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야기 어떠실지 모르겠는데. 십수 년 전에나 유신 시절에는 세상에 나올 엄두조차 못 먹었을 그런 내용들 아닐까요. 말하자면 빨갱이로 몰리거나, 죽어도 열두 번은 죽다 살아났을 그런 이야기들 아닐까..."
"그렇지요. 그나마 지금처럼 언론이 이만큼이라도 자유로워졌으니 감히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지요.'풍경소리'라는 곳에 몇 년간 기고했던 글인데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는가에 따라 책으로 낼 수 있다 없다'라고 우리들은 말하기도 했습니다." - 저자와의 짧은 전화 인터뷰 중에서
<촌놈 임락경의 그 시절 그 노래 그 사연>은 제목만으로는 낭만과 아련한 향수의 노래들 같다. 지난 날 많은 사람들에게 불려졌던 노래들을 추억하며 쓴 글이지 싶었다. 전원에 묻혀 사는 사람이 옛날을 추억하는 노래들이려니... 그러나 그 예상은 단단히 빗나갔다.
어떤 노래들일까. 목록을 더듬어 보며 '이건 잘못 선택한 거야'라며 후회했다. 그러나 머릿글부터 급격하게 빠져 들고 있었다. '이런 사람이 있었구나!' '이런 소재로 이렇게 훌륭한 책이 될 수 있구나!' '혹시라도 누가 몇 권을 슬쩍 들고 갈지 모르니까 이 책만큼은 나만 아는 곳에 미리 숨겨 두어야겠구나!'라면서 책과 그 책을 쓴 임락경을 만나게 됐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결코 뱃속이 편하지 않다. 오히려 이 책을 읽으면 불편할 사람이 많을 듯하다. 말로만 '애국 하네' '환경보호네' '우리 모두 더불어 잘살아 보세'라고 떠벌리며 사는 사람들이 우선 그 축에 들겠다.
그리고 우리의 잘못된 역사 인식과 시대적 오류로 졸지에 위인의 반열에 든 사람들이 살아온 날을 더 이상 자부하지 못하리라. 그뿐인가! 그 후손들은 응당 부끄러워하며 역사바로잡기에 더 앞장서야 할 것이다.
<권불십년> 편에 '이박사찬가'와 '이 대통령 찬가'가 있다. 영웅 대통령에게 빌붙어서 앞날이 창창하고 싶어서 이런저런 찬가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가르친 것이다. 민심이야 굶주리든 말든 영웅 대통령 생일상 앞에서 굽실거리며 또 칭송하여 불렀다. 이런 세태를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1. 왔네 왔네 해방 왔네 망명 갔던 이 박사가 일제탄압 물리치고 조국 광복 이룩코져 중국 미국 건너가서 해방 싣고 돌아 왔네 얼씨구 좋다 지화자 좋다- <이박사찬가>
1956년도에 어떤 충(忠) 무엇(犬)이 지어 국민 학교에 보급한 노래다. 노래를 가르치신 선생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좀 어색해 하면서 맘에 없는 것 같으면서 위엄 있게, 이박사의 노래가 아니고 찬가(讚歌)라는 대목을 강조하면서 가르치셨다. 4.19혁명이 지나도록 전국에 보급되었다. 여학생들은 고무줄놀이하면서 부르고... 스스로 없어져 아쉬운 마음도 있고, 역사는 역사라서 적어본다.
- '이박사 찬가에 대하여'
2. 우리나라 대한 나라 독립을 위해 일생을 한결같이 몸 바쳐 오신 고마우신 이 대통령 우리 대통령 그 이름 길이길이 빛내오리다 - <이 대통령찬가>
사방의 날 1960년 3월 15일, 이른바 3.15 부정선거 기념일이다. 역시 이승만 대통령의 생일로 기억된다... 그러다가 휴일로 정해야 되겠기에 1956년경으로 생각되는데, 갑자기 3월 15일을 사방의 날이라 정하고 정식 공휴일로 정했다... 여학생들은 생일상 앞에서 대통령찬가를 불러야 했다. 대통령이 지방 어느 도시로 행차하시거나 무슨 기념일 때나 행사때 나타나시면 여고생들은 이 노래를 불러야 했다. 오래 가지는 않고 2~3년 부르다 4.19 때 없어진 노래인지라 기억하는 이가 없어, 그 이름 길이길이 빛내고자 이렇게 적는다. 어느 충견이 지으셨는지 모르지만.
이 책을 읽어 나가는 동안 자칭 '촌놈 임락경'의 이야기가 어떤 애국자의 말보다 곧으며 떳떳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거침없는 말과 자유분방한 이야기는 진솔하고 호소력이 있었으며 더 아프게 다가왔다.
누가 이미 묻혀 버린 아프고 치욕스러운 노래들을 채록하길 원할 것이며, 앞날을 살아가는 희망의 씨앗으로 다시 심을 수 있으랴. 그것도 뼈 있는 일침으로 말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노래들은 젊은 세대들에게는 대부분 낯선 곡들이다. 하지만 지금도 노래방에서 더러 불려지는 <댄서의 순정>이나 비교적 많이 알려진 <단장의 미아리 고개> 같은 노래들도 있다. 또한 농촌에서 계몽적인 운동에 자주 불렸거나 군대에서 자주 불려졌던 노래들도 하나의 주제로 묶어 들려 준다.
어린 시절 언니가 불러 자연스레 알게 됐던 <달 따러 가자> <뚝딱 뚝딱 해는 저문다> 같은 노래도 있다. 지금도 많은 아이들이 부르는 <새 나라의 어린이> 같은 노래도 있다.
