억 하나 없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또한 그 어떤 것보다 '커피 한 잔'에 대해서는 누구나 추억할 수 있으며 "커피란…이다"라고 정의도 쉽게 내릴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카카듀'? 해장커피, 톱밥커피는 무엇이고 꽁초커피는 무엇일까? 법정으로 간 커피자판기가 있었다는데? 화랑다방, 음악다방, 심야다방, 노땅다방, 음란다방의 차이점…. 누구나 목록만 펼쳐 들고서도 궁금할 내용들이 많다. 저자의 말처럼 커피 한 잔 마시며 읽고 말기에는 너무 많은 자료들이고, 좀 더 많은 커피이야기를 만나러 가는 길목 역할을 하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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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9-03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는 일보다 리뷰 읽는 일이 더 좋은 경우가 해당됩니다.^^

서연사랑 2005-09-03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 다닐때 총학 출범식날은 학교 자판기 커피가 50원이었죠(평소에는 100원이다가)^^. 그 때 그 자판기 커피는 왜 그리 맛있던지.... 커피 이야기, 너무 재미있겠어요. 추천!

panda78 2005-09-04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진 리뷰입니다. 안 그래도 보관함에 넣어두고 있었는데 당장 사야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