잊혀지다가 저자에 의해 기록되고 있는 노래들은 아픈 세대들의 귓전에 쟁쟁하던 곡들이 많다. 이런 저런 금지도 많고 계몽도 많았던 그때 그 시절에 많이 불려졌던 곡들이며, 어쨌든 불러야만 했던 곡들이다. 설움 대신 부르던 노래들이었고 부끄럽게 불러야 했던 노래들이었다.
노래마다 담겨 있는 사연들은 왜 그리 아픈지 모르겠다. 민초라는 이름이 왜 그렇게 억울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또 왜 그리 많은지... 거침없이 들려 주는 노래 이야기들을 따라 우리가 살아 온 부끄럽고 아픈 역사를 다시 읽는다. 민초들의 사회사를 다시 읽는다.
'해방가'로 시작하여 '수정가'로 끝나는 72편의 노래들을 이제 새삼 모두 알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도 가물가물한 노래들이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이제 새삼 다시 부른다고 억울한 맺힘이 치유될 턱도 없다. 그러나 가급적이면 많은 사람들이 이젠 이쯤에서 한 번 알았으면 하는 노래 그 이상의 이야기들이다.
야사(野史). 야사만의 걸죽한 분위기나 화통한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썩 만족할 수 있을 법하다. 이 한 권으로 야사적인 특별하고 남다른 그 맛을 흠벅 맛보았다고나 할까.
이 한 편의 글로 이 책의 이야기를 제대로 알린다는 것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예로 든 것처럼 정치적인 목적의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남편을 전선에 보낸 아내의 이야기나 험한 세상 살아내야 하는 여인의 이야기 등 서러운 이야기들이 더 많다. 그야말로 대부분 '민'자 돌림들의 설움에 지친 눈빛의 노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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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봉을 해서 철따라 꿀을 딴다. 이곳은 추워서 벌들이 겨울나기가 힘들다(책 속 사진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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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삼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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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가 끝나고 대학 1학년 학생이 첫 질문에 선생님은 왜 눈이 작으냐고 묻는다. 내 답변은 이랬다.
"눈이 작으니까 눈꺼풀 열고 닫는 데 기력이 적게 소모되고, 눈알 굴리는 데 윤활유가 적게 먹고, 먼지나 티가 적게 들어가고, 눈병이 나면 안약을 다른 사람 두 방울 넣을 때 한 방울만 넣어도 되고, 총 쏠 때 한 눈 안 감아도 되고, 세상 구경 다하고 죽으려면 남보다 배는 오래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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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즐겁게 살았으나 앞으로는 기쁘게 살고 싶다(책 속 사진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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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삼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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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어나가는 중간에 저자가 참 궁금했다. 그야말로 꼭 인터뷰하고 싶은 마음에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궁금한 것 우선 몇 가지를 물어 보았다. 좀 더 나은 날 인터뷰를 하자는 약속도 잡으면서... 책을 모두 읽고 나니 뒷부분 <인생가>와 <설움에 지쳤던 눈빛이 보여요> 편에 좀 더 많은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 모두 72편인데, 전 잘 모르는 노래들이지만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노래 이상의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책도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데요. 앞으로 계획은 없으신가요? 저자: "원래 계획 잡았던 곡 중에서 8곡을 덜어냈습니다. 책이 너무 두꺼워져서요. 두 번째도 앞으로는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책도 보는 사람이 있긴 있군요."
- 일반적인 노래에 대한 비슷한 책들은 좀 있었지만, 전 이런 노래, 이런 내용의 책은 처음입니다. 노래들마다 덧붙여 들려 주는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의 역사, 민초들의 설움을 많이 보았습니다. 가장 알리고 곡은 어떤 곡인지요. 저자: "첫 번째 <달 따러 가자>에 보면 '이 세상 어딘가엔'이 있지요? 그 곡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제가 늘 이상으로 두고 있는 것들을 담고 있는 노래지요. 그 곡을 가장 앞세우고 싶습니다."
- 책에 보면 사회 전반에 대한 올곧은 이야기, 사회공동체 간 더불어 살아가는 이야기나 역사적 주체성의 글들이 많은데 그래도 아쉽거나 다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면? 저자: "제가 하고 있는 일이 환경 생태계에 관한 것들인데 생각보다 많이 담아내지 못해 아쉽습니다."
이 책의 첫 곡이자 머릿글로 앞세우는 곡은 '해방가'이고 마무리 글과 마지막 곡은 '수정가'다. 역사는 역사라서,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기록했다고 한다. 그 기록의 글들의 빛깔은 가닥가닥 아프고 서럽기 이를 데 없지만 저자가 바라는 것은 이 사회에 대한 희망이다.
또 아픈 시대를 살아 낸 우리 민족의 저력을 말하고 싶어한다. 말만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불우한 사람들과 제대로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책은 물론 저자와의 짧은 인터뷰는 두고 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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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집은 우리 식구들이 손수 짓는다(책 속 사진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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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삼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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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임락경은 스스로 '국민학교만 나왔지만 대학 나온 사람들과 토론해 보는 것이 소원'이라 하는데 현재 상지대학교 초빙교수로 그 소원 하나를 이루었다고 말한다. 틈틈이 글을 쓰면서 강연도 다닌다. 지난날 간첩이나 간첩 비슷한 걸로 지목되어 자주 고문도 받았으며 늘 감시의 인물에 속하기도 했다.
거주 지역에서 환경에 대한 여러 가지 감투와 함께 농사일이나 아픈 사람들에게 좋은 음식을 알리는 일을 더 좋아하는 목사 임락경은 정신과 몸이 불편한 사람들의 안식처에서 그들을 위해 일하며 그들 서른 명